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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 '진보'한 막장인가 '진부'한 막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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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장보리' 김순옥 작가, '진보'한 막장인가 '진부'한 막장인가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0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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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MBC 주말극 ‘왔다! 장보리’의 3일 방영분이 시청률 25.6%(닐슨코리아·전국기준)를 찍었다. 지난 4월5일 9.8%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3개월 만인 7월13일 시청률 20%를 돌파한 데 이어 3주 만에 25%를 넘어섰다.

이 드라마는 엄마와 딸 이야기다. 제작노트는 “피붙이지만 서로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모녀, 피 한방울 안 섞였지만 가슴으로 맺은 모녀가 어떻게 화해하고 진짜 모녀가 되는지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조명한다”고 적시했다.

‘왔다! 장보리’는 갈등구조가 겹겹이다. 한복 명인 비술채의 전수자 자리를 둘러싸고 온화한 첫째 며느리 옥수(양미경)와 탐욕스러운 둘째 며느리 인화(김혜옥)가 경쟁한다. 원래 인화의 딸 은비였으나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도씨(황영희) 밑에서 성장한 보리(오연서)는 옥수의 제자로 비술채에 입성하고, 보리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인화의 양녀로 들어간 도씨의 친딸 민정(이유리)이 맞선다. 설상가상 보리는 민정이 버린 딸 비단(김지영)을 업둥이로 키우며 미혼모가 된 상태다.

▲ 김순옥 작가의 '왔다! 장보리'[사진=MBC 홈페이지 캡처]

민정과의 사이에 비단을 낳은 지상(성혁)은 자신과 딸마저 버린 민정에게 복수를 시도하고, 민정은 지상을 모함하며 재벌 후계자 재희(오창석)와 결혼을 밀어붙인다. 재희와 라이벌 관계인 이복형 재화(김지훈)는 보리에게 매료돼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러포즈를 한다.

총정리하면 옥수 vs 인화, 보리 vs 민정, 민정 vs 지상, 재희 vs 재화의 대립구도가 혼재돼 있다. 최근 방영분에서는 지상의 복수가 턱밑까지 차올랐음에도 결혼식 일보직전까지 간 민정,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재화-보리 커플, 보리가 잃어버린 딸임을 직감하는 수봉(안내상)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 코드가 모두 모아졌다. 출생의 비밀, 혼외 자식과 배다른 형제, 미혼모, 신분상승을 위해 거짓말과 권모술수를 일삼는 악녀, 복수의 화신, 뒤틀린 모성애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재미있다. 평소 ‘막장’을 지탄하는 이들도 수줍게 시청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김순옥(43) 작가의 힘이다.

점 하나로 두 여인을 오간 ‘아내의 유혹’ 이후 막장드라마의 대표 작가로 부상했다. ‘천사의 유혹’까지 잇따라 복수극을 히트시킨 그는 빠른 스토리 전개와 파격적인 설정이 특징이다. 이후 ‘웃어요 엄마’의 시청률은 저조했고, ‘다섯손가락’은 혹평 받았다. 사건과 에피소드에 매우 강하지만 캐릭터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따라 다녔다. ‘왔다! 장보리’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보완한 흔적이 역력하다.

스피디하고 힘 있는 전개가 특징이라 엿가락 늘어지듯, 오락가락하는 면은 적으나 50부작이다 보니 30회에 이르기까지 악행과 이에 번번이 당하는 설정이 반복됐다. “웬만한 인내심 아니면 혈압 올라서 못 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 '왔다! 장보리' 중 재화와 보리의 키스 장면[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나게 시청할 수 있었던 원인은 여주인공 장보리 캐릭터다. 여타의 막장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서슬 시퍼렇거나 청순가련형의 정형화된 인물이 아니라 천방지축 '엽기적인 그녀'다. 천덕꾸러기로 지내왔음에도 무한긍정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이를 연기하는 오연서는 차진 전라도 사투리로 보리를 귀엽게 빚어낸다. 재화는 우유부단한 밉상 남주 캐릭터가 아닌 호쾌한 소신남이다. 이렇듯 남녀 주인공의 발랄함은 막장의 어둠을 지워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분노 게이지를 급상승시켰던 민정과 도씨 역시 평면적이지 않다. 민정은 자기모순에 빠진 신경쇠약 직전의 악녀로, 도씨는 효녀 보리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도 냉정한 친딸에게 헌신하는 엄마로 그려져 현실성을 담아냈다. 이렇듯 과거와 달리 캐릭터에 공을 들이며 숨결을 불어넣자 극의 개연성이 강해졌다.

혹자는 '드라마는 통속'이라고 말한다. 먹히기 위해선 시청자의 말초적 감정을, 판타지를 한껏 자극해야 한다고 유혹한다. 강력한 도구가 출생의 비밀이고, 뒤바뀐 아이이고, 신데렐라 스토리다. 막장을 부추기는 주술이다. 그런데 장르적 도전과 새로운 상상력으로 시청자의 지지를 얻는 30~40대 작가군이 느는 것 또한 현실이다. 과연 김순옥 작가는 ‘아내의 유혹’부터 ‘왔다! 장보리’에 이르기까지 자기복제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래 보이진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막장드라마는 진보했지만, 여전히 진부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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