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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손' 쓰는 올림픽 축구, '태극' 와일드카드의 자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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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손' 쓰는 올림픽 축구, '태극' 와일드카드의 자격은?
  • 김한석
  • 승인 2016.03.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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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한석 스포츠국장] 이번엔 스물넷 손흥민이었습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수석코치를 겸하는 23세 이하 올림픽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머리를 맞댄 합작품, 컬래버레이션 2탄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양 팀에서 미드필드의 핵으로 유용한 스물둘 권창훈의 활용법을 놓고 보여줬던 상생과 배려가 이번엔 손흥민에게 미친 것이지요.

슈틸리케 감독은 오는 6월 세계강호 스페인과 제대로 한 판 붙어보기 위해 3월 두 차례 A매치를 통해 손발을 맞춰봐야 하는데도 공격의 핵인 손흥민을 차출하지 않고 23세 초과 선수, 즉 ‘와일드 카드’로 올림픽팀에 양보한 겁니다.

지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선 토트넘이 선두 레스터 시티를 바짝 추격하며 사상 첫 EPL 우승 꿈을 향해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이 바쁜 3월 A매치에 안 뽑을 테니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손흥민이 출전할 수 있도록 토트넘 구단에 협조를 요청한 것이죠.

신태용 감독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토트넘 구단에 윈-윈 방안으로 타진한 결과 "토트넘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해줬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확답은 아니지만 상생 방안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손흥민의 리우행 전망을 밝혀주고 있지요.

#01 손흥민의 와일드카드, 헌신에 대한 배려

소속 구단의 올림픽 파견은 의무사항이 아닌지라 신 감독은 에이스 손흥민이라도 선점하자는 조치입니다. 그래도 매우 이례적입니다. 민감한 대표 선발 방향을 조기에 밝힌 것도 그렇고, 양팀 사령탑이 발 벗고 나선 것도 그렇습니다.

무엇이 두 감독까지 움직여 이 같은 파격 행보를 낳은 걸까요. 신 감독은 "손흥민은 최고의 선수라 생각한다. 공격 전 포지션 모두 소화가 가능하다. 자기가 맡은 임무는 충분히 소화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전략상의 필요 때문만 일까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헌신에 대한 배려라는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손흥민이 어린 나이 때부터 각종 국제무대에서 기여해온 것에 대한 화답이 아닐는지요.

18세이던 2010년 12월 A매치에 데뷔한 이후 2011, 2015 아시안컵과 2014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5년여 동안 A매치 46경기 출전에 16골을 기록한 손흥민입니다.

진정성은 또 어떤가요.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3위에 기여한 터라 20세였던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은 큰 무리가 없어 보였지요. 헌데 2012년 6월 손흥민은 독일 키커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선 올림픽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시즌 함부르크에서 더욱 발전하고 싶다"며 올림픽 도전을 사양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강등권의 팀을 구한데 이어 자신도 본격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동메달 이상이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도전 기회를 스스로 접은 것이지요.

손흥민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다녀온 뒤에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도전해보려 했습니다. 금메달이면 병역 고민 없이 빅리그에 도전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의욕을 보였지만 정작 레버쿠젠 구단의 반대로 '인천상륙'은 끝내 무산됐습니다. 당시 유럽구단들이 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한 병역 문제에까지 배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했던 손흥민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좋은 조건이 되면 이적시키는 유럽구단의 자본논리도 토트넘의 최종 배려에 어떻게 작용할 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삼 세 번입니다. 이번엔 분위기가 좋아 보입니다. 손흥민의 강한 의지도 의지이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배려에 주목해 봅니다.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믿음의 슛을 보여줬던 손흥민에게 한 번쯤은 보상해줄 수 있는 것도 명장의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그는 손흥민을 포함해 유럽 소속팀에서 크든 작든 집단 부진을 겪고 있는 태극전사들을 발탁하면서 "다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지난해 우리는 A매치에서 13승을 거둘 수 있었다. 여전히 난 그들을 신뢰한다. 이번만큼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손흥민은 3월 호출 대신 8월 리우행 부킹을 돕는 것으로 더욱 특별한 배려를 한 셈이지요.

병역특례 도전 기회만으로는 자의 한 번, 타의 한 번으로 놓쳤지만 올림픽은 와일드카드로 첫 도전에 나서는 손흥민입니다. 과연 흔치 않는 기회에 올림피언으로 한국축구의 명예를 높이고 개인적으로도 국방의 의무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02 호날두-메시-수아레스-네이마르, 닮은 듯 다른 올림피언

국내외 올림픽 와일드카드 스타들의 도전을 견줘보면 손흥민의 리우 가는 길을 어느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3세 이하 선수(under-23 player)들이 참가하는 올림픽 남자축구의 와일드 카드(wild card). 18명의 엔트리에서 23세를 초과하는 선수(over-23 player)도 본선에 한해 팀당 3명까지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국제적으로 연령초과 선수(over-aged player)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국내축구에서는 와일드카드란 용어로 굳어졌지요.

1984,1988년 올림픽에서 부분적으로 프로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이후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을 세계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올림픽에 대해서는 23세로 출전연령을 제한했습니다. 1992년부터 이 연령제를 적용했고 1996년부터는 이 와일드카드를 도입했지요. 팀별로 취약 포지션을 강화하고 스타급 선수의 참여 기회를 확대해 흥행에도 도움을 주려는 최소한의 보완조치이지요. 아시안게임에서도 2002년부터 23세 연령제한과 와일드카드제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퀴즈 하나 풀어볼까요.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와 바르셀로나의 MSN(메시-수아레스-네이마르) 중에서 와일드카드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스타는 누구일까요?

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②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③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④ 네이마르(브라질)

정답은 ③ 수아레스입니다. 1924,1928년 올림픽 2연패 이후 올림픽 축구사에서 잊혀졌다가 2012 런던 올림픽을 통해 84년 만에 본선 무대에 등장한 우루과이의 간판스타로 수아레스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겠지요. 25세에 맞은 천재일우의 기회에 주장까지 맡아 분투했지만 9위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FIFA 발롱도르 최종 3인 후보에 올랐던 나머지 3명은 모두 제 연령대에 올림픽 무대를 밟았지요. 19세 호날두는 2004 아테네 올림픽서 데뷔골은 기록했지만 팀은 14위에 머물렀습니다. 21세 메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서 2골을 터뜨려 우승에 기여했지요. 20세 네이마르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3골을 몰아치며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리우 올림픽에는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나서지만 호날두와 메시는 와일드카드로도 출전하지 않습니다. 호날두는 ‘원맨’팀의 한계를 매번 느껴 더 이상 성취동기가 없었겠지요. 이미 올림픽 정상에 한 번 서봤던 메시로서는 오는 6월 미국서 열리는 남미축구선수권 100주년 특별무대인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를 통해 지긋지긋한 ‘국가대표 무관 징크스’를 깨는데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24세 네이마르는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재도전할 요량입니다.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도 석권하고 싶고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도 당연히 출전해 사상 첫 우승 트로피를 조국에 안기고 싶다는 '더블' 야망이 욕심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요. 최근 브라질협회가 바르셀로나 엔리케 감독을 만나 양 대회 사이 '한 달 휴식'을 협상카드로 내밀었지만 간판스타의 혹사에 무심할 바르셀로나가 아닐 겁니다. 둥가 브라질대표팀 감독은 자신은 안 뽑을 테니 네이마르의 리우행을 차선책으로 강추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감독을 맡았던 2008 올림픽팀이 동메달에 그쳤기 때문에 소원풀이를 제자에게 바라는 거죠. 월드컵 최다 5회 우승국이지만 올림픽에서는 12번 출전해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참혹한 무관 징크스에 시달려왔던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와일드카드는 월드클래스급을 유지했지만 우승하고는 연을 맺지 못했지요. 1988년 서울에 왔던 베베투는 8년 만에 본선에 오른 애틀랜타 올림픽에 32세 와일드카드로 출전, 19세 호나우두와 공격을 이끌며 득점왕(6골)까지 차지했지만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2008년 때 28세 호나우디뉴도 준결승서 메시의 아르헨티나에 덜미를 잡혀 동메달에 머물렀지요.

반면 아르헨티나의 '마에스트로'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2004년 우승에 이어 24세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2008년 올림픽에서도 정상에서 서며 조국이 거둔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모두 수집했습니다.

#03 와일드카드가 몰고온 올림픽축구의 지각변동

이렇듯 올림픽에서는 주로 남미의 영건과 와일드카드 스타의 쇼타임이 두드러졌습니다. 코파 아메리카가 주로 홀수 해에 벌어진데다 유럽 소속클럽과도 개별협상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올림픽 나들이에 큰 제한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유럽축구선수권이 열리는 해에 올림픽이 꼭 겹쳐 유럽의 유명 스타들은 올림픽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2012 런던 올림픽입니다. 월드컵, 유럽선수권 등에선 축구종가 영국 내 4개 축구협회가 인정돼 독립적으로 출전하지만 올림픽에서는 영국 단일팀으로 참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협상 결과 2012 올림픽은 잉글랜드-웨일즈 연합팀이 출전하는 대신 유로 2012에 나가는 잉글랜드 대표팀과는 겹치지 않도록 원칙을 세웠지요. 그래서 잉글랜드대표 루니는 유로 2012에 출전했고 루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동료 라이언 긱스는 웨일즈 대표로 단일팀에 참여했는데 8강에서 한국에 승부차기로 지는 바람에 5위에 머물고 맙니다. 38세 긱스는 최고령 와일드카드로 기록됐지요.

연령제 도입 원년인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루이스 엔리케(22)와 바르셀로나의 호셉 과르디올라(21)가 의기투합해 스페인에 첫 금메달을 바친 게 유명한 영건 스토리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당시 스페인은 유로 92 본선에 오르지 못한 터라 유망주들의 바르셀로나 총출동이 가능했던 거지요. '패스마스터' 안드레아 피를로가 2000 올림픽에 데뷔하고 4년 뒤 25세로 중원을 지휘해 2차대전 이후 이탈리아 최초의 메달(동)을 이끈 게 유럽 와일드카드의 드문 성공 사례입니다.

그렇다면 와일드카드를 제대로 활용해 효과를 톡톡히 누린 대륙과 나라는 어디일까요.

우선 챔피언 지형도가 확 바뀌었습니다. 1936년부터 유럽이 13개 올림픽 연속으로 우승을 휩쓸었으나 와일드카드가 도입된 1996년부터는 5개 대회 연속 비유럽 국가가 금메달을 석권했으니까요. 나이지리아와 카메룬이 와일드카드 2명씩만을 쓰고도 1996, 2000년 연속 아프리카국가 우승 1,2호 신화를 이어갔지요. 아르헨티나는 와일드카드 3명씩을 활용해 2004, 2008년 올림픽 1,2호 금메달을 연달아 수확했습니다. 2012년엔 북중미의 멕시코마저 첫 우승 위업을 달성했지요. 한국도 아시아 국가로는 1968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2012년 런던서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그야말로 똑똑한 와일드카드를 앞세운 비유럽의 도전에 유럽이 응전하지 못해 몰락하고 만 것이죠. 채 몇 달 안 되는 사이에 열리는 유럽선수권-올림픽 일정, 대륙별 안배를 위한 유럽국가 본선티켓 축소 정책 등으로 유럽의 올림픽 장악력은 계속 약화되는 추세입니다. 올림픽 연령제가 도입된 1992년만 해도 유럽선수권 본선 출전국은 8개국이었지만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로 2016 본선에는 무려 24개국이 참가하니 사실상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더욱 낮아지게 된 셈입니다.

FIFA 올림픽 엔트리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5개 대회에서 총 173명의 와일드카드가 활용됐습니다. 포지션별로 보면 수비수 56명(32%), 미드필더 54명(31%), 공격수 45명(26%), 골키퍼 18명(11%) 순으로 많습니다. 와일드카드 평균 연령은 27.3세. 와일드카드를 1명이라도 뽑은 나라는 1996, 2000년에 각각 13, 11개국이었지만 2004, 2008년엔 14개국씩으로 늘더니 2012년엔 16개국 모두 23세 초과 선수들을 발탁하는 추세로 바뀌었습니다.

 

#04 ‘올림픽 개근’ 한국의 와일드카드 잔혹사, 그리고 도약

그런데 한국이 가장 많이 와일드카드를 출전시킨 국가라는 걸 아시나요. 모두 13명이나 됩니다. 2004, 2008년만 빼고는 모두 최대 3명씩을 채웠지요. 한국이 최다 인원을 기록한 것은 와일드카드가 적용된 5개 월드컵을 일본과 함께 모두 개근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1996, 2008년 두 차례나 23세 팀으로만 운영해 와일드카드는 총 8명에 그쳤습니다. 4번 출전한 국가 중 호주는 11명, 브라질은 9명, 이탈리아는 8명을 활용했지요. 와일드카드를 한 번이라도 꺼내지 않은 나라는 모두 10개국이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많이 활용한 와일드카드는 과연 성공했을까요. 연속 출전의 역사가 긴 만큼 시행착오도 많았고 잔혹사로 비쳐질 정도로 부상 불운에 따른 실패가 많았습니다. 최근에야 작은 성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요.

1996 올림픽에선 월드컵 경험이 있는 황선홍 하석주가 리드하면서 초반 순항했지만 수비수 이임생이 멕시코와 2차전에서 덜컥 발목을 다치자 한국축구 대표팀 1호 외국인 사령탑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모험수를 던졌지요. 예비엔트리로 한국에 남아 있던 이경춘을 미국 애틀랜타까지 긴급 호출한 거죠.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오르는 이탈리아전에서 장거리 비행에 시차적응까지 덜 된 이경춘은 대인방어를 맡았던 31세 와일드카드 블랑카를 종료 8분 전 놓쳐 결승골을 내주는 바람에 결국 패착이 됐습니다. 황선홍도 부상으로 이탈리아전 1-2패를 벤치에서 지켜봤지요. 유럽서 가진 마지막 전지훈련 때 황선홍과 호흡을 맞췄던 애초의 와일드카드는 유상철 김태영이었는데 부상으로 하석주 이임생으로 대체된 것부터가 불길한 징조였던 셈이지요.

더욱이 4년 뒤까지 그 부상 징크스가 이어질지 또 누가 알았겠어요. 시드니 올림픽 개막 직전, 김도훈 김상식과 더불어 수비사령관으로 발탁된 홍명보가 호주에서 당한 부상이 최종엔트리 제출 전날까지도 낫지 않자 허정무 감독은 1992 올림픽 멤버였던 강철로 긴급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이경춘의 실패사례처럼 강철이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탓에 수비 조직력이 무너져 스페인에 0-3으로 완패했지요. 이후 2승을 거두고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으니 통한의 대회로 기억될 만합니다.

▲ 23세 이하 연령제가 도입된 뒤의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 위로부터 1992 바르셀로나, 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라인업. 맨 위 사진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현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 [사진=국제축구연맹 공식 기술보고서 캡처]

2004 아테네 올림픽 때도 2002 월드컵 4강 주역 유상철 김남일 송종국이 발탁됐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김남일과 송종국에게 부상 악령이 찾아들었습니다. 김남일은 정경호와 교체됐고 송종국은 예비엔트리 김동현으로 바뀌었지요. 김호곤 감독은 유상철 정경호로 와일드카드 2장만을 활용했지만 당시까지 최고 8강(6위) 성적을 거뒀습니다. 8년 전 기회를 놓친 올림픽 무대에 역대 한국 와일드카드 최고령(32세)으로 데뷔한 유상철이 4경기 풀타임 출전하는 헌신으로 중원을 책임진 게 큰 힘이 됐지요.

2008년부터는 부상 악연이 태극 와일드카드들을 더 이상 흔들지 않았습니다. 박성화 감독은 처음부터 박지성을 0순위로 희망했지만 여의치 않자 아예 수비강화책으로 방향을 선회했지요. '박지성 대안'으로 대두됐던 공격성향의 프리미어리거 김두현을 택하는 대신 수비까지 안정적인 김정우와 수비요원 김동진 등 2명만 데리고 베이징 올림픽을 정면 돌파했습니다. 둘 다 4년 전 아테네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던 경험을 살려 기간전력으로 활약했지만 팀 성적까지 따라주지는 못했지요. 김동진은 온두라스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와일드카드 '노골 잔혹사'를 끊어냈지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내는 데는 와일드카드 삼총사의 힘이 실로 컸습니다. 박주영이 병역특례의 명운을 확정짓는 일본과 3-4위전서 터뜨린 결승골을 포함해 2골을 기록했고 골키퍼 정성룡, 수비수 김창수는 주전으로 뒷문을 튼튼하게 책임졌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코치로 참가했던 2008 올림픽에서 모두 호흡을 맞췄던 트리오로서 메달에 대한 절박한 목표의식과 자신감을 네 살 이상 어린 후배들과 공유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태극 와일드카드의 도전은 초창기에 국가대표 레벨에서 경험이 풍부한 스타급들이 대거 발탁됐다가 번번이 부상 악령에 휘말려 올림픽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지요. 그러다보니 네임 밸류보다는 23세 팀에 맞춰 필요한 포지션을 보강하는 실용적인 선택으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 올림픽을 경험한 ‘올드 보이’들의 활용도가 부각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트렌드입니다.

▲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2012 런던 올림픽대표팀 라인업. [사진=국제축구연맹 공식 기술보고서 캡처]

#05 태극 와일드카드의 자격

세계 최초 8회 연속 올림픽축구 본선 진출 기록을 쓴 신태용호는 손흥민의 리우행을 제대로 관철시켜야 하고 또 나머지 와일드카드를 지혜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는 와일드카드의 자격과 뽑는 원칙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쩌다 한번 올림픽에 초대되는 경우도 아니고 개근하는데다 민감한 병역 혜택의 도전 기회가 걸려 있기에 그렇습니다.

우선 형평성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박주영 같은 특혜 시비의 소지부터 없어야겠지요. 박주영은 런던에서 끝이 좋았기에 다 좋았지, 메달을 못 땄더라면 특혜논란으로 후폭풍이 거셌을 겁니다. 자신이 활약한 모나코에서 10년 이상의 장기체류 자격을 얻음으로써 '편법 병역기피' 논란을 일으켰던 박주영이었죠. 실력이 뛰어난 면도 있었지만 병역특례에 도전할 기회가 유독 많이 부여된 것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6 아시안게임, 2008 올림픽에서는 각각 23세 이하로 발탁됐고요, 2010 아시안게임과 2012 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했던 겁니다. 결국 '3전4기'로 꿈을 이룬 셈입니다.

엔트리가 올림픽은 18명, 아시안게임은 20명으로 월드컵 23명에 비해 턱없이 적기에 선발 경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박주영에게 2년마다 모두 4번의 기회가 잇따라 주어졌다는 점은 향후 와일드카드 선발에서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예전에는 특출했으니까 넘어가기도 했던 일이 사회가 발전하면서 스포츠에서도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문제로 대두될 수 있는 거죠.

병역 미필에 해당하는 손흥민에게 와일드카드 한 장을 할애했다면 나머지 두 장은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요. 그중 최소한 한 장은 병역을 필한 올림픽 경험자에게 주어지는 게 의미가 있을 듯싶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통해 40명 가까이 병역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병역 미필자인 와일드카드 자원을 찾는 게 여의치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그래서 병역의 의무를 다한 선수, 특히 올림픽에 다녀왔던 선수들에게 눈을 돌려보자는 겁니다.

올림픽 경험은 있는데 병역 미필인 선수는 '자신의 도전이 마지막'이라는 절실함이 지나쳐 오히려 어린 선수들과 조바심을 공유하는 쪽으로 흐르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1996년 첫 와일드카드인 하석주는 다섯 살 이상 어린 후배들을 다독이며 가까워지기 위해 개그본능을 발산해야 했습니다. 이후 2002 월드컵 황금세대들도 스타의식을 의식적으로 버리고 어린 후배들과 융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요. 한마디로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데 쉽게 될 리가 없죠. 그래서 비슷한 경험의 공유가 중요한 겁니다. "나도 올림픽 때 그런 고민을 했었지"하고 맞장구쳐주는 것이 소통법이 되면 그 팀은 ‘원팀’으로 뭉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올림픽대표 출신 1호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인 신태용 감독은 와일드카드에 대해서는 열린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14일 손흥민을 와일드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신태용 감독. [사진=스포츠Q DB]

다행히 신태용은 감독은 열린 마음입니다. "와일드카드 한두 명 때문에 나머지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는다면 더 이득이라 본다. 꼭 병역 혜택을 받지 않은 선수가 들어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지요. 올림픽대표 출신 첫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이라서 확실히 달라 보입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첫 연령제한 세대로 출전해 한계와 가능성을 몸으로 느꼈던 선구자로서 올림픽을 경험한 선수들에 대한 기대는 누구보다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와일드카드는 양날의 칼입니다. 잘 쓰면 팀을 살리지만 잘못 쓰면 팀을 해치는 검이 되지요. 그런 면에서 감독들은 고민을 거듭합니다. 두 번이나 와일드카드 두 장만 쓴 사례도 채움보다는 비움을 통해 젊은 선수들의 도전의식을 결속시키고자 했던 생각의 흔적입니다. 억지춘향으로 와일드카드 숫자만 최대로 맞추는 게 능사는 아니겠지요. 마땅한 자원이 없다면 덜 채우는 게 낫다는 겁니다. 꽉 채우려면 누구도 수긍이 갈만한, 공평하고 합리적인 원칙을 세워 꼭 필요한 자원을 발탁하는 게 중요합니다. 와일드카드는 올림픽팀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마중물이자 A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위한 거멀못이기 때문입니다.

<편집자주> 필자는 1990년부터 스포츠서울 체육기자로 활동하며 잉글랜드 유로 96, 1998 프랑스 월드컵. 1999 미국 여자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등을 현장 취재했다.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 선정위원, K리그 30주년 레전드 선정위원을 맡았으며 FIFA-발롱도르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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