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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언성 히어로' 최은성의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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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언성 히어로' 최은성의 아름다운 퇴장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20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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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532경기만에 공식 은퇴식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경쟁이 너무 치열한 현대 사회는 성실함과 노력만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특별한 또는 남들보다 탁월한 무언가가 있어야만 경쟁력이 있다. 그것이 1등만 승자이고 2등은 패자인 스포츠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최은성(43·전북 현대)은 K리그 역사에서 너무나 특별한 존재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그였기에 더욱 특별하다. 성실함과 노력 하나만으로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끌어모았고 감독들의 신뢰를 받았다. 빛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은 곳에서 빛난 '언성 히어로'였다. 그것이 그가 K리그에서 18년을 뛴 경쟁력이고 원동력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스타 한 명이 또 은퇴했다. 이미 한일월드컵 당시 뛰었던 선수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은퇴했고 벌써 지도자로 데뷔했다.

최은성과 동갑인 최진철은 벌써 16세 이하(U-16) 대표팀 감독이 됐고 유상철(43) 역시 대전 감독을 역임했다. 그보다 10살이나 어린 최태욱도 울산 현대의 스카우트로 변신했고 이영표(37), 이을용(39), 윤정환(41), 안정환(38), 박지성(33) 등도 이미 은퇴를 선언해 지도자로 변신했거나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 전북 현대 선수들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경기 직전 등번호 532번을 박힌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전북현대 제공]

한일월드컵 멤버 가운데 여전히 현역 생활을 하는 선수는 김병지(44), 현영민(35·이상 전남), 김남일(37·전북), 설기현(35), 이천수(32·이상 인천), 차두리(34·서울) 등이다. 이제 최은성의 은퇴로 6명만 남았다.

◆ 대전과 전북에서 모두 사랑받은 골키퍼

보통 선수가 소속팀을 옮기게 되면 전 소속팀 팬들로부터 적지 않은 항의와 미움을 받는 것이 바로 프로세계다. 그러나 최은성은 그렇지 않았다. 전북으로 이적한 뒤에도 꾸준히 대전 서포터들과 교류하고 사랑을 받았다.

최은성이 대전과 전북의 팬들로부터 모두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그의 성실함 때문이었다. 여기에 최은성이 전북으로 간 것은 '원하지 않은 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은성은 자신의 몸에 대전 문신을 새겼을 정도로 대전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이 있었다. 1997년 대전의 창단 멤버였던 이유도 있었지만 프로에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대전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관우(36)나 김은중(35) 등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을 때도 최은성은 묵묵히 대전의 골문을 지켰다.

그러나 대전은 이런 최은성을 2012년 내치다시피 했다. 연봉 협상 과정에서 대전은 아예 최은성을 2012년 시즌 전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겨우내 몸을 만들었던 최은성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등을 떠밀려 은퇴할 처지에 몰렸다. 그렇게 '레전드'가 옷을 벗는 듯 보였다.

▲ 최은성 등 전북 현대 선수들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시작 직전 532번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서 있다. [사진=전북현대 제공]

이럴 때 손을 잡아준 것이 전북 최강희 감독이었다. 권순태(30)가 상주 상무로 떠나 골문이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메우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있었다.

최은성은 그렇게 전북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고 전북의 골문을 든든히 지켜냈다. 그 결과 일부 대전 팬은 일부러 최은성의 활약을 보기 위해 전주를 찾는 일도 있었다. 두 팀의 팬으로부터 모두 사랑을 받는 흔치 않은 선수가 됐다.

◆ K리그 출전 532경기의 역사, 뜨거운 안녕

최은성의 공식 은퇴경기가 된 상주와 경기는 순전히 그를 위한 무대였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0일 열린 상주와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홈경기에서 최강희 감독은 최은성을 선발로 내보냈다. 치열한 순위 경쟁 속에서 교체카드 하나를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최 감독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최은성은 자신의 532번째 출전을 뜻하는 등번호 532의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이날만큼은 '23번 최은성'이 아닌 '532번 최은성'이었다. 그리고 최 감독은 그에게 주장완장까지 맡겼다. 선수들 역시 532번이 박힌 옷을 입고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최은성은 경기 직전 인터뷰에서 "마지막 경기라 특별하지만 팀에게도 중요한 경기다. 최선을 다하겠다"며 "그동안 열심히 응원해준, 곁에서 힘이 되어준 팬들에게 감사한다. 오늘 경기를 끝으로 현역 선수 은퇴를 하지만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잘 소통하고 좋은 지도자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전북 현대 선수들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이동국의 득점 뒤 최은성을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전북현대 제공]

그리고 이런 최은성에게 소중한 선물을 해준 것은 바로 '라이언 킹' 이동국(35)이었다. 이동국은 전반 17분 레오나르도에게 패스한 뒤 침투했고 레오나르도의 힐패스를 받아 침착하게 왼발로 서제골을 넣었다.

이동국의 시즌 7호골과 함께 통산 161번째 골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이동국은 골을 넣자마자 최은성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최은성을 헹가래쳤다. K리그 역대 통산 개인 최다골 기록 세리머니를 최은성에게 바친 것이다.

행복한 전반 45분을 보낸 최은성은 '당신의 모습, 늘 가슴 속에 담겠습니다'라는 글씨가 적힌 현수막 앞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최은성은 "이제 장갑을 벗었다. 섭섭한 마음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은퇴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전북 구단과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뛸 수 있게 해준 최강희 감독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최은성은 "프로선수로서 이곳(전주)이 시작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멋진 곳에서 멋진 후배들과 전북을 사랑하는 서포터들 앞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이 행복함과 즐거움을 가슴에 묻고 큰 행운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 전북 현대 최은성(가운데)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전반전을 마친 뒤 가진 공식 은퇴식에서 전북과 대전 팬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전북현대 제공]

또 최은성은 가족 얘기를 하려할 때 잠시 머뭇거리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감정을 추스린 최은성은 "가족 얘기를 하려니까 눈물이 난다"며 "아빠와 남편으로서 운동하느라 역할을 하지 못했다. 18년 세월동안 묵묵히 참고 기다려준 소중한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가족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 후반 최은성을 향한 축포, 축제의 장을 만들다

최은성은 이날 두 팀의 서포터들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처음에는 전북 서포터로부터 머플러를 받았고 대전 서포터 역시 은퇴식 그라운드에 나와 유니폼을 전달받았다. 최은성의 유니폼을 입고 나온 대전 서포터는 눈물을 흘리며 최은성에게 큰 절을 올려 그동안 활약에 큰 감사를 표시했다.

은퇴식이 끝난 뒤 전북 후배들은 더욱 힘을 냈다. 최은성이 전반 45분만 소화하고 권순태와 교체된 상황에서 선수들은 더욱 힘을 내 상주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 과정에서 이동국이 2개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후반 19분과 후반 20분 한교원과 이승기의 골에 관여했다. 58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있던 이동국은 60어시스트를 채우며 신태용과 에닝요에 이어 K리그 통산 3번째로 60(득점)-60(도움) 기록을 세웠다.

K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어시스트 기록이 신태용의 68도움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동국이 앞으로 10개의 도움만 더하면 사상 첫 70-70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동국이 2년 정도만 더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면 충분히 가능한 기록이다.

이날 전북은 카이오의 두 골과 레오나르도의 한 골을 더해 상주에 6-0 대승을 거뒀다. 전북 선수들이 터뜨린 여섯골은 앞으로 지도자로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살아나갈 최은성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축포였다.

올해부터 전북의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던 최은성은 이날 현역 은퇴로 본격적으로 골키퍼 코치에만 전념한다.

▲ 전북 현대 최은성이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상주 상무와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전반전을 마친 뒤 가진 공식 은퇴식에서 관중들에게 사인공을 차주고 있다. [사진=전북현대 제공]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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