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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뜻깊었던 장애인컬링 4개월, 원조 컬스데이 신미성의 '내사랑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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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뜻깊었던 장애인컬링 4개월, 원조 컬스데이 신미성의 '내사랑 스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3.21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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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대표팀 맏언니서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 짧고 굵게 경험...2세 출산으로 떠나지만 더 진해진 컬링 사랑!

[200자 Tip!]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 스포츠팬들에게 깊이 인상을 남긴 종목이 있다면 단연 컬링이다. 썰매종목 봅슬레이와 스켈레톤도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컬스데이' 열풍을 일으킨 컬링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한국 컬링이 메달을 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바로 2010년 밴쿠버에서 열렸던 동계패럴림픽에서 장애인휠체어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내심 우승까지 바라보는 장애인컬링의 발전을 위해 '원조 컬스데이' 멤버가 뜻깊은 경험을 했다. 바로 소치 여자컬링대표팀의 맏언니였던 신미성(38). 대한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으로서 짧게나마 새로운 경험을 통해 되새긴 컬링 사랑 이야기다.

[동두천=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거의 만삭이 된 신미성은 대한장애인컬렁협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지난달 전국 장애인동계체전 컬링 종목이 벌어진 동두천국제컬링경기장에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토너먼트가 벌어지는 첫날 준결승전까지 치러지는 일정이어서 지역 대표팀 선수와 임원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경기도 지켜봐야만 했다.

▲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대표팀 '컬스데이' 일원으로 활약했던 신미성이 다시 컬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들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비록 사무국장직은 4개월로 끝났지만 새로운 컬링 인생의 시작을 열었다.

신미성은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에서 김지선(29), 이슬비(28), 김은지(26), 엄민지(25) 등과 함께 한국 여자대표팀인 경기도청 컬링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국내에선 낯선 종목이었지만 빙판에서 스톤을 던지고 달리며 뜨거운 열정을 뿜어내는 과정에서 컬링 열풍을 일으켰다. 3승6패로 8위까지 올라선 실력은 물론 외모까지 겸비하면서 한창 인기가 있었던 아이돌 걸그룹 '걸스데이'를 본따 '컬스데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 뒤에 아픔도 있었다. 소치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를 다녀온 뒤 코치의 폭언, 성추행, 기부강요 파문 등으로 홍역을 겪었다. 팀이 공중분해가 될 수 있는 위기였고 그 과정에서 신미성도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로부터 18개월 정도가 흐른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더이상 선수가 아닌 대한장애인컬링협회에서 행정을 총괄하는 사무국장으로서다. 비장애인 선수 출신으로 장애인 컬링 발전에 이바지해보고 싶다는 뜻과 현장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지가 결합된 결과였다.

◆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서 그만두게 된 컬링, 하지만 인연은 끊을 수 없죠

경기도청 컬링팀 내부 파문과 맞물려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떠밀리듯 선수 생활을 마감한 것이 아니냐는 안타까운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신미성은 환하게 웃으며 팔을 내저었다.

"현역 은퇴는 소치 올림픽 이전부터 있었던 얘기였어요. 나이도 적지 않고 출산하고 나서 계속 대표팀에서 뛰느라 몸도 좋지 않았어요. 그런 와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서 오해를 받았죠. 하지만 나이가 있고 젊은 선수들을 위해 제가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가정에도 충실하고 싶었죠. 아이를 낳고 나서 6개월 때부터 떼놓고 다녔거든요. 엄마로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미안함이 가장 컸죠. 선수 그만두고 제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또 둘째를 갖고 싶기도 했고요.(웃음)"

▲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18개월 동안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했던 '경력단절녀'였던 신미성은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동안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1998년부터 시작한 컬링은 자신의 인생이었기에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미성은 현역에서 물러난 뒤 정말 원없이(?) 아이와 지냈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 18개월 동안 운동과 담을 쌓았단다. 물론 컬링장에 가끔 심판을 보러간 적도 있고 그때마다 후배들이 "함께 하자"는 권유를 해오기도 했지만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봤다.

"아이를 키우고 나서 컬링으로 다시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때마침 대한장애인컬링협회에서 사무국장직 공채가 진행되고 있었어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지원했는데 저를 잘 봐주셔서 합격이 됐네요. 지난해 10월 1일부터 협회 업무를 시작했어요."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아이만 돌보다가 현장으로 돌아왔으니 흔히 말하는 '경단녀' 즉 경력단절녀였다. 그러나 '원조 컬스데이'라는 경력은 큰 힘이었다. 장애인컬링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떨어지는 현실에서 '컬스데이'라는 경력은 곧 경쟁력이었다.

"협회에 오니까 왜 그리 할 일이 많은지. 그동안 밀렸던 사업을 인수인계받고 처리하는데 4개월이 후딱 지나갔어요. 협회 사무실이 있는 의정부까지 2시간 가까이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밀린 업무에 시간이 다 간 것이 아쉬워요. 행정 업무를 하면서 선수 때는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됐죠. 예를 들어 선수 때는 간식 좀 먹고 싶은데 왜 제대로 처리를 해주지 않나 하는 투정도 부렸는데 행정 일을 해보니 왜 안됐는지 이해를 하게 됐어요."

▲ 신미성 전 사무국장이 장애인 동계체전이 열린 동두천국제컬링경기장에서 출전 선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미성 전 국장은 2세 출산 때문에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직은 4개월 만에 마무리했지만 향후 장애인 컬링 지도자로도 활동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다.

◆ 출산 때문에 4개월 만에 퇴직, 컬링 인생 18년 가장 보람된 일

신미성의 컬링 인생은 1998년에 시작됐다. 성신여대 98학번으로 컬링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동호인 선수로 시작한 컬링이었지만 국내대회에 나가 입상하고 훈련도 받으면서 기량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올해로 컬링 인생 18년이 됐다.

장애인컬링으로 새로운 경험을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장애인 동계체전이 사무국장으로 치러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가 됐다. 2세 출산 때문에 행정 일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이다.

"사무국에 직원도 얼마 없는데 출산휴가, 육아휴직으로 업무에 공백이 생기면 협회에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협회에서는 기다려줄테니 사표는 내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결단을 내렸죠. 그래서 짧지만 4개월의 사무국장직을 그만두게 된 겁니다. 하지만 제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육아 때문에 컬링을 그만뒀다가 다시 돌아왔듯이 둘째를 낳고 나서 조금 쉬다가 다시 현장으로 와야지요. 컬링과 인연을 끊을 수는 없죠."

출산과 육아 때문에 두 차례나 현장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의 원동력이 궁금했다. 신미성은 '컬링은 내 인생'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컬링은 저와 남편을 이어준 고리에요. 고등학생 때부터 입시체육을 준비하면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가 대학 진학후 연락이 끊겼는데 제가 컬링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군대에서 TV 중계로 봤대요. TV로 저를 다시 만난 남편이 학교로 연락해 다시 만나게 된거죠. 제가 성신여대로 진학한 것도 컬링과 인연이 맺어지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 삶의 일부인 컬링을 어떻게 떠날 수 있겠어요?"

▲ 신미성(오른쪽에서 세번째)이 장애인 동계체전이 열린 동두천국제컬링경기장에서 심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에게 지난달 장애인 동계체전은 사무국장으로서 치른 처음이자 마지막 전국대회였다.

◆ 장애인 컬링 지원 늘릴 방법 없나 고민, 언젠가는 지도자로 복귀하고 싶다

신미성이 4개월 동안 느낀 것은 장애인 컬링에 대한 지원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선수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업무처리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식비 문제였어요. 선수들 하루 식비인 4만5000원은 너무 적거든요. 국제대회나 훈련을 나가도 식비는 그대로이니 예산이 빡빡하죠. 또 숙박시설을 고르려면 턱이 없고 훈련장이나 경기장에서 가까운 곳을 잡아야 하는데 국내에는 그런 곳이 거의 없고 해외에 나가면 숙박비가 만만치 않아요. 국내 여건을 말할 것도 없죠. 그나마 동두천경기장이 식당도 그나마 잘 갖춰진 곳이라 장애인 대표선수들이 훈련하기에 어려움이 없다고는 하지만 주위 숙박시설이 부족해요. 경북 의성 쪽도 장애인선수들이 훈련하기에 불편하고요. 의정부에 새롭게 컬링장을 지으려고 하는데 계획을 잘 세워서 장애인선수들을 위해 활용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을 떠난 '컬스데이' 맏언니 신미성의 컬링 인생은 어떻게 될까. 동호인 클럽에서 뛰면서 장애인선수들도 함께 지도하고 싶다는 자신의 계획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주위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동호인 클럽을 만들어 출전해보자는 제안을 많이 해와요. 주로 성신여대 출신 선수들이죠. 서울에서 팀을 만들테니 준비되면 오라고 하네요. 지금 당장은 둘째를 순산하고 가정에 충실하겠지만 클럽이 만들어진다면 다시 신나게 스톤을 굴리고 와핑을 해보고 싶어요. 또 행정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장애인 컬링 발전을 위해 제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는 것도 좋고요. 아직 장애인 컬링에 클럽팀이 많지 않은데 관심과 인기가 모아지면 팀이 많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가운데 제게도 좋은 제안이 오지 않을까요."

▲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직을 내려놓은 신미성은 장애인 컬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커진다면 자신에게도 지도자 같은 일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 신미성 프로필

△ 생년월일 = 1978년 4월 15일
△ 출신학교 = 성신여자대학교
△ 주요 경력
- 1998년 성신여대 컬링팀
- 2003년 경기도청 컬링팀
- 2012년 세계선수권 국가대표
- 2014년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06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금메달
- 2007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금메달
- 2008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금메달
- 2010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동메달
- 2011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은메달
- 2012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금메달
- 2013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금메달
- 2013년 아시아태평양선수권 여자 금메달
- 2014년 동계체전 여자일반부 은메달

[취재후기] 신미성 전 장애인컬링협회 사무국장은 4개월이라는 시간이 '수박 겉핥기'처럼 흘러간 시간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컬링을 다시 보고 생각하는 소중한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자신처럼 현역 출신들이 장애인체육 또는 생활체육으로 자리를 옮겨 종목을 발전시키고 나아가서 한국 스포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사례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피력했다. '컬스데이'의 맏언니 신미성의 넉달은 그렇게 짧았지만 1998년 성신여대에서 컬링을 시작한 이후 지난 18년 세월에서 가장 보람찬 기간이었을 것이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한일전에서 스톤을 굴리고 있는 신미성(가운데).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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