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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54) 독한 2등 김잔디, 그 많은 실패도 '절반'일뿐 '8년 한판'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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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54) 독한 2등 김잔디, 그 많은 실패도 '절반'일뿐 '8년 한판'이 남았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11.13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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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대회 번번이 정상문턱서 좌절, 최근 국제대회 연이어 금메달...'올림픽 20년 노골드' 씻을 기대주

[200자 Tip!] 한국 여자 유도를 두고 침체기라 말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김미정, 1996년 애틀란타 조민선 이후 올림픽 금메달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2008년 베이징 정경미가 동메달을 따냈지만 2012년 런던에서는 '노골드'도 아니고 ‘노메달’에 그쳤다.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다르다고, 20년 만에 ‘금빛 메치기’를 보여주겠노라 다짐한 태극낭자들은 태릉에서 밤낮 없이 구슬땀을 흘린다. 그 중심에 김잔디(24·양주시청)가 있다. 지난달 타슈켄트 그랑프리, 아부다비 그랜드슬램을 연이어 제패하며 한껏 페이스를 끌어올린 그를 태릉선수촌 여자유도장에서 만났다.

[태릉=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유도 57㎏급 결승. 김잔디는 야마모토 안즈(일본)에게 곁누르기 한판패를 당해 은메달에 만족해야만 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던 김잔디는 “경기운영능력이 아직 미숙한 것 같다. 끝까지 집중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2회 연속 아시안게임 2위였다.

▲ 지난해 아시안게임 결승전 패배 직후 김잔디는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고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내년 리우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기를 바라는 의미로 같은 포즈를 취하고선 웃어보이고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4대 메이저 대회는 김잔디에게 좀처럼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국내 무대를 평정하며 17세인 2008년부터 태극마크를 가슴에 품은 김잔디였다. 한국의 취약 종목 57㎏급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해 수년간 변함없이 국내 최강을 지키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큰 무대에서는 애국가를 울리지 못했다.

김잔디 본인이 이를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실패한 경험 덕에 올림픽을 준비하는데 있어 더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챔피언에 올랐다면 물론 좋았겠지만 리우로 가는 길이 더 험난했을 것 같다”며 “정상 문턱에서 자주 진 덕에 예전보다 이기려는 집념이 강해졌다. 유도를 보는 시야는 물론이고 국가대표로서 한층 성장했다”고 눈빛을 반짝인다.

◆ 유도를 위해 모든 걸 끊은 독한 여자

“올림픽까지는 모든 것을 끊을 생각이에요. 인생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잖아요.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은 나가는 것만으로도 천운이라 하는데 저는 이걸 두 번이나 나가려 해요. 2012년 런던에서는 16강에서 허무하게 탈락했잖아요. 제 인생에서 이토록 몰입할 수 있는 순간이 언제 또 있겠나 싶습니다. 9개월밖에 안 남았어요. 올림픽 정도면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잖아요.”

▲ 김잔디는 오로지 유도만 생각한다. 여가시간에도 유도 비디오를 보면서 톱랭커들의 장점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김잔디는 유도만 듣고 유도만 보고 유도만 생각한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 묻자 “요즘엔 유도가 정말 잘 하고 싶어서 유도 비디오를 보고 또 본다. 손에서 동영상을 놓는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잘 하는 선수들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흉내내고 싶다”고 답했다. 예전에는 잘 해야겠다는 마음만 컸지 노력이 부족했단다.

20대 중반의 꽃다운 아가씨가 왜 태릉에서 운동만 하고 싶겠는가. 김잔디는 “매일 트레이닝복, 유도복 입고 여기저기 다칠 때면 ‘또래 친구들은 예뻐지는데, 봄엔 꽃놀이도 가는데’란 생각을 안할 순 없다”며 “그래도 성적만 내면 유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좋다. 올림픽 끝나면 서정복 선생님(총감독)께서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준다고 했다”고 활짝 웃는다.

164㎝의 작은 신장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김잔디는 “피지컬은 뒤지지만 집념, 승부욕은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며 “작지만 남들보다 빠를 수 있다. 근력을 보완해야 하는데 그건 선생님들이 충분히 분석하고 잘 도와주신다. 남은 기간 동안 준비하면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김잔디는 작은 키를 빠른 스피드로 보완한다. 최근에는 타슈켄트 그랑프리, 아부다비 그랜드슬램을 연이어 제패해 기량에 물이 올랐다.

◆ 안바울-동료-올스타 선생님, 함께라 외롭지 않다

최근 김잔디를 자극하는 동생이 생겼다. 남자 대표팀의 안바울(용인대)이다. 김잔디보다 세 살 어린 안양 석수초등학교 후배다. 안바울은 지난 8월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젠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불린다. 김잔디에게는 부럽고 멋진 존재.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온 둘은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는 의남매같은 사이다.

김잔디는 “바울이가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배가 저렇게 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밖에서는 천재라고들 하시지만 예전부터 지켜봐온 바울이는 분명 노력파다. 동생이지만 보고 배울 점이 참 많다. 서로 부족한 것들을 조언해주고 있다. 올림픽에서 함께 시상대에 오르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강훈련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건 동료들 덕이다. 48㎏급 정보경(안산시청), 63㎏급 정다운(양주시청), 70㎏급 김성연(광주도시철도공사) 등이다. 김잔디는 “동갑내기 보경이, 성연이와는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선 토크쇼에 동반 출연하자고 이야기한다”며 “나 혼자서 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 고생한 동료들과 함께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 김잔디는 후배 안바울, 정보경 정다운 김성연 등 동료들, 서정복 감독 이원희 코치 등 든든한 지도자들이 있어 힘든 훈련도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조력자도 든든하다. 김잔디의 뒤엔 서정복 유도대표팀 총감독,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 코치, 김미정 용인대 교수 등이 버티고 있다. “아버지같은 서정복 선생님, 명상과 호흡법 등 2012년부터 함께 해주시는 정신적 지주 이원희 코치님, 여자 유도선수로서 본받고 싶은 김미정 교수님 등 도움 주시는 분들의 기대에 꼭 부응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도 김잔디가 힘을 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원동력이다. 고교 때 씨름, 핸드볼을 해 딸에게 운동신경을 물려준 '딸바보' 아버지 김유선(53) 씨는 “늘 감사하다며, 이렇게 커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어머니 마경희(49) 씨는 잘할 필요는 없다며, 딸이 그저 다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경기 후 눈물을 훔친다. 김잔디는 부모님의 자부심이다.

◆ '유도팬' 김잔디의 큰 그림

석수초등학교 3학년 때 작은 몸집, 저질 체력이 걱정돼 유도부에서 가볍게 시작한 운동이 이젠 김잔디의 삶이 됐다. “유도가 아니었어도 다른 종목의 운동은 했겠지만 절대 직업으로는 못했을 것”이라며 “나는 열혈 유도팬이자 천상 유도인”이라고 자처하는 김잔디다. 유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기에 누구보다 유도를 사랑하기에 올림픽 금메달을 넘어선 훨씬 큰 그림을 그린다.

매주 화요일 오후 11시 10분 KBS 2TV에서 방영되는 우리동네 예체능은 10번째 종목으로 유도를 택했다. 전기영 장성호 이원희 조준호 김미정 조민선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총출동해 연예인들에게 유도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기간이 아니면 관심에서 멀어지는 유도인들에겐 종목을 국민들에게 홍보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 김잔디는 본인을 유도팬이라고 자처했다. 자신의 성적뿐 아니라 유도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큰 꿈을 갖고 있다.

김잔디는 “선생님들이 진짜 자랑스럽다. 매일 보는 분들인데도 다시 보이더라. 항상 같이 있으니까 올림픽 메달을 따셨어도 인지를 못하고 지냈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야 한다. 나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 감독님, 코치님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훈련하고 있다. 좋은 성적으로 한국 유도를 부흥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국내 무대가 좁아 매트를 떠날 일은 한참 뒤에 생각해도 될 것 같은데 벌써 은퇴 후를 대비하는 치밀함도 갖췄다. 똑똑한 선수,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김잔디의 꿈.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틈날 때마다 펜대도 쥔다. 여자 유도 선수들의 멘탈, 생리에 따른 운동수행능력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인데 리우 영광을 위해 잠시 멈춤 모드로 돌아선 상태다.

김잔디의 2016년은 벌써부터 시작됐다. 지난 10일 전남 여수진남체육관에서 열린 2016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겸한 회장기전국유도대회 여자 57㎏급 결승에서 김민주(동해시청)를 지도승으로 누르고 정상에 오른 것. 유도도 공부도 포기할 수 없는 ‘욕심쟁이’ 김잔디의 골든 리우 프로젝트를 주목해 보자.

■ 김잔디 프로필

△ 생년월일 = 1991년 6월 15일
△ 출생지 = 경기 안양
△ 출신학교 = 석수초-경민여중-경민여자정보산업고-용인대
△ 수상 경력
  -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57kg급 은메달
  - 2011 선전 유니버시아드 57kg급 은메달
  - 2011 아부다비 아시아선수권 57kg급 은메달
  - 2011 중국 그랑프리 국제대회 57kg급 금메달
  - 2013 방콕 아시아선수권 57kg급 은메달
  - 2014 인천 아시안게임 57kg급 은메달
  -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 57kg급 은메달
  - 2015 타슈켄트 그랑프리 57㎏급 금메달
  - 2015 아부다비 그랜드슬램 57kg급 금메달
  - 2015 MBN 여성스포츠대상 10월 MVP

[취재 후기] 김잔디는 태릉의 여자 선수들이 여가시간에 주로 즐기는 드라마 보기마저도 훈련에 지장을 줄까 최대한 자제하는 중이다. 그래도 얼마 전 종영된 ‘그녀는 예뻤다’에 출연한 대세 배우 박서준에겐 자꾸 눈이 갔다고 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걸고서 박서준과 마주할 김잔디를 기대해 본다. 취재 뒤 MBN 여성스포츠대상 10월 MVP에 김잔디가 선정된 소식이 전해져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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