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8:54 (금)
키워드로 되새기는 브라질 월드컵의 교훈
상태바
키워드로 되새기는 브라질 월드컵의 교훈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15 1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체력·전략전술·원팀' 한국축구가 되새겨야할 월드컵 키워드

[스포츠Q 박상현 기자] 4년마다 찾아오는 지구촌 축구 대축제인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이 끝났다. 이제 러시아에서 열리는 대회까지 또 다시 4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FIFA 월드컵은 세계 축구의 흐름과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무대다. 각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가진 32개국 대표팀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월드컵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감독들의 온갖 전략과 전술이 빛을 발한다. 또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전차군단' 독일이 통산 네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차지했다. 독일축구협회의 휘장에 이제 4개의 별을 달게 됐다. 통산 4회 우승은 브라질(5회)에 이어 이탈리아(4회)에 이어 세번째다. 1990년대 중후반과 2002년까지만 해도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독일이 '신형 스마트 전차'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따라갔다는 얘기도 된다.

이는 바꿔서 얘기하면 1무2패로 16년만에 최악의 성적을 낸 한국 축구에는 다른 국가에는 있는 무언가가 빠졌다는 것이 된다. 과연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에게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이를 키워드로 정리해본다.

◆ 압박·스피드·체력·역습

브라질 월드컵 16강 이후 토너먼트를 보면 2경기 연속 연장 접전을 치른 팀이 적지 않다.

북중미의 언더독 코스타리카는 그리스와 16강전에 이어 네덜란드와 8강전까지 승부차기 접전을 벌였다. 코스타리카의 돌풍은 8강에서 아쉽게 끝이 났지만 일주일도 안되는 기간 동안 120분 연장을 치르면서도 최상의 전력을 유지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역시 2경기 연속 연장 승부를 벌였다. 그러면서도 최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보여줬다.

한국 축구에는 그런 체력이 없었다. 조별리그부터 체력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활동량이 상대팀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됐다는 증거다.

체력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 고유의 색깔도 사라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이후 한국 축구는 체력을 앞세워 압박과 스피드를 활용해 2006년 독일 대회와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에서는 미드필드부터 상대를 끈질기게 압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수비가 헐거워졌고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수비를 탄탄하게 한 뒤 빠른 역습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전술이 많이 눈에 띄었다.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스리백이 다시 힘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에게는 이런 모습마저 사라졌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너무 느렸고 상대팀은 이미 대비를 하고 수비에 임했다. 3경기에서 단 3골에 그친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 홍명보 감독은 온갖 비난과 비판을 한몸에 안은채 10일 대표팀 사령탑에서 자진 사퇴했다. [사진=스포츠Q DB]

◆ 전략과 전술

홍명보 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월드컵축구대표팀이 '몰락'한 것은 단연 알제리전 2-4 완패다. 여기에서 한국 축구만의 전략과 전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알제리전은 너무나도 안이했다. 러시아전에 나왔던 선수들을 그대로 내보냈다. 단순한 공격 패턴은 이미 알제리에 모두 읽혔다.

반면 알제리는 무려 5명의 선수들을 바꿔 내보냈다.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던 선수들은 순간 당황했다. '멘붕'에 빠진 선수들은 전반 내내 한차례도 슛도 쏘지 못한채 내리 3골을 내줬다.

또 다른 팀은 짧은 패스 위주의 축구에 대비하고 안정적인 수비 뒤에 역습을 하기 위해 스리백을 다시 채택하면서까지 온갖 전략과 전술을 새롭게 짰지만 정작 한국 대표팀에서는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언더독' 가운데 언더독인 한국 축구가 새로운 전략과 전술로 세계 축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선수 기용에서도 거꾸로 갔다. 보통 수비는 일찌감치 주전들을 확정하고 안정성을 꾀해야 하지만 공격은 다양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줘 공격 패턴을 많이 가져가야 한다. '플랜 A'가 막히면 '플랜 B'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는 일찌감치 포백 수비진을 정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수비는 흔들렸다. 반면 공격에서는 제 몫을 해주지 못하는 박주영(29·왓퍼드)을 꾸준히 기용했다. 박주영이 한방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만 찍혔다.

◆ 골키퍼

한국 축구를 보면서 팬들이 가장 분통을 터뜨렸던 포지션이 다름 아닌 골키퍼였다. 러시아전은 물론이고 알제리전까지 골키퍼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마누엘 노이어(29·바이에른 뮌헨)를 비롯해 야신의 후예들이 대거 배출됐다. 코스타리카의 케일러 나바스(28·레반테)는 잉글랜드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부터 그리스와 16강전, 네덜란드와 8강전까지 3경기 연속 경기 최우수선수(맨오브더매치)에 선정됐다.

미국 골키퍼 팀 하워드(35·에버튼)와 멕시코의 기예르모 오초아(29·무소속)도 두차례 맨오브더매치에 뽑혔다.

또 노이어와 세르히오 로메로(27·AS 모나코), 야스퍼르 실레선(25·아약스 암스테르담)은 4차례나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기록했다.

그래도 한국 축구는 하나의 희망을 봤다. 김승규(24·울산 현대)가 벨기에전에서 7개의 선방으로 재평가받았다.

◆ 진정한 의리

홍명보 감독의 한국 월드컵 대표팀에서 가장 비난을 받았던 것은 '의리 축구'였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함께 생활했던 선수들을 대거 대표팀에 발탁해 23명의 엔트리는 '엔트으리'라는 신조어로 불렸다. 그리고 특정 선수에 대한 편애에 가까운 기용 역시 홍명보 감독의 의리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샀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의리가 아니었다. 루이스 판할 감독이 보여준 선수 기용이야말로 의리였다. 판할 감독은 아르헨티나와 3~4위전에서 그동안 단 한차례도 기용하지 않았던 미헐 포름(31·스완지 시티)을 내보냈다. 엔트리에 들어있던 23명의 선수가 모두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는 순간이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3~4위전 직전 판할 감독에게 포름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며 그를 출전 명단에 넣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판할 감독 역시 의리를 발휘했다. 이것이 진정한 의리 축구였다.

◆ 원팀이 아닌 원맨팀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과 네덜란드가 보여준 강력한 조직력은 '원팀'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가 빠지자 지리멸렬한 브라질이나 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뭉치긴 했지만 그의 영향력이 너무 컸던 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 외엔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했던 포르투갈 등은 실망만 안고 갔다. 아르헨티나는 그나마 준우승으로 체면을 차렸지만 메시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 원팀보다는 원맨팀 쪽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 축구 대표팀도 원팀이 아닌 원맨팀에 가까웠다.

홍명보 감독은 1년 전 '원팀, 원스피릿, 원골'이라는 취임일성을 내세워 재정비에 나섰다. 그러나 홍 감독 스스로 원칙을 깨면서 자연스럽게 원맨팀이 됐다.

홍 감독은 박주영을 편애에 가깝도록 기용했다. 전혀 공격력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박주영에 대한 고집이 대단했다. 원톱 스트라이커로서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 못한 박주영을 기용하다보니 공격 흐름도 끊겼다. 원맨 박주영을 위해 다른 포지션 선수들이 모두 희생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정신, 즉 원스피릿도 사라졌다. 정신력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나마 하나 맞아 떨어진 것이 '원골'이었다. 원골(하나의 목표)를 이뤄낸 것이 아니라 3경기 3골로 경기당 평균 1골, 즉 '진짜 원골'이 됐다는 씁쓰레한 비아냥만 남았다.

tankpark@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