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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있어요' 막장 드라마도 명품 로맨스로 만드는 강렬한 연극체 대사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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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있어요' 막장 드라마도 명품 로맨스로 만드는 강렬한 연극체 대사 (뷰포인트)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1.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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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SBS 주말 특별기획 '애인있어요'는 정말 이상한 드라마다. '애인있어요'의 이야기를 보면 일일 아침드라마 수준의 '막장의 끝'을 보여주는데, 이상하게도 '애인있어요'를 보고 있으면 '막장'이라는 느낌보다 가슴에 구구절절 와닿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먼저 느껴지니 말이다.

'애인있어요'를 정의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역 불륜'이다. 천년제약의 후계자인 최진언(지진희 분)은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맑은 도해강(김현주 분)에게 이끌려 결혼을 하고, 도해강은 결혼 후 천년제약의 고문 변호사가 되어 소위 '돈 맛'을 알고 타락해간다.

그리고 그런 도해강의 변심에 실망한 최진언은 결혼 전의 도해강을 꼭 닮은 순수하고 맑은 강설리(박한별 분)에게 끌려 바람을 피우게 된다. 그리고 사고로 도해강과 최진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까지 죽자 최진언은 미련없이 도해강과 이혼을 한다.

▲ 최진언(지진희 분)은 아내 도해강(김현주 분)과 똑같이 생긴 독고용기(김현주 분)를 만나 마음이 격하게 흔들리고, 독고용기를 좋아하는 백석(이규한 분)은 그런 최진언을 극도로 경계한다. [사진 = SBS '애인있어요' 방송화면 캡처]

하지만 이혼 후 도해강은 민태석(공형진 분)의 음모로 인해 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잃게 되고, 백석(이규한 분)은 사고를 당한 도해강을 구출한 후 그녀를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하던 독고용기(김현주 분)라고 생각해 도해강에게 이름을 '독고용기'라고 알려주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4년의 세월이 흘러 강설리는 다시 예전의 도해강처럼 '돈 맛'을 보고 변해가기 시작하고, 그 때 최진언은 이혼 후 실종된 아내 도해강과 똑같이 생긴 독고용기를 만나게 된다. 강설리의 변심에 다시 아내 도해강을 그리워하던 최진언은 독고용기가 도해강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독고용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독고용기 역시 그런 최진언에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애인있어요'에서 지진희가 연기한 '최진언'은 그야말로 '천하의 몹쓸 놈' 그 자체다. 아내가 변했다고 바람을 피더니, 이제 바람을 폈던 상대와 결혼을 앞두고는 다시 그 상대가 변했다며 4년 전 헤어진 아내의 그림자를 찾아헤메다 김현주를 만나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 남자는 그런 모든 것을 오직 '사랑'이라는 말 앞에 용서를 구할 뿐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애인있어요'는 막장의 끝을 달리는 이 기묘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보고 있노라면 등장인물들의 절절함이 어느새 가슴에 와닿는다. 심지어 천하의 몹쓸 놈인 지진희의 모습마저도 그가 김현주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이 남자의 진심이 전해진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애인있어요'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기존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던, 마치 한 편의 연극에서 배우가 관객을 상대로 방백을 하듯 펼쳐지는 장황한 대사에 있다. 대사가 길면 지루해질 법도 하지만, '애인있어요'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격앙되는 순간마다 적절히 장문의 대사를 등장시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 백석(이규한 분)은 최진언(지진희 분)에게 독고용기(김현주 분)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최진언은 그런 백석에게 "내 아내니까"라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한다. [사진 = SBS '애인있어요' 방송화면 캡처]

'애인있어요' 15회에서 백석(이규한 분)은 자꾸 독고용기(김현주 분)의 마음을 흔드는 최진언(지진희 분)이 술을 따라주려 하자 술병을 낚아채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알아서 마실테니까 신경끄시죠. 내 술에도. 내 여자한테도. 행동 똑바로 해. 내 동생한테도. 내 여자한테도. 함부로 당신 멋대로 당신 기분 내키는대로 굴지말라고. 용기랑 당신 와이프가 닮았다고? 그게 뭐? 그게 왜? 닮은 여자면 내 동생 놔두고 다시 흔들려도 되는 거야? 닮은 여자면 설리도 있고 나도 있는데 찾아오고 전화하고 맘대로 당신 감정대로 흔들어도 되는 거냐고? 용기 건들지마. 내 여자 흔들지마. 당신이 망가뜨린 여자는 당신 와이프 하나로 이미 충분하지 않어?"

이에 대해 지진희의 답변 역시 걸작이다. 어떻게 김현주의 갑각류 알레르기를 알게 됐냐는 말에 지진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아내니까. 내 아내니까. 당신 첫 사랑 독고용기. 난 그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내가 아는 건 내 아내에요. 당신 옆에 있는 여자는 독고용기가 아니라 내 아내에요.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까지 아니라고 해도 난 알아요. 그냥 알아요. 내가 알아요. 아내니까. 내 아내니까. 아내가 날 기억 못해서 다행이에요."

지진희와 이규한이 주고받는 '애인있어요' 15회의 대사는 '애인있어요'가 보여주는 대사의 색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비슷한 말을 점층적으로 쌓아 다져 올리며 감정을 끌어올리는 수법. 시청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간결한 대사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인 드라마에서 '애인있어요'와 같은 시도는 분명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장문의 대사들이 나오는 순간 카메라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돕기 위해 인물의 얼굴을 강렬한 클로즈업으로 포착해내고, 그 뒤를 이어 적절하게 음악이 깔리며 감정의 몰입을 완성해낸다.

이처럼 두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고 장문의 대사를 주고 받으며 감정을 끌어올리는 장면은 '애인있어요' 17회에서도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번에는 강설리(박한별 분)와 독고용기(김현주 분) 사이의 대화다.

▲ 강설리(박한별 분)은 독고용기(김현주 분)에게 최진언(지진희 분)에게 다가서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독고용기는 최진언에게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 = SBS '애인있어요' 방송화면 캡처]

박한별은 김현주가 자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꾸 지진희를 만나자 이렇게 쏘아붙인다.

"봤어요. 둘이 있는거. 둘이서 이어폰 나눠끼고 음악듣고 손잡고. 어떻게 감히 내 남자한테. 왜 흘리고 다녀요? 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엉겨붙어서 여지를 주고 기회를 주고 헷갈리게 만들고 고문하냐고요? 그저 남자가 좋아하면 언니 좋다고 하면 그게 누가 됐건 다 받아줘요? 그런 여자에요 언니? 그렇게 헤프고 생각없고 양심없고 후안무치한 그런 사람이냐고요?"

이에 김현주는 자신의 마음이 오히려 지진희에게 흔들리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 지진희의 죽은 아내에게 더욱 신경을 쓰라고 역시 강하게 말한다.

"내가 흔들려요.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한테 흔들려요. 그 사람 보고 있으면 이유없이 아파요. 머리로는 아니라고 안 된다고 하는데. 내 마음이 내 심장이 아파요. 그냥 아파요. 나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럽고 어떻게든 내가 날 수습하려고… 내 감정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설리씨 사랑 잘 지켜요. 내가 아니라 그 남자 죽은 와이프한테서. 설리씨 나랑 싸울게 아니라 죽은 그 여자하고 싸워야할 거 같은데?"

아침 일일드라마에 뒤지지 않는 막장성을 보이는 '애인있어요'는 이처럼 '막장'을 감정을 치솟게 만드는 장문의 대사와 음악, 배우들의 연기로 소화해내며 '막장'을 '명품 로맨스'로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린다. '애인있어요'에 계속 눈길이 가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작가가 빚어내는 이 대사의 마술이 분명 시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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