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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0) '피에타'의 잊을 수 없는 그녀 강은진,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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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0) '피에타'의 잊을 수 없는 그녀 강은진,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인터뷰)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5.12.18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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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원호성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에는 짧게 등장하지만 쉽게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여배우가 한 명 등장한다. '피에타'에서 단 세 번의 출연만으로 그 해 대종상 여우조연상과 신인여우상 후보에 올랐던 '명자' 역의 배우 강은진이 바로 그 사람이다.

인터뷰에 앞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강은진 배우의 인터뷰는 철저히 사심에서 시작됐다.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두 편의 영화로 2012년 한 해 주목을 받은 배우지만 이후 강은진의 출연작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진하게 눈길이 갔던 배우였기에 강은진이라는 배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그 이야기를 너무나 듣고 싶었다. 그래서 강은진 배우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 배우 강은진

◆ '무산일기'와의 만남, "'교회누나 같은 배우"

배우 강은진의 연기인생은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며 시작됐다. 강은진은 서울예대를 졸업한 후에도 대학로에서 '매직타임', '남자충동', '미라클' 등의 연극무대에 배우로 참여하며 연기의 기본기를 다졌다.

강은진을 연극무대에서 영화로 이끈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였다. '왕의 남자'에서 강은진이 연기한 역할은 큰 비중도 없는 '궁녀'에 불과했지만, 이를 시작으로 강은진은 연극무대 뿐 아니라 영화라는 새로운 무대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강은진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에게 조금 더 알린 작품이 바로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였다. '무산일기'에서 강은진은 탈북자로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승철(박정범 분)이 동경하고 좋아하는 노래방 주인의 딸 '숙영'을 연기한다. 승철은 '숙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녀의 노래방에서 일도 하게 되지만, '숙영'은 승철이 자신에게 다가올수록 그를 멀리 하려 한다. 그래서 '무산일기'의 '숙영'은 승철에게는 그가 갈구하는 구원의 대상인 동시에, 그에게 남한 사회의 현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산일기'는 오디션을 본다고 해서 시놉시스를 보게 됐는데, 시놉시스를 읽고 너무 하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오디션 현장에는 저보다 키도 크고 예쁜 여배우분들도 많았었는데 박정범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하고는 '교회 누나' 같은 배우였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산일기'는 배우 강은진에게도 매우 중요한 영화가 됐다. '무산일기'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도빌아시아영화제, 멜버른국제영화제,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됐고 2011년 가장 빛나는 독립영화 중 한 편으로 기억됐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강은진에게도 배우로서 새로운 기회들이 오기 시작했다.

▲ 배우 강은진

◆ '피에타'의 잊을 수 없던 그 장면, "명자는 과연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무산일기'가 맺어준 강은진의 가장 소중한 인연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였다. 김기덕 감독은 독일 뮌헨에서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를 보게 됐고, 도쿄 필름엑스영화제에서 '무산일기' 팀을 만나게 되면서 그 때 강은진이라는 배우를 눈여겨 봤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은 강은진에게 '피에타'의 시나리오를 보냈다.

"도쿄 필름엑스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님을 만났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김기덕 감독님이 저한테 '피에타'의 시나리오를 보내주셨어요. 처음에 저는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하시려고 보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영화의 내용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서 영화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감독님은 제가 영화에 별로 출연하고 싶지 않은 줄 아셨대요. 제가 정작 캐스팅에 대해 아무 말이 없길래 출연 안 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셨었다고."

'피에타'에서 강은진의 첫 등장은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강도(이정진 분)가 남편 훈철(우기홍 분)에게 돈을 받으러 오는 장면이었다. 강도는 돈을 갚지 못한 훈철의 손을 자르려 하고, 명자는 그 모습을 보자 "병신되기 싫으면 나가 있어"라고 훈철을 가게 밖으로 내몰고 셔터를 내리고는 옷을 벗고 "마음대로 하고 일주일만 시간을 더 줘요"라고 간청을 한다. 하지만 강도는 명자의 몸을 취하는 대신 그녀의 속옷을 벗겨 때린 후, 예정대로 훈철의 손목을 자르고 만다.

▲ 영화 '피에타'에서 '명자'를 연기한 배우 강은진 [사진 = 영화 '피에타' 화면 캡처]

두 번째 등장은 강도가 손을 잘리고 전 재산을 잃은 뒤 시골 비닐하우스로 쫓겨나 사는 훈철과 명자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었다. 강도는 훈철과 명자를 찾아가 구원과 용서를 바라고자 하지만, 강도가 도착한 그 순간 명자는 술에 취한 훈철에게 "굶어죽기 싫으면 입 닥치고 있어. 니가 그 돈만 안 빌렸어도 이렇게 안 살아"라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강도는 훈철이 명자에게 덤벼들자 뛰어들어 훈철을 제압하고 훈철에게 돈을 던지고, 명자는 그 돈을 주워 다시 강도에게 던지고 소주병을 깨서 들어올리며 "필요없어 너 같은 악마새끼 돈. 법만 없다면 너 같은 새끼, 수백번 찍어 죽이고 싶어. 쓰레기 새끼, 차에 매달아 갈아 죽이고 싶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세 번째 등장은 '피에타'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강도에게 손이 잘린 훈철은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명자는 지옥 같은 일상에 찌든 표정으로 병신이 된 남편 훈철을 대신해 트럭을 몰고 장사를 하러 나간다. 그리고 강도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속죄라도 하듯 명자의 트럭 아래로 들어가 쇠사슬로 목을 매달고, 명자는 강도가 매달린 사실을 모른채 트럭을 운전하며 "차에 매달아 갈아 죽이고 싶어"라던 그녀의 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실행에 옮기고 만다. 잔혹하면서도 슬픈 결말이다. 이렇게 강은진은 단 세 번의 등장만으로 '피에타'에서 그 어느 배우보다도 관객의 시선을 강렬하게 훔쳐냈다.

"처음 '피에타' 시나리오에 묘사된 '명자'의 캐릭터는 영화보다도 더 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캐스팅되고 나서도 이걸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고민도 했었는데, 나중에 제가 캐스팅된 후 김기덕 감독님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신 후 시나리오를 저의 이미지에 맞게 수정해주셨어요. 저한테는 솔직히 영광이었죠.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님의 영화에 솔직히 출연분량도 적었는데, 대종상 후보에도 올랐으니 그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정말 대단한 영광이었어요."

"'피에타'를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는데, 영화를 다 끝내고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명자'가 과연 그냥 장사를 하러 가는 길일까? 저는 그 때 그냥 '명자'가 트럭을 몰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타고 집에서 나오는데, 저 지치고 비루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질까?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멀리 떠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 배우 강은진

◆ 이창동 감독과의 만남, "자괴감 들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강은진은 이창동 감독의 '시'에도 출연했었다. 영화 포털 사이트의 정보에는 '간호사'라는 단역으로만 기록되어 있지만,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창동 감독의 '시'는 강은진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영화가 됐을지도 모른다.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강은진이 맡은 역할은 윤정희가 연기한 '미자'의 리허설 대역이었다. 핸드헬드를 자주 사용하는 이창동 감독은 배우가 연기를 준비하는 동안 현장에서 다른 배우에게 카메라 리허설을 대신 준비시키는 연출 스타일을 사용했고, '시'에서는 이 역할이 강은진에게 돌아간 것이다.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님이 '시'의 조감독이셨잖아요. 박정범 감독님은 '시'를 준비하시다가 이창동 감독님이 방학을 주셔서 그 때 '무산일기'를 찍으셨고, '시'가 촬영을 하게 됐을 때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이창동 감독님도 만나 뵈었는데  절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너가 카메라 앞에 서지만, 영화에는 너가 나오지 않고 윤정희 선생님이 나오셔서 나중에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겠냐?'라고. 그래서 저는 어차피 제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겪어야 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해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죠."

"비록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리허설 대역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몇 개월 동안 이창동 감독님 밑에서 리허설 연기를 하고, 윤정희 선생님의 연기를 지켜보며 제 나름대로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어요. '시'를 통해 저도 배우로서 한 단계 성숙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윤정희라는 대배우의 리허설 대역 외에도 강은진은 '시'에서 단역으로도 얼굴을 비췄다. 영화 초반부 '미자'(윤정희 분)를 병원에서 안내하는 간호사 역할이다. 사실 처음에는 김용택 시인의 시 낭송회에서 '미자'를 안내하는 역할이었지만, '무산일기'에서는 장점이 됐던 '교회 누나' 같은 맑은 얼굴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판단 때문에 간호사 역할로 바뀌었다고 한다.

▲ 배우 강은진

◆ 다시 시작을 준비하는 배우 강은진, "조급한 마음이 없다면 배우를 그만 둬야죠"

의외였다. '무산일기'와 '피에타'로 주목받은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강은진의 필모그라피는 생각 외로 조촐했다. 정만식과 함께 이은상 감독이 연출한 사회성 짙은 드라마 '사선의 끝'에 출연했지만 벌써 이 영화를 마친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사선의 끝' 역시 개봉일이 확정되지 않은 채 계속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피에타'를 마치고 시나리오 제의가 많이 들어왔을거라고 하시는데, 생각처럼 그렇게 시나리오를 많이 받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때 들어온 작품 중에는 '피에타'의 이미지 때문인지 노출이 센 영화도 있었죠. 당시나 지금이나 계속 소속사 없이 활동을 하다보니 저를 알릴 방법도 조금은 부족했고요."

"배우는 항상 누군가 선택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저도 배우로서 저를 드러내고 작품으로 제 연기를 노출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아요. 그래서 지금도 많이 움직이고 있어요. 소속사도 찾아보려고 하고, 지금은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언제 좋은 작품이 절 찾아올지 모르니 그 날을 대비해 제 자신을 훈련시키고 경계를 넓히고 있어요. 작년에 라디오를 하다 끝내고 난 후 배우로서 여러 체험의 시간도 가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봤어요. 이제는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만나서 달려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강은진은 지금도 소속사가 없다. '피에타' 이후 연기인생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무산일기'를 통해 이창동 감독, 김기덕 감독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눈길을 받았음에도 한국 연예계 현실에서 소속사 없는 배우가 작품을 새로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저는 독립영화나 다양성 영화를 좋아해요. 하지만 배우로서는 제가 가진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제가 혼자서 말로만 상업영화에서 이런저런 배역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제가 실제로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믿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상업영화이든 독립영화이든 드라마든 너무나 작품을 하고 싶어요. 배우는 작품을 계속 해나가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어야 성장하고 계속 발전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한 때는 제가 배우로서 도태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마음 먹고, 계속 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하며 노력하다보면 좋은 인연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그런 말도 많이 들어요. 지금 작품이 없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 그런데 내가 배우로서 조급한 마음이 없다면 배우를 그만 둬야죠. 제가 배우로서 연륜이 쌓일 나이도 아니고, 지금 저는 배우로서 계속 꾸준히 연기를 하며 나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는 나이에요. 그러니 제가 지금 작품이 없다고 조급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거에요. 다만 조급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짓눌러서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느냐, 아니면 그 조급함이 내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저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힘이 되느냐 그것이 차이점인거죠."

▲ 배우 강은진

■ 강은진 배우는?

강은진 배우는 2001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하며 연기인생을 시작했고, 대학 졸업 후 대학로에서 '남자충동', '매직타임', '청혼' 등 여러 연극작품에 출연했다. 이후 2005년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를 시작으로 이창동 감독의 '시',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 박찬욱 감독의 동생인 박찬경 감독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피에타'로는 2012년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5년에는 이은상 감독의 독립 장편영화 '사선의 끝'에 출연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EBS FM '라디오 연재소설'에 참여했다.

[취재후기] '미생'이나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변요한, 류혜영, 안재홍, 류준열 등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는 시대지만, 아직도 좋은 연기력을 보유하고도 묻혀 있는 보석 같은 배우들은 많다. 강은진 배우 역시 그런 배우들 중 한 명이다. '무산일기'와 '피에타'를 통해 대중들의 눈도장을 받았던 강은진 배우가 어서 좋은 영화로 다시 관객들과 만날 그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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