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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줌Q] 배우 이화의 따끔한 질문 '그래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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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줌Q] 배우 이화의 따끔한 질문 '그래도 괜찮아요?'
  • 최대성 기자
  • 승인 2015.12.15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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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대성 기자] 하나님을 찍고 싶었다. 사진을 공부하던 시절, 내 카메라에 신을 담아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물론 신의 형상은 그 누구도 본 적 없기에 그러한 결심 자체가 무모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부부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랑의 크기에 비례해 닮아가는 건 아닐까?' 란 물음에 힌트를 얻어 신과 가장 가까운 교감을 나누는 교인들을 피사체로 삼기로 했다.

대한민국이란 밀림에서 생존을 위해 신에 더욱 의지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조선족들이 모인 한 교회를 수소문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일컬어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니라고 했다. 사회 계층에서 철저하게 외면된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의지해 삶을 지속해야 했고 그 고단함을 기도하는 가운데 눈물로 쏟아내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일이 지나 그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게 된 후 새신자, 평신도, 전도사, 장로, 목사 순으로 구분을 지어 그들의 초상화를 촬영, 그 얼굴 속에서 신의 형상을 찾고자 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 무모한 시도였다. 결국 그들의 얼굴에서 신의 얼굴은 찾지 못했지만 대신 국적과 성별을 넘어 삶에 힘겨워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과 나는 결국 같은 인간이었다.

 

지난 12월 2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 '그들이 죽었다'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이 영화는 무명 감독과 배우들이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이란 무거운 주제로 각자의 죽음과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예술에 장르를 구분 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그들의 영화는 소위 말하는 '독립영화'다. 세계평화를 위한 할리우드 영웅들의 이야기는 구차한 개인의 인생살이에 별다른 해답을 주지 못하기에 가끔 '생각을 위한 자극'이 필요할 때면 무리하게라도 '작은 영화' 행사를 일정으로 잡는다.

규모는 미국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깊이는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충분했기에 이번 영화의 시사회도 기대감을 안고 찾았다. 더구나 그 주제 또한 '종말, 꿈, 삶'과 같이 다분히 철학적이니 이보다 더 적합한 일정은 없었다.

그러나 영화의 시작은 썩 달갑지 않았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주인공의 연기와 어설픈 카메라 워킹은 주인공이 영화 속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뱉었던 '이런 영화는 나도 만들겠네'란 대사에 침을 뱉고 싶을 정도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개인적으로 동아리의 졸업 작품 정도로 생각되던 이 작품은 중반부를 넘어서자 그 수준과 재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몰입에 방해가 되던 주인공의 대사 톤은 어느새 개성 넘치게 들렸고 후반부에 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세상의 마지막 날, 장렬히 떠오르는 일출을 맞으며 절규하는 상석을 향해 이화가 계속해서 되묻는 장면이 있다. "오빤 세상이 멸망하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살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냐는 이화의 담담한 질문이 가슴팍에 박혔다. 사명감에 카메라를 들었던 꿈 많던 청년은 어느새 주판알을 튕기고 앉아있는 고리타분한 아저씨가 되었다. '생존과 책임이란 변명 하에 세상과 타협해도 괜찮아요?'라며 꾸짖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을 보니 왠지 낯설지 않았다.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그들의 얼굴을 보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 나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신의 얼굴 대신 발견한 내 모습처럼, 영화를 통한 그들의 얼굴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나를 본 것이다.

한 평론가가 질문을 하라고 받아 든 마이크로 장황한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영화 이론에 대한 미천함에 그 평론의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미에 내뱉은 한마디 "영화 참 잘 봤습니다"에는 완전히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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