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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칼 립켄 주니어 같은 '철인(아이언맨)', 그 진정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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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칼 립켄 주니어 같은 '철인(아이언맨)', 그 진정한 의미
  • 류수근 편집국장
  • 승인 2016.03.16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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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류수근 편집국장] 지난 1주일 동안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신중하게 착점하는 이세돌의 손끝은 물론 그의 말 한마디와 미세한 표정의 변화까지 언론의 집중적인 플래시를 받았다. 인간과 컴퓨터 간 최고수 대결은 당초 이세돌의 5전 전승이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상황은 급변했다. 첫패의 충격은 3연패에 이르며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4번기에서 극적인 불계승을 거두며 이세돌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예상외의 부진한 성적에도 이세돌의 활약에 인류가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과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이세돌의 모습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강하다'는 건 헐크나 아이언맨처럼 근육의 양이나 물리적인 힘의 크기만으로 정의할 수 없다. 42.195km를 홀로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철인'이 아닐까 싶다.

루 게릭, ‘철인’의 시대를 열다'

스포츠에서 ‘철인(鐵人·Iron Man)’은 비범한 육체적 인내력과 지구력을 발휘하는 기록을 수립하는 선수를 일컫는다. 프로야구에서는 비범한 연속경기출장(출전) 기록 수립자에게 ‘철인’이라는 닉네임을 붙인다.

▲ 세계 야구사에서 '철인'의 역사는 루 게릭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서 그의 위대한 업적과 후세의 찬사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캡처]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루 게릭 페이지 바로가기
    http://baseballhall.org/hof/gehrig-lou

"오늘 나는 지구상에서 최고의 행운아(The luckiest man)라고 생각한다."

1939년 7월4일 뉴욕 양키스타디움, 병마에 맞닥뜨린 루 게릭은 자신의 정확한 병명(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으로, 이후 그의 이름를 따 루게릭병이라고도 불리게 됨)도 모른 채 만원 관중 앞에서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며 은퇴 연설을 했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의 메이저리그(MLB)에서 ‘철인’이라는 칭호는, 불꽃처럼 강렬하게 짧은 생애를 살다 간 뉴욕 양키스의 내야수 루 게릭(1903~1941)으로부터 시작됐다. 1941년, 루 게릭이 연속경기 출장기록(2130게임)을 마감했을 때, 언론은 그에게 ‘철인(Iron Man)’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철인의 공통적인 특징은 ‘부상에 굴복하지 않는 능력’이다. 1934년 시즌 도중, 루 게릭은 부상으로 인해 연속경기출장이 1427게임에서 중단될 위험에 처했다.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교체되면서 다음 경기 출장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지만 루 게릭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경직된 등에 온찜질과 마사지를 받은 후 경기가 끝나기 전 타석에 서서 안타를 쳤다.

베이비 루스와 뉴욕 양키스의 '살인 타선(Murderers' Row)을 형성했던 루게릭의 연속출장기록은 이후에도 703경기 동안 이어졌고, 1995년 칼 립켄 주니어가 그의 벽을 넘어설 때까지 최강 ‘철인’의 위치에 우뚝 서 있었다.

칼 립켄 주니어의 연속경기출장 기록이 미디어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모은 이후, ‘철인’ 열풍은 다른 프로스포츠로 확산됐다. 1997년 NBA의 A.C. 그린이 907경기로 랜디 스미스의 기록을 넘어서며 주목을 끌었고(최종 기록은 1192경기), 1999년에는 미식축구 브렛 파브르가 117연속경기 스타트로 론 자워스키가 세웠던 연속경기 쿼터백 스타트 기록을 갈아 치웠다(최종 기록은 297경기).

루 게릭은 1939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이해 그의 등번호 4번은 MLB 사상 최초로 영구결번됐다. 1969년 전미야구기자협회 투표에서 가장 위대한 1루수로 뽑혔고, 1999년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Major League Baseball All-Century Team) 투표에서도 최다 득표를 했다.

칼 립켄 주니어, MLB 최고의 인상적인 날을 만들다

▲ 칼 립켄 주니어는 루 게릭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철인'의 최고봉에 섰다. 그는 일본의 기누가사 사치오의 기록도 넘었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는 '그는 다리(bridge)다. 아마도 최후의 다리다"라는 조 토레 감독의 찬사와 함께 칼 립켄 주니어의 경이로운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사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캡처]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칼 립켄 주니어 페이지 바로가기
      http://baseballhall.org/hof/ripken-cal

1960년생인 칼 립켄 주니어는 1981년부터 2001년까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프로야구 외길 인생을 보냈다. 이곳에서 메이저리그(MLB)는 물론 세계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한때 윤석민이 활약했고 올해부터 김현수가 도전장을 던진 팀이다.

1995년 9월 6일 캘리포니아 엔젤스 전에서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2131게임으로 늘리면서, 60여년 가깝게 루 게릭이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경신해 ‘철인’(The Iron Man)의 칭호를 받았다. '철인'을 뜻하는 '아이언 맨(Iron Man)' 앞에 '유일하다'는 의미의 정관사 '더(The)'가 붙게 된 것이다.

이 경기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도 참관했고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볼티모어가 5회 공격을 마친 이후 오리올스 파크 앳 캠든 야즈의 웨어하우스(우측 외야 밖 연갈색 벽돌 건물)에 마련된 특별 전광판 숫자는 2130에서 2131로 바뀌었다.

그 순간 만원 관중은 일제히 기립했고, 양팀 선수들과 심판들은 22분동안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립켄은 손을 흔들며 캠든 야즈를 돌면서 팬들과 하이 파이브를 했다.

립켄은 “오늘밤 저는 여기에 서 있다. 압도당한 채. 내 이름이 위대한, 그리고 용기있는 루 게릭과 이어졌다. 내 이름이 그와 동일한 호흡으로 언급된다는 점에 정말 머리가 숙여진다.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해다”라고 감동의 소감을 밝혔다. 이후 MLB닷컴 팬 투표 결과 MLB 사상 '가장 인상적인 순간'(Most Memorable Moment)으로 꼽힌 역사적인 이정표였다.

이후에도 립켄의 연속경기출장 기록은 이어졌다. 이듬해인 1996년 6월 14일 일본프로야구 기누가사 사치오(2215)의 기록마저 넘고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17년동안 진행된 립켄의 연속경기출장 기록은 1998년 2632게임에서야 멈췄다. 대기록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출장을 그만두면서 정지됐다.

립켄은 이 기록만 세운 게 아니다. 3184안타와 431홈런, 1695회의 출루를 기록했다. 유격수는 수비양이 많아 타격에는 약하다는 통론을 깨며, 안타와 홈런을 양산했다. (3루수로 시작했으나 데뷔 2년째부터 유격수로 옮겼고 은퇴 전 3년 동안 3루수를 맡았다)

1981년 신인왕을 수상한 립켄은 수비로서도 두 차례나 글드 글러브를 수상했고, 2차례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 2차례 올스타게임 MVP에도 올랐다. 립켄은 2001년 10월 6일 21년의 MLB 경력을 마감하고 은퇴했고, 볼티모어 구단은 그의 등번호 8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립켄은 2007년 토니 그윈과 함께 야구 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에 헌액됐다. 득표율은 명예의 전당 역사 4번째로 많은 98.5%였다.

립켄은 ‘작은 선수’가 유리하다는 편견을 깬 ‘장신 유격수 개척자’이기도 했다. 6피트4인치(193cm)의 큰 키와 225파운드(102kg)의 몸무게를 자랑했다. MLB 사상 유격수로서 3000안타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데릭 지터(3465), 호너스 와그너(3430), 립켄 3명 뿐이다.

립켄은 은퇴하던 해인 2001년 7월 10일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올스타게임 투표결과 3루수로 선발됐다. 그러나 유격수로 선정된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를 위해 3루수로 옮기면서 립켄은 마지막 올스타게임을 유격수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위대한 스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다.

▲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홈구장인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Oriole Park at Camden Yards) 전경. 1995년 9월 6일, 칼 립켄 주니어는 이곳에서 루 게릭을 뛰어넘는 위대한 '철인' 신기록을 썼다. 사진은 지난해 4월 30일 볼티모어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간의 무관중 경기 모습. [사진= AP/뉴시스]

기누가사 사치오, 일본 프로야구에 '철인’ 시대를 열다

메이저리그에서 루 게릭과 칼 립켄 주니어가 ‘철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면, 일본프로야구 역사에서는 기누가사 사치오(69)와 가네모토 도모아키(48) 2명이 ‘철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965년에 히로시마 카프에 입단한 기누가사는 1968년부터 1루수로서 1군에 정착했다. 연속출장경기 기록은 1970년 10월19일 요미우리와의 경기부터 시작됐다. 1979년 5월27일 경기까지는 풀이닝연속출장도 이어갔다. 하지만 타격 부진으로 이튿날 선발출장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풀이닝연속경기출장은 678게임으로 마감됐다.

하지만 기누가사는 이후에도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은퇴 경기까지 이어갔다. 1987년 6월11일 다이요(요코하마의 전신) 전에서 루 게릭 기록(2130)과 타이를 이뤘고, 이틀 뒤인 6월13일 만원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히로시마시민구장 주니치 전에서 2131경기를 밟았다. 그리고 이해 10월22일 다이요전까지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연장했다. 최종 기록은 2215경기였다. 이 기록은 칼 립켄 주니어가 신기록을 세울 때까지 세계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1947년생인 기누가사는 아프리카계 재일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히로시마 황금시대’를 구축한 주포로서, 타격에서도 큰 기록을 남겼다.

일본프로야구 개인 통산 안타수 역대 5위(2543), 홈런 역대 7위(504개, 장훈과 타이기록임)를 마크했다. MVP 1회, 타점왕 1회, 도루왕 1회도 기록했다. 1987년 6월22일 일본프로야구 선수로서는 두 번째로 ‘홈런왕’ 왕정치(개인통산 868홈런)에 이어 일본 국민영예상을 수상했다.

◆ 가네모토 도모아키, '철인'의 기준을 바꾸다

▲ 기누가사 사치오와 가네모토 도모아키의 '철인' 활약상은 일본프로야구의 명선수를 소개하는 책자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스포츠Q DB]

가네모토는 연속이닝(1만3686이닝)·연속경기풀이닝(1492경기) 출장 세계 기록을 보유한 ‘철인 중의 철인’이다.

가네모토 도모아키(48)는 한국명이 김지헌이었던 제일동포 야구인이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는 기누가사 사치오의 전설이 자리하는 히로시마 카프에서 뛰었고, 2003년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해 활약하다 201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선수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해 우리의 ‘형님’에 해당하는 ‘아니키’로 불렸고, 올해부터 한신의 지휘봉을 잡아 감독으로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선수 시절 주로 좌익수로 활약한 가네모토는 1992년 히로시마에 입단한 뒤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꾸준히 몸을 만들기 시작, 자신만의 야구 스타일을 완성했다. 1994시즌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1군 선발멤버로 자리를 잡았다.

그의 ‘철인’ 역사는 1998년 7월10일 야쿠르트 전부터 시작됐다. 연속경기출장은 이때부터 2011년 시즌 중반까지 이어졌다. 특히 그의 상징적인 기록인 '연속경기풀이닝출장'은 1999년 7월21일 한신과의 경기부터 시작했고 2010년 도중까지 이어졌다.

가네모토는 2006년 3월31일 칼 립켄 주니어의 연속이닝출장 기록(8243)을 경신했고, 같은 해 4월 9일 요코하마 전에서는 칼 립켄을 넘어서는 연속경기풀이닝출장 세계 신기록(904경기)도 달성했다.

1회부터 경기 종료까지 플레이하는 연속경기풀이닝출장 기록은 이후에도 4년 넘게 이어졌다. 스프링캠프 때 동료선수와 부딪혀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한 영향으로 수비가 어려워지자 2010년 4월18일 스스로 선발명단에서 빠지며 기록을 멈췄다.

이로써 연속경기풀이닝출장 기록은 1492경기로 마감했다. 이 기록은 이해 5월15일 기네스세계기록으로 인증 받았다.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한신고시엔구장 미즈노스퀘어에는 가네모토의 연속풀이닝출장 세계기록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가네모토는 풀이닝출장기록을 멈춘 이후에도 2011년 4월15일까지 대타 등으로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이어갔다. 2011년 4월 15일 주니치전 8회 2사1루에서 대타로 출장했으나 1루주자의 도루 실패로 끝나면서 타석 기록이 성립되지 못해 연속경기출장기록은 1766경기로 막을 내렸다. 연속이닝출장 최종기록은 1만3686이닝이었다.

가네모토는 이외에도 일본프로야구에서 빛나는 여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4번타자 연속선발출장 기록(880경기)과 연속타석무병살타 기록(1002타석)도 갖고 있다. 2000년 시즌에는 30홈런 30도루 타율 0.315로 일본 프로야구 사상 7번째 ‘3할타율-30홈런-30도루'의 '트리플 스리’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통산 21년간 2539안타, 476홈런, 1521타점을 올렸다. MVP 1회, 타점왕 1회를 차지했다.

‘한국의 철인’은? 황재균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롯데 황재균은 지난해 144경기 전경기에 나서며 연속경기출장기록을 594게임으로 늘리며 한국프로야구 철인 기록 5위로 올라섰다. 사진은 황재균이 지난해 8월18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전에서 만루 홈런을 작렬시키는 장면. [사진= 스포츠Q DB]

미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로야구 역사가 짧은 한국프로야구는 ‘철인’ 기록면에서도 세계 기록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프로야구 최고 기록은 쌍방울과 SK에서 활약했던 최태원의 1014경기다. 1995년 4월16일 무등경기장에서 벌어진 해태와의 경기에서 시작해 2002년 9월 8일 문학경기장 현대 전까지 이었다. 2위는 OB에서 활약했던 김형석의 622경기(1989.9.24~1994.9.4), 3위는 이범호(KIA)가 한화 시절 세운 615경기(2003.8.3~2008.6.3)다.

현재 10위권에서 연속경기출장을 이어가는 선수는 롯데 황재균이다. 황재균은 2011년 7월8일 SK전(문학)부터 연속경기출장을 시작했다. 2015시즌까지 450경기로 연장해 프로통산 8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144경기 전경기 출장을 더해 594경기로 확장했다. 이로써 홍현우(해태)의 574경기(1995.6.27~1999.10.3)를 6위로 밀어내고, 김인식(MBC)의 606경기(1982.3.27~1987.10.3)에 이어 5위로 올라섰다.

한 시즌 연속경기출장도 모든 조건이 다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부상이 없어야 하고 컨디션 난조도 없어야 한다. 감독의 배려도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2015시즌 10개 구단 선수 중 144경기에 어떤 식으로든 모두 출장한 선수는 6명뿐이었다. 롯데 황재균 최준석, 삼성 최형우 박해민, NC 나성범 김태군이 전경기 출장을 했다.

팀 전력에 꾸준히 보탬이 돼야 연속경기 출장을 이어갈 수 있다. 황재균은 지난 시즌 144경기 596타석 534타수에 나서면서 155안타 26홈런 97타점 타율 0.290을 기록했다. 4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이었다.

황재균은 올해 스프링캠프도 부상없이 차근히 준비해 왔다는 점에서 올 시즌도 충분히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얼마나 장기간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철인'의 '노동윤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

▲ 칼 립켄 주니어는 1997년 클리블랜드 제이콥스 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도 아메리칸리그 3루수 겸 7번타자로 선발출장해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당시 경기를 취재하러 가는 행운을 얻었던 필자는 배팅 케이지 옆에서 지켜봤던 립켄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진은 필자가 당시 현장에서 구매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1997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기념구다.

“어떤 점에서는 어제 같고, 어떤 점에서는 또 다른 생애였던 것 같다.”

칼 립켄 주니어가 루 게릭을 넘고 신기록을 수립한지 20주년이 되던 해인 2015년,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소감의 첫마디다. MLB 최강의 철인이 되던 날은 립켄의 인생에서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지나도 왜 사람들은 립켄의 연속경기출장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그해 축하를 받는 동안, 자신의 연속기록과 관련 있는 많은 사람들과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노동윤리(work ethic)와 연관돼 있다.”

립켄은 20년 전 자신의 기록에 대한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윤리’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그는 “학교에 하루도 안 빠졌다고 말하는 많은 아이들을 기억한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등교하라고 말할 때 나의 기록을 본보기로서 얘기했다. 35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많은 직업인들이 있었다. 그래서 난 항상 놀랐다. 나에게는 그게 진정한 연속기록이다. 여러분은 일하고 있다. 나는 삶을 위해 경기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연속기록을 축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윤리는 노동에 대한 사회 일반의 가치와 규범적 개념들의 총체를 가리킨다. 노동 과정을 통해 사람의 자아를 완성시키고 사회 구성원들과의 상호작용과 관계를 조화시킴으로써, 공통의 이로움을 추구하는 가치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가치다.

‘연속출장기록’은 학교에서 말하면 ‘개근상’과 같다. 직장인이라면 결근없이 만근한 것이다. 선수는 연속출장기록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고 직업인으로서 근면성과 책임성을 다한다. 과정을 중시하는 모습을 본 사회구성원들은 그 성실성과 자아성취를 바라보며 용기를 얻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꾸준한 노력과 인내, 도전의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좋다는 교훈도 일깨운다. 참된 노동윤리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 사회를 건강하고 튼실하게 만든다.

립켄이 연속경기출장 신기록을 수립하던 당시, MLB는 침체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칼 립켄이 야구를 구했다’는 말이 나왔다. 연속경기출장 신기록 수립이 야구 붐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파업 여파로 부정적인 기류가 팽배해 MLB의 인기하락이 예상됐다. 하지만 립켄의 기록 달성은 야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노력과 인내, 성실성이라는 ‘과정’으로 일군 기록이기에 그 어떤 기록보다 ‘인간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

우리 프로야구는 물론 우리 사회에도 진정한 ‘아이언맨'이 필요한 이유다.

연속경기 출전 (한국야구위원회, 대한야구협회 공식 야구규칙 10.24항) = 연속경기 출전기록은 한 회의 수비에 출전하거나, 타자로 나와 출루하든 아웃되든 한 타석을 완료하여야 계속 이어진다. 대주자로서 출전한 것만으로는 연속기록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 규정의 요구 조건을 갖추기 전에 심판원이 퇴장시킨 선수는 연속경기 출전기록이 계속된다.

<편집자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체육부 기자, 야구부 차장, 연예부장을, 스포츠서울닷컴에서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두루 취재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쳐 4년간 근무한 일본특파원 시절에는 주니치의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요미우리의 조성민 정민태 정민철, 오릭스의 구대성, 지바롯데의 이승엽 등을 전담 마크하며 한국 선수들의 성공과 좌절은 물론, 일본 야구의 겉과 속을 살펴봤다. 현재 스포츠Q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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