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09:05 (목)
[영화본색] (11) '대호' 박인수,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닮은 배우 "지금도 내가 원하는 배우로 가는 과정이에요" (인터뷰)
상태바
[영화본색] (11) '대호' 박인수,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닮은 배우 "지금도 내가 원하는 배우로 가는 과정이에요" (인터뷰)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1.13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원호성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대사도 없이 짧은 순간을 스쳐 지나가도 강하게 인상에 남는 배우가 있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서 기억에 남는 배우도 있지만, 캐릭터가 전혀 인상적이거나 매력적이지 않음에도 그저 존재만으로도 눈에 띄는 배우 말이다.

지난 12월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영화 '대호'에서 그런 배우가 한 명 있다. '대호'의 주인공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최민식이지만, 정만식과 김상호를 필두로 한 포수대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한 명 있다. 대사라고는 영화에서 최민식의 아들 석이(성유빈 분)와 나누는 한 마디가 전부지만 큰 키에 강렬한 인상으로 눈을 사로잡은 포수대의 3인자 박포수를 연기한 박인수 배우가 그 사람이다.

▲ 배우 박인수

◆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닮은 배우, "제가 좀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박인수가 출연한 상업영화는 단지 세 편에 불과하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세관 선원으로, '신세계'에서는 김병옥과 함께 움직이는 킬러조직인 '연변거지'의 일원으로, '대호'에서는 정만식과 김상호에 이은 조선인 포수대의 3인자이자 군기반장이라 할 수 있는 박포수로 출연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한국적이라면 한국적이고, 이국적이라면 이국적인 외모로 박인수는 스쳐지나가도 스크린에 강렬한 개성을 남긴다.

"좀 민망하지만 누구랑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오지호 씨와 닮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고, 주로 한국보다는 외국 배우들과 비교가 되더라고요. 일본의 오다기리 조를 닮았다고 하는 분도 계시고, '대호' 촬영 당시 최민식 선배는 머리를 풀고 분장을 지우니 프랑스 배우 같다고 하시기도 하고. 박훈정 감독이나 정만식 형은 저만 보면 예수님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니면 동남아 쪽 배우 같다는 이야기도 들어봤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대호' 촬영감독이신 이모개 촬영감독님이 아침식사 도중에 저를 보시더니 '인수씨 얼굴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얼굴이 보인다'라고 하셨던 거였어요. 그날 아침식사는 그래서 정말로 맛있게 먹었어요. 한국배우는 그런 느낌이 나기 힘든데 독특하다고 하시더라고요."

▲ 배우 박인수

'나의 왼발', '데어 윌 비 블러드', '링컨'까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만 세 차례 수상한 할리우드에서도 최고의 연기파 배우다. 비록 외모라고 해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닮았다는 말은 배우에게 있어 최고의 칭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배우들이 멋스럽게 수염을 기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박인수는 수염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 중 한 명이고, 여기에 강렬한 눈빛을 함께 장착했다. 아직 영화계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모습임이 분명하다.

"첫 영화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마치고 나서 김동현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인상이 강하고 외모가 눈에 띄어서 다른 배우들처럼 아무 역할이나 쉽게 맡기가 어려울 거라고.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제가 생긴 것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배우로서의 저를 보여주기 위해 더 노력을 해야겠죠."

▲ 배우 박인수

◆ 닮은 것은 외모만이 아니다, "'신세계'에 캐스팅되고 안산역부터 갔어요"

그런데 박인수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닮은 점은 단지 외모만이 아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완벽하게 캐릭터에 빙의하는 것으로 유명한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다. 그는 '나의 왼발'에서 장애인을 연기할 때는 일상생활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갱스 오브 뉴욕'에서 뉴욕 갱들의 수장인 '도살자 빌(Bill the Butcher)'을 연기할 때는 직접 도살자 견습생으로 교육을 받기도 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신들린 연기에 비교하라면 아직 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긴 했지만, 캐릭터에 접근하는 박인수의 모습 역시 그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신세계'에서 연변거지 역할로 처음 캐스팅되고 가장 먼저 안산역을 찾아 갔어요. 안산역 앞에 시장골목이 있는데 거기 조선족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거든요. 거기 가서 낮이면 서너 시간씩 손에 해바라기씨 한 봉지 들고 계속 앉아 있었어요. 설정이나 모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들만이 구사하는 대화의 톤이나 뉘앙스를 관찰하려고 한 거죠."

"'대호' 때도 캐스팅되고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먼저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한 권 빌렸어요. '대호'의 배경이 1925년인데 그 때 '박포수'가 40살이라고 치면 1885년에 태어난 거잖아요? 그래서 책을 빌려서 1880년대 후반부터 1925년까지 있었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대한 내용을 읽기 시작했죠. 책을 보면 언제는 가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언제는 또 역병이 돌기도 하고 이런 내용들이 연도별로 상세히 정리되어 있거든요. 당시에는 그런 일들을 세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몇 달 지나면 풍문으로 그런 소식들이 전해졌을 거고, 그런 것들이 '박포수'라는 한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 박훈정 감독의 영화 '대호'(좌측)와 '신세계'(우측)에서 '박포수'와 '연변거지'를 연기한 박인수 배우 [사진 = 영화 '대호', '신세계' 화면캡처]

'신세계'의 연변거지나 '대호'의 박포수는 사실 그렇게 철저히 사전준비를 하고 캐릭터를 연구한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적은 분량이었다. '신세계'에서는 마지막에 철도 건널목에서 고국장(주진모 분)을 총으로 쏴죽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제대로 대사가 등장할 겨를은 없었고, '대호'에서는 사냥꾼이 되고 싶다는 최민식의 아들 성유빈에게 "호랑이 잡아서 뭐하려고?"라며 한 마디를 던지는 것이 고작이다.

"'대호' 같은 경우는 촬영회차는 많았지만 대부분의 출연장면이 사냥을 하면서 따라다니는 역할이라 제가 연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가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따라다니면 안 되고, 그렇다고 카메라 욕심에 뭔가를 하려해도 안 되는 거죠. 그래도 저는 체계적으로 '박포수'라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어요. '박포수'가 10명의 포수대 중에서도 분위기를 잡아주는 캐릭터인데 관객들의 눈에 바로 보이지는 않아도 그 10명 사이에서 '박포수'만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있을 것이고, 정만식 선배나 김상호 선배와의 관계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부분들을 계속 고민하면서 연기를 했죠."

"저도 사람인데 물론 연기를 하다보면 카메라 욕심이 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전체 영화의 리듬을 생각하며 그 리듬 안에서 저의 포지션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죠."

▲ 배우 박인수

◆ 부산에서의 10년, 서울에서의 10년 "지금도 내가 원하는 배우로 가는 과정이에요"

영화판에서 조연과 단역을 전전하는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이 박인수의 연기인생도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다. 어린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꿨지만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그에게 어떤 식으로 하면 그가 꿈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는 맨 몸으로 부딪혀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쪽에 관심있는 사람도 없고 길을 알려줄 사람도 없어서 혼자서 비디오를 빌려보고 EBS에서 방송하는 '전함 포템킨', '제7의 봉인' 이런 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녹화해서 보고 또 봤죠. 그렇게 연극영화과 시험을 보러 갔는데 '이 영화에 대해 논하라' 이런 문제가 아니라 연기 실기를 하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떨어지고 연기를 먼저 배워야 하는구나 싶어서 무작정 부산에 있는 극단을 찾아갔어요."

박인수는 이때부터 부산에서 10년 가까이 연극을 하게 된다. 서울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지만 부산은 나름대로 자생적으로 활동하는 연극 극단들이 활발한 지역이고, 그 곳에서 박인수는 수많은 연극작품에 배우로 출연하며 거창연극제와 같은 큰 무대에도 오르게 됐다.

"연극을 하다가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니 집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어요. 그런데 저는 연극이 하고 싶었으니 부산에 혼자 남아 계속 연극을 했죠. 집도 없어서 친구집에서도 자고, 동생한테 1년 정도 신세도 지고, 나중에는 갈 곳이 없어서 아예 극장에서 먹고 자며 1년 정도를 지냈어요. 그러다보니 삶이 피폐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좀 피폐해져도 연기를 한다는 욕구만 충족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몇 년 지내다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죠."

"서울에 올라오니 아버지가 기가 찬 표정을 지으시더라고요. 서른이 넘었는데 해놓은 게 아무 것도 없었거든. 집에 올라오니 집에 제 사진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버지가 싹 다 버리신 거예요. 그러니 어쩔거예요. 그래서 1년은 죽어라 일만 했어요. 디자인을 전공해서 그 쪽일을 시작했죠. 그러다가 도저히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다시 스태프일부터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처음 만난 사람들'의 공고를 보게 됐고, 오디션에 지원해 붙어서 덜컥 주연으로 출연하게 됐죠."

부산 연극계에서는 제법 이름을 알렸던 박인수는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을 통해 영화배우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음에도 저예산 독립영화의 한계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어 출연한 노진수 감독의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박인수는 정경호와 함께 기묘한 살인자로 출연했고 이 작품 역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받았지만 역시 개봉 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 대학로만 가봐도 그렇게 힘든 배우들이 많아요. 정말 연기 잘 하는데 결국 생활고에 시달려 연기의 꿈을 접는 배우도 많고. 그래도 이런 상황이 저한테 조바심으로 다가오지는 않아요. 조바심이라는 것은 내가 뭔가 아무 것도 한 게 없거나 뭔가를 했어도 결과가 안 좋을 때, 즉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저도 배우로서 제가 꿈꾸는 목표가 있죠. 근데 저는 지금도 제가 꿈꾸는 배우로 성장하고 걸어가는 과정이에요. 배우가 좋은 캐릭터를 만날 기회는 언제나 올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놓친다는 것은 내가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내가 준비만 된다면 언제든 저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배우 박인수

■ 박인수 배우는?

박인수 배우는 부산에서 10년 동안 연극을 하며 '흉가에 볕 들어라', '열녀 춘향 수절가', '넋이야 있고 없고', '취선록' 등 다수의 연극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박인수 배우는 7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07년 김동현 감독의 '처음 만난 사람들'을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해, '노르웨이의 숲', '범죄와의 전쟁', '수상한 이웃들', '평범한 날들', '신세계', '친절한 가정부', '대호'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취재후기] 박인수 배우는 한국에서 가장 B급 영화를 잘 아는 영화감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노진수 감독의 영화에도 비중을 가리지 않고 여러 편 출연하며 나름 노진수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자리를 잡았다. 노진수 감독의 기묘한 B급 슬래셔 영화 '노르웨이의 숲'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그는 2016년에 개봉할 노진수 감독의 '매너 선생님'과 '수상한 언니들'에도 연이어 출연할 예정이다. 에로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수상한 언니들'에서는 신앙심이 돈독한 에로영화 제작사 대표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발칙한 판타지를 그려낸 '매너 선생님'에서는 회사 대표로 출연한다. 강한 인상 때문에 센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박인수 배우의 연기는 의외로 허허실실의 연기에도 익숙하다는 것을 노진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