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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9) 여행연극 '인디아블로그' 연출가 박선희, 여행을 통해 이야기를 그리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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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9) 여행연극 '인디아블로그' 연출가 박선희, 여행을 통해 이야기를 그리다 (인터뷰)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03.10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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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등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핫’하게 떠오른 최근, 연극계에도 여행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는 작품이 있다. 실제 여행담을 무대 위에서 생동감 있게 전하는 연극 ‘인디아블로그’다. '여행얘기를 연극무대로 옮긴다?' 직접 보지 않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인디아블로그'의 연출가 박선희를 대학로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스포츠Q(큐) 글 김윤정 · 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 2004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을 연출하며 연출가로 데뷔한 박선희는 그후 터키여행기를 담은 ‘터키블루스’와 히말라야여행기를 담은 ‘인사이드 히말라야’ 그리고 인도여행기를 담은 ‘인디아블로그’를 연출했다. 여행을 통해 이야기를, 그리고 이야기를 위해 여행을 떠났다. 늦은 나이에 출발한 연출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하나씩 남겨둔 박선희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 박선희

◆ 2004년 데뷔작 ‘찰리브라운’부터 2011년 ‘인디아블로그’까지… 28살에 찾은 진로 ‘연출가’

“실업자가 꿈이었다.” 박선희 연출가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이 말 한마디 속에서 그의 자유로운 사상이 느껴졌다. 연출가인 박선희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택한 전공은 연극영화학이 아닌 심리학이었다. “꿈이 없었다”라는 게 그 이유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철학적이면서도 영적인 세계를 담은 영화를 보고 심리학과를 선택했다. 대학교를 가고 싶은 마음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심리학과를 가면 그마나 그쪽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리학과를 졸업한 박선희는 다시 한 번 대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집안에서도 ‘쟤는 뭐하는 애지’란 독특한(?) 평을 받고 있어 대학원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노량진에서 놀았다”고 한다. 시험을 보고 나서 꽤 높은 성적을 얻었지만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그러던 중 연극, 영화, 소설 쪽의 신문기사들을 꾸준히 스크랩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의 나이 25살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에 ‘다시’ 입학했다.

“대학교에서 3년 정도 연극영화 쪽 일을 하다보니까 영화는 재밌지만 평생 즐길 건 아닌 것 같았고 연극은 ‘재밌는데?’, ‘해볼 만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실업자가 꿈이었는데(웃음), 그때부터 마음을 먹고 연극연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공연이 좋았다.”

▲ 박선희

이후 박선희는 2004년 뮤지컬 ‘찰리브라운’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연출가로서 데뷔했다. 그러나 그가 대학로로 들어오게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데뷔 후 7년의 시간이 흐른 2011년, 극단 ‘연우무대’를 만나면서 ‘공연’으로 돌아왔고, 대학원 입학과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작업 등으로 그동안의 시간을 채웠다. 박선희의 대학로 진출이 늦은 이유는 공동창작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원하던 자유로운 공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배우가 ‘누나 돈으로 하지 말고 밖에서 제작자를 알아보면 어떻겠냐’고 말하더라. 의상을 하던 친구도 ‘왜 그렇게 혼자 하냐’면서 ‘연우무대가 2인극 페스티벌을 한다던데 가보라’고 추천했다. 친구들은 ‘용기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나는 ‘내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표를 팔아야하는 작업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지?’란 생각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틀’에 들어가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 연우무대 대표를 만나게 됐다. 그때 연우무대 대표가 인도를 다녀올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동시에 대본을 수정하고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대학로로 나오게 됐고 2011년, 처음으로 ‘남의 돈’을 갖고 배우들과 함께 인도로 떠났다. 그리곤 그해 여름, 처음 장기공연으로 올렸던 작품이 ‘인디아블로그’였다.”

▲ 박선희

◆ “여행가는 이유? 여행 없으면 여행연극 만들 이유 없다”

지금까지 인도와 터키, 히말라야 여행을 소재로 한 연극을 만든 박선희에게 “굳이 여행을 소재로 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그냥 했는데?”라며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곤 이내 ‘그냥’ 떠난 여행이지만 여행연극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전했다. 바로 배우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2008년에 태국으로 여행을 가게 됐는데, (전)석호가 ‘누나 이번에 여행가면 우린 어떡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나 따라오면 태국여행기로 연극 만들게’라고 했더니 진짜 3명의 배우들이 따라왔다. 그렇게 태국을 한 달 동안 돌아다녔다. 돌아와서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나가느라 15일 동안 연극을 밤새면서 만들었다. 배우들하고 약속을 했으니까. 2008년도의 태국이야기로 만든 첫 여행연극, 그게 나의 4번째 창작 작업이었다.”

박선희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 꼭 여행을 다닌다. 연극 속 이야기에 픽션과 논픽션이 혼재돼 있지만 실제의 경험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행연극의 시작 자체가 앞서 밝힌 것처럼 ‘여행’이었던 점도 크게 작용한다.

“여행이 없으면 여행연극을 만들 이유가 없다. 여행을 가면 이야기가 생기고, 그걸 꺼낼 때 창작이 훨씬 깊어진다. 아무것도 없이 창작을 하려면 작가 없인 불가능한데 여행을 하고 나면 충분한 이야기가 나온다.”

▲ 박선희

배우들과 박선희는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각자 기록을 한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얘기를 나누는데, 연극에 대한 얘기가 아닌 ‘그냥 사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 배우들은 일종의 작가가 되고, 박선희는 배우들의 생각을 기억하거나 글로 기록한다. 그리곤 한국으로 돌아와 배우들에게 ‘아직도 그때 했던 생각이 그대로냐’는 식의 질문을 던져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래도 주제는 하나씩 있다. ‘인디아블로그’를 만들 땐 사랑이었다. 배우들에게 ‘첫사랑 얘기 한 번 해봐’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행과 사랑에 대한 얘기가 엮어지더라. ‘터키블루스’는 터키에 가기 전 ‘사랑보다 더 진한 우정 얘기 한번 해보자’하고 떠났다. 그런데 이런 주제가 있다고 해서 여행지의 얘기가 다 엮어지는 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배우들이 적극적인 편이라 그 속에서 찾아지더라.”

▲ 연극 '터키블루스' [사진 = '연우무대' 제공]

◆ “‘인디아블로그’는 날 밖으로 나오게 한 작품. 신념 갖고 계속 함께 와준 배우는 전석호”

박선희의 6번째 공동창작 작품인 ‘인디아블로그’는 배우들과 함께 떠난 인도여행기를 무대 위로 올려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인도음악과 인도에서 공수한 소품들로 꾸며진 세트장, 그리고 직접 인도에서 촬영한 영상 등이 한데 어우러져 생생하고 구체적인 ‘인도여행기’가 무대 위 두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또한 창작 작업이라는 특성상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가끔 안 풀리는 문제가 있다면 그게 바로 스토리적인 부분인데, 그걸 다 같이 풀어나갈 때 박선희는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만큼 대본이 자주 수정되는 것 또한 박선희 연극의 독특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이유에는 박선희가 연출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만의 신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소통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엔 배우의 연기인 것 같다. 배우가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공연이 정해진 말을 하는 거라면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들 스스로 관객들에게 내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야 하고, 그 상황에 맞춰 미묘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본에서도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본에 정답이 있다’, ‘대본대로 하면 된다’란 말은 위험한 말인 것 같다. 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본인만의 연기 소통법을 알아야한다. ‘배우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대본이 자주 바뀐다. 2007년에 만난 ‘인디아 블로그’도 이제서야 '이 정도면 적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 박선희

박선희는 연출에 참여한 다수의 작품들 중, 그리고 그 중에서도 여행 연극에 속한 ‘인디아블로그’에 대한 남다른 의미를 전하며 “껍질 속에 들어있던 날 밖으로 나오게 해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지난 2월에 마무리된 ‘인디아블로그’에서 함께한 ‘기타맨’ 박준민을 언급하며 연극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인도의 디우를 갔는데 거기서 인도감기에 걸렸다. 그날 밤에 토를 하고 기침을 하느라 잠을 못자고 있었는데 옆방남자가 ‘인도감기엔 인도 약을 먹어야 된다’며 문을 두드리더라. 걔가 (박)준민이었고, 그렇게 3주가 넘도록 인도에서 함께 여행했다. 그러다 내가 ‘공연할 때 기타 칠래? 들어와서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서 정말 함께 하게 됐다.”

특별한 인연은 박준민뿐만이 아니다. ‘인디아블로그’의 주인공 전석호와 박동욱 또한 그에게 남다른 배우들이다.

“나의 공동창작 작업과 연출을 계속 하게 해준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전)석호다. (전)석호가 군대갔다오자마자 ‘뭐든지 시키는 거 하겠다’며 날 찾아왔다. 그런데 공동창작을 원하는 나와 이미 고등학교 때 드라마를 찍었던 (전)석호와는 작업 과정에서 여러 차례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도 대학로 진출에 별 매력을 못 느꼈던 나에게 ‘또 해야지’라며 계속해서 작업을 하게 해준 게 (전)석호였다. (전)석호야 말로 돈을 벌려면 벌 수 있는 배우였다. ‘인사이드 히말라야’ 작업을 하는 동안 (전)석호가 ‘드라마 하나 찍어도 돼?’라고 묻더라. ‘스케줄 맞으면 찍어’라고 했더니 ‘그럼 나 이거 무리 안 되게 할게’라면서 찍은 게 ‘미생’이었다. 그렇게 공동창작이란 작업을 처음부터 한 사람이 (전)석호 밖에 없다. 다 너무 힘들어서 나갔다. 내가 힘들 때조차 ‘이 길을 가야한다’고 해준 게 (전)석호다. 내 신념을 갖고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게 같이 와준 배우다.”

“‘인디아블로그’에 참여하며 함께 하게 된 (박)동욱이는 공연으로 먼저 시작한 건 아니다. 내가 여름에 국악뮤지컬집단인 ‘타루’의 지방공연을 가면 (전)석호랑 (박)동욱이가 트럭을 몰고 짐꾼처럼 무대를 싣고 설치하고 옮기고 치웠다. 배우라기보다 일꾼으로 먼저 보고 ‘마인드가 괜찮네’라고 생각해서 인도를 같이 가게 됐다.”

▲ 박선희

◆ 연출가 박선희, “여행이 주는 감성, 항상 갖고 가고 싶다”

현재 박선희는 지난 4일부터 올라간 ‘터키블루스’ 작업에 한창이다. 또다시 여행연극을 올린 박선희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결국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인 것 같다. 살면서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큰 기쁨이다.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끼리 조금씩 친해지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여행이 제일 즐거운 순간은 혼자 떠나 누군갈 만날 때 같다. 여행 이후의 즐거움보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들이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박선희는 새로운 여행연극을 위해 남미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남미로 떠나 연말이나 내년에 새로운 작품을 올리는 게 목표다. 또한 ‘터키블루스’가 막이 내리면 ‘인디아블로그 에피소드2’를 두 달 동안 진행할 예정이라니 반가운 소식이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배우들과 여행하면서 계속 공연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박선희는 “여행을 갖고 하는 연극은 계속 할 거다”란 계획을 드러냈다.

'관광'과 '여행'을 명확하게 구분 지으며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그 이야기를 무대로 옮기는 박선희는, 마지막으로 여행만큼이나 깊이 있는 그만의 연출관을 드러냈다.

“여행은 항상 갖고 가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은 나라는 끝이 없고 여행이 주는 감성은 연출가한테도 배우들한테도 영향력이 크다. 여행과 우리가 가진 깊이보다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 우리가 가진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끔 좋은 레퍼런스를 갖고 여행과 엮어서 이야기를 재창작 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창작을 해가는 과정이 내가 바라는 일이고, 또 하고 싶은 일이다.

▲ 박선희

[취재후기] ‘집시’, ‘노마드’, ‘자유로운 영혼’. 박선희를 만나면서 떠오른 단어들이지만, 박선희는 스스로를 ‘하고 싶은 일만 해온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박선희는 분명 '자유 속 질서'가 존재하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괴짜와 천재의 경계점에 서 있는 ‘예술가’, 박선희 연출가가 꼭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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