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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9) '그들이 죽었다' 백재호·김상석 "우리같은 애들도 한다, 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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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9) '그들이 죽었다' 백재호·김상석 "우리같은 애들도 한다, 넌?" [인터뷰]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12.0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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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글 오소영 기자·사진 이상민 기자] '연기는 딴따라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백재호는 우연한 기회에 연기를 권유받고, 배우들의 진지함과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밤 9시에 '강제 취침'하던 사춘기 시절, 김상석은 TV 드라마 소리에 눈물을 흘려내고 해소를 느꼈다. 백재호는 배우에 대한 편견을 깨고 돌아섰고, 김상석 또한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공군사관학교를 중퇴하고 대학을 새로 입학했다.

이 두 사람이 내놓은 영화 '그들이 죽었다'는 '지구 종말론'으로 떠들썩한 연말, 무명배우 상석(김상석 분)이 죽기 전에 영화를 찍으려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장은 어수선하고 친구들 간엔 싸움이 일고, 배우와 촬영감독은 잠적한다. 상석은 "난 단역배우로 살면서 단 한 번도 주도적인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유서를 작성한다. 결정적 순간, 상석은 신비로운 여성 이화(이화 분)와 마지막 날을 함께 하기로 한다.

▲ '그들이 죽었다' 배우 김상석(좌), 감독 백재호(우)

◆ '청춘멜로공상과학영화' "지금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공상"

영화 출연의 기회가 없으면? 직접 만들면 된다. 배우 백재호와 김상석은 그렇게 영화감독이 됐다. 백재호가 각본, 연출, 출연하고 김상석이 주연한 영화 '그들이 죽었다'는 10일 개봉해 관객을 만난다. 영화 분량의 80%는 백재호, 김상석 두 사람만으로 찍었다. 백재호 감독은 "아는 사람들 앞에서 영화를 상영하거나 유튜브에 공개할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영화제(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까지 가게 되니 얼떨떨했다"고 했다. 

한 해에도 수 편의 블록버스터가 개봉하고, '천만 영화'가 쏟아지지만 영화를 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에 시달린다. "지구 멸망하기 전까진 뜨고 싶다" "평생 장편은 커녕 단편 주인공도 못 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는 대사는 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죽었다'는 이를 주변 환경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유명해지고 영화를 하고 싶지만 정작 게으른 상석, 영화를 하겠다고 모였으나 뿔뿔이 와해되는 현장을 보여주며 당사자에게 직격타를 날린다.

▲김상석 연극과를 나왔다보니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꽤 있는데, 실제 완성까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처럼 술먹고 '만들자' 단합까지만 하고 끝. 처음 영화를 만들 때 주변에선 '하다 말겠지'란 회의적인 반응이 많기도 했다.

▲백재호 실패하는 이야기를 통해 반성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우리가 어느 면에서 부족했다면 실패했을지 생각해봤다. "안 되는 애들한텐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그런 쓴소리로 자극을 주고 싶었다.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장면만큼은 대본의 뉘앙스를 유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사나 상황은 평소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 많지만, 영화가 엎어지거나 서로 싸운 적은 없다.(웃음)

 

언뜻 보면 '너희가 게을러서 안 되는 거다'고 덮어놓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상 전하고 싶은 것은 반성과 동시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향한 응원이다. 상석은 이 과정을 거치며 자신, 주변의 문제를 깨닫고 변화하며, '공상'같은 영화 제작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도 세운다. 

▲백재호 이런 세상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판타지란 뜻에서 붙였다. 우리에게 영화를 만드는 건 공상인 거다. 공상이지만, '우리같은 애들도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이 점에서 SNS를 통해 '그들이 죽었다'의 촬영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첫 장편을 찍은 후엔 '영화를 찍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구나'는 생각이 들더라. 

◆ "몰라서 찍은 영화" 트위터로 만난 친구와 덜컥 장편영화 작업 

백재호와 김상석은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동문이다. 두 사람의 작업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별 일 아니다'(감독 김상석) 이후 두 번째로, 재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트위터에서 만난 사이다. 트위터 초기, 국내 사용자가 잘 없을 때 연락이 닿게 됐고 영화라는 공통 관심사로 뜻이 통했다.

김상석은 자신이 쓴 '별일 아니다'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던 중이었다. 김상석은 "이 시나리오 어떠냐"고 당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이였던 백재호에게 글을 보냈고, 단번에 '도와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성향만큼은 비슷해, 태희 역을 맡은 김태희까지 세 사람은 두 작품 '별 일 아니다'와 '그들이 죽었다'에서 함께 작업했다. 이들은 영화를 직접 만들게 된 것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백재호 영화과에서는 과제할 때도 수십 명씩 붙어서 단편을 만들고 하는데 우린 몰라서 덜컥 장편을 만든 것 같다. 안 만들어봤으니 기대치가 없는 거다. 못 만들어도 당연하니까. 그렇게 부담없이 시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김상석 '하면 된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감으로도 안 되는 기술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런 건 하면서 배웠다. 예를 들면 '그들이 죽었다' 경우엔 촬영을 더 간단히 하려고 동시녹음을 없애고 후시녹음을 한 부분이 많다. 그러면 현장 통제를 안 해도 되겠단 생각에.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동시녹음은 해야된다는 걸 배우게 됐다.(웃음)

'그들이 죽었다'는 촬영에 2년이 걸렸다. 스태프 일과 병행하며 작업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시간이 들었다. 이 때문에 김상석이 그동안 머리스타일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부산국제영화제 장면의 경우는 가는 장면과 도착한 장면은 각각 1년을 사이에 두고 촬영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덕분에 영화 '산타바바라' 촬영으로 나갔던 미국에선 할리우드 장면을 찍는 대규모 로케이션(?)도 가능했다. 완성된 영화에선 촬영기간의 텀을 실감할 수 없다.

▲백재호 배경이 겨울이다 보니 이번에 안 되면 다음 겨울에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고. 일기예보 보고 상석이에게 '내일 눈 온대' 문자하면, 눈 펑펑 내릴 때 둘이 급히 나와서 찍고 했다. 2년간 촬영하며 생각이 계속 바뀌었고,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했다.

 

◆ 그럼에도, 영화를 해야만 하는 이유? 

'그들이 죽었다'와 '별일 아니다', 김상석의 데뷔작 '아스라이'까지. 공교롭게도 세 작품은 모두 영화를 찍는 이야기다. 무명 배우의 이야기, 곧 본인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답답하고 막막한 장면들도 많다. 

▲백재호 자극적인, 그런 다른 내용을 만들려는 척을 했다면 어떻게든 완성은 시켰겠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진 못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진정성있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이야기가 뭘까 생각했을 때 없는 건 없는 대로 보여주고, 우리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편인데, 우리는 이렇게 몹시 별로지만 그럼에도 노력하고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만큼 이들에게 작품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백재호는 개봉을 앞두고도 계속 고민하고 약간의 편집을 가하기도 했다.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별일 아니다' 때 감독을 해 보니 조금이나마 알겠더라. 배우들에겐 말 못 해도, 혼자 벽 치면서 '이거 아닌데' 하는…."(김상석)

두 사람은 현재 스태프 일을 병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배운 후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많은 경우와 달리 두 사람의 순서는 거꾸로다. "영화를 제대로 배워보잔 생각으로(김상석)" 일하고 있고, 그 덕분에 "함께 일하며 동료들이 느는(백재호)"는 변화가 생겼다. 

늘 그래왔듯, 영화는 앞으로 계속 찍을 생각이다. 김상석은 다양하고 때론 마이너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 백재호는 실험적인 이야기와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취향 고백은 "그런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말로 끝맺었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우리의 세계가 좀 더 넓어지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에 대한 약간의 가능성, 부담도 생겼죠. 이제 좀 더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반응이 궁금해요. 개봉 후엔 또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요?" (백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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