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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부자들' 이병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망가지는 연기가 두렵지 않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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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부자들' 이병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망가지는 연기가 두렵지 않았냐고요?"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1.0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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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한 명의 배우가 연기를 하다보면 자신의 인생을 바꿀 운명적인 작품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칫 평범하게 묻힐 수 있던 캐릭터가 한 명의 배우를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을 때도 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정치깡패 ‘안상구’가 그런 경우다.

11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내부자들’은 잘 알려진 대로 ‘이끼’와 ‘미생’의 원작자이기도 한 윤태호 작가가 한겨레신문에서 연재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강우석 감독의 연출로 2010년 개봉했던 윤태호 원작의 ‘이끼’가 작고 폐쇄적인 시골마을에 한국사회를 집약시켜 투영한 은유적 작품이었다면, ‘내부자들’은 정계와 재계의 정경유착,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거대 언론과 그 틈바구니에서 떡고물을 먹고 사는 어둠의 세계까지 한국사회의 폐부를 직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 영화 '내부자들' 이병헌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윤태호 작가의 ‘이끼’가 은유적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압축시켜 보여주며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면, ‘내부자들’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가 터질 정도로 많은 정보량을 요구하기에 대중들이 쉬운 호흡으로 따라가기 쉬운 작품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총 3부 분량으로 기획된 ‘내부자들’은 이야기가 절정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윤태호 작가가 연재중단을 선언하며 이야기의 결말조차 알 수 없게 됐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가운데서도 열심히 이야기를 따라갔는데 결말도 내지 않고 끝내다니. 너무 불친절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윤태호 작가의 원작 웹툰 ‘내부자들’의 이야기다.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내부자들’은 원작의 묵직한 무게감을 상당부분 스크린으로 끌고 오면서도, 대중들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재미를 충분히 만들어낸다. 물론 윤태호 작가의 원작 웹툰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결말도 영화에는 당연히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공의 상당수는 우민호 감독의 역량도 있지만, 정치깡패 ‘안상구’를 연기한 배우 이병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내부자들’의 언론시사회가 열린 다음날인 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내부자들’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이병헌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국내 언론과 만남을 가진 것은 2013년 개봉한 ‘지.아이.조.2’ 이후 2년 만의 일이다.

이병헌이 처음 ‘내부자들’의 시나리오를 만나게 된 것은 우민호 감독이 윤태호 작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결말부분까지 모두 만들어 시나리오를 완성한 직후였다. 윤태호 작가의 원작이라는 말은 매력적이었지만, 처음 이병헌이 읽은 ‘내부자들’의 시나리오는 사실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리 작품이 좋으면 뭘 하나. 막상 내가 연기할 배역이 별로인데 말이다.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우민호 감독님이랑 맥주 한 잔을 하는데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시나리오를 읽고 처음 꺼낸 말이 ‘제가 연기할 안상구가 제일 매력 없다’는 말이었다고요.”

▲ 영화 '내부자들' 이병헌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윤태호 작가의 원작 웹툰을 봤다면 이병헌이 ‘내부자들’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왜 불만을 가졌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작 웹툰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정치깡패 ‘안상구’는 그야말로 누구나 ‘깡패’하면 생각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덩치에 험상궂은 외모, 짧게 밀은 머리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거친 성격까지. 우민호 감독이 ‘내부자들’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상구’의 캐릭터를 다듬었다고 해도, 원작 자체에 묘사된 캐릭터의 설정이 너무나 평범해 돋보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드라마가 가진 힘이 워낙 강해서 관객들이 쉴 새 없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떤 인물 하나에게 가벼운 유머코드를 주던가 아니면 뭔가 약간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빈틈을 주어서 관객을 쉬어가게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감독님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도 단순한 ‘안상구’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는데도 효과적이기도 했고요.”

이병헌의 제안으로 원작보다 한층 풍부해진 ‘안상구’라는 캐릭터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바로 ‘안상구’의 첫 등장신이다. 윤태호 작가의 원작에서 누가 봐도 ‘깡패’에 불과했던 ‘안상구’는 첫 등장부터 비범한 모습으로 단숨에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람 잡으러 가는 길에 각그랜저가 아닌 연예인들이나 타는 밴을 타고 가고, 와이프 생일 챙기라고 케이크 상자를 건네주자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는 부하에게 “죽는 건 니 마누라한테나 가서 하고, 그냥 내 말이나 잘 들어”라고 농담까지 건넨다. 심지어 사람 패러 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내부자들’이 처음에는 3시간 40분 정도의 분량이 나왔어요. 그걸 2시간 10분 정도 길이로 줄이다보니 편집과정에서 고민도 많았던 것 같고. 캐릭터 위주로 편집을 한 버전도 있는데 저는 이 버전이 각각 인물들의 캐릭터가 좀 더 풍요롭고 입체적으로 나와서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 최종 버전처럼 사건 위주로 편집을 하니 영화가 힘이 있고 스피디해졌죠.”

“결과적으로 사건 위주로 영화를 편집하고 나니 저를 비롯해서 조승우씨나 백윤식 선생님이나 잘린 장면이 굉장히 많아요. 검사실에서 수사관이 조승우씨에게 ‘안상구요?’라고 하며 지나가는 몽타주 신들이 원래는 다 제대로 대사와 연기를 해서 찍은 장면들이에요. 그걸 다 스피디하게 몽타주로 처리한 거지. 저 같은 경우 많이 편집된 부분이 정치깡패인 안상구에게 입체적인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첨가된 부분들이었어요. 안상구가 깡패지만 연예기획사 대표이기도 하고 고전영화 대사들을 줄줄 외울 정도로 영화광이기도 해요. 또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앞주머니에 손수건도 꽂고 다니고. 왜 여관에서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 만날 때도 존 웨인 이야기를 하잖아요? 안상구에게는 그런 습관이 있어요. 작은 재미죠.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들.”

▲ 영화 '내부자들' 이병헌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상당히 묵직하고 진지한 ‘내부자들’에는 의외로 관객들이 보면서 박장대소할 장면이 많다. 그리고 그 장면들의 대부분은 이병헌이 연기하는 ‘안상구’가 등장하는 순간 터져 나온다. 혹시 오해할까봐 미리 말해주지만, 영화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안상구’는 한 번도 관객을 억지로 웃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안상구’의 모습에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까?”라던 안상구의 대사나, 미리 설명하면 웃음을 방해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여관 화장실 장면은 모두 이병헌이 우민호 감독에게 제안한 아이디어나 애드립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영화를 보고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망가지는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망가지고 안 망가지고 어떤 머리스타일로 나오고 이런 것은 배우들에게는 큰 부담이 안 돼요.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영화가 일단 시작되면 끝나는 순간까지는 계속 제가 그 캐릭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살다보면 이병헌이라는 내 개인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안상구라는 인물의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는거죠. 연기를 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어요. 하루 종일 그 캐릭터만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캐릭터가 할 만한 행동이나 아이디어가 저도 모르게 떠올라요.”

“개인적으로는 안상구가 옥상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장면이 제가 연기했지만 참 처량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어요. 한 때 잘 나가던 사람이 이제는 반 폐인이 되어 비닐봉지에 라면 하나, 담배 한 갑, 소주 한 병 사서 올라가 라면을 끓여 먹어요. 저는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그래도 안상구라는 친구가 지금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라면을 먹는 장면도 처음에는 왼손만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 연기를 하다보니 그것보다는 무식하게 잡고 먹는 것이 안상구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죠.”

수많은 배우 중에서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에서 최정상의 위치를 지켜오고 있는 최고의 배우. 그리고 이제는 한국을 넘어 모든 영화인들의 선망의 무대인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발히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스타, 한류스타, 아시아스타를 넘어 월드스타로 거듭나고 있는 배우. 그 어디를 살펴봐도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굳이 ‘내부자들’의 ‘안상구’처럼 망가지는 연기를 굳이 연기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처럼 최정상의 위치에 있는 배우가 감독의 지시가 아닌 배우 스스로 감독에게 요청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정상의 위치에서도 여전히 멈추지 않는 그의 연기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욕심이 아직도 그를 여전히 최고의 스타로 만들고 있는 힘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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