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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Q] '달콤살벌 패밀리' 예술영화병과 드라마 작품성 논란 조롱하는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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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Q] '달콤살벌 패밀리' 예술영화병과 드라마 작품성 논란 조롱하는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1.2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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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원호성 기자] 그런 영화들이 있다. 누구나 예상하는 장르영화라고 생각했다가, 전혀 장르와 상관없는 독특한 흐름의 예술영화를 만나는 일 말이다. 

예를 들자면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이라는 걸작을 연출한 테렌스 맬릭 감독은 전쟁영화를 만든다고 하더니 화려한 전쟁신보다 전쟁을 통한 인간의 구원을 묻는 '씬 레드 라인'을 연출했고, 러시아의 영상시인이라 불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SF에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솔라리스'를 연출했다. 그리고 여기 조폭영화에 철학을 담아낸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라는 영화가 있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달콤살벌 패밀리' 2회에서는 충심건설의 기획부장인 윤태수(정준호 분)가 회사의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했던 영화로 인해 웃고 우는 모습이 그려졌다.

▲ 윤태수(정준호 분)는 영화제작을 미끼로 30억을 투자받은 제작자 손세운(김원해 분)이 돈만 받은 채 잠적하자, 영화감독 봉진욱(조달환 분)과 프로듀서 이준석(김권 분)을 잡아오고, 봉진욱은 살기 위해서 윤태수에게 10억으로 30억처럼 보이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사진 = MBC '달콤살벌 패밀리' 방송화면 캡처]

백만보 회장(김응수 분)는 충심건설의 신성장동력이 될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정준호가 제시한 충청도 조폭들의 일대기를 그린 '뜨거운 형제들'을 제작하고 있는 영화제작자 손세운(김원해 분)와 손잡고, 영화 제작비 30억 원을 일시불로 입금해준다. 하지만 제작비 30억을 입금받은 김원해는 그 길로 사무실을 접고 잠적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정준호는 살기 위해 김원해를 찾아 나선다.

30억을 가지고 도망친 김원해의 종적은 오리무중이고, 설상가상으로 김원해의 진짜 정체는 영화제작자가 아닌 사기에 도박으로 '별이 다섯 개'인 전과자였다. 이에 정준호는 급한대로 그 밑에서 영화를 만들던 감독 봉진욱(조달환 분)과 프로듀서 이준석(김권 분)을 붙잡고 김원해의 행방을 불라며 물고문을 한다.

하지만 역시 피해자에 가까운 조달환과 김권이 김원해의 행방을 알 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조달환은 살기 위해서 "영화 만들께요. 그래야 우리도 살고, 윤사장님도 사는 거 아닙니까?"라고 소리치며 "10억으로 30억 짜리 영화 만들 수 있어요. 제가 대학교 때 별명이 '저예산 고퀄리티'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대로 김원해를 찾지 못하고 30억을 날린다면 조달환과 김권은 물론이고, 김원해를 김응수에게 소개시켜준 정준호 역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보니 정준호도 결국 이들의 말대로 10억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10억으로 제작비 30억처럼 보이는 영화 만들기가 어디 그리 쉬울까? 조달환은 "손대표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예산 때문에, 제가 폴란드에서 극찬받았던 시나리오를 각색했습니다"라며 자랑스럽게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라는 정체불명의 시나리오를 정준호에게 내놓는다.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라니, 벌써 제목부터 불길한 예감이 팍팍 치솟기 시작한다.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정준호지만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는 문외한인 그가 봐도 답이 없는 시나리오였나보다. 정준호는 "이거는 아무리 봐도 뭔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 건달이 무슨 싸움은 안 하고 이상한 소리나 핑핑 해대고. 1,2,3,4든 A,B,C,D 든 무슨 순서가 있어야지? 이건 알맹이도 없고 재미도 없고"라고 말한다. 그렇다.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라는 정체불명의 괴작은 '개똥철학'에 젖어 자기만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화감독들의 예술영화병이 집약된 결실인 것.

시나리오에 대한 정준호의 혹평이 끝나자 이번에는 예술영화병 말기에 접어든 조달환의 장광설이 이어진다. "영화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감독이라고 아세요? '달의 애인들'을 만든 감독인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변두리 욕망의 잔재들로 짜집기된 먼지 같은 일상들을 아스트랄하게 담아내는 그것이 영화다'라고. 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겁니다" 이에 대한 정준호의 답 역시 간단하다. "아따 죽겄네 참말로. 지금 뭔 되도 않는 소리여? 내가 충청도 주먹영화 만든다고 수백번을 말했구먼" 

▲ 10억으로 30억처럼 보이는 영화를 만들겠다던 봉진욱(조달환 분)은 충청도 주먹들의 일화를 그린 '뜨거운 형제들' 대신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라는 괴이한 시나리오를 들고 온다. 윤태수(정준호 분)는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를 만들면 망한다는 것을 직감한다. [사진 = MBC '달콤살벌 패밀리' 방송화면 캡처]

폴란드 국립영화학교 출신 엘리트 감독인 조달환과 영화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일자무식 조폭 정준호 중 누가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정답은 정준호다. 충청도 조폭들의 전설적인 일화를 영화로 만들라고 하는데, '주먹황제의 파반느'가 가당키나 한 시나리오냐는 말이다. 

물론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를 위에서 언급한 '씬 레드 라인'이나 '솔라리스'와 비교하면 그 자체로도 테렌스 맬릭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위대한 거장들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가 만약 진짜로 조폭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는 영화라면 모를까, 조달환의 이야기만 들으면 그저 '예술영화병' 중증 말기인 조달환의 '개똥철학'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다.

'달콤살벌 패밀리'는 '뜨거운 형제들'이 '주먹황제를 위한 파반느'로 바뀌는 과정을 통해 두 가지 웃음을 선사한다. 하나는 정준호가 처한 위기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정공법적인 웃음이라면, 다른 하나는 조폭에 코미디, 가족 드라마를 뒤섞어낸 잡탕밥인 '달콤살벌 패밀리'가 예술영화병에 걸린 영화감독들을 조롱하는 언밸런스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은근히 부조리한 웃음이다. 

아니 어쩌면 이 장면은 '달콤살벌 패밀리'가 조폭 코미디라며 비난받는 자신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일지도 모른다. 조폭이 등장하는 드라마라고 작품성이 없다고 비난할지도 모르는 대중문화평론가나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그저 재밌고 웃기면 되는거지 무슨 작품성 완성도를 따지고 있냐'는 과감한 선제공격 말이다.

MBC 수목드라마 '달콤살벌 패밀리'는 집밖에선 폼 나는 조직 보스지만, 집안에서는 와이프 잔소리와 두 아이들 무시에 찬밥 신세인 조직 서열 4위인 대한민국 고달픈 가장 윤태수(정준호 분)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웃프게 그려내는 휴먼 코미디 드라마로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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