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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5) '동주' 최희서, 쿠미의 '사랑스런 추억'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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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5) '동주' 최희서, 쿠미의 '사랑스런 추억' (인터뷰Q)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3.24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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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영화 '동주'와 배우 최희서(29)의 만남은 여러모로 운명적이다. 최희서가 '동주'에서 맡은 후카다 쿠미는 윤동주와 그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이다. 실제로 윤동주는 최희서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시인이다. 최희서가 난생처음 낭송한 시는 윤동주의 '서시'였고, 처음 스스로 산 시집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였다. 직접 쓴 시를 출품해 본 것도 모교 연세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윤동주시문학상이 처음이었다.

최희서는 '동주'에서 여섯 신에만 출연하지만, 일본어 대사를 자연스레 소화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윤동주를 돕는 모습으로 관객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포츠Q(큐) 오소영 기자] '동주'를 본 관객들은 최희서를 일본인 배우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 관객의 눈에도 마찬가지였다. 최희서를 기쁘게 했던 칭찬 중 하나는 재일교포 배우 김인우(고등형사 역)의 일본 친구들로부터 받은 "일본인인 줄 알았다"는 극찬이었다고 했다.

▲ '동주' 최희서 [사진=씨앤코 엔터테인먼트 제공]

◆ 가상의 인물 '쿠미'를 그려내기까지

쿠미는 실존인물이 아니다. 최희서는 "윤동주를 존경하고 나중엔 사모하기까지 하는 이 여성이 얼마나 큰 감정을 갖고 있을지" 생각하며 캐릭터에 대해 잡아갔다. "일본인으로서 조선인인 동주를 지켜보는 마음"과, 국적과 처한 상황은 다르나 "그 어떤 것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영혼의 교류"에 대해 초점을 잡았다.

일본어 연기는 어린시절 5년간 현지에서 살았던 경험과, 김인우의 도움을 받아 오사카 사투리를 고쳐가며 연습한 결과다. 이밖에도 당시 일본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옛 영화를 보며 몸가짐, 자세 등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기울였다.

여섯 신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표현의 폭엔 더욱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동주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영화 상엔 드러나지 않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크기 때문에 내적 감정을 어떻게 쌓을지에 대해 중점을 뒀다.

'동주'를 찍은 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는 기록엔 남지 않았으나 동주를 사랑했고 그의 시를 즐겨 읽었던 쿠미같은 인물이 존재했을 것이란 생각은 더 커졌다.

"'동주' 팀과 함께 무대인사를 다녀오는 길에 다함께 다큐멘터리 '불멸의 청년, 윤동주'를 함께 봤어요. 윤동주 시인과 함께 공부했단 고령의 일본 할머니가 출연하셨는데, 기록에만 남지 않았을 뿐 쿠미같은 분들이 계셨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분들이 계시다면 '동주'를 꼭 보셨으면 좋겠단 생각도 했고요."

◆ 타임슬립하듯 빠져들어간 동주와의 사랑스런 추억

최희서는 윤동주와 전차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장면으로 '동주'의 촬영을 시작했다. 예정대로라면 다카마쓰 교수의 집에서 나눴을 대화지만, 현장 문제로 그 전날 촬영장소가 바뀌게 됐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어요. 준비를 많이 하면 너무 짜인 듯한 느낌이 날까봐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대본을 들여다 보며 부담이 많았죠. 그랬는데 장소가 바뀌게 되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 당황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생각과는 달랐던 촬영장과 낯선 공기 속에서 마법같은 순간은 찾아왔다.

▲ '동주' 최희서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동주를 멀리서만 바라보다가 한 발짝 성큼 다가가는 신이에요. 대사를 한 후 말없이 두 사람이 창밖을 보는데, 느낌이 이상했어요. 하늘이가 정말 윤동주 시인 같고, 제가 그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장소, 상대 배우와의 밸런스가 잘 맞아서일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실제같은 순간이었어요."

전차 장면에서 강하늘이 내레이션하는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은 최희서가 '동주'를 찍은 후 가장 좋아하게 된 시이기도 하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란 마지막 행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단 설명이다.

이밖에, 쿠미가 시집을 펴낼 준비를 하고 동주를 찾아간 장면은 북받치는 감정을 모두 담아낸 순간이기도 했다.

"동주를 만나고 싶어 왔지만 결국 이별해야 하죠. 쿠미가 원하지 않는, 생각했던 이상이 무너질 수 있는 순간이지만 쿠미는 그 대신 시집 제목에 대해 물어요. 무너지기보단, 동주와 함께했던 의미있는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 '동주' 일본어 대사 번역도 도와…고마운 인연 얻어

'동주'는 19회차만에 촬영을 마쳐, 한 달 동안 배우들과 제작진은 끈끈한 팀이 됐다. 최희서는 특히 김인우와 함께 촬영 전 시나리오 회의부터 참석하며 일본어 번역을 자발적으로 도왔다. 또한 현장에선 강하늘과 박정민의 일본어 대사를 도와주기도 했다.

최희서가 거꾸로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다. 지금은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동주' 촬영 때만 해도 소속사와 매니저 없이 혼자라 도움을 받을 수 없던 때였다.

"카페 장면을 찍을 때 긴장이 많이 됐어요. 결국은 첫 테이크가 영화엔 쓰였지만, 욕심이 나 더 찍었거든요. 모니터를 하러 가야 하는데, 눈물도 많이 나고 감정이 북받쳐 집중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하늘이가 저 대신 봐 주러 갔더라고요. 저보다 영화 촬영 경력도 많다보니 모니터링도 해 주고 옆에서 여유있는 모습으로 있어줘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최희서가 거듭 감사를 표하는 '동주'의 각본과 제작을 맡은 신연식 감독과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은 그에게 소중한 인연이 됐다.

"이준익 감독님은 감독으로서, 사람으로서 너무나 멋진 분이에요. 아버지만큼 존경할 분이 생긴 것 같단 생각이 들었죠. 언제든 함께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시고, 문제가 있을 땐 '왜 문제야?'가 아닌 '어떤 문제야?'라며 해결하려는 분이죠. 전 감독님과 첫 작품이고 제 전작을 보신 경우도 아니었는데도 현장에서 믿어주셔서 굉장히 큰 용기를 얻었어요."

▲ '동주' 최희서 [사진=씨앤코 엔터테인먼트 제공]

최희서는 이준익 감독이 '동주' 팀 밴드에 남긴 말이라며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줬다. "영화에 인생을 걸지 마라. 그 영화를 같이 찍는 사람에게 인생을 걸어라. 그리고 죽는 날까지 재밌게 사는 자가 승자다."

신연식 감독은 최희서와 '동주'를 만나게 해 준 장본인이고, 그가 앞으로 계속해 연기를 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돼 줬다.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전 '이대로 가다보면 배우를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어요. 그럴 때 제게 명함을 건네주신 감독님께 너무나 감사드려요."

◆ '동주' 캐스팅, 치열함 있어 가능했다

최희서가 '동주'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지하철에서 신연식 감독과 우연히 만나면서부터다. 지하철에서 대본 연습을 하던 최희서에게 신연식 감독이 명함을 건네며 인연이 시작됐단 건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평범한 대본 연습으론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대본을 보면서 미친 사람처럼 연습을 하고 있었대요. 뭔가를 눈앞에 둔, 절실한 사람처럼 보였는지 '어디 오디션 가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땐 그 정도로 눈에 띌 줄 몰랐는데…. 연인의 싸움을 그린 연극이라 공격적인 내용이 많아서 얼굴도 찡그리고 목소리도 좀 더 커졌을 거예요. 그후론 민폐될까 그렇게 하지 않죠.(웃음)"

당장 오디션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연극 연습 한달째 접어들던 때였다. 최희서는 스스로를 "들이는 시간만큼 결과가 나오는 철저한 노력형"이라고 평한다. 몸에 밴 성실함으로 매일 치열하게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기회다.

노력과 끈기는 그간의 흔적으로도 알 수 있다. 최희서는 수년 전 영화 '킹콩을 들다'(2009)의 여순 역과 드라마 '오늘만 같아라'(2011)의 크리스티나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후 연극 무대에 오르고, 다양한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짧지 않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최희서에겐 그 기다림마저 더 좋은 연기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듯했다.

▲ '동주' 최희서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사비로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연기를 계속했고, 영어 과외와 번역, 카페, 액세서리 노점상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일을 병행했다.

이같은 치열함은 학창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시절 1년간 수학한 미국 버클리대학에선 네 번의 공연을 올려 교환학생으로는 이례적으로 공연예술공로상도 수상했다. 연기를 깊이있게 배우고자 영국왕립연극학교 입학에도 도전했다. 각국에서 온 지원자 중 소수의 인원만 뽑기 때문에 입학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4차 시험 중 2차까지 합격하기도 했다. "그저 좋고, 재밌어서 한 일"이란 그간의 경험은 이후 또 어떤 방식으로 최희서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앞으로 최희서는 '동주'처럼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저예산 영화인 '동주'는 홍보 비용이 적은 대신 감독과 배우들이 뜻을 모아 전국 곳곳으로 찾아가 관객을 만났다. 그중 순천에서 만난 어머니뻘 여성 관객은 그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다들 질문을 하던 중에, 한 아주머니께서 '질문할 건 없고 다만 이런 영화를 찍어줘서 감독, 배우에게 고맙다'며 우시는데 마음이 찡했어요. 앞으로도 '동주'처럼 많은 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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