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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법정드라마의 새 지평 연 '개과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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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법정드라마의 새 지평 연 '개과천선'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30 0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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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지난 26일 조기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은 법정드라마의 본령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사건과 법정에서의 치열한 법리다툼에 포커스를 맞췄다. 물론 이 드라마 역시 주조연의 로맨스가 있었으나 로맨스를 주축으로 법정장면을 첨가하곤 했던 기존 국내 법정드라마와 궤를 달리 했다.

거대 로펌인 차영우 펌의 에이스 금융전문 변호사 김석주(김명민)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개과천선’은 방영 이후 복잡한 금융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시청자 사이에서 극사실주의 웰메이드 드라마로 환호 받았다.

▲ '개과천선' 포스터[사진=MBC 제공]

극중 ‘중소기업 환율상품 사건’은 2008년 특정 구간에서만 환헤지(환율변동 리스크 제거)가 되는 환율 상품을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에 판매해 문제가 된 키코 사태를, ‘유림그룹 회사채 사건’은 지난해 터진 동양그룹 기업어음·회사채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이외 건설사 인수전, 기름 유출사고, 증권사 CP발행, 외국계 투기자본, 기업 비자금, 경영권 분쟁, 법조계 마피아 등 현실의 일들을 기반으로 리얼리티와 완성도를 살렸다.

법정드라마의 매력은 실체적 진실과 정의 추구라는 주제의식에 있다. 이를 위한 잘 짜인 플롯과 긴장감 넘치는 사건 전개, 불꽃 튀는 법정 공방은 다른 장르에서 맛보기 힘들 만큼 시쳇말로 ‘쩐다’. 대본과 연출이 웬만큼 치밀하지 않고서는 감동을 주기 힘들다. 더욱이 배심원단을 설득하기 위한 검사와 변호사의 두뇌 플레이와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재판은 밋밋하게 흐르기 쉬운 ‘판사-검사-변호사’ 시스템이라(일부 국민참여재판이 있긴 하지만) 법정드라마 특유의 긴박감을 끌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과천선’은 인기 미드 ‘야망의 함정’ ‘수츠’ ‘저스티스’ ‘보스턴 저스티스’ ‘보스턴 리걸’ 못지않은 법정드라마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줬다. 작가의 역량 덕분이다. 최희라 작가의 현실을 짚어내는 탁월한 안목은 대한민국 경제의 실상과 그늘을 적나라하게 바라보게 했다. 꼼꼼한 취재는 디테일과 전체적 완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았다.

▲ '개과천선'의 극중 장면[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법정드라마의 성공은 주인공인 변호사를 맡은 배우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장르 캐릭터와 달리 엄청나게 많은 대사량을 비롯해 전문용어를 입에 붙여 속사포처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법정장면에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파워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김명민은 이 드라마를 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7년 ‘하얀거탑’의 천재 의사 장준혁에 이어 이번에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법정 신에서 냉철한 변호사 김석주로 빙의한 그의 연기는 빈틈이 없었다. 기억을 잃기 전 냉정하고 날카로운 모습과 사고 후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채 올바른 변호사의 길을 걷는 전혀 다른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김석주와 대립하는 차영우 펌의 대표 역 김상중은 법조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노회하고 치밀한 성정의 캐릭터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김명민 못지않은 훌륭한 딕션(발음 및 화술)으로 소화, 극에 팽팽한 긴장을 불어 넣었다. 그가 있었기에 김명민이 더욱 돋보일 수 있었다.

연기자 스케줄과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실, 저조한 시청률(8~9%)로 조기 종영을 결정함으로써 마지막회 내용이 서둘러 봉합된 점, 제목이 법정드라마의 정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으나 ‘개과천선’은 향후 국내 법정드라마의 새 기준을 제시한 바로미터 역할을 당당히 완수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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