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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연예계 '신조어 앓이' 왜? 시대의 아픔과 갈망이 녹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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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연예계 '신조어 앓이' 왜? 시대의 아픔과 갈망이 녹아서...
  • 이예림·김나라 기자
  • 승인 2014.06.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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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이예림 기자·김나라 기자] 다양한 신조어가 돌고 도는 뻔한 연예계를 지루할 틈 없이 이끌어주고 있다.

'연기돌' '으리' '꽃할배' '케미' 등 국어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요즘 들어 연예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어휘들이다. 세상에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결과(물)는 없는 것처럼 신조어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 온 국민의 심장을 먹먹하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 6‧4 지방 선거를 앞두고 서로 헐뜯는 후보자들의 모습 등 비극과 불신으로 덮여진 현실이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화합과 통합을 바라고 꿈꾼다. 최근 유행하는 신조어들은 이같은 희망을 기반으로 탄생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계기로 다시 떠오른 '으리', 믿고 사는 사회를 갈망하다

최근 배우 김보성의 인기가 '으리 으리'하다. 데뷔 이래 25년간 외쳤던 의리가 신조어 '으리'로 재탄생돼 광고계, 방송업계 등 다방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입에 착 달라붙는 표현으로 '독도는 으리땅'(우리땅) '항아으리'(항아리) '신토부으리'(신토불이) '회오으리'(회오리) '아메으리카노'(아메리카노) 등 대부분의 단어에 으리를 끼워 맞춰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최강 매력을 자랑한다.

▲ 25년 동안 의리를 외쳤던 김보성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비락식혜' 광고 캡쳐]

'으리'는 한 순간 뜨겁게 불타올랐다 식어버릴 단순 유행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평생 온 국민의 가슴 속 상처로 남아 있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탄생됐다. 김보성은 "25년간 (의리를) 외쳤는데 이렇게 사랑을 받다니 기적 같은 일"이라고 소감을 밝히며 "상처와 치유가 필요한 대중의 목마름, 정의로움에 대한 갈망이 폭발해 의리 열풍이 일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케미' '꽃할배' '특급 칭찬'…'조화' 원하는 대중 심리 반영돼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로맨스물 드라마가 전파된 뒤, 온라인상에는 "'케미'가 완벽하다"라는 자칫 외계어로 보이는 단어를 섞은 찬사들이 쏟아진다. '케미'의 정체는 화학작용이라는 의미가 담긴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줄임말이다. 남녀 배우 간의 환상의 호흡이라는 뜻으로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에서까지 출연진의 궁합을 칭찬할 때 이 단어로 표현한다.

▲ '드라마 '밀회'에서 유아인과 김희애는 19세 나이차를 극복하고 '케미'를 뽐냈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과 전지현은 완벽한 '케미'를 자랑했다'는 평이 많았다. [사진='밀회' 캡처/SBS 제공]

과거 한 출연자가 드라마, 예능 등의 분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며 이끌어 가는 추세였다면 현재는 여러 출연자들 간의 조화를 선호하는 것으로 트렌드가 옮겨왔다.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할배'는 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 등 20대 청춘 스타들이 총 출연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제목에서 따온 예능프로그램으로,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노년배우들을 내세워 '50년지기 우정'의 진가를 발휘해 큰 인기를 끌었다.

▲ '꽃보다' 시리즈는 나이와 성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현재가 투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진=CJ E&M 제공]

같은 포맷으로 제작된 '꽃보다 누나'에서는 43세 이미연부터 67세 윤여정까지 브라운관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꽃중년 여배우들이 동유럽 국가 크로아티아를 누볐다. 젊음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배낭여행을 평균 연령 76세의 할아버지들과 중년 여배우들이 떠나는 콘텐츠를 담으며 나이와 성별의 장벽이 허물어져 가는 현 시대를 반영했다.

◆ '연기돌' '예능돌' '장수돌'…살아 남기 힘든 이 시대 아픈 청춘들의 표상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아이돌(idol)은 우상적인 존재를 뜻하며 일본 가요계가 시초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된다'라는 한국의 개념과 달리, 일본 엔터테인먼트사들은 가수를 만능엔터테이너로 생각하며 10대로 이루어진 그룹 멤버들에게 노래는 물론 연기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힘쓴다. 일본의 인기 아이돌인 스마프, 아라시, 캇툰 등이 그 예다.

대한민국의 아이돌의 흐름도 일본과 비슷해졌다. 1990년대에 H.O.T, 젝스키스, god, 핑클, SES 등 예쁘고 잘생긴 10대 가수들이 모두 아이돌로 통틀어 설명됐다면, 요즘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연기돌'(연기 잘하는 아이돌) '예능돌'(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아이돌) '장수돌'(장수 그룹) '한류돌'(한류열풍의 주역) 등 수식어가 다양해졌다.

▲ 엠블랙의 이준(위쪽), 에이핑크의 정은지(아래 왼쪽), 제국의아이들의 임시완은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연기돌' 수식어를 얻었다. [사진=tvN 드라마 '갑동이' 캡쳐, 제이에스픽쳐스 제공, 영화 '변호인' 스틸컷]

이는 한류 열풍으로 시장이 넓어진 시대에 단순히 외모와 노래 실력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과거 한 우물만 파도 성공했던 시대와는 달리 영어, 제2외국어, 컴퓨터 활용 능력, 인턴 경력 등 다양한 스펙을 쌓지 않으면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대학생들의 고충도 엿볼 수 있다.

◆ '꽉 막힌 현실에 활력' vs '언어 파괴 및 세대간 소통 단절'

신조어들은 꽉 막힌 삶의 활력을 원하는 대중과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콘텐츠의 제작 과정에서 계속해 탄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신조어는 현실을 반영하고 '1분1초'가 급박한 현대인들에게 긴 말 필요 없이 효율적인 의사 전달의 수단이 되는 이점이 있다.

출판사 편집자로 활동 중인 김혜선(27)씨는 "방송계에서 만든 신조어들을 보면 굉장히 참신하다. 미디어에서 쓰는 언어이니만큼 파급력은 크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신조어의 무분별한 사용에 우려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말을 짧게 줄이거나 기존에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언어 파괴 및 훼손이 우려되는 점이다. 또한 방송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세대만 알고 기성세대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 젊은이들의 일방적인 문화 형성과 소통 단절의 문제도 있다.

 

pres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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