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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9) 별은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법, 늦깎이 태권도 올림피언 오혜리의 ‘2전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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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9) 별은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법, 늦깎이 태권도 올림피언 오혜리의 ‘2전3기’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3.30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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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런던 올림픽 대표 선발전 탈락 시련…'2인자' '국내용' 씻고 데뷔 올림픽서 금빛발차기 도전

[200자 Tip] 어렸을 때부터 유망주, 기대주로 꼽힌 선수는 많다. 국가대표로 대성하는 선수도 있지만 중간에 좌절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그대로 대입해보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태권도 67kg급에 출전하는 오혜리(28·춘천시청)는 정말로 강하다. 수많은 좌절이 있었지만 긍정 마인드로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오혜리는 자신에게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픽을 후회없이 맞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태릉=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는 특정국가, 더욱 확실하게 얘기해 종주국 한국에 메달이 쏠릴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남녀 4체급, 모두 8체급 가운데 한 국가에서 4체급까지만 출전하도록 했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부터는 8체급 모두 출전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 오혜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분루를 삼켰다. 심지어 아시안게임도 나간 적이 없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 끝에 28세가 돼서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올림픽 본선진출 자격 규정도 개정됐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까지는 지역 예선과 세계 예선을 통해서만 본선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리우 올림픽부터는 지난해 12월 기준 올림픽 랭킹 6위권 선수에게 자동출전권이 주어진다. 이에 따라 남자 58kg급 김태훈(22·동아대)과 68kg급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 80kg초과급 차동민(30·한국가스공사), 여자 49kg급 김소희(22·한국체대), 67kg급 오혜리가 올림픽에 나가게 됐다.

다음달 필리핀에서 아시아지역 예선전에 관계없이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5명의 선수는 이미 지난 1월부터 태릉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현재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은 2명의 여자선수 가운데 언니인 오혜리로서는 15년 태권도 선수 생활에서 처음으로 맞는 올림픽이어서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

◆ 두 번의 좌절 끝에 찾아온 올림픽 출전 기회 "종합대회 출전은 처음"

강릉 관동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한 오혜리는 강원체육고등학교 진학 후 여고부에서 상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같은 나이 또래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쳤다. 한국 여자태권도의 희망이라는 찬사도 뒤따랐다.

실제로 고교 졸업반이던 2006년 전국체전 여고부 웰터급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2008년 전국체전 여대부 미들급 동메달, 2009년 전국체전 여대부 미들급 은메달을 거쳐 대학 졸업반이던 2010년 전국체전 여대부 미들급 73kg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 실업팀 서울시청에 입단한 이후에도 2011, 2012년 전국체전 73kg급 2연패를 달성하기도 했다.

태권도에서 나름 최고가 됐으니 올림픽도 쉽게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혜리에게 좀처럼 올림픽 출전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오혜리는 2번의 올림픽 도전에서 실패를 맛봐야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대표 최종선발전까지 나갔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황경선(30·고양시청)에게 밀렸다. 2012년 런던 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는 대회 2주 전에 왼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바람에 제대로 경기도 해보지 못하고 역시 탈락했다.

▲ 중고등학교 때부터 태권도 유망주였던 오혜리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게다가 잦은 부상 때문에 성적을 끌어올리지 못한 것도 오혜리가 '늦깎이 올림피언'이 된 이유다.

"대표선수가 되면 언제라도 올림픽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다보니 세계선수권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고 메달 따는 것도 더 어려웠어요. 점점 올림픽은 '하늘이 점지해준 사람만 나가는 거구나'하는 생각만 들면서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애써 위로했죠."

오혜리는 심지어(?) 아시안게임 출전 경력도 없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대표 선발전과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대표 선발전에서도 모두 아쉬움만 맛봤다. 오혜리가 국제종합대회에 출전한 것은 2009년 베오그라드 하계유니버시아드뿐이다.

유니버시아드에서 은메달을 따낸 오혜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두 차례 출전한 적은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 종합대회 출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언제나 오혜리에게 따라붙는, 반갑지 않은 꼬리표는 '국내용'이었다.

◆ 첫 올림픽에 대한 부담? "부상없이 준비만 잘하면 문제없어요"

어느덧 20대 후반이 된 오혜리는 당장 은퇴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다. 물론 요즘은 선수들이 체력관리를 잘하기 때문에 30대도 대표로 뛰는 경우도 있지만 오혜리 역시 지금까지 자신이 현역으로 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단다.

"처음 실업팀에 들어갔을 때도 5년은 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벌써 6년차가 됐어요. 적지 않게 좌절을 경험했는데 지금까지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제 스스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된 실패를 경험할 때만 하더라도 짜증나고 눈물이 쏟아지고 불평불만을 쏟아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이런다고 뭐 좋아질 것이 있나.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자'는 생각을 가지니까 이겨낼 수 있더라고요. 물론 제가 이대로 그냥 태권도를 놓는다면 끝나는 거겠죠. 하지만 역시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태권도에 대한 욕심과 미련이 남아 있었기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죠."

오혜리는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좌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상도 적지 않게 겪었다. 허벅지 근육을 다쳤던 2012년 런던 올림픽대표 선발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해 하반기부터 기량도 발전시키고 컨디션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3년초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오랜 부상 때문에 인천 아시안게임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는 아픔이 이어졌다. 지금은 부상이 완쾌됐지만 다쳤던 곳에 대한 보강은 더 이뤄져야 한다.

▲ 오혜리는 지난해 5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렸던 세계태권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비로소 2인자에서 벗어났다. 이와 함께 국내용이라는 평가를 떨쳐내고 지난해 세계랭킹을 끌어올려 올림픽 자력 진출이라는 값진 결과물을 수확해냈다. [사진=세계태권도연맹 공식 페이스북 캡처]

"선수라면 부상은 달고 살아야 하는 숙명이죠. 그리고 부상이라는 것도 제가 준비를 잘하지 못했기에 당하는 것이니 제 책임이라고 봐야죠. 지금은 올림픽 본선 티켓을 땄으니 남은 기간 동안 부상을 조심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훈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하고 있죠. 체력 테스트 결과를 보면서 많이 자극이 됩니다. 막상 훈련은 힘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힘들게 하는만큼 점점 자신감이 붙어요. 준비만 잘하면 자신감을 갖고 올림픽을 잘 치를 수 있을 것 같아요."

28세 노장 축에 든다고는 하지만 유니버시아드를 제외하고는 종합대회에 나가보지 못했기에 '경험 부족'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혜리는 세계선수권에 나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올림픽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혜리는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에서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지만 지난해 5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1인자가 됐다.

"15년 선수 생활, 제 인생에 가장 큰 대회를 나가긴 하지만 어차피 세계선수권에 나왔던 선수들이 그대로 올림픽에 나오는 거잖아요.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봐요. 그리고 뭐든지 시작은 마음에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중요한 거죠. 제가 준비를 잘하고 부상 없이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준비를 못한다면 어떤 선수에게도 질 수도 있겠죠. 준비를 잘하지 못해 후회하기 싫어서 버거운 훈련을 묵묵히 소화하고 있어요."

◆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태릉 생활, 힘들더라도 즐겁게

오혜리는 내심 2년 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올림픽에만 눈을 맞추고 있다. 올림픽에서 자신이 잘하고 체력이 된다면 아시안게임 첫 출전 기회도 저절로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태릉 선수촌 생활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그동안 태릉 선수촌에 들어와서 생활한 것을 되돌아보면 좋았던 것보다 힘든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2진, 대표 선수들의 스파링 파트너로 들어온 적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제가 제대로 태릉 생활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죠.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선수촌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태릉 생활일 수도 있죠."

▲ 오혜리는 지난해 5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오랜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났다. 27세 나이에 비로소 세계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오혜리는 내친김에 올림픽 정상까지 넘본다. [사진=세계태권도연맹 공식 페이스북 캡처]

오혜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피아드에서 2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메달이 소중하다고는 하지만 2등이 얼마나 서러운 것인지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대표 선발전이 그랬고 세계선수권에서도 '넘버2'를 맛본 적이 많다.

"세계선수권을 치르면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 2011년 경주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이예요. 결승전까지 나갔는데 아쉽게 에팡스 글라디스(프랑스)를 맞아 서든데스 끝에 아쉽게 졌어요. 그 이후로 이왕 할 거면 부상없이 1등을 하기 위해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해요. 리우 올림픽에 수많은 강자가 있지만 한판 한판 충실히 하다보면 1등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오혜리의 올림픽 이후 계획은 어떨까. 오혜리는 꿈이 많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는 욕심 부리지 않겠지만 일단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는 해보려해요. 또 현역에서 은퇴하면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또 박사학위를 따서 스포츠 전문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스포츠계를 보니 생각보다 할 일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기왕이면 오랫동안 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일, 제가 관심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스포츠 마케팅이나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일단 올림픽에 모든 것을 쏟을래요."

한국 태권도는 런던 올림픽에서 8체급 가운데 금메달(황경선)과 은메달(이대훈)을 1개씩 따내는데 그치며 사상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이 때문에 한국 태권도는 리우 올림픽에서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이 가운데 산전수전 다 겪은 오혜리가 '큰일'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길 수 없다.

▲ 오혜리는 지난해 세계선수권과 그랑프리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긴 했지만 너무나 많은 2등도 경험했다. 2등이 얼마나 서러운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올림픽에서 2등은 생각하지 않는다.

■ 오혜리 프로필

△ 생년월일 = 1988년 4월 30일
△ 소속팀 = 춘천시청
△ 출신학교 = 관동중-강원체고-한국체대
△ 주요경력
- 2009년 유니버시아드 대표
- 2010년 아시아선수권 대표
-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 대표
- 2015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대표
△ 수상경력
- 2006년 전국체전 여고부 웰터급 은메달
- 2008년 전국체전 여일반부 미들급 동메달
- 2009년 전국체전 여일반부 미들급 은메달
- 2009년 베오그라드 유니버시아드 72kg급 은메달
- 2010년 전국체전 여대부 73kg급 금메달
- 2010년 아스타나 아시아선수권 73kg급 금메달
- 2011년 전국체전 여일반부 73kg급 금메달
- 2011년 경주 세계선수권 73kg급 은메달
- 2012년 전국체전 여일반부 73kg급 금메달
- 2013년 전국체전 여일반부 73kg급 은메달
- 2014년 라스베이거스 US오픈 67kg급 금메달
- 2014년 카스텔론 스페인 오픈 67kg급 동메달
- 2014년 인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오픈 67kg급 금메달
- 2014년 로잔 스위스 오픈 67kg급 동메달
- 2015년 춘천 한국오픈 73kg급 금메달
- 2015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73kg급 금메달
- 2015년 멜버른 호주 오픈 67kg급 동메달
- 2015년 모스크바 그랑프리 67kg급 금메달
- 2015년 맨체스터 그랑프리 67kg급 동메달
- 2015년 알마티 카자흐스탄 오픈 67kg급 금메달

[취재후기] 아무리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오혜리도 수년 동안 포기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 오혜리가 국가대표 되기가 힘들고 세계 무대에서 메달따기가 힘들다며 중간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자신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로 태권도에만 매진했던 것이 뒤늦게나마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고 했고, 별은 어두울수록 더 빛난다고 했다. 자신의 기량을 뒤늦게 만개한만큼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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