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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학창시절 체계적 트레이닝 통해 혹사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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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학창시절 체계적 트레이닝 통해 혹사 막아야"
  • 권대순 기자
  • 승인 2014.02.1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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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강흠덕 트레이닝 코치...학교체육 전문 트레이너 필요성 강조

[300자 Tip!] 강흠덕 두산 2군 트레이닝 코치는 30년간 트레이닝 분야에 재직하면서 선진 트레이닝 기법을 도입해 현장에 접목시키면서 우리나라 트레이닝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학생체육의 체계적 트레이닝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그는 전문 트레이너를 학교체육에 도입, 어린선수들의 혹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포츠Q 권대순 기자·사진 이상민 기자] '선수 트레이너'는 단순히 선수를 훈련시킬 뿐 아니라 선수의 심리상태까지 파악해야 한다. 훈련 때는 아버지처럼 엄하게, 대화가 필요할 때는 어머니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선수들을 보듬어 줄 것같은 인자한 인상의 소유자, 강흠덕(56) 두산 2군 트레이닝 코치를 만났다.

◆ 군대 선배의 권유로 트레이너 시작

선수 트레이너란 직업이 흔한 일은 아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원래 학교를 졸업하고 국립의료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신) 트레이너를 하던 군대 선배가 연락이 와 같이 일을 해보자고 했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쪽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트레이너가 하는 일을 잘 몰라 일단 구단을 방문했다. 막상 와서 보니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것같아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1984년도였다. ”

▲ 현재 최고참 트레이너로서 한국 선수 트레이너계를 이끌고 있는 강흠덕 코치.

◆ 메이저리그 방문, 우물 밖으로 뛰어나온 개구리

물리치료사라면 흔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이다. 스포츠를 전공하지 않은 물리치료사가 트레이너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일을 할수록 스포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결정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1994년이었다. 용인대학교 체대로 진학해 학사를 마치고 같은 대학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공부했다. 특히 트레이너라는 일이 단순히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선수들과 소통도 중요하기 때문에 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일을 하면서 대학을 다닌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학사에 이어 석사과정까지 마쳤다는 강 코치. 이런 행보가 시작된 계기는 메이저리그 방문이다.

“1994년 OB와 자매 결연을 맺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우수 선수들이 미국 교육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래서 나와 코치 1명, 그리고 심정수와 이도형, 손경수가 동행했다. 이전까지는 국내 구단들 운영방식만 참고했지 다른 나라의 운영방식을 알지 못했다. 새로운 도전이고, 충격이었다. 받아들일 것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현대식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 등 인프라의 차이가 컸다. ”

강 코치는 당시 햄버거 주문할 수준의 영어 실력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자 앞에 언어의 장벽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번은 팀에서 멀리 디트로이트 원정을 떠나면서 우리는 따라오지 말고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시합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우리끼리 따로 차를 타고 따라갔다. 당시 우리는 새로움에 목말라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디트로이트 트레이너를 찾아갔다. 내가 더듬더듬 질문하는 모습에 열정을 느꼈는지 트레이너가 나를 좋게 봐줬다. 트레이닝 매뉴얼 등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을 보며 무작정 ‘기브(give me),기브 미’를 외쳤는데 그는 다른 책까지 더 얹어줬다.”

배움에 목마른 그에게 야구 본고지에 있는 트레이닝 관련 서적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으리라. 게다가 제대로 된 트레이닝 서적 한 권 없던 때이니 오죽했으랴.

“우리가 나갔다 온 이후 다른 팀들이 스프링캠프를 외국으로 떠나기 시작했고, 트레이너들도 동행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스 등이 새로운 물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팀들이다. 현대의 경우 플로리다 전지훈련기간에 아예 현지 트레이너가 팀에 합류했다. 트레이너가 새로 온 것만으로도 현대는 새로운 리그를 펼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내심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우물안 개구리였던 한국의 트레이닝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는 스스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원했고 구단 측에서 배려해줘 석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

▲ 잠실구장 두산 사무실 안에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 강흠덕 코치는 "새로 지어지는 2군 경기장 시설은 훨씬 더 좋다"고 설명했다.

◆ 학교체육에도 전문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2006년 김광현(26·SK)은 1경기 226개를 던진 것을 포함, 2경기 동안 374개의 공을 던진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혹사 논란에 시달렸던 김광현은 한때 류현진(27·LA 다저스)과 함께 프로야구를 이끌던 대표적인 ‘영건’이었다. 하지만 어깨 부상으로 인해 류현진과의 격차는 이제 상당히 벌어졌다.

그해 광주 진흥고 소속이었던 정영일(26·상무) 역시 한 경기 동안 무려 242개의 투구수를 기록했고, 이듬해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에 진출하지만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에만 매달리다 결국 국내프로야구에 유턴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신인지명투수 건강상태 조사 결과, 41명 중 37명이 수술 경력이나 통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사 대상중 65.9%인 27명이 통증을 참고 투구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부터 혹사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선수들은 조금 아파도 참고 뛰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뼈와 근육에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는 성인이 되어 본격적인 야구를 시작할 때 드러난다.

“한국은 리틀야구부터 승부에 연연해하는 풍토가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아직 뼈가 완전한 성장을 하지 못한 상태다. 뼈가 커야 키도 크고 덩치도 더 커질 수 있다. 남성 호르몬도 왕성하지 못하고 관절도 약하기 때문에 과부하를 주면 다 망가져 버릴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에게는 즐기는 스포츠로 접근해야 한다.”

혹사당한 선수들을 많이 봐와서일까?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그렇지만 선수가 학창시절 무리해서 부상을 당한다면 프로야구는 ‘야구선수’라는 꿈만 주지 ‘성공’이라는 희망은 주지 못하는 꼴이 된다.”

강흠덕 코치는 이에 대해 “엘리트 체육에 전문 트레이너가 필요한 이유”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연아, 박태환이 세계적인 레벨에 오르기까지 트레이너들의 역할이 분명히 컸다. 전문 트레이너들이 학창시절부터 선수들을 관리해줘야할 필요성이 있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의 희망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이 트레이너라고 생각한다”

▲ 어렸을 때 부터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아야 함을 강조하는 강흠덕 코치.

◆ 트레이너 활성화로 스포츠산업 발전 가능성 높일 수 있어

그러나 감독 월급 주기도 빠듯한 것이 대한민국 학교체육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레이너를 고용한다는 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국이 어떻게 하는지를 관찰했다. 미국 대학에는 무조건 스포츠 팀이 존재하고, 그 안에 트레이너들도 있다. 학생 트레이너가 스포츠팀에서 실습한다. 체대 교수가 학교 농구부, 축구부, 야구부 등에 학생들을 실습 보낸다. 학생들은 테이핑을 해주고, 몸 풀기를 주도하는 등 트레이너로서의 역할을 하면 교수가 평가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을 이수하면 주 정부나 협회에서 시험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이것을 통과하면 선수 트레이너 자격이 부여된다.”

그는 이런 식으로 트레이너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스포츠산업에 종사하기를 꿈꾸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용품 판매나 구단 홍보팀에서 일하는 것이 스포츠산업의 전부가 아니다. 나를 직접 찾아와서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조언을 구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 중에는 고등학생도 포함돼 있다. 트레이너도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등 노력을 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처럼 특출난 것 없던 사람도 할 수 있는 게 트레이너였다. 일터만 더 많아진다면 분명히 매력적인 직업이 될 것이다.”

선수 트레이너 중 최고참인 그에게서 스포츠산업 발전에 대한 고민과 체계적인 트레이닝으로 세계적인 선수를 길러내고자 하는 열망 두 가지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취재후기] 인터뷰가 2시간이나 이어질 정도로 그는 트레이닝, 그리고 한국 스포츠산업에 관해 할 얘기가 많았다.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선진 트레이닝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그의 열정이 한국 프로야구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지금보다도 더 높은 곳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iversoon@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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