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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유도 접목해 미식축구 필살기 키운 오승준, 'NFL 입성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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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유도 접목해 미식축구 필살기 키운 오승준, 'NFL 입성 두근두근'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1.15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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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선수 출신 189㎝ 145㎏ 오펜시브 라인맨, 기술-체력 NFL 수준... "새 시즌 NFL 입성 목표"

[200자 Tip!] 슈퍼볼. 미식축구 미국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 관전 인구가 전세계 10억 명, 초당 광고료가 무려 15만 달러(1억6000만 원)에 달하는 지상최대의 스포츠 경기다. 미국인이 그렇게 열광하는 NFL. 이곳에서 태극전사를 찾아볼 순 없다. 메이저리그(MLB),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등 야구와 축구에선 추신수, 류현진, 강정호, 손흥민, 기성용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데 ‘운동꾼’들이 집결했다는 NFL에선 한국인이 없다니 아쉬움이 남는다. 2016년엔 다를지 모르겠다. 풋볼판 ‘코리안 몬스터’ 오승준(26)이 NFL 입성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Q 민기홍 기자] 신장 189㎝, 몸무게 145㎏. 오승준은 건장하다. 그의 포지션은 오펜시브 라인맨. 미식축구의 중심 쿼터백이 플레이할 여유, 즉 5초 남짓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상대편이 덤비면 이를 온몸으로 저지해야 한다.

▲ [스포츠Q 강진화 객원기자] 189㎝, 145㎏의 한국인 오승준은 NFL 진출이 꿈이다. 차곡차곡 단계를 밟았고 이제 NFL 구단들의 부름을 기다리는 중이다.

오승준은 10야드(9.14m)를 1.4초에 주파한다. NFL의 주전급 오펜시브 라인맨들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주력이다. 그는 “새 시즌이 9월에 개막하니까 그때까지는 승부를 보고 싶다”며 “반드시 NFL 무대를 밟고 싶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비자를 연장하러 고국을 찾은 오승준을 만났다. 그는 “각종 테러로 인해 구비해야 할 서류들이 너무 많아 자꾸 출국이 늦어져 걱정”이라며 “감각을 잃지 않고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웃었다.

한국 스포츠팬들에게 미식축구의 묘미를 알려주고 싶다는 사나이 오승준.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유능제강, 오승준의 미식축구는 '온리 원'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 아시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오승준은 대뜸 이런 뜻의 사자성어를 던졌다. 이유가 있다. 유도선수였기 때문. 왕기춘이 그의 1년 선배다. 부산 태생인 그는 5세 때부터 도복을 입었다. 중학교 때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졸업반 때 서울 문일중·고교로 스카우트됐다. 고교 때도 상위권을 유지해 국가대표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돌연 운동을 그만뒀다. 오승준은 “어렸다. 고향을 떠나 숙소에서 생활하는 게 힘들었고 엄격한 선후배 문화도 견디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와 상의 끝에 2005년 여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입학 첫 날 풋볼 관계자가 러브콜을 보내더란다. 승부욕이 남다른 그는 이렇게 처음 미식축구와 연을 맺었다.

기초체력이 남달랐던 오승준은 건장한 미국 청년들과 붙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문제는 의사소통. 그는 “알파벳 소문자 b와 d도 구분을 못할 정도로 아는 것이 없었다”며 “어릴 때부터 운동하며 몸으로 익힌 눈치, 손짓 발짓으로 점차 말귀를 알아들었다”고 미소 지었다.

▲ 오승준의 포지션은 오펜시브 라인맨이다. 쿼터백이 패스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임무다. [사진=오승준 제공]

유도 기술은 그의 성장을 도왔다. 오승준의 풋볼 스타일은 ‘온리 원’이다. 유도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미식축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1년에 두 차례 정도만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정도다. 미국이 유도 강국이 아니라 전미유도선수권대회에선 챔피언에 오른 경력도 있다.

“풋볼에 유도를 접목했어요. 유도도 미식축구도 몸과 몸이 부딪히는 거니까. 저밖에 못 쓰는 변칙 기술들이 있는 거죠. 대부분 상대가 밀면 같이 미는데 저는 상대의 힘을 이용하죠. 넘어질 때도 낙법을 사용하니 다치지 않아요. 풋볼 선수라면 흔한 수술 경력도 없습니다. 유연하니까요. 너무 힘들어서 도복은 보기도 싫었는데 이렇게 도움이 될줄이야. 하하.”

◆ 자신감 충만, NFL이 머지 않았다

미식축구는 신세계였다. 언어까지 빠르게 습득한 오승준은 디펜시브 라인맨으로 소속팀 로스 오스오스 고교의 지역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졸업할 때가 되자 40여개 대학이 그에게 입학 제의를 했다. 어머니 박애리 씨와 남동생 동준, 석준을 둘을 홀로 둘 수 없었던 오승준은 근거리 폰타나에 있는 채피 컬리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그런데 한 레벨 위인 대학 무대는 또 달랐다. 오승준에게 고비가 찾아왔다. 미식축구 선수들은 ‘괴물’이다. 풋볼을 하다가 격투기 등으로 전향하는 경우는 있어도 타 종목에서 풋볼로 넘어오기는 쉽지 않다. 파워, 유연성, 스피드 등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들을 두루 지닌 이들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식축구다. 그는 포지션 변경에서 해법을 찾았다.

오펜시브 라인맨으로 변신한 오승준은 타고난 운동능력과 유도 기술을 적절히 조합해 다시 주축으로 거듭났다. 2년제 컬리지를 마친 2011년 2월엔 대학풋볼(NCAA) 1부리그 소속인 노스캐롤라이나 센트럴대(NCCU)로 편입했다. 흑인들이 즐비한 곳에서 오승준은 당당히 주전으로 자리 잡아 실력을 키웠다. LA 마로더스, 캘리포니아 샤크스를 거쳐 현재 서던캘리포니아(남가주) 코요태스에서 뛰고 있다.

“제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경험 부족이란 말이 적혀 있대요. 이해를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무슨 이야기인지 알게 됐어요. 작년까지는 제 것만 하기 바빠서 정신없기만 했는데 자꾸 경기를 뛰다보니 이젠 선수들의 움직임이 슬로 모션으로 느껴져요. 순간대처능력이 생겨서 그런지 이젠 마음이 편합니다. 경기를 즐기게 됐습니다.”

기술, 운동능력만큼은 분명 NFL 수준. 이젠 그라운드 안에서 흐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 [스포츠Q 강진화 객원기자] 오승준은 다음 시즌 개막 전 NFL 입성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다. 기술과 운동능력은 이미 통한다는 평이다.

"NFL에서 뛰다 온 선수들이 저보고 ‘너는 왜 여기 있냐’며 ‘아직 한 번도 NFL에 못 가봤냐’고 그러더라고요. 자신감이 부쩍 상승했습니다. 3년차 미만의 선수들은 그야말로 반짝스타들이라 자리는 언제든지 생길수 있습니다. 올해엔 잘 될 것 같아요.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리고요."

NFL은 MLB, 미국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등과 달리 리그 사무국에서 관리하는 마이너리그가 없다. 구단들은 신인지명회의(드래프트)를 통해 NCAA 선수들을 정기적으로 수급하고 일종의 독립리그인 지역리그, 캐나다풋볼리그(CFL) 등을 통해 모자란 포지션을 수시로 채운다. 오승준은 “요즘엔 언제 어느 때 연락이 올지 몰라 늘 전화기를 붙잡고 산다”고 웃었다.

◆ 국가대표 생활로 얻은 새로운 동기, 한국인의 자부심

오승준은 지난해 7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캔턴에서 개최된 제5회 국제미식축구연맹(IFAF) 월드챔피언십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 청소년기에 미국에 간 그는 “사실 한국 미식축구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대표팀에서 불러주셔서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미국에 머무는 오승준은 지난해 2월부터 국내서 매월 한 차례씩 진행된 합숙훈련에 참가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느지막히 합류해야만 했다. 그는 “팀원들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오펜스 팀과 손발도 맞추지 못해 걱정이 한가득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는 기우였다. 오펜스 라인 중 나이가 위에서 두 번째였던 오승준은 착한 동생들의 지지 속에 리더십을 발휘했고 친구, 선배들까지 한가득 사귀게 됐다. 그는 “전에 한국에 오면 유도한 친구들 말고는 연락할 곳이 없었는데 이젠 여기저기서 밥을 먹자고 한다”고 말했다.

▲ 오승준은 현재 밀러 감독(오른쪽)이 지휘하는 서던캘리포니아(남가주) 코요태스에서 뛰고 있다. [사진=오승준 제공]

“대표팀에 합류해 보니 저보다 풋볼에 미친 분들이 많더라고요. 누구는 일도 그만두고 대회에 참가하고 밤새 풋볼 이야기하다 잠들고... 운동하는데 큰 동기 부여가 됐어요. 제가 NFL에 진출하면 한국 분들이 풋볼에 좀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선구자 역할을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오승준은 내한 기간 동안 부산 동아고와 동의대를 방문해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국가대표 백성일 감독의 도움 요청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6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국내 미식축구 최강전 제21회 김치볼(Kimchi Bowl XXI) 현장도 찾았다. 한국 풋볼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각오다.

“먹는 것, 행동 하나 모든 것이 다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술, 담배도 아예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기 싫어서 여기까지 왔고 이제 비로소 고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센 상대, 큰 목표가 생기면 그 도전을 즐겨요. NFL 진출, 꼭 해보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 오승준은 삼남 중 장남이다. 왼쪽부터 첫째 동생 오동준(21) 씨, 어머니 박애리(54) 씨, 둘째 동생 오석준(17) 씨. [사진=오승준 제공]

■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NFL 선수들 

오승준의 NFL 도전은 위대하다. 그러나 최초는 아니다. NFL에도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들이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이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활약했던 하인스 워드.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NFL 정상급 와이드리시버로 군림하다 2012년 은퇴했고 현재 NBC스포츠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슈퍼볼 4쿼터에 결승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최우수선수(MVP)을 받아 한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UCLA의 키커로 맹활약했던 존 리는 1986년 세인트루이스 램스에 입단했지만 프로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얼마 못가 현역에서 물러났다. 버지니아텍의 오펜시브 라인맨 유진 정은 1992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지명돼 1997년까지 뛰었다. 1998년 샌디에이고 차저스에서 뛰었던 로이드 리는 태생이 미국이지만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다.

볼티모어 레이븐스, 뉴욕 자이언츠, 휴스턴 텍슨스 등에서 세이프티로 뛰고 2008년 은퇴한 윌 뎀프스, 역시 세이프티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 계약한 그의 동생 마커스 뎀프스도 군인인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윌은 2009년 모델 활동을 위해 내한해 이목을 끌었다. 샌디에이고 차저스,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거쳐 2011년 세인트루이스 램스에서 은퇴한 라인베커 벤 레버도 있었다.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취재 후기] 지난해 12월 11일부터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서 NFL 생중계 서비스를 시작했다. 경기당 3분 안팎의 하이라이트도 제공해 미식축구에 대한 접근성을 한층 높였다. 오승준이 꿈의 무대에 입성해 활약한다면 미국 언론이 주목할 것이고 이것이 국내의 ‘풋볼 붐’으로 이어지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는 “365일 온통 풋볼만 생각한다. NFL 입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고 말했다. 성실한 그가 국가대표 미식축구 전도사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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