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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역사저널 그날'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명공주 편, 인조는 왜 그녀를 의심했을까?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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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역사저널 그날'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명공주 편, 인조는 왜 그녀를 의심했을까? (예고)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03.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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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구중궁궐에서 귀한 공주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으나, 이복 오빠의 손에 역적으로 몰려 유폐생활을 하고, 다시 행복을 찾는 듯했으나 또다시 새 왕에게 의심 받고...

13일 밤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7세기 조선의 격랑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던 정명공주의 파란만장한 삶을 되돌아 본다. 이날 방송은 세계 여성의 날 특집 3부작 ‘왕의 딸, 격랑 속에서’ 제2편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명공주 편이다.

선조의 딸이자 광해군의 이복동생이었던 정명공주는 외가가 역적으로 몰리면서 아홉 살 남동생은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평민으로 강등되어 어머니와 함께 궁에 유폐되는 처지에 처한다.

▲ 세계 여성의 날 특집 3부작 ‘왕의 딸, 격랑 속에서’ 제2편 광해군의 이복동생 정명공주 편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정명공주는 1603년 5월 19일 제14대 국왕 선조와 정비(正妃) 사이에서 첫째 딸로 태어났다. 출생 후 선조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행복도 잠시였다.

정명공주가 여섯 살 되던 해 선조는 세상을 떠나고, 정명공주의 배다른 형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운명은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후 정명공주의 친모인 인목대비와 광해군의 갈등은 나날이 깊어져 갔고, 1613년 공주의 외할아버지 김제남이 역모의 배후자로 지목되며 외가는 완전히 풍비박산 났다. 이듬해 친동생 영창대군은 유배지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했다. 공주 나이 고작 열두 살 때였다.

역모 사건 후 인목대비는 후궁의 신분으로 강등됐고, 정명공주 역시 ‘서인’의 신분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는 창덕궁 서쪽에 위치한 ‘서궁’에 유폐된다.

하지만 정명공주는 불경의 필사에 매진하며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았다. 아버지 선조의 필체를 따라 쓰며 어머니 인목대비를 위로하고, 기약 없는 유폐 생활을 서예로 승화시켰다. 한없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레 삶의 처세술도 체득하게 된다.

1623년 3월,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왕위에 오른다. 인조는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인 것을 반정의 명분으로 삼았다.

인조는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의 신분을 복권시키고, 정명공주의 혼인을 진행한다. 때늦은 혼례를 치르며 공주로서의 행복한 삶을 되찾는 듯했으나 인목대비 승하 후, 또 한 번의 위기에 직면한다. 인조는 자신의 병세를 누군가의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 주모자로 인목대비전의 궁녀들을 지목한데 이어 정명공주마저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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