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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1) 동덕여대 배구부 '천상'이 건져 올리는 '희망 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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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1) 동덕여대 배구부 '천상'이 건져 올리는 '희망 디그'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2.01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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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최강' 배구로 자존감 회복 '운동의 기적'...조금 더 넘어져서 건질 수 있는 희망 있음에랴

[200자 Tip!] 헬조선, 흙수저, 88만원 세대. 지난해 한국을 강타한 신조어들이다.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청년은 취업난에 멍들었다.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봤자 내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다. 암울한 사회 분위기, 이럴 때일수록 스포츠의 역할이 중요하다. 운동이 불안을 감소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신체활동을 통해 자존감을 한껏 높인 생활체육 대학생들을 만났다. 배구하는 여대생들이 전하는 운동의 가치에 귀기울여보자.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서울 성북구 화랑로에 자리한 동덕여대. 정문 옆 체육관에 들어서자 열댓명의 선수들이 한데 모여 배구 리시브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동아리 소속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실력을 지닌 선수도 제법 있다.

▲ 왼쪽부터 박홍희, 최상희, 이현정, 차유인. 동덕여대 배구부 천상의 대표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2007년 동덕여대 체육학과 선수들로 닻을 올린 배구 동아리 ‘천상’은 지난해 12월 30일 막을 내린 서울V컵 2015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어머니들로 구성된 일반부 최강 송파구에 밀려 시상대 꼭대기에 오르진 못했지만 이들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동대문구 어머니배구단을 지휘하는 최나영(58) 코치가 동덕여대 선수들을 지도한다. 대가는 없다.

“6년 전인가 전국대회였던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참 열심히도 하더라고요. 귀가 따가울 정도로 파이팅을 외치기에 하도 예뻐서 가르치기로 결심했어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눈이 초롱초롱해요. 다들 착하고 인사성도 밝고요.”

▲ 딸뻘 친구들이 예쁘다며 대가 없이 천상을 지도하고 있는 최나영 코치.

팀 이름 천상은 우주간에 나보다 더 높은 존재는 없다는 뜻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따왔다. 최 코치는 실력은 떨어졌지만 패기 하나만큼은 으뜸이었던 그들의 혈기에 매료됐다. 이젠 딸뻘 학생들로부터 젊은 에너지를 받는다고 활짝 웃는다.

◆ '같이의 가치' 함께하는 것의 의미

“뭐든지 같이 하는 게 참 힘들었는데... 배구하고 나서 많이 변했죠.”

주장 최상희(22)는 배구 없이는 못 산다. 엘리트 선수나 다칠 법한 쓸개골 부상을 입었는데도 훌훌 털고 일어났다. 현재는 십자인대가 파열돼 격한 운동을 삼가는 중이다. 그래도 간단한 훈련에 참여하며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는다. 공격수인 그는 “수비수들이 내 공을 피하지 못할 때 짜릿하다”며 ‘거포 본능’을 뽐냈다.

최상희는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했는데 배구를 하고 나선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잘 알게 됐다”며 “공격수인 내가 득점을 할 수 있는 건 팀원 9명이 모두 자기 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 맛에 배구를 그만두지 못한다”고 말했다.

▲ 박홍희(왼쪽)와 최상희. 배구를 모르던 이들은 참여스포츠로 배구를 접하고 나선 관람스포츠도 즐기는 '배구광'이 됐다.

‘나홀로족’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에 관심조차 없는 이들이 대폭 늘었다. 팀 프로젝트보다 개인 과제를 선호하는 대학생이 많아졌다. 남과 소통하고 타협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생략된다. 최상희도 다르지 않은 케이스였다. 그런데 배구를 통해 ‘같이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최상희는 “각자 포지션에서 맡은 임무를 다 해야 나도 진짜 득점을 한 거다. 코트 안 9명이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졸업하고 결혼해서 엄마가 되더라도 배구공을 놓지 않을 것이란다. 어머니 배구단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키가 작아도 내 역할이 있다, 자존감 상승

“사실 요샌 어딜 가든 자신감이 꺾일 일만 많잖아요. 저는 배구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김복연(24)은 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진학한 졸업생이다. 150㎝를 조금 넘는 신장 탓에 공격수로 뛰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키가 작아 공격은 못하지만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수비를 해내야 공격도 있다”며 “배구를 하다보면 효능감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천상 선수들이 훈련하는 동덕여대 체육관. 이들은 매주 2회씩 모여 훈련을 한다.

그는 “사회 분위기를 보면 어딜 가나 기죽을 일만 많은데 배구를 하면서 자존감을 되찾은 것 같다”며 “체대생이라고 다 운동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운동을 잘 못했다. 그런데 체계적으로 배구를 배우면서 코치님께 칭찬을 많이 들어 좋았다”고 귀띔했다.

20대들은 기가 죽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빈부격차가 대물림되는 것을 보고선 좌절한다. 연애도, 취업도, 결혼도 두렵다. 가장 역동적이여만 하는 세대가 생기를 잃고 방황하고 있다. 김복연은 배구를 통해 떨어졌던 자존감을 회복했다.

그는 “키가 큰 사람이 배구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입학하고 동아리를 결정할 때 가위바위보에 진 사람이 할 수 없이 배구부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나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이젠 졸업하고 나서도 시간을 내서 배구를 한다. 배구만큼 좋은 운동이 없는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 신장이 작은 김복연은 "배구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결과가 보인다

“요즘 제 또래들은 최선은 다하고 있는데... 막막하죠. 보이는 게 없잖아요. 결과를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잖아요. 운동은 딱 보여서 좋아요. 조금 더 넘어지면 받을 수 있는 공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노력한 만큼 바로 나타나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9.2%로 1999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을 한다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는다. 내집 마련은 어불성설. 미래는 불투명하다.

반면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노력만큼의 짜릿함을 준다. 스트레스 해소에 스포츠만한 것이 없다.

▲ 동덕여대 천상은 여자 아마추어 배구부 중 늘 수위를 다투는 강팀이다.

경기도 병점이 집이라는 박홍희(23)는 방학 중에도 매주 학교를 나온다. 배구공을 잡기 위해서다. 왕복 4시간이 걸리지만 그저 행복하단다. 발목이 좋지 않음에도 그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티도 안 낸다”며 “모두가 역할을 해내 득점에 성공할 때마다 무언가를 일궈낸 것 같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참여스포츠가 관람스포츠 파이를 키운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배구를 전혀 모르던 ‘천상’ 친구들은 이제 V리그 경기결과와 팀별 전술, 선수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살피고 서울 장충, 경기도 화성 등 체육관을 주기적으로 찾는 배구팬이 됐다.

인터뷰가 끝나기가 무섭게 개개인이 재빨리 코트로 돌아가 리시브 훈련에 열중했다. 전후좌우로 향하는 최 감독의 강스파이크를 어떻게든 받아내려는 투지가 돋보였다. 모두가 배구선수요, 생활체육 홍보대사였다. 운동하는 여자, 동덕여대 배구부는 아름다웠다.

▲ 훈련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웃음 소리가 떠나지 않는 천상이다.

■ 동덕여대 배구부 천상

△ 지도교수 = 이용현
△ 코치 = 최나영
△ 선수 = 김복연 양정민 서동연(이상 졸업생) 박홍희 이현정 이수안(이상 4학년) 최상희 김수민 조이슬 오정민(이상 3학년) 차유인 김현유 하세인 황재연 정미혜(이상 2학년) 이주연 최유현 선영아(이상 1학년)

[취재 후기] 진정 즐겨서 하는 배구였다. 마지못해 하는 운동이라면 그런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도저히 나올 수 없는거다. 체육의 가치란 이런 것 아닐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작업을 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의 올림픽 금메달에 열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건강’이다. 일상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자존감을 높여줄 운동 하나쯤은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동덕여대 배구부처럼 말이다.

▲ 서울 V컵 준우승팀 동덕여대 배구부 천상. 이들은 "운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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