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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부산 원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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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부산 원정길
  • 김종빈 편집위원
  • 승인 2014.06.27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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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아이스링크는 쇼트트랙, 피겨, 아이스하키 세 종목이 시간을 나누어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 배분 이유로 최소한의 전국대회를 각 협회에서 주관하여 치르고 있다.

전국에 아이스하키 초등부는 약 40개 정도 되는데 실력 차이도 커서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를 아예 나오지 않는 팀들이 대부분이다. 지방의 대회도 많지 않은데 부산시장기대회는 수준별로 디비전을 나누어 하기 때문에 우리 팀은 B그룹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팀 창단 후 첫 지방원정 대회였다.

우리 팀은 3,4학년이 5,6학년보다 일찍 하키를 시작하여 3,4학년이 주축이다. 이렇다 보니 C그룹으로 가자니 배우는 것도 없이 우승만 할 것 같고, B그룹으로 가자니 모든 팀이 4,5,6학년만 출전을 하여 고전할 것이 뻔했다. 고심 끝에 실패와 아픔도 배움의 과정이라 생각하여 B그룹으로 신청하였다.

 

우리 팀은 3,4학년이 주축이라 고전할 것을 각오하고 4~6학년이 주축인 B그룹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에게 '준비하는 과정'을 가르쳐 줄 심산이었다.

목요일 오전 수업을 끝내고 학교에 부산시아이스하키협회에서 발행한 ‘시간할애요청서’를 제출한 후 고양시 아이스링크에 집결하여 2박3일 일정으로 부산으로 출발하였다.

이번 대회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초등학생의 경우 한 해, 한 해 체격 차이가 커서 3,4학년이 주축인 우리 팀은 4,5,6학년이 나오는 상대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출전했다. 여기서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전국대회의 경험과 대회를 이기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출발 후 도중에 휴게소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5시간 걸려 부산에 도착하였다. 당일 도착하여 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 간단히 식사하고 ‘북구문화빙상센터’로 향했다.

 

부산시장기대회의 개막식 모습이다. 지방 대회가 많지 않은데 이 대회는 수준별로 디비전을 나누어 경기를 치른다.

아이스링크에는 대회를 위해 포항, 창원, 울산, 대구의 팀들이 이미 도착해 시합을 하고 있었다. 나는 코치와 함께 우리와 맞붙을 상대팀의 전력을 탐색하려고 경기를 관전하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지방 팀 선수들의 체격이 컸다. 우리 팀에서 제일 큰 선수는 150㎝정도인데, 상대팀에는 170㎝이상의 선수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스피드가 우리 팀 선수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지도자가 이길 생각을 하고 경기에 나가야 하는데, 예상했던 터라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첫 경기는 부산 마리너스와의 경기였다. 예상대로 한 골도 기록하지 못하고 큰 점수 차로 지게 됐다. 하지만 경기내용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서울에서 장시간 버스를 타고 내려온 것을 생각하면 괜찮은 결과였다. 아이들에게 "잘 했다. 부산 팀이 B그룹 최강이라 평가되니 나머지 팀들과는 해볼 만할 거다. 일찍 자고 내일 경기를 준비하자"고 칭찬했다.

 

예상대로 상대팀은 강했다. 하지만 첫날 경기에서 우리 팀은 예상보다 경기를 잘해 희망을 갖게 했다.

지방합숙훈련은 여름과 겨울에 가는데 이때는 부모님들이 동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부산대회는 기간도 2박3일이고 6월5일(목)일부터 연휴여서 부모님들과 일정을 함께 했다. 어머님들은 다른 방을 잡고 아이들과 아버님들은 큰 방을 빌려 같이 잠을 자기로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아이들이 자는데도 아버님들이 거실에서 맥주파티를 벌여 시끌벅적했다. 아이들 자니 조용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잠시 조용해질 뿐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짜증이 났지만 몇 차례나 부탁을 했으니 더 얘기할 수도 없어 그냥 잠을 청했다.

아이들은 대회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같이 지방에 온 터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음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세 시간 가량 신나게 방에서 뛰어 놀았다.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아침을 시리얼 등으로 간단히 먹은 뒤 숙소에서 짐을 챙겨 개막식 시간에 맞추어 북구빙상센터로 이동했다.

 

좋은 경기를 펼치려면 우선은 몸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개막식이 끝나고 우리 팀의 경기는 두 번째 순서였다. 그런데 잠을 제대로 못자고 아침부터 신나게 땀을 흘린 아이들은 경기를 기다리면서 잠에 들어 버렸다. 어차피 실력으로는 이기기도 힘들고 "오늘 경기는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들도 본인들의 실수를 알아챌 수 있도록, 되도록 실력과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을 경기에서 뛰게 했다. 경기 결과는 당연히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어제보다 더 큰 점수 차이로 패했다.

저녁 식사 후 부산의 지인이 찾아왔다. 그래서 아버님들께 "오늘은 일찍 샤워시킨 후 조용히 재워 달라"고 부탁한 후 나왔다가 두 시간 뒤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직도 아이들은 숙소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다.

 

아무리 배우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면 선수나 코칭스태프나 기운이 빠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샤워를 마치게 한 후 다시 모여, 이틀 동안의 경기에 대해 얘기를 했다. 나도 부모님들 때문에 화가 날 때로 났던 터라 큰 소리로 아이들을 혼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아이들에게 대회를 위해 잠도 일찍 자고 스트레칭도 평소보다 많이 하는 등의 준비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려던 나의 의도가 부모님들의 실수로 인해 완전히 무의미해져 버렸다.

어찌 됐든 혼을 내서 10시에는 취침을 하게 하였고, 늦은 시간에 잠을 청하긴 했지만 충분히 잠을 자게 했다.

다음 날 아침 10시 게임이어서 7시30분에 기상을 하고 아침밥을 먹은 후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두 경기를 하는 날인데 이틀 동안 무너진 컨디션과 팀 전술이 하루 아침에 생길 리 없었다.

 

아이스하키는 체력 소비가 많은 경기다. 틈이 생기면 아이스링크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마나 무거워진 몸을 달랜다.

첫 경기 역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대패했다. 코치가 부모님들을 모두 라커룸에서 나가게 한 뒤 아이들을 호되게 꾸중했다. 나는 나이가 있어 아이들을 그렇게 못하는데 코치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강팀에서 거의 져 본 적이 없어, 현재의 상황에 나보다 더욱 화가 난 모양이었다.

평소 아이들은 내가 혼을 내고 나면 돌아서서 웃곤 한다. 그런데 코치가 어떻게 혼을 냈는지 다음 경기 때까지 한 명도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틀동안 밤잠을 제대로 못잔 아이들은 컨디션 난조로 지난 두 경기에서 제대로 된 경기력 한 번 보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부산까지 내려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경기는 정예멤버로 경기를 해보기로 했다.

덩치가 큰 포항 앤젤스를 맞아 마지막까지 1-3으로 분전했지만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 하지만 혼나고 나서 집중력이 생기면서 승패와 상관없이 경기는 만족스러웠다. 특히 4학년 수비수들은 많은 것을 배운 경기였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밝은 내일이 있다. 실수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들의 환한 미소에서 한국 아이스하키의 미래를 본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지 않은 도화지와 같다. 따라서 어른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가르치냐에 따라서 좋은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그림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애기했듯이 이번 대회를 통해서 "하키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 큰 일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1%까지 짜내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꼭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내 생각과 달리 부모님들의 실수로 인해 들뜬 대회가 되다 보니 기대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집중력을 가지고 준비할 때와 준비하지 않은 때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 팀 선수들이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원정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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