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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로봇, 소리' 이성민 "딸한테 영화가 좋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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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로봇, 소리' 이성민 "딸한테 영화가 좋다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1.26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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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원호성 기자·사진 이상민 기자]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로봇, 소리'는 배우 이성민의 첫 단독 주연작이다. '미생'의 '오부장', '골든타임'의 '최인혁'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들도 많았고, 영화 '방황하는 칼날', '손님' 등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이번이 첫 단독주연이라는 말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로봇, 소리'는 이성민에게는 매우 특별한 영화이기도 하다. 첫 단독주연이라는 무게감과 책임감도 있지만, 실제로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로서 대구지하철참사로 세상을 떠난 딸을 10년 동안 찾아다니는 아버지 '해관'을 연기하는 심정 역시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연극판의 명배우에서 시작해 영화와 드라마의 감칠맛 나는 조연배우로, 그리고 이제는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에 당당히 충무로에서 주연배우로까지 거듭난 배우 이성민을 영화 '로봇, 소리'의 개봉을 앞두고 만났다.

▲ 영화 '로봇, 소리' 이성민

◆ 로봇과의 연기, "나도 모르게 로봇이 아니라 배우와 연기하고 있더라고"

영화 '로봇, 소리'는 줄거리만 읽으면 쉽게 영화에 대한 감이 오지 않는다. 10년 동안 딸을 찾아다니는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의 도움을 받아 딸을 찾아나선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쉽지만, 여기에 미국 NSA와 한국 국가정보원 등이 결합되면서 무슨 이야기를 펼쳐낼지 사뭇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성민에게 궁금한 것은 그런 스토리보다 당장 그의 눈앞에 닥쳐진 '로봇'과의 연기였다.

"솔직히 영화 제목이 '로봇, 소리'라고 하면 무슨 애들 보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도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제목을 보고서는 정말로 로봇이 나온다는 건지,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로 '로봇'이라는 제목을 쓴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이 작품에 호기심이 간 이유가 로봇이 나온다고 하고, 배우로서도 생명이 없는 기계하고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근데 막상 촬영을 해보니 제가 끊임없이 로봇하고 소통하는 영화가 아니라, 서서히 로봇하고 교감을 열어가는 내용이더라고요."

SF의 대표적 설정인 로봇과 휴먼드라마의 결합은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는 분명 아니다. 게다가 할리우드도 아니고 한국에서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당장 눈에 색안경부터 끼고 쳐다볼 관객이 한두 명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로봇'의 정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로봇, 소리'를 지탱하는 절대적인 힘은 딸을 찾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 이성민의 연기력과 예상 외로 훌륭하게 배우 못지않은 연기를 펼친 로봇 '소리'의 교감에서 나오니 말이다.

▲ 영화 '로봇, 소리' 이성민

이성민이 연기한 '해관'은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참사로 사랑하는 딸 유주(채수빈 분)를 잃었다. 하지만 '해관'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유주'가 그때 죽지 않았다는 생각에 10년 동안 생업도 포기하고 딸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그의 앞에 이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로봇 '소리'가 나타나면서 딸이 남긴 흔적에 점점 다가서게 된다. 그러면서 이성민은 10년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딸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가고, 동시에 로봇 '소리'가 지닌 아픔과 고통을 이해해가며 '소리'에 점차 딸의 모습을 대입시키기 시작한다.

"로봇과 같이 연기를 하면서 배우들과 같이 연기할 때처럼 서로 리액션을 주고받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드라이버로 '소리'를 때리는 장면에서는 내가 로봇을 때렸으니 불쾌해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다음에 미안해하는 연기를 했죠. 배우가 로봇이라 리액션을 기대할 수 없으니 그런 리액션들을 제가 스스로 생각하고 계산해서 연기를 해야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소리'라는 로봇을 로봇이 아닌 배우로 인정했던 순간이 찾아왔어요. 천문대에서 '해관'과 '소리'가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죠. 제가 로봇한테 너가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니 도청이나 감청을 한다고 하고, 그러면 너는 스파이냐라고 물으니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는데, 그 순간 연기를 하는데 가슴에 뜨거운 것이 훅하고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감독님이 컷을 외치고난 후에 '얘 장난아닌데?'라며 감탄을 했어요. 나도 모르게 로봇이 아니라 상대 배우와 연기를 하는 순간이었던 거지."

▲ 영화 '로봇, 소리' 이성민

◆ 첫 주연의 중압감, "꿈이 이뤄지는 순간에 오히려 중압감을 느낄 줄이야"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등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정상급 클래스로 인정받는 연기파 배우들의 공통점은 연극무대에서 연기인생을 시작해 영화의 조연을 거쳐 적지 않은 나이에 주연배우로 거듭난 배우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1년에 100여 편의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한국영화계에서 조연을 거쳐 주연급으로 안착한 배우들은 열 손가락에 쉽게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적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는 이성민이라는 배우가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68년에 태어난 이성민은 1985년부터 대구에서 연극을 시작해 오랫동안 연극을 하다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조연과 단역으로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여러 영화에서 얼굴만 비추던 이성민은 2008년에 출연한 최호 감독의 '고고70'에서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을 연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어 '베스트셀러'와 '부당거래' 등의 영화와 드라마 '파스타'와 '사랑은 아무나 하나', '브레인' 등의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라마 '골든타임'과 '미생'은 이성민이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력의 넓은 폭을 짐작하게 하며 그를 대번에 누구나 인정하는 명품배우의 반열로 뛰어오르게 만들었다.

"'로봇, 소리'가 제 첫 단독 주인공 작품이란 것을 찍을 때는 거의 실감하지 못했어요. 영화를 촬영할 때도 나는 그냥 내가 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영화 홍보를 시작하면서 슬슬 나를 압박하는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상상 이상으로 많이 신경이 쓰이고 힘들어요. 흥행에 대한 책임감? 아니면 영화에 대한 책임감?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부담되어본 적이 처음인 것 같아요. 이게 다 주연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영화가 혹시 잘못된다면 다 내 탓 같고, 어디 의지할 데도 없잖아요?"

"요즘은 집에서 잠도 잘 안 오고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는 기분을 실감하고 있어요. 영화에서 내 이름이 크레딧 제일 처음에 나온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겠다고 꿈을 꿨고 배우가 되겠다고 몸부림치며 보내온 긴 세월이 정점을 찍는, 그야말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잖아요? 근데 그 순간에 오히려 중압감을 느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내 이름이 크레딧에서 하나씩 앞으로 나오면서 생기는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로봇, 소리' 이후에 하는 작품들에서는 그 책임감이 더해지겠죠."

▲ 영화 '로봇, 소리' 이성민

◆ 아버지를 연기한 아버지의 마음, "딸한테 영화가 좋다는 소리가 듣고 싶네요"

'로봇, 소리'에서 아버지 '해관'은 10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을 딸을 찾아다니며 왜 10년 전에는 딸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지 못했을까 후회한다. 그리고 이런 '해관'의 후회와 슬픔은 배우 이성민에게도 상당부분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영화 속 '해관'처럼 딸이 세상을 떠난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역시 이제 중학생인 외동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를 하면서 가족을 생각하며 연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가족, 그리고 딸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본적으로는 멋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아버지를 연기하려고 했지만, 저도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이다보니 영화를 하면서 유주(채수빈 분)가 겪는 아버지와의 충돌과 같은 부분은 이해하기가 좀 더 쉬웠죠."

"영화 속 '유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아버지와 갈등을 보이지만, 제 딸은 이제 중3이 되는데 아직 꿈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고등학생 때니까 언젠가는 꿈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 보채고 싶진 않고, 특별히 위험하거나 나쁜 일이 아니라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살았으면 좋겠어요."

▲ 영화 '로봇, 소리' 이성민

배우로서 바쁜 생활 때문에 이성민은 그 나이대의 다른 아버지들이 그렇듯 딸의 성장을 집에서 차분하게 바라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밖에서는 연기파 배우로 불리지만, 그 역시 집으로 돌아가면 다른 아버지들처럼 소파에 누워 지친 몸을 달래기 바쁜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평범한 아버지들의 그런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딸이 가끔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지 제 방에 들어와 시나리오나 콘티를 읽곤 해요. '로봇, 소리'도 읽었는데 어떠냐고 물어보니 '응 뭐 그냥 그래. 재밌어'라고 말하더라고. 딸은 드라마는 '미생'하고 '골든타임'이 좋았다고 하고 영화는 '군도'가 좋대요. 근데 영화가 좋다는 말은 그렇게 잘 안 해요. 그래도 이제는 머리가 컸다고 대놓고 '별로'라고는 안 하는데, 그 대신 마음에 안 들면 '길어'라고 돌려서 말해요. 그래도 조금은 딸한테 영화가 좋다는 소리를 듣고 싶긴 해요."

"영화 현장에 가면 20대 초반의 젊은 스태프들이 많은데, 그 애들을 보면 딸 생각이 나요. 저 친구들도 집에 가면 다 부모님의 귀한 자식이고 자기 방 걸레질하는 것도 귀찮아할 애들일 텐데, 어쩜 현장에서는 저렇게 열심히 움직이는지 대견하고 놀라워요. 그래서 우리 딸도 대학생이 되면 영화 현장에 아르바이트를 한 번 보내볼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근데 그래도 배우만큼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남자애라면 모르지만 여자애가 이 험한 세상에 배우를 하는 것은 반대예요. 그저 정직하게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서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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