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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시그널' 정해균 "그동안 거의 악역인생을 살아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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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시그널' 정해균 "그동안 거의 악역인생을 살아왔죠"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3.23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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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명품 추리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으며 막을 내린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 가장 눈에 띈 배우는 광역수사대 계장 '안치수'를 연기한 정해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배우들은 이미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진 배우라는 점에서 어떤 연기를 펼칠지 기대감이 있었지만, 정해균은 시청자들에게는 비교적 생경한 얼굴의 배우였기 때문이다.

[스포츠Q 글 원호성·사진 이상민 기자] 많은 시청자들이 아마도 '시그널'을 통해 정해균이라는 배우를 처음 기억하게 됐을지 모르지만, 정해균은 연극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배우였다. 정해균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비롯해 세계적인 대문호의 희곡들을 한국식으로 다양하게 변주해내며 세계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은 극단 여행자의 주연배우이자 부대표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해균이 본격적으로 영화나 TV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은 고작 3,4년 전에 불과하다. 정재영과 박시후가 출연한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진짜 살인범 '제이'를 연기하며 마지막에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고, '몽타주'의 '최형사'와 '신의 한 수'의 '아다리', '사도'의 오프닝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소경박수'와 MBC 드라마 '화정'에서 광해군의 밀명을 받고 후금에 투항하는 장군 '강홍립'이 '시그널' 이전 정해균이라는 배우를 기억하게 만드는 배역이었을 것이다.

▲ '시그널' 정해균

◆ '시그널'의 악역 안치수? "그래도 장현성 씨 덕분에 면죄부를 받았죠"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가 개봉했을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정해균은 정재영이 추격하던 진짜 살인범인 '제이'를 연기하며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며 강렬한 악역의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고 정해균은 영화가 개봉한 후 아내와 함께 극장에 '내가 살인범이다'를 보러 갔고, 영화가 끝난 후 아내는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정해균의 캐릭터에 대해 거칠게 욕을 하는 것을 듣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물론 영화가 끝난 후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욕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정해균이라는 배우가 '제이'라는 섬뜩한 살인마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해균은 '시그널'에서 다시 시청자들에게 욕을 들을 만한 '안치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

'안치수'는 1999년 인주시 여고생 성폭행사건 당시 지원을 나온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와 처음 만났던 사이로, 조진웅에게는 앙숙이라 할 수 있는 김범주(장현성 분)의 수족으로 그가 시키는 악행들을 하고 다니는 악인. 결국 안치수는 2000년 8월 3일 선일정신병원에서 조진웅을 뒤에서 내리쳐 기절시키고, 인근 야산에서 총으로 쏴서 살해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2015년에도 '안치수'는 여전히 '김범주'의 수족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지만, 장기미제전담팀이 생겨나고 그가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사라지면서 자신의 죄를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시그널'에서 정해균이 연기한 안치수의 캐릭터는 초반부터 '대놓고 악역'이라는 말부터 '악역을 가장한 선역' 등 다양한 의견이 나돌며 '시그널'의 키워드로 자리잡았었다.

▲ '시그널' 정해균

"저도 나중에 알았어요. '시그널'에서 '안치수'의 캐릭터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는 걸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안치수'가 박해영(이제훈 분)을 도우려고 한 것도 아픈 딸이 죽으면서 이젠 악행을 저지를 목표도 희망도 없어지니, 내가 죽을지는 몰라도 마음 속에 간직했던 사건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 행동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치수'는 절대 선한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어요.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고는 해도 대의적인 차원에서는 사람을 죽이고 계속 악행을 저지른 악인인 거죠."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시그널'이 방송된 후 정해균 배우의 아내가 '내가 살인범이다'처럼 화장실에서 남편을 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흘릴 일은 두 가지 이유에서 아마 없었을 것이다. 첫째로 '시그널'에서 정해균이 연기한 '안치수'는 연기한 본인의 말처럼 '악인'이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이제훈에게 자살인 줄 알았던 형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며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안치수'보다 더한 악역으로 '김범주'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장현성 씨 덕분에 '시그널'에서는 동정표를 많이 받았나 봐요. 그래서 욕은 장현성씨가 다 먹고 있고, 저는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았다고나 할까요? 장현성 씨가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해서 욕도 많이 먹는데, 실제로는 너무 좋은 배우고 착한 배우예요. 립밤 연기 같은 경우도 얄미워 죽겠다고 화제가 됐는데, 장현성 씨가 대본에도 없는 걸 현장에서 즉석으로 연기해서 만들어낸 장면이었죠."

"장현성 씨가 악역 연기를 많이 하는데, 저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악역을 꽤 많이 연기했어요. 거의 악역인생을 살았다고 할까? 선한 역할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는 작품이 주목받지 못하거나 그런 적도 있었고. 연극하다가 영화나 드라마에 오면 형사나 깡패 같은 배역을 많이 하게 되다 보니 악역도 많이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연극을 하던 배우들이 거칠고 센 기운들이 있다 보니 그런 배역을 많이 하게 돼요."

▲ '시그널' 정해균

◆ '시그널'의 엔딩, "저도 안치수가 출소하고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시그널'은 마지막회에서 당초 이재한 형사(조진웅 분)가 죽었던 날인 2000년 8월 3일의 역사가 극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선보였다. 당초 역사대로라면 2000년 8월 3일 김범주(장현성 분)의 흉계에 빠져 그의 수족이었던 안치수(정해균 분)에게 선일정신병원 인근 야산에서 총에 맞아 죽었어야 할 조진웅이 현재의 차수현(김혜수 분)에게 무전을 듣고 대비를 해 역으로 함정을 파며 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후 '시그널'은 조진웅이 되살아났지만 그날 도망간 장현성을 체포하려다 비리 국회의원 장영철(손현주 분)의 부하들에게 습격당하고 2015년 현재까지 실종상태라는 새로운 미스터리를 제기하며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리고 두 번째 시즌의 가능성까지도 여지를 남겨뒀다.

그런데 시청자들 모두에게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던 '시그널'의 '열린 결말'에서 끝까지 언급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원래대로라면 조진웅을 죽이는 장본인이었던 '안치수'를 연기한 정해균의 15년 후 행방이다. 장현성은 이후 조진웅의 추격을 받다가 손현주의 부하들에게 맞아서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2000년 8월 3일 현장에서 체포된 '안치수'의 이후 행적은 '시그널'의 마지막회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붙잡혔으니 아마 죗값을 치렀겠죠. 살인미수 현행범이고, 김범주를 도와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으니까요. 근데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저도 사실 알지 못해요. 15년 동안이나 징역을 살지는 않았을 테고, 한 7년 정도 살다 나왔을 것 같은데."

▲ '시그널' 정해균

"제 촬영은 체포되는 장면에서 모두 끝났어요. 그런데 '안치수'를 연기한 배우로서 그 뒷 이야기가 굉장히 궁금하긴 해요. 감옥에 들어가서 병원비도 못 구했을 텐데 심장병을 앓고 있던 딸은 어떻게 됐을지 걱정도 되고. 극 중에서 안치수가 딸이 어렸을 때 아내와 이혼했을 것이라는 설정이 있는데, 혹시 집 나간 아내가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저도 안치수가 출소하고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재미난 것은 정해균이 조진웅을 살해하던 그 장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드라마에서는 2회에서 이미 무전기를 통해 조진웅이 총에 맞는 소리가 박해영(이제훈 분)에게 전해지지만, 정작 조진웅을 살해한 장본인인 정해균이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그널' 8회 분량을 촬영할 때였다.

"2회에 등장하는 조진웅 씨 장면은 먼저 촬영된 장면이었고, 그때는 제가 촬영을 같이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재한 형사가 죽는 장면이 처음 공개되고 나서는 저도 이재한을 죽이는 것이 안치수인지, 아니면 조폭 김성범(주명철 분)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당시 저는 6회까지만 대본을 받은 상태여서 제가 이재한 형사를 죽이는 것인지는 저도 몰랐어요."

▲ '시그널' 정해균

◆ 연극에서 영화로, 다시 연극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정해균은 극단 여행자에서 오랜 세월 연극배우로 활동해 왔다. 극단 여행자의 대표작인 '한여름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요정들을 한국의 도깨비들로 바꾸고 남녀의 성 역할도 뒤집어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았을 뿐 아니라 2012년 런던올림픽 기념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중국 베세토연극제 등에 초청되어 공연되고, 한국 연극으로는 최초로 영국의 권위있는 무대인 바비칸센터에서 공연되기도 한 작품이다. 그리고 정해균은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양정웅 연출에 이어 극단 여행자의 부대표를 함께 맡고 있다.

"해외공연을 다니면 그래도 돈을 많이 벌지 않냐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진 않아요. 보통 해외공연에 초청되면 비행기 티켓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고 현지에서 공연 개런티를 받는데, 지원비는 비행기표 사면 끝나고 개런티로도 현지에서 연습하고 밥먹고 이러다 보면 1인당 20만원, 30만원 정도 돌아가요."

"한 번은 인도에 초청되어 공연을 갔는데 한 도시에 공항이 두 개라 공항을 착각해서 비행기를 놓친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극단 멤버들 전원이 비행기 티켓을 환불도 못 받고 새로 산 적이 있는데 성수기라 푯값도 비싸게 준데다가 자리도 모자라 절반 정도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타야 했어요. 그래서 인도에 가서 개런티의 몇 배인 5천만 원 정도를 쓰고 와서 오히려 큰 적자를 본 적도 있죠."

그래도 정해균은 연극무대에서는 분명 축복받은 배우 중 한 명이다. 그가 부대표로 있는 극단 여행자의 공연 레퍼토리는 소규모 극단이 자생하기 어렵다는 대학로 무대에서도 얄팍한 상업극이 아닌 고전극의 재해석 위주로 공연하면서도 작품성, 흥행성 모두에서 언제나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다.

정해균은 아직도 배우로서의 정점을 연극무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바쁘게 활동하느라 상대적으로 연극무대에 자주 못 올라가고 있지만, 언제든 시간이 되고 기회가 온다면 다시 연극무대에 설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시그널'로 확실히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정해균이 본업인 연극무대로 돌아가면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그리고 앞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또 어떤 활약을 보일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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