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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고교처세왕', 판타지를 리얼리티로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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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고교처세왕', 판타지를 리얼리티로 풀다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08.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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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오소영 기자] 남자는 고등학생과 대기업 본부장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한다. 여자는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밝고 씩씩하다. 남자는 하루아침에 맡게 된 본부장 신분이지만 회사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여자는 부족한 스펙에도 남주인공들의 사랑을 받는다.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의 주인공 이민석(서인국)과 정수영(이하나)의 얘기다.

'고교처세왕'은 고교생의 이중생활이란 설정을 기본으로, 연하남·신데렐라 판타지를 포함해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복수극 등 온갖 뻔한 드라마 공식들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기보단 현실적인 부분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설정은 비현실적이나 곳곳에서 리얼리티를 살린 덕분이다.

▲ '고교처세왕'은 고등학생과 대기업 본부장의 이중생활을 하는 이민석(서인국)의 이야기다. [사진=tvN 제공]

현실을 일깨워 주는 디테일한 상황과 대사들

'고교처세왕'은 비현실적 설정을 기본으로 하지만 각 장면과 대사에서 세심하게 리얼리티를 살렸다. 주인공 정수영은 대기업 계약직이다. 말투도 어눌하고 전체적으로 어벙한 인상을 주는 수영이 고위직인 본부장의 눈에 든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현실을 일깨워주는 대사들을 곳곳에 던지며 이 드라마는 판타지로 넘어가지 않고 현실성을 강조한다.

수영은 2년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 간부는 그녀의 이름조차 잘못 알고 있다. 간부는 민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수영과 의기투합하게 됐을 때서야 그녀의 이름을 정주영이 아닌 정수영으로 바로 알게 됐을 정도다. 또한 수영은 간부의 눈에 거슬려, 이유도 모른 채 재계약에 실패한다. 결국 민석의 도움으로 비서로 채용된다. 하루아침에 고등학생에서 본부장이 된 민석은 "어떻게 사람을 하루아침에 해고할 수 있냐"고 말하지만 이는 현실과는 먼 얘기다. 오히려 "계약직 직원 하나 잘린 게 무슨 큰일이냐"는 회사 간부의 말이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민석의 정체가 밝혀진 후, 회사 간부들은 수영과 민석이 연인 사이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장면이 있다. 간부는 "정수영이 또라이도 아니고 고딩인 걸 알고도 사귀겠냐"고 말한다. 그들 연인 사이가 일반적이진 않단 것을 언급해주는 이런 장면들은 마냥 이 드라마가 비현실적이지만은 않단 걸 보여준다.

어색함 없는 '고등학생', '찌질녀' 적격 연기자들

비현실적 설정을 안고 가는 드라마에서 주연들의 영향력은 크다. 연기는 물론이고 비주얼적인 요소나 말투 등 캐릭터에 녹아들지 않는다면 시청자들은 어색한 인상을 받게 된다. '고교처세왕'은 이런 면에서, 무리일 수 있는 황당한 설정의 캐릭터들에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 온 적격의 연기자들을 캐스팅했다.

민석 역의 서인국은 '응답하라1997'에서 고등학생을 연기했다. '응칠'의 성공으로 서인국은 20대 후반의 나이에도 고교생 역 연기자의 대표격이 되는 데 성공했다. '고교처세왕'의 18세 본부장 이민석은 연하남·본부장 판타지의 진화판이다. 민석은 교복을 입으면 학생으로, 수트를 입으면 본부장으로 변신한다. 자칫 시청자들에게 어색함을 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서인국은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한다.

정수영을 연기한 이하나의 경우도 '메리대구 공방전'의 황메리 역으로 4차원 캐릭터에 대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케이스다. 서인국과 이하나는 정석적인 미남 미녀는 아니지만 그 덕택에 더욱더 현실에 있을 법한 느낌을 준다. 늘 나풀거리는 긴 치마를 입고, 동그란 안경과 부스스한 머리, 언제나 집어넣고 다니는 거북목 등은 정수영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이미 고등학생과 4차원 캐릭터 연기에서 인정받은 두 배우는 위화감 없는 비주얼과 디테일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어색함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이다.

▲ 민석의 비밀이 밝혀진 후 정수영(이하나)은 어른으로서 그를 다독여준다. [사진=tvN제공]

일반적인 연하남·신데렐라 판타지를 깨는 이민석과 정수영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메인 캐릭터들이 각각 안고 있는 결핍적인 모습이다. 민석이 스스로 드러내길 두려워 했던 부분은 고등학생이란 자신의 신분이었다. 본부장의 모습으로 20대 후반인 수영과 교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면 수영이 부족한 점은 어벙하고 찌질해 보이는 겉모습과 좋지 않은 스펙이다. 씩씩하게 살지만 늘 회사 재계약에 대해 걱정하고 실직했을 땐 열심히 구인란을 들여다 봐야 한다.

민석과 수영이 각각 가지고 있는 이런 결핍적인 모습은 극이 진행되며 해결된다. 민석이 고등학생이란 게 밝혀지며 수영은 배신감에 이별을 통보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겉모습보단 진심이 중요하단 것을 깨닫고 둘은 다시 연인이 된다.

초반에 민석을 "본부장님"이라 부르며 부하 직원으로서 대했던 수영은, 민석의 정체를 알게 된 후론 초반의 찌질녀를 넘어선 속 깊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민석을 다독이며 힘든 일을 버텨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직 성장이 덜 된 고등학생인 민석을 어른으로서 포용해주는 것이다.

드라마의 기본 설정인 '고교생의 이중생활'이란 비현실적인 설정을 어른과 청소년의 만남이란 흐름으로 풀면서 보다 둘의 캐릭터는 리얼해진다. 자연스럽게 둘의 성장까지도 그린다.

신데렐라 신드롬 드라마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며 자신이 그렇게 되길 꿈꾼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는 드라마 채널이 다양화되고 시청자들의 선택의 폭은 보다 넓어졌다. 시청자들은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허무맹랑함에 빠지기보단 드라마로 하루의 피로를 잊고 일상의 활력을 얻는다. 참신한 설정으로 시작해도 결국 식상한 흐름에 빠져드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런 식으로 온갖 판타지들이 모여도 새롭게 풀어나갈 수도 있다.

'고교처세왕'은 세심한 장치들로 판타지와 리얼리티 모두를 잡았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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