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합니다. 옛 것에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어 항상 자신을 새롭게 가꾸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일 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언을 굳이 되새길 필요도 없이, 우리는 평소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역사는 책에서나 보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는 항상 우리와 마주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소 오가던 길, 또는 몇 백미터만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기회가 되는 대로 휴대폰 앵글에 담아 보고자 합니다. 굳이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안내판이나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꽤 많은 역사적 사실과 지혜, 교훈과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포츠Q(큐) 유필립 기자] 강릉(岡陵)은 조선 제13대왕인 명종과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능이다. 현재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泰陵)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태릉과 마찬가지로 주소는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화랑로 곁에 위치하고 있다. ‘태릉강릉’은 나란히 사적 제201호로 지정돼 있다.
명종(明宗·1534~1567)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545년 인종이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 때문에 명종은 20세까지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친정 이후에도 국정은 어머니의 손에 좌우됐다.
왕이 어머니와 외척에 휘둘리며 독자적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는 극심한 사회 혼란으로 이어졌다. 탐관오리의 매관매직, 과중한 세금징수 등이 횡행해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급기야 임꺽정이 출연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명종은 후대를 잇는 데에도 실패했다. 인순왕후(仁順王后)에게서 외아들 순회세자를 얻었으나 1563년 13세에 잃어버렸다. 2년 후 어머니 문정왕후마저 세상을 떠났다. 명종은 문정왕후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흘 동안 밥 한 술도 뜨지 못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문정왕후의 모진 성정에 기를 못피고 살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극진했음을 알 수 있다.
병약했던 명종은 문정왕후가 죽은 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2년 후 왕위를 물려줄 왕자없이 34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재위 기간 22년 중 명종이 주체적으로 정사를 본 기간은 문정왕후 사후 2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인순왕후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선조)를 왕위에 올려야 했다.
인순왕후 심씨(沈氏)는 청릉부원군 심강의 딸로 1543년 경원대군(명종)과 가례를 올리고 1545년 명종 즉위와 함께 왕비에 책봉되었다. 1575년 44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왕릉은 자연친화적이다. 자연 지형과 어울리게 조성돼 있다.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포근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풍수지리가 말하는 최고의 '명당'이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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