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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춤추는 브라주카보다 더 '핫'한 골키퍼 영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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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춤추는 브라주카보다 더 '핫'한 골키퍼 영웅시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0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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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초아·나바스·노이어·세자르 릴레이 슈퍼세이브, 공격축구 대세 속 더욱 주목받는 수문장 스타들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공격축구의 대세 속에 '거미손' 골키퍼들의 활약이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1일까지 치러진 조별리그 48경기와 16강전 6경기 등 54경기를 치르면서 모두 150골이 나와 경기당 평균 2.78골이 터져나오면서 사상 유례없는 공격축구가 펼쳐지고 있다.

역대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경기당 평균 골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5.38골. 실력차가 많이 줄어든 현대 축구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수치다. 그러나 경기당 평균 최소골이었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2.21골보다 0.5골이 더 나오면서 관중들의 열기가 더욱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또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나왔던 역대 최다골 기록인 171골도 넘어설 태세다. 당시 프랑스 대회에서는 경기당 평균 2.67골이 나왔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역대 최다골 신기록이 나올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은 앞으로 16강전 2경기와 8강전 4경기, 4강전 2경기, 3~4위전 및 결승전 등 10경기가 더 남았다. 10경기에서 22골만 나오면 신기록이다.

그러나 54경기 가운데 9차례에 걸쳐 골키퍼가 경기 최우수선수(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치열한 공격축구 속에서 세계 최정상급 골키퍼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하메스 로드리게스(25·AS 모나코)와 네이마르(22·FC 바르셀로나) 등 골잡이들의 위세가 만만치 않지만 수문장들의 맹활약이 8강, 4강을 넘어 결승까지 이어진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 올리버 칸 이후 두번째로 골키퍼 출신 월드컵 최우수선수(골든볼) 탄생도 배제할 수 없다.

◆ 멕시코의 오초아, 거미손을 넘어선 '천수(千手)'

브라질 월드컵을 가장 뜨겁게 달군 수문장은 바로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29·무소속)다. 올시즌을 끝으로 프랑스 리게앙 아작시오와 계약이 끝난 그는 브라질과 조별리그 2차전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16강전까지 두 차례나 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됐다. 특히 오초아는 16강전 1-2 패배에도 불구하고 맨오브더매치에 뽑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거미손을 넘어서 좌우 20개씩 40개의 손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천수(千手) 관세음보살처럼 오초아는 골문으로 향하는 모든 공을 걷어냈다. 4경기에서 내준 골이 고작 3실점이다.

그의 진면목은 브라질전에서 빛났다. 90분 내내 14개의 슛 가운데 8개의 유효슛을 날린 브라질에 맞서 오초아는 6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무승부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없었다면 브라질에 대량 실점하면서 크로아티아전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오초아는 16강전에서도 8개의 유효슛 가운데 5개를 가슴과 팔, 다리 등 온몸으로 막아내며 네덜란드를 패배 직전으로 몰고 갔다. 후반 43분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의 중거리 캐넌슛과 후반 추가시간 얀 클라스 휜텔라르의 페널티킥은 오초아는 물론이고 전세계 어느 골키퍼도 막기 힘든 것이었다.

FIFA 월드컵의 공식 선수 평점인 캐스트롤 인덱스에서도 오초아는 9.19점을 받아 전체 23위, 골키퍼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네덜란드에 막혀 더이상 오초아의 눈부신 선방쇼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오초아는 이번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본능적인 방어능력에 매료된 빅클럽이 벌써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아작시오와 계약이 끝나면서 자유계약선수가 돼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데다 그의 탁월한 선방 본능을 높이 산 리버풀, FC 바르셀로나 등이 뭉칫돈을 들고 에이전트와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 코스타리카 첫 8강 신화의 수호신 나바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코스타리카에는 케일러 나바스(28·레반테)가 있다. 나바스는 2011~2012 시즌 스페인 레반테로 임대됐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아틀레틱 빌바오와 경기에만 나가 무실점으로 활약하며 단숨에 구단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레반테와 계약을 맺었고 지금은 어느새 주전이 됐다.

나바스가 이번 대회에서 내준 골은 고작 2골. 그나마 한 골은 우루과이와 첫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준 것이다. 조별리그에서는 필드골을 단 하나도 내주지 않으며 코스타리카의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나바스는 현재 캐스트롤 인덱스에서 8.43점을 받아 골키퍼 가운데 다섯번째 높은 순위인 78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앞선 골키퍼들의 활약이 돋보인 나이지리아, 멕시코, 칠레, 에콰도르가 모두 8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골든 글러브 후보다.

나바스는 4경기에서 390분을 뛰며 방어율이 87.5%에 달했다. 상대의 8개 유효슛 가운데 단 하나만을 놓쳤다는 뜻이다. 잉글랜드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된 나바스는 그리스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16강전에서 만난 그리스가 날린 슛은 모두 24개. 이 가운데 13개가 골문 쪽으로 향한 유효슛이었다. 그러나 나바스는 7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그리스의 예봉을 한 골로 막아냈다. 또 승부차기에서는 네 명의 킥 가운데 결정적인 하나를 막아내면서 코스타리카의 8강행을 견인했다.

그리스전을 마친 뒤 양팀 감독의 찬사도 이어졌다. 코스타리카의 호르헤 핀토 감독은 "그를 믿었다"고 신뢰감을 나타냈고 그리스의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도 "나바스는 축하를 받을만한 선수다. 그가 없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패배를 시인했다. 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됐음은 물론이다.

이제 나바스 앞에는 네덜란드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 있다. 이미 네덜란드는 오초아라는 명 골키퍼를 울리고 8강에 올랐다. 오는 6일 사우바도르에서 열리는 8강전에서 나바스가 다시 한번 거미손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북중미팀 4강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역대 월드컵에서 북중미팀이 4위 안에 든 것은 미국이 3위를 차지한 1930년 우루과이 대회 뿐이다. 이후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4강은 유럽과 남미의 차지였으나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4위를 차지하면서 비 유럽 및 남미팀으로는 두번째로 4위 안에 들었다.

◆ 엠볼히에 살짝 묻혀진 노이어의 선방쇼

독일과 알제리의 16강전에서는 알제리 골키퍼 라이스 엠볼히(28·CSKA 소피아)의 위세가 너무나 강력했다. 엠볼히는 이날 독일이 기록한 22개의 유효슛(슛 29개) 가운데 11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며 단 두 골만 허용하는 눈부신 선방쇼로 패배팀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됐다.

그러나 독일이 졸전 속에서도 2-1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마누엘 노이어(28·바이에른 뮌헨)의 활약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노이어 역시 알제리의 7개 유효슛 가운데 4개를 막아내며 독일의 연장 접전 승리를 이끌었다.

다른 골키퍼가 눈부신 선방으로 주목을 받았다면 노이어는 넓은 수비 능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독일의 포백 수비진이 알제리의 빠른 역습에 고전하고 있을 때 노이어가 빠른 판단으로 뛰어다니며 막아냈다. 이날 노이어는 골키퍼 뿐 아니라 최종 스위퍼 역할까지 담당하며 태클과 클리어링 능력을 펼쳐보였다.

노이어는 193cm의 장신임에도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하는 탁월한 위치 선정능력과 동물적인 반사신경을 비롯해 경기의 흐름을 읽는 넓은 시야, 확실한 제공권 장악 등으로 일찌감치 최고의 골키퍼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터였다. 이미 노이어는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독일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실제로 노이어는 전반 9분만에 이슬람 슬리마니의 크로스를 태클로 차단하는가 하면 전반 27분에는 수비수의 볼 터치 실수를 대신 처리하기도 했다. 독일 수비진이 계속 뒷공간을 내주고 있을 때 알제리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것은 노이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4개의 세이브 외에도 기록에 잡히지 않는 수비력까지 보여준 것이다.

노이어는 이날 59회의 볼터치로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은 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75%의 패스 성공률을 보이기도 했다. 노이어는 특히 이번 대회에서 81.3%의 방어율을 보이고 있는 것을 비롯해 무려 85.7%에 달하는 패스 성공률까지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노이어는 브라질 월드컵 4경기의 활동 범위를 보면 페널티 지역 바깥까지 뻗쳐 있다. 노이어의 최종 수비 역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골키퍼가 최종 수비수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면 필드 플레이어 11명이 뛰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포백이지만 파이브백의 효과를 볼 수 있어 현대 축구의 치열함 속에서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 노장은 살아있다, 삼바축구의 버팀목 세자르

브라질의 줄리우 세자르(35·토론토)는 이미 한국 축구팬에게 낯이 익은 노장 골키퍼다. 2005년부터 이탈리아 세리에A 인터밀란에서 활약하며 다섯 차례의 스쿠데토(세리에A 우승)와 세번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 한차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경험했다.

한국 축구팬에게 더 낯이 익은 것은 박지성과 함께 퀸즈파크 레인저스(QPR)에서 뛰었다는 점이다. 2008~2009 시즌과 2009~2010 시즌 등 두차례에 걸쳐 세리에A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됐던 그는 2012~2013 시즌 QPR로 건너와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었다.

하지만 세자르는 QPR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그가 못한 것이 아니라 워낙 팀의 수비가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세자르는 더욱 강해졌다. 2013~2014 시즌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고 올해 캐나다 토론토로 임대된 그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의 골문을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기록은 전성기의 세자르만 못하다. 4경기에서 3실점으로 0점대 실점율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방어율은 66.7%에 그치고 있다. 브라질이 워낙 강하다보니 상대팀에 슛 자체를 주지 않아 세자르의 진면목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세자르는 칠레전에서 빛났다. 칠레와 양보없는 16강전에서 1-1로 비긴 뒤 들어간 승부차기에서 세자르는 첫번째와 두번째를 막아냈다. 브라질의 실축이 이어지면서 다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승부차기에서 빛난 세자르의 방어능력이 없었다면 브라질은 사상 처음으로 16강에서 무너지는 대참사를 겪을 뻔 했다. 당연히 맨오브더매치는 세자르의 것이었다.

세자르가 8강에서 만날 상대는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버티고 있는 콜롬비아다. 콜롬비아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8강에 올라 상승세가 만만치 않다. 강력한 공격력으로 무장한 콜롬비아를 꺾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세자르의 능력이 빛을 발해야 한다.

◆ 브라주카에 울고 웃는 골키퍼들

이번 월드컵 본선에는 브라주카에 고전하는 골키퍼가 적지 않다. 브라주카는 가죽조각을 6개로 줄여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여 기존 공보다 20%나 빠른 것으로 알려져있다. 탄성도 이전 공인구보다 훨씬 좋아져 골키퍼가 처리하기 쉽지 않은 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요인이 골이 많이 나오는 공격축구를 부추기고 있다.

현재 캐스트롤 인덱스에서 골키퍼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는 9.35점을 받은 나이지리아의 빈센트 에니에아마(31·릴)이다. 에니에아마는 4경기 가운데 두차례에 걸쳐 클린시트(무실점)를 기록하면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에니에아마는 프랑스와 16강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로 울고 말았다. 프랑스의 파상 공세를 잘 막아냈던 그는 후반 34분 왼쪽에서 올라온 코너킥을 펀칭했지만 하필이면 폴 포그바 앞에 떨어지면서 선제 결승골을 내줬다. 70분 넘게 잘 막았던 에니에아마의 유일한 실책이었다. 또 에니에아마는 후반 추가시간 조지프 요보의 자책골을 막아내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러시아의 이고르 아킨페예프(28·CSKA 모스크바)는 한국전에서 이근호의 중거리슛을 막지 못해 '기름손'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조별리그 최악의 골키퍼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또 이케르 카시야스(33·레알 마드리드)도 네덜란드전에서 무려 5실점하며 무너져 남아공 월드컵 '골든 글러브'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겼다.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36·유벤투스)은 노익장을 발휘했지만 2회 연속 16강 탈락을 막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 골키퍼의 희비도 엇갈렸다. 김승규(24·울산 현대)는 벨기에전만 출전해 무려 87.5%의 방어율을 보여주며 차세대 대표팀 수문장으로 거듭났다. 김승규는 브라질 월드컵 훈련 도중 오른 손가락에 통증을 느껴 벨기에전 당시 대부분 왼손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을 처리했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 16강 멤버 정성룡(29·수원 삼성)은 고작 50%의 방어율에 그치며 넘버원 골키퍼의 체면을 잃었다.

캐스트롤 인덱스에서도 김승규는 6.52점을 받으며 전체 287위, 골키퍼 부문 22위에 올랐지만 정성룡은 5.53점에 그치며 전체 405위, 골키퍼 부문 32위에 머물렀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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