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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읽기] 기요하라 가즈히로 구속에 日 열도 장탄식, 왜? '고시엔 영웅' 잃은 상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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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읽기] 기요하라 가즈히로 구속에 日 열도 장탄식, 왜? '고시엔 영웅' 잃은 상실감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03.06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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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지난 2월 초부터 일본야구계는 물론 일본 열도가 전직 타자 한 명의 마약복용혐의 구속 건으로 충격에 빠졌다. '영웅'을 구치소에 보낸 뒤 한숨과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기요하라 가즈히로(49)다. 8년전에 유니폼을 벗은 그는 일본 야구계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대스타다. 그는 사회적 파급력이 큰 유명인이라는 점에서 지역 경찰서가 아니라 경시청으로 직접 연행됐다.

기요하라는 지난 2월 2일 밤 각성제단속법위반(소지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경시청이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그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2회 복용 분량 정도의 각성제가 발견됐고, 본인도 각성제 복용 사실을 시인했다. 체포 후 소변검사에서 각성제 양성반응이 나왔고, 팔에서는 주사 바늘 흔적도 발견됐다.

수사 당국은, 기요하라가 지난 1월 31일 군마현의 한 편의점 주차장에서 지인인 고바야스 가즈유키 용의자(45·구속)로부터 0.2g의 각성제를 4만엔(약 42만원)에 구입한 뒤, 2월 1일 도쿄 미나토구의 한 호텔에 머물면서 주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요하라는 체포 당시 주사기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팔에 주사하거나 파이프로 흡입하거나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요하라와 고바야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군마현과 도치기현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동안 여러 차례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당국은 구속기간(10일)을 한 차례 연장한 뒤 2월 23일 각성제단속법위반 혐의로 기요하라를 기소했다. 일본의 법률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밝혀진 혐의사실만으로도 징역 1년6월에서 2년의 실형이 선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초범인 점이 참작되면 집행유예 3년정도로 예상된다.

‘각성제’는 중추 신경을 흥분시켜 잠이 오는 것을 억제하고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약을 일컫는다. 습관성과 중독성이 있어서 제조와 판매를 규제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중한 범죄로 다루고 있다.

기요하라의 각성제복용 소문은 몇 해 전부터 흘러나왔다. 2014년에는 일본의 유명 시사전문지가 그의 각성제복용 의혹을 제기했으나 기요하라 본인은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요미우리 시절의 한 동료가 당시 그에게 각성제를 넘겨준 적이 있다고 최근 TV에서 증언해 이를 뒷받침했다. 기요하라의 전 애인도 “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각성제애 빠졌다고 들었다”고 언론에 털어놨다.

기요하라는 경찰에 체포된 후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이같은 불안정한 상태는 자칫 극단적인 행위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한 주간지에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심리 싱태는 대단히 위험하다”며 지속적인 관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요하라는 왜 각성제에 빠졌을까? 일본 언론들은 그 배경에 ‘고독한 나날들’이 작용했다고 추정한다. 기요하라는 2014년 3월 약물복용혐의가 보도된 이후 아내와 자식이 집을 나갔고, 이혼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월 한 주간지에 “살아갈 힘을 잃었다. 자결하려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는 것이다.

기요하라는 모든 사태를 자초했다며 구치소에서 회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너무 초췌해진 상태라 24시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일본 언론은 “신병이 확보된 상태에서는 그나마 덜 걱정되지만 앞으로 보석이나 집행유예로 풀린다면 대중 앞에 나서기 힘든 심리 때문에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요하라의 구속에 일본 팬들은 물론 야구계 관계자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요하라에 대한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현역 감독 시절 ‘데이터 야구’로 이름을 날렸던 노무라 가쓰야 감독(80)은 TV프로그램에서 기요하라의 각성제복용혐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요하라? 바보야”라고 잘라 말하며 기요하라의 세이부 시절 감독이었던 모리 마사아키(79)의 잘못을 지적했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들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버릇없이 자유분방하게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고 한탄했다. 노무라 감독은 “프로야구의 이미지 다운”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는 투수 다르빗슈 유는 “좋지 않은 일이지만 누구도 실수는 있다. 단지 두들기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며 갱생프로그램 등을 통해 기회를 줘서 기요하라를 사회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기요하라 체포 후 새로운 의문점도 고개를 쳐들고 있다. 최근에는 이렇다 할 변변한 수입원이 없었던 그가 어떻게 고급 맨션에 거주하고 운전기사가 딸린 고급차를 끌 수 있었으며, 각성제의 비용은 어떻게 충당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부인한테 억엔 대 위자료를 지급하며 금전적으로 더욱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기요하라는 수억 대 연봉을 받던 현역시절과 손색없는 생활을 해 왔다. 이 때문에 그에게 스폰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요하라의 각성제복용혐의 구속은 단순히 한 명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구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파장의 크기를 예측하기 어려운 메가톤급 스캔들이다. 왜냐하면 ‘기요하라 가즈히로’라는 이름이 일본 야구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1967년 오사카부 기시와다에서 태어난 기요하라는 야구명문고 PL학원(오사카부 돈다바야시 소재 사립고)을 졸업한 뒤 프로 6구단으로부터 1위로 지명받은 끝에 1986년 세이브 라이온스에 입단해 1996년까지 주포로 활약했다. 1997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고, 2006년 오릭스 버펄로스로 옮겼다가 2008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오른손 강타자였던 기요하라는 주로 1루수 겸 4,5번 타선에 섰다. 프로야구 22년간 2122안타 525홈런 1530타점 타율 0.272를 기록했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홈런은 5위, 타점은 6위에 랭크돼 있다. 11시즌을 뛴 세이부 시절에는 주포로서 6번의 일본시리즈 제패에 공언하며 ‘세이부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1999시즌 도중 다리 인대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2001년 한 시즌만 규정타석을 채울 정도로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요미우리 이적 후 초반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명성에 걸맞는 강력함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기요하라의 존재는 은퇴할 때까지 성적 여하에 관계없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일본 특파원으로서 도쿄돔 요미우리 경기를 자주 봤던 필자도 그 인기에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있었다. 부상에 허우적거리다 대타라도 오랜만에 서는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가는 곳마다 남녀노소 팬들이 장사진을 쳤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성적 여부에 관계없이 언제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일본 야구팬들과 언론은 기요하라를 왜 ‘살아있는 전설’처럼 떠받드는 것일까? 해답은 고교야구에 있다. 일본은 프로에서의 활약도 중요하지만 고교시절 활약상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야구만의 특징이다.

일본은 4200여 개가 넘는 고교팀이 있는 나라다.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일본이지만 고교팀은 어딜 가도 있다. 고교야구팀은 오랫동안 지역에 탄탄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연히 고교야구의 유명 선수는 지역의 자랑거리이자 전국권 스타가 된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고교야구대회, 일명 ‘고시엔대회’가 열릴 때면 일본 열도가 축제분위기로 빠진다. 일본국민 전체가 경기결과에 주목할 정도다. 팀과 선수가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고,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한 선수는 일약 대스타가 된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고시엔대회 소식은 스포츠 뉴스의 중심에 자리한다.

기요하라는 ‘고시엔대회’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불멸의 히어로’다. 고교 3년동안 모두 5번에 걸쳐 고시엔대회에 진출해 PL학원의 4번타자로 출장했고 2차례 걸쳐 우승했다. 모두 26경기에 나가 91타수 39안타 29타점 타율 0.429를 마크했다.

하지만 기요하라를 평생 고시엔의 영웅으로 받들게 만든 기록은 따로 있다. 바로 ‘13홈런’이다. 고시엔대회 통산 2위의 홈런 기록이 6개에 그친 것에서 알 수 있듯, ‘13홈런’은 그 이전에도, 앞으로도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불멸의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요미우리 시절 부상에 허덕이며 타석에서 맥없이 물러날 때도 일본 팬들은 고교시절 전설의 슬러거를 잊지 못했다. 시대가 흘러도 기요하라는 ‘고시엔’이라는 그라운드 타석에 서서 통쾌한 아치를 그리는 최강 슬러거의 주인공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 점이 프로선수 시절은 물론 은퇴 후에도 기요하라의 명성을 유지하는 배경이 됐다. 반면 이같은 지난날의 영광은 평범한 기요하라를 용납하지 않는다. 은퇴 후 ‘고독한 나날들’의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벌이가 적어도 씀씀이는 여전해야 했고, 대중 앞에서는 항상 빅스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했다.

한때 인기를 모았던 스타들이 대중들의 외면을 받으면 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를 국내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평생 노력만 한다면 서민들보다는 훨씬 더 용이하게 돈을 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울증에 걸리다 못해 자해하거나 치명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스타는 돈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요하라의 몰락은 선수 본인은 물론 일본 야구팬들의 가슴을 허전하게 만들고 있다. 전직 스타선수 한 명을 잃은 게 아니라 그들이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영웅’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본 열도가 기요하라의 각성제복용혐의 수사과정은 물론, 향후 재판과정과 퇴소 후의 전망까지 다각도로 관심을 쏟는 이유다.

기요하라는 과연 각성제복용 이전의 맨정신으로 사회에 돌아올 수 있을까? 일본 야구팬들과 언론은 앞으로도 '고시엔 영웅'의 갱생 가능성에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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