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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넷 김병지, K리그 아이콘일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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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넷 김병지, K리그 아이콘일 수밖에 없는 이유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7.26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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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에도 한국 축구 발전 위해 올스타전 '분골쇄신'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김병지(44·전남)는 누가 뭐래도 K리그의 영원한 '아이콘'이다. 수많은 후배들이 그를 동경하고 롤 모델로 삼는다. 그리고 그 역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K리그가 팬들에게 더욱 어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김병지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팀 박지성' 경기에 '팀 박지성'의 일원으로 선발 출전, 전반 40분 동안 골문을 지켰다.

김병지는 올스타전이라는 이벤트를 위해 온갖 '예능감'을 발휘했다. 최고령 현역 선수라는 '근엄함'은 잊었다. 올스타전이라면 일단 팬들에게 큰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김병지가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박지성' 경기에서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축구 올스타전의 묘미? 단연 세리머니와 퍼포먼스죠"

경기를 마친 김병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거뭇거뭇 난 수염과 어느새 늘어난 주름은 나이를 짐작하게 했지만 여전히 장난기가 섞인 그는 영원한 '꽁지머리 골키퍼'였다.

올스타전은 수많은 구기 종목에서 '이벤트'로 열린다.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도 올스타전을 한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올스타전 승패 결과에 따라 월드시리즈를 한 경기 더 홈에서 치를 수 있는 이점을 주긴 하지만 대부분 올스타전은 승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선수들도 모처럼 승패 결과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관중들 역시 그 압박에서 벗어난 선수들의 기량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김병지는 축구 올스타전만이 갖는 특징을 얘기했다. 바로 세리머니와 퍼포먼스다.

"올스타전은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죠. 이를 위해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세리머니입니다. 아마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세리머니 아닌가요."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와 27일 화촉을 밝히는 후배 박지성(33)을 위해 그는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는 예능감을 발휘했다. 전반 7분만에 '팀 박지성'의 선제골이 나오자 동료 선수들은 결혼식 세리머니를 펼쳤다. 박지성이 꽃을 들고 있는 김병지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세리머니였다. '신부' 김병지는 부케를 손에 들고 수줍게 웃었다.

▲ 김병지(오른쪽)가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박지성' 경기에서 박지성을 신랑으로 맞아들이는 독특한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아마 근엄한 선배라면 이런 세리머니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려 11살이나 많은 선배가 후배를 위해 신부 역할을 하며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굳이 선배가 아닌 동료나 후배라고 할지라도 민망해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김민지 아나운서가 직접 나오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지성이가 많이 부담스러워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나갔죠. 후배들이 시켰어요. 아마 머리가 길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골 세리머니 외에도 정규 경기에서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퍼포먼스도 올스타전에서 가능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김병지의 '오버래핑'이다.

김병지에게 오버래핑은 어떻게 보면 '흑역사'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에서 김병지는 주전 수문장이었다. 그러나 2001년 단 한 번의 무모한 드리블로 그는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났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주전 골키퍼는 이운재(41)가 됐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김병지는 당시 상황을 더 이상 아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드필드까지 드리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그것을 지켰다.

"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죠. 기쁘게 정리하고 지나간 과정들을 웃으며 넘기고 싶었어요. 또 팬들이 올스타전에 관심과 즐거움을 갖게 하고 싶었죠. (나이는 들었지만)지금도 공격적이에요. 팬들이 좋아해주시니까 하게 되네요."

▲ 김병지(오른쪽)가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박지성' 경기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버래핑을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후배들이 나를 보며 오래 뛰고 싶다고 한다"

그는 올스타전이 무려 15번이나 참가했다. 보통 올스타전은 팬투표로 뽑히기 때문에 15번이나 출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팬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선수로 뛰면서 팬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관심 밖에서 멀어진 적이 없다.

그리고 그는 그 인기와 사랑을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려준다. 그는 한국 축구 발전과 팬들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을 만들고 지금도 만들 계획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긴 세월 동안 올스타전을 뛸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죠. 언제까지 올스타전에 뛰겠다는 목표나 욕심은 없어요. 굳이 올스타전 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싶어요."

김병지는 올스타전에서도 상대편 페널티지역까지 나가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슛을 시도했다. 물론 공은 골문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극적인 골을 넣었던 16년 전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는 올스타전만 되면 종종 필드 플레이어로 변신하곤 했다.

"이젠 예전보다 스피드 등 모든 체력적인 능력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한 경기를 뛰고 나면 남들보다 더 많이 쉬어야 하고 예전보다 훨씬 힘든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젊은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제가 갖고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죠. 그게 롱런의 비결인 것 같아요."

▲ 김병지가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K리그 올스타 with 박지성' 경기에서 상대팀 페널티지역까지 나와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불혹을 훨씬 넘긴 44세다. 34세의 나이에도 은퇴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은데 벌써 그는 10년을 넘겼다.

"후배 선수들이 저보고 오래 선수로 뛰고 싶다며 부럽다고 해요. 제가 후배들의 바라는 지향점이라는 거죠. 제가 오랫동안 뛰는 것도 제게 큰 의미이지만 후배들도 오래 선수로 뛰고 싶다는 목푝가 됩니다.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좋은 경기력을 오래 유지하고 팬들에게 사랑받는,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하니 제 책임이 큽니다."

한국 축구가 2002년 4강 신화를 썼을 때나, 지금처럼 모진 풍파를 겪을 때나 그는 언제나 늘 그라운드에 있었고 골문을 지켰다. 그렇기에 그가 더 위대해 보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힘이 닿는 그날까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는 이미 K리그의 살아있는 레전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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