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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5) '햄릿'부터 '이중섭'까지… 연극배우 '윤정섭', 꿈 없던 청년에서 꿈꾸는 배우가 되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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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5) '햄릿'부터 '이중섭'까지… 연극배우 '윤정섭', 꿈 없던 청년에서 꿈꾸는 배우가 되다 (인터뷰)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01.08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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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신년을 맞아 가장 처음으로 만난 연극배우 윤정섭은 세계 5대 연극축제 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 연극제 2012’의 공식 초청작이자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작인 ‘햄릿’에서 4대 햄릿으로 발탁된 연기파 배우다. 1986년 연출가 이윤택이 창단한 연극극단 연희단 거리패에서 꾸준한 연기와 다양한 작품 활동을 통해 간판배우로 군림한 배우 윤정섭은 천재화가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올해, 이중섭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준비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스포츠Q(큐) 글 김윤정 · 사진 최대성 기자] 배우 윤정섭의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3명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연기를 가르쳤던 김철홍 선생님과 윤정섭이 속해 있는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이자 간판 배우 김소희, 그리고 예술 감독 이윤택이다. 꿈이 없던 평범한 고등학생에서 3명의 스승을 만나 이제는 꿈꾸는 10년차 배우로 성장한 윤정섭을 연희단 거리패의 전용극장 ‘게릴라 극장’에서 만났다.

◆ 철없던 소년 윤정섭, 3명의 스승 만나 배우로 성장하다

처음부터 윤정섭이 배우의 꿈을 꾼 건 아니다. 안양예고 연극과를 나온 그가 예고에 들어가게 된 이유 또한 ‘어쩌다 보니까’였다. 이런 그의 인생을 바꾼 사람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만난 김철홍 선생님이었다. 가수 비의 은사로도 잘 알려진 김철홍(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출신 교수 및 대표)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대학교 진학도 어려웠을 거라고 말하던 윤정섭은 김철홍 씨에 대해 “첫 번째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윤정섭은 용인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해 두 번째 스승을 만났다. 바로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이자 간판 배우 김소희 씨다. 윤정섭은 대학교 시절, 학교에 강의를 나온 김소희를 보고 ‘저 선배님 극단에 들어가야겠다’란 결심을 했다. 이에 4학년 때 연희단 거리패의 워크숍에 참여해 기수를 받아 본격적인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배우 '윤정섭'

김소희의 영향으로 연희단 거리패에 입단한 윤정섭은 그의 나이 25살이 되던 해인 2008년에 게릴라 극장에서 막을 올린 ‘세자매’란 작품으로 데뷔를 했다. 배우로서 데뷔 신고식을 치른 윤정섭은 이때부터 연희단 거리패의 연출가이자 예술 감독으로 있는 이윤택을 세 번째 스승으로 삼았다.

윤정섭은 이윤택에 대해 “삶 자체가 연극과 붙어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연기를 하는 윤정섭에게 이윤택은 항상 자극이 되고 많은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이윤택 선생님은 모든 걸 다 던져서 작품을 만들어내세요.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으며 연극을 만드는 힘이 엄청나신 분이죠. 저도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언제나 그런 저를 일깨워주시는 분이세요.”

이후 윤정섭은 이윤택 감독, 그리고 김소희 배우와 함께 많은 작품 속에서 호흡을 맞췄다. 윤정섭은 이윤택 감독이 연출한 안톤체홉의 네 걸작(갈매기, 벚꽃 동산, 세 자매, 바냐 아저씨) 중 하나인 ‘세자매’에서 뚜젠바흐 역할을 맡으며 데뷔했고, 2008년에는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작인 ‘햄릿’에서 4대 햄릿으로 발탁됐다. 또 지난해는 ‘사중주’라는 2인극을 통해 ‘두 번째 스승’인 김소희와 연기호흡을 맞추며 직접 “엄청난 여자사냥꾼”이라고 표현한 발몽 역을 맡아 9년차 배우로서의 궤도에 올라섰다.

▲ 연극 '사중주'의 배우 김소희, 연출가 채윤일, 감독 이윤택, 배우 윤정섭(붉은색 의상 입은 여성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사진 = 극단 '연희단 거리패' 제공]

◆ "새 연극 ‘길 떠나는 가족’으로 ‘저 배우, 고생 많이 했겠다’는 얘기 듣고 싶어…"

3명의 스승들의 품에서 성장한 9년차 배우 윤정섭은 극단 연희단 거리패 30주년 기념을 맞아 몇 개의 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그중 하나가 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담은 ‘길 떠나는 가족’이다. 올해 3월 밀양연극촌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는 ‘길 떠나는 가족’을 준비 중인 윤정섭은 밀양연극촌과 서울의 게릴라 극장을 오가며 공연과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윤정섭의 새로운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한국의 서양화가 이중섭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1954년도, 이중섭이 종이에 유채로 그린 작품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길 떠나는 가족’은 지난 2014년 윤정섭의 선배인 지현준 배우가 앞서 연기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길 떠나는 가족’에서 이중섭을 연기하게 된 윤정섭은 ‘천재화가’ 이중섭에 대해 “고독하고 치열한 예술가”라고 표현하며 같은 예술인으로서 공감 가는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어쨌든 예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먼저잖아요. 그래서 공감이 가죠. 특히 그림을 그릴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하고 몰입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이중섭에게 그림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저한테는 연기가 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연극 공연을 하거나 연습을 할 때 완전히 몰두하는, 혹은 그 이상까지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배우 '윤정섭'

특히나 올해는 이중섭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이에 ‘길 떠나는 가족’을 들고 올 3월에 다시 콜롬비아의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 연극제’에 초청받아 이중섭의 생애를 연기할 윤정섭에게 이번 연극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동시에 부담감 또한 크게 다가온다.

“삶 자체가 예술이 돼야 되는데 그런 지점이 참 어려워요. 이중섭은 작은 그림 하나에도 온 정성을 쏟아 붓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그림을 그려냈는데, ‘어떻게 하면 내 연기로 그 정도의 밀도를 담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계속 하죠. 아마 지금까지 해왔던 연기만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작품이고 이중섭이라는 역할이 그래서 부담도 크지만, 여기서 돌파구를 뚫어 내야 해요. 안 그러면 발전할 수도 없을 것 같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또 화가 이중섭의 생애와 그 속에 드러난 한 인물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갈등 등이 표현된 ‘길 떠나는 가족’에 대해 윤정섭이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이 작품을 통해 ‘이중섭이 정말 치열하게 살았구나’, ‘저 사람 정말 저럴 수밖에 없었겠다’라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아는 화가 이중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면서 하나 더 얹자면 ‘저 배우, 정말 고생을 많이 했겠다’라는 소리도 듣고 싶어요(웃음).”

▲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을 함께 연기할 '연희단 거리패'의 단원들

◆ “연기관? ‘어떤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자’. 공연하는 시간, 내 시간 아니기 때문”

윤정섭이 연기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연극에서 윤정섭은 상대 연기자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분석한다. 또 혼자서 캐릭터를 연구할 때는 인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곤 하는 편이다.

윤정섭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햄릿’을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윤정섭은 “고생을 제일 많이 했으니까”라며 웃어 보였다. ‘햄릿’은 세계 5대 연극축제 중 하나인 이베로 아메리카노 국제 연극제에서도 공식 초청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윤정섭은 “어렵기도 하고 정말 힘들었어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래서 부딪혀서 싸워내야 하는 부분이 많이 힘들었지만 느낀 것들도 많았어요. ‘내가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남아있구나’, ‘연극이 아직은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했다.

▲ 연극 '햄릿'의 윤정섭 [사진 = 극단 '연희단 거리패' 제공]

데뷔작 ‘세자매’를 시작으로 ‘햄릿’, ‘원전유서’, ‘맥베스’, ‘아버지와 아들’, ‘갈매기’, ‘경성스타’, ‘풍찬노숙’, ‘꿈’, ‘서툰사람들’, ‘오구’, ‘어머니’, ‘고아뮤즈들’, ‘정말 부조리하군’, ‘코뿔소’, ‘사중주’ 등을 통해 수많은 배역을 연기한 윤정섭이 연기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 또한 이와 관련 있었다.

“더 깊고 더 큰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제가 만나는 역할마다 다 그래요. 저는 평범한데 ‘최고의 예술가’, ‘최고의 정신병자’, ‘최고의 바람둥이’, ‘최고의 혁명가’... 이러니까 나라는 사람은 그릇이 커지지 않는데 나보다 더 큰 사람들을 연기해야 되는 저를 대면할 때 어렵죠. 절망도 많이 되고.”

이때마다 윤정섭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행동들과 생각들을 조금씩 넓혀나가며 자신의 한계를 이겨나가는 방법으로 새로운 캐릭터들을 접한다. 특히 ‘어떤 순간이든 최선을 다하자’는 게 윤정섭의 연기관이다. 자칫 평범하게 들리는 연기관에 대해 윤정섭은 '가장 기본'이지만 '너무 기본'이기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간과하는 부분에 대해 강조했다.

“공연하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 아니잖아요. 관객들이 보고 있고 주변사람들도 같이하는 시간이니까 특별한 시간인 셈이죠. 그 시간을 내 맘대로, 내 멋대로 혹은 내가 너무 피곤하다고 대충 보내거나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라도 그 시간만큼은 내 인생에서 ‘제일’ 소중하고 ‘제일’ 뜨겁고 ‘제일’ 열심히 보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배우 '윤정섭'

◆ “오달수, 곽도원 등 배출한 극단 '연희단 거리패'서 단체 생활, 소극적 성격도 변해…

윤정섭은 현재 극단 숙소에서 생활하며 단체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연기파 배우 오달수, 곽도원, 그리고 이민정 등이 거쳐 간 연희단 거리패 극단에서 예전에 비해 비교적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윤정섭은 선배들을 떠올리며 “‘얼마나 열심히 생활을 하셨을까. 옛날엔 더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지내셨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동질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제는 제법 연차가 쌓인 윤정섭에게도 많은 후배들이 생겼다. 오랜 극단 생활로 윤정섭은 누군가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여서 일처리는 해내는 10년차 연기 선배가 됐다. 이처럼 선후배,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는 윤정섭은 단원들에 대한 끈끈한 정이 생겼고, 원래 소극적이던 성격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원래 성격은 소극적이라 내가 뭔가를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한다는 게 어렵고 연기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어요.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고 낯도 많이 가리는데 극단 생활을 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변했죠. 스스로 연극을 통해 삶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생활하면서 ‘그나마’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요(웃음).”

윤정섭은 처음 자신을 가르쳐준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후배들에게 직접 연극을 대하는 태도나 극단 생활 등과 같은 조언들을 해준다고 전했다. 이어 올해엔 자신 또한 다른 선배들로부터 든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게끔 자리를 잡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배우 '윤정섭'

◆ 당분간은 연극… “이윤택 감독의 ‘잘했어’ 한마디가 가장 큰 보람”

지난해, 약 5작품 정도를 해온 윤정섭은 한 해를 뒤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앞으로 나아가야할 지점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 부분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배우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윤정섭은 “모든 연습의 과정을 견뎌내고 공연이 올라갔을 때”라고 대답했다. “다른 것보다 이윤택 감독의 ‘잘했어’ 이 한 마디가 가장 큰 보람”이라는 윤정섭은 “관객들의 환호와 더불어 연습을 함께했던 배우들과 사람들의 축하, 그리고 격려가 있다면 그것이 곧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더라도 그 존재만으로 궁금증이 들고 관심이 가는, 또는 캐릭터의 삶이 그대로 보이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윤정섭은 당분간은 연극에만 몰두할 거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어 “극단을 구성하는 좋은 인력이 되고 싶다”고 전한 윤정섭은 마지막으로 “더 많이 공부해야 되고 고생해야 돼요”라는 10년차 배우답지 않은 말을 꺼내며 의지를 내비쳤다.

올 3월, ‘길 떠나는 가족’으로 밀양과 콜롬비아 행을 계획하고 있는 윤정섭의 새로운 변신이 기대되는 가운데, 윤정섭은 연희단 거리패가 배출할 또 다른 실력파 배우로서의 다음 주자로 이미 출발선에 선 듯 보였다.

▲ 극단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배우 '윤정섭'

[취재후기]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년이면 10년차 배우인 윤정섭과의 대화에선 노련미와 원숙미보다는 엉뚱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칭찬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소신 있고, 어색해 하면서도 치밀한 듯 보이던 윤정섭은 대본을 외운 듯 ‘정석의 답변’을 내놓는 여타 배우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매력으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분명 그 안에서는 배우로서 갈등하는 윤정섭의 치열한 고민이 존재했고, 연기를 대하는 그의 진실함이 고대로 전해지며 10년의 세월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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