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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3) 야구에 미쳐 '불금'을 포기한 '이대나온 여자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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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3) 야구에 미쳐 '불금'을 포기한 '이대나온 여자들'(上)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7.16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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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대 야구 동아리, 이화여대 플레이걸스

요즘은 보는 스포츠의 시대에서 즐기는 스포츠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남녀의 구분이 없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는 야구를 하는 여자, 농구를 즐기는 여자 등 과거에만 해도 남자 종목으로 여겨졌던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 종목도 다양하다. 구기 종목을 비롯해 격투기와 익스트림스포츠까지 각양각색이다. 전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여풍 현상이 스포츠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 스포츠Q는 시리즈 ‘여자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스포츠를 몸소 즐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한국 스포츠의 저변 확대와 균형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므로. [편집자 주]

[300자 Tip!] 여자를 빼놓고 야구를 논할 수 없다. 야구팬의 40%는 여자다. 국내 여자야구팀은 40개를 넘어섰다. 야구계의 여풍 바람을 타고 여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화여대도 2012년 7월 야구팀을 만들었다. 생긴지 2년이 흘렀지만 이 팀에 1승은 요원한 얘기다. 대회에 나가면 상대팀의 제물이 되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을 치고 던지고 받는다는 것 자체로 행복함을 느끼는 그들의 이름은 플레이걸스다.

[신촌=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야구는 더 이상 남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야구장을 가보면 유니폼을 입은 여성팬들이 넘쳐난다. 선수들의 응원가는 물론이고 최근 성적, 수비 포메이션, 볼 배합 등까지 꿰뚫고 있는 열혈 여성팬들도 적지 않다.

이제 여자들은 보는 야구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주최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만 4개다. 여자야구팀은 어느덧 40개를 넘어섰다.

▲ 이화여대 플레이걸스는 매주 토요일 오전 8시 신촌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훈련한다.

이중 유난히 눈에 띄는 팀이 있다. 한국 유일의 여자대학교 야구 동아리 '이화여대 플레이걸스'다. 지난 12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배 전국여자야구대회를 앞두고 그들이 한창 훈련중인 서울 신촌 이화여대 운동장을 찾았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14명의 여대생이 짝지어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뒤편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땅이 고르지 않아 바운드를 맞추기 힘든 ‘죽은’ 그라운드이지만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 야구가 좋아 불금도 포기한 여자들 

“악!” 땅볼을 처리하던 2루수 정다영(24·통계학과)이 불규칙 바운드에 얼굴을 맞았다.

모두가 2루로 달려가 괜찮냐고 물었다. 정다영은 얼음으로 눈두덩이를 몇 번 문지르더니 "이 정도쯤이야"라고 말하며 금세 털고 일어났다.

늘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부모님은 귀한 딸이 다칠까 걱정하는데도 그들은 야구를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맘껏 공놀이를 즐기다 보면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간단다.

플레이걸스는 매주 토요일 오전 8시면 어김없이 학교 운동장으로 모인다. 금요일 밤을 뜨겁게 보내고 늦잠자기 딱 좋은 시간대다.

▲ 2루 수비를 보던 정다영(오른쪽)이 불규칙 바운드에 타구를 맞아 주저앉았다.

“우리에게 '불금'은 없어요. 남자친구도, 큰 약속도 월화수목 활용해 다 만나는 것이 원칙이죠.”

주장 백창은(22·생명과학과)이 까르르 웃으며 훈련 스케줄을 말한다. 그들은 평일을 이용해 주 1회 서울 신도림에 있는 실내연습장에 가서 레슨을 받는다. 주말에는 토요일 이른 아침에 모여 자체적인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 야구의 매력, “팡팡 꽂히는 소리, 땅 하고 올리는 느낌” 

맏언니 봉예나(25·체육과학과 졸업)는 1선발이다. 그는 “신체조건, 선수별 특성이 모두 달라도 라인업 안에서 저마다 할 역할들이 있다”며 “복잡한 것이 매력이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직접 체득한 야구의 장점을 역설했다.

자신을 ‘백업의 백업’이라고 소개한 최유경(22·광고홍보학과)은 “타석에서 공을 때릴 때 ‘땅’ 하고 느껴지는 무거운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2루 수비에 나서보니 선수들이 잡을 공과 못 잡을 공들에 대한 판단이 서더라”고 덧붙였다.

▲ 이화여대 운동장. 야구를 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땅은 고르지 않고 폭은 좁다.

포수인 신입생 최윤정(20·인문과학부)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투수의 공을 받을 때 '팡팡' 꽂히는 소리가 좋다”며 “투수가 내가 원하는 곳에 스트라이크를 던져줄 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 야구장을 찾아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 윤상지(20·정치외교학과)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야구장을 찾는다. 이외에도 수시로 번개모임을 자주 갖고 잠실과 목동을 방문한다”고 귀띔했다.

◆ 한국 최초의 여대 야구 동아리의 발전사

2012년 7월. 한국 최초로 여대에 야구 동아리가 생겼다. 학창 시절부터 야구에 푹 빠져 살았던 이명진(24·정치외교학과)은 단골 카페 ‘가마빈’의 사장 김성진(45)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야구부를 창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야구광이면서 사회인 야구를 오랫동안 해온 김 사장은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장비 지원은 물론이고 코치까지 자처하고 나섰다. 이에 이명진은 학교 게시판에 모집 글을 올렸고 10여 명의 인원이 모였다. 플레이걸스의 시작이었다.

▲ 1루수 김고은(오른쪽)이 오세림을 태그아웃시키고 있다. 주루 훈련을 하는 내내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자원봉사를 자처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에는 공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이들은 꾸준한 훈련을 거쳐 캐치볼 정도는 너끈히 소화하는 '선수'가 됐다. 정다영은 “공이 던져도 나가질 않았다. 땅볼도 무서웠다”고 1년 전을 회상했다.

박정훈(28) 코치는 지난해 지인의 요청을 받아 플레이걸스와 인연을 맺었다. 올해 초 취업을 하고 나서는 자주 나올 수는 없지만 시간을 쪼개 훈련을 돕고 있다.  박 코치 역시 “처음 만났을 땐 공을 잡지도 던지지도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외야 플라이를 처리하는 걸 보면 나도 깜짝 놀란다”고 웃었다.

플레이걸스는 지난해 5월 WBAK에 정식으로 등록돼 1년에 두 차례씩 전국 대회도 나서고 있다. 오는 19일 열리는 KBO 총재배 대회에도 출전해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꾸준한 활동을 이어간 점을 인정받아 지난달에는 교내 중앙동아리로도 당당히 인정받았다. 인기 관광코스 중 하나인 이화여대를 들른 중국인 관광객들은 야구하는 여대생들을 카메라에 담아가기도 한다.

◆ 우리는 대학 동아리, 순수성을 유지하고 싶다 

▲ 플레이걸스의 포수 최윤정이 투수 봉예나의 공을 받고 있다. 그는 공이 미트에 꽂히는 소리를 좋아한단다.

플레이걸스는 한국 최초 여대 야구 동아리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미 몇 차례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 이화여대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미디어데이 & 팬페스트 행사에도 초청받았다. 주장 백창은은 ‘이대생이 뽑은 최고 인기스타’ 김광현(SK)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화여대와 한강 다리를 건너 가까운 목동구장이 홈인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달 백창은과 조정환(23·국어국문과)을 초청해 시구와 시타 기회를 줬다.

백창은은 “여대 최초 야구부라는 점 때문에 그동안 주목을 많이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라며 “선구자 역할을 기대하시는 것 같다. 신경 안 쓰려고 하지만 조금 부담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학교 동아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WBAK에 등록돼 있지만 사회인 야구팀과는 다르다는 것. 도와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고 있지만 동아리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그는 “우리는 출석률을 우선으로 라인업을 짜고 있다. 스스로 짠 프로그램으로 신입생들을 가르치며 조금씩 독립해가고 있다”며 “다치지 않고 야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이기는 것이 꼭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 이화여대 플레이걸스 야구단은 

▲ 이화여대 플레이걸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은영, 허은비, 성지희, 윤상지, 김고은, 문지연, 조정환, 봉예나, 백창은, 정다영, 최유은, 윤이나, 오세림, 최윤정.

2012년 7월 창단했다. 초대 주장 이명진의 뒤를 이어 백창은(생명과학)이 올해 주장을 물려받았다. 김혜원(과학교육) 봉예나(체육과학) 문지연(전자공학) 윤이나(정치외교) 조정환(국어국문) 김고은(컴퓨터공학) 박선영(사회학) 성지희(경제학) 이자인(중어중문) 최유은(사학) 오세림(국어국문) 이대연(광고홍보) 최유경(광고홍보) 홍지수(정치외교) 이현화(생명공학) 조은성(건축학) 윤상지(정치외교) 오지원(컴퓨터공학) 최윤정(인문학) 허은비(수리물리학) 등 21명이 활동하고 있다. 졸업생들까지 포함하면 40명이 넘는다.

[취재 후기] 운동장이 너무나 열악했다. 흙바닥은 고르지 않아 불규칙 바운드가 자주 나왔고, 외야 규격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폭이 비좁았다. 환경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선수들은 신나서 그라운드를 돌았고 동료가 플라이 하나를 잡으면 소리를 지르며 격려를 보냈다. 실력은 모자랐지만 야구를 향한 플레이걸스의 열정만큼은 프로야구 선수 못지 않았다.

sportsfactory@sporst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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