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59 (금)
[챌린지 2015] (56) 18세 태극궁사 이우석이 쏘는 몰입의 정석, '미쳐야 이루리'
상태바
[챌린지 2015] (56) 18세 태극궁사 이우석이 쏘는 몰입의 정석, '미쳐야 이루리'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11.30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스올림픽 세계신, 아시아 2관왕 승승장구... "사대선 아무 것도 안 들려, 체력 키워 올림픽 나설 것"

[200자 Tip!] 양궁하면 한국이요 한국하면 양궁이다. 그런데 ‘신궁코리아’ 하면 아무래도 여자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1984년 LA 올림픽 서향순을 시작으로 김수녕, 조윤정, 김경욱, 윤미진, 박성현, 2012년 런던 기보배에 이르기까지 여궁들이 무려 7개의 개인전 금메달을 싹쓸이한 반면 남자 개인전은 2012년 오진혁 말고는 시상대 꼭대기에 올라선 이가 없다. 여기 내년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에서 돌풍을 보여주겠노라 다짐한 고등학생이 있다. 평소엔 소심하기 그지없는 이 청년은 활만 잡으면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이우석(18·인천체고)이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3관왕, 4관왕, 5관왕... 이우석의 국내 대회 성적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또래 중에서 그의 적수를 찾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급이 다른 선수이기 때문. 이우석은 지난해 8월 중국 난징에서 열린 유스올림픽 리커브 60m 랭킹라운드에선 704점(72발)을 쏴 17세 이하(카뎃부) 세계기록을 18점이나 경신했다.

▲ 또래 중에선 이우석을 잡을 자가 없다. 그는 지난해 유스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18점이나 경신했다.

올해로 31년째 양궁을 지도하고 있는 이우석의 담당교사 정구영 감독은 이우석에 대해 “저런 친구를 만난 건 지도자로서 커다란 행운”이라며 “다른 선수와 훈련에 몰입하는 태도가 아예 다르다. 사대에서 집중력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올 자가 없다. 양궁 외에는 생각을 안 하는 친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물이 올랐다. 2013년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5관왕을 시작으로 지난해 난징 유스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올해엔 유스세계선수권 2관왕(단체전, 혼성팀전), 4차 양궁월드컵 단체전 금메달, 이달초 아시아선수권 2관왕(개인전, 단체전)을 차지했다. 2015년 국내 성적은 대통령기 고등부 개인전 금메달, 화랑기 고등부 4관왕, 종별선수권 고등부 5관왕 등이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 걸까. 이우석이 활을 잘 쏘는 비결에 대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설명한 이우석은 "이상하게 양궁장에만 들어서면 두려운 것이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 ‘소심남’ 이우석, “양궁할 땐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다른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양궁할 때는 제 눈빛이 달라진대요. 저도 느껴요. 평소엔 다른 사람하고 말도 잘 못하는데 말이죠. 어릴 때부터 집, 학교만 왔다갔다해서 친구도 많이 없어요. 되게 소심해요. 그래도 양궁장에서는 뭐든 다할 수 있어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

이우석은 인수초등학교 3학년 때 활을 잡았다. 아버지 이흥서(52) 씨가 축구선수 출신이라 처음엔 축구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태권도장도 기웃거리고 기계체조도 배워봤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간식을 많이 준다는 친구의 권유에 혹해 양궁으로 종목을 바꿨단다. “다른 종목을 했다면 지금의 이우석은 없었다”고 단언하며 미소를 짓는다.

첫 2년은 생각 없이 과녁을 겨눴다. ‘훈련은 언제 끝나지’, ‘어떡해야 좀더 편히 시간을 보낼까’만 궁리했다. 그런데 6학년 때 처음으로 나선 전국소년체육대회가 마음가짐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억지로 한 맹훈련이 효과를 보기 시작하며 양궁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만수북중 2학년 때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상승했다. 이우석은 마지막 소년체전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 전성기의 시작이었다.

▲ 국내 대회를 휩쓸고 세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만 정작 이우석은 "천재는 절대 아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나는 노력파"라고 말했다.

선인고에 진학한 첫 해 전국시도대항전 5관왕, 전국체전 5관왕을 거머쥐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쟁쟁한 선배들을 줄줄이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우석은 단숨에 다른 선수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선수 0순위로 자리매김했다. 양궁으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시점, 중학교 재학 때부터 그는 새벽, 야간 운동을 거른 적이 없다.

“천재는 절대 아니에요. 노력파입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왔으니까요. 초등학교 때는 해도 해도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시상대에 한번 올라가보니 게을러질 수가 없더라고요. 막 올라온 거니까... 언제 떨어질지 모르잖아요. 남들이 10발 쏘면 저는 최소 20발, 25발은 쏴야지 생각했어요. 승부욕은 좀 강한 편이죠?” 

◆ 몰입을 아는 자,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양궁은 대표적인 멘탈스포츠. 예민한 선수는 관중의 환호 소리,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 강한 바람 등에 흔들려 경기를 그르치곤 한다. 이우석이 대단한 건 10대임에도 외부 요인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수가 들이닥치든 말든 오롯이 자신의 것에만 집중한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현재 상황만 바라보는 능력이 탁월하다.

슬럼프 극복법을 물었더니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요? 워낙 짧게 지나갔으니”라고 반문하며 “조금 안 된다 싶으면 안 되니까 쐈고, 잘된다 싶으면 유지하려 쐈다. 무조건 훈련했다”고 웃는다. 자신만의 심리 훈련이 있느냐고 묻자 “매 경기 이미지트레이닝을 한다. 한발 한발 쏘는 것을 상상한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 활만 잡으면 이우석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는 사대에 서는 순간 관중 소리도, 카메라 셔터 소리도 잘 듣지 못할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한국 양궁의 독주를 막기 위한 세계의 견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세계양궁연맹(WA)은 기록합산제를 폐지하고 발사수를 줄여 이변 가능성을 대폭 높였다. 개인전 토너먼트에는 세트제를 도입하고 예선라운드에서 국가당 2명만 결선에 진출하도록 룰을 조정하는 등 한국을 잡을 비책을 끊임없이 내놓는다.

이에 대한 이우석의 생각은? “신경 안 써요.”

이우석이 들려준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더. 대체 얼마나 몰입을 하기에 이같이 될까.

“유스올림픽 때였나? 감독님이 뭐라 뭐라 지시를 하셨다는데 사실 기억에 없어요. 관중 소리도, 카메라 셔터 소리도 안 들려요. 아, 하나 기억나는 건 있네요. 혼성전이었요. 파트너 (이)은경이랑 파이팅하자고 속삭인 거요.”

◆ 원대한 포부, 태릉선수촌서 가장 오래 머무르는 선수 

승승장구하는 이우석이라 해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지난해 국가대표 최종평가전에서 5위에 머무르며 간발의 차로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한 것. 경험이 부족해 기싸움에서 눌렸다. 이우석은 오진혁(현대제철), 이승윤(코오롱), 김우진, 임동현(청주시청), 구본찬(안동대) 등과 리우 올림픽 티켓을 두고 혈전을 벌여야 한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 과정은 복잡하고 길기 때문에 체력이 필수다. 단판이 아니라 사나흘에 걸쳐 여러 차례 경기가 열린다. 세트제에 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발 한 발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지난 4월부터 슛오프까지 평가항목에 포함돼 경쟁이 더 치열해 졌다. 단 3명만이 리우의 과녁과 마주할 수 있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아시안게임에선 해설자로 나서는 한국이다.

▲ 올해로 31년째 양궁을 지도하는 정구영 감독(오른쪽)은 "이우석같은 선수를 만난 건 행운"이라고 말했다. 사제 지간이 인천체고가 획득한 메달을 배경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국내 대회야 금방 끝나니까 잘 쏠 수 있는데 국가대표 평가전 같은 경우엔 장시간 동안 활을 붙들고 있어야 하니깐 초반에 힘이 좋다가도 나중으로 갈수록 지치더라고요. 체력이 받쳐줘야 합니다. 이번 겨울에는 살도 찌우고 근력을 만들겠습니다. 롤모델은 오진혁 선배입니다. 멘탈, 자기 관리법 등 모든 것을 배우려고요.”

꿈을 물었다. “올림픽 금메달같은 진부한 것 빼고”란 조건을 내걸었더니 현답을 내놓는다.

“선수촌에 또래가 별로 없어요. 양궁은 당연한 거고 다른 종목 전부 통틀어도 고등학생이 잘 없는 것 같더라고요. 거의 제가 막내뻘일 거예요. 오랫동안 현역으로 남았으면 좋겠는데요? 태릉에서 가장 오래 있는 선수라고 할게요.”

고도의 집중력을 지닌데다 확고한 목표까지 지녔다. 이우석이 활을 잘 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 이우석 프로필

△ 생년월일 = 1997년 8월 7일
△ 출생지 = 인천광역시
△ 출신학교 = 인수초-만수북중-선인고-인천체고
△ 수상 경력
  - 2013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고등부 5관왕 
  - 2013 제34회 전국시도대항대회 남자 고등부 5관왕
  - 2014 난징 유스올림픽 남자 개인전 금메달
  - 2015 미국 유스세계선수권대회 2관왕
  - 2015 제36회 전국시도대항대회 남자 고등부 4관왕
  - 2015 제49회 전국종별선수권 남자 고등부 5관왕 
  - 2015 제33회 대통령기 남자 고등부 개인전 금메달
  - 2015 세계양궁연맹 월드컵 4차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5 제96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고등부 3관왕 
  - 2015 태국 아시아선수권 2관왕

[취재 후기] 정구영 감독이 들려준 일화를 덧붙인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이우석은 미쳤다. “급성 장염에 걸렸는데 사흘간 굶고 싸면서 쏘는 놈입니다. 단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아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세계대회를 다녀오자마자 전국체전에 나가야 했거든요. 시차 적응도 안되고 체력도 달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근데 본인이 생각한 만큼 안 맞으니까 밤낮으로 훈련하다 쓰러진 거예요. 대회 개막 사흘 전에. 올해는 전국체전 끝났구나 했는데 금메달 3개를 따 오는 거 있죠. 얼마나 기특합니까.”

▲ 활만 잡으면 눈빛이 변하는 이우석. 태릉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선수를 꿈꾼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