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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4) 농구가 좋아 '토요일 러브콜'도 포기한 여자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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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4) 농구가 좋아 '토요일 러브콜'도 포기한 여자들(上)
  • 홍현석 기자
  • 승인 2014.08.12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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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자농구 동호회 ASAP

요즘은 보는 스포츠의 시대에서 즐기는 스포츠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남녀의 구분이 없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는 야구를 하는 여자, 농구를 즐기는 여자 등 과거에만 해도 남자 종목으로 여겨졌던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 종목도 다양하다. 구기 종목을 비롯해 격투기와 익스트림스포츠까지 각양각색이다. 전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여풍 현상이 스포츠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 스포츠Q는 시리즈 ‘여자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스포츠를 몸소 즐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한국 스포츠의 저변 확대와 균형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므로. [편집자 주]

[300자 Tip!] 농구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스포츠 종목이다. 학교에 가봐도 점심시간이면 골대 밑에서 농구를 즐기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농구하는 여학생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또 여자들이 농구를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놀라기 일쑤다. 그러나 아직 농구대잔치의 인기 여운이 남아 있던 2000년 아마추어 농구대회에서 만난 여성들이 모여 만든 농구팀이 있다. 국내 최초의 여자농구 동호회 ASAP(As Soon AS Possible, 가능한 한 빨리)다. 한 포털 카페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지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2001년부터 동호회 이름을 걸고 대회까지 개최하면서 여자농구 저변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그저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농구공을 갖고 땀 흘리며 경기하는 것이 좋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자못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

▲ ASAP(As Soon As Possible) 선수들은 매주 토요일 4시 체육관에 모여 농구를 한다.

[스포츠Q 글 홍현석·사진 최대성 기자]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여자주인공 성다정(고아라 분)은 농구에 흠뻑 빠져있는 여대생이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데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위해 무리해서라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에 나선다.

1990년대 중반 오빠부대의 열기는 실로 뜨거웠다. 농구에 대한 사랑을 거침없이 표현했고 그 가운데 몇몇은 직접 농구를 즐기고 싶어 했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팀을 만들었다. 2000년부터 국내 여자농구 동호회의 전설로 남아 있는 'ASAP(어셉) 여자농구 동호회'고 바로 그런 팀이다. ‘가능한 한 빠르게 농구를 하자’라는 의미에서 ASAP(AS SOON AS POSSIBLE)으로 이름지었다.

자신들의 동호회 이름을 건 대회를 앞두고 훈련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남현교회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18명 선수들은 한데 모여 몸을 푼 뒤 이내 농구코트를 뛰었다.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은 프로 못지 않게 진지해 보였다.

▲ ASAP 선수들아 훈련 시작 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 농구의 매력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아, 진짜 아쉽다!”

속공을 하던 엄아영(30·회사원)씨가 드리블을 하던 동료가 볼을 흘리자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는 수비를 하기 위해 백코트를 한다. 동료들을 독려하면서 수비에 열을 올린다.

체육관에는 에어컨도 없다. 습하고 더운 날씨지만 그들은 뛰고 또 뛴다. 힘들어 하는 표정이지만 웃음은 떠나지 않는다. 농구가 좋기 때문이다. 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그들은 행복해 한다.

스포츠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가 농구에 관심이 생겼다는 박혜연(28·회사원)씨는 “팀 플레이를 하면서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다”며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스피드를 잊지 못해 농구에 빠져 살고 있다”고 농구의 묘미를 설명했다.

ASAP은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 개봉역 근처의 한 체육관으로 모인다. 일주일 중 황금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날 그들은 농구를 즐기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는다.

▲ ASAP 에이스 엄아영(가운데)씨와 임주현(왼쪽)씨가 백코트하면서 동료들의 위치를 지정하고 있다.

2008년부터 ASAP에서 뛰고 있는 주장 이보람(31·회사원)씨는 농구 때문에 남자친구와도 헤어진 경험이 있다.

“남자친구가 농구에 미쳐있는 나를 정말로 싫어했다. 하지만 농구도 하고 싶고 사람들도 보고 싶어서 남자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농구장에 왔는데 들켜버려서 헤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며 각별한 농구 사랑을 드러냈다.

남자와 농구 중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짓궂은 질문에도 “당연히 농구”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 부상도 막지 못하는 농구에 대한 열정

농구는 부상이 많이 발생하는 종목이다. 좁은 코트 안에서 볼 다툼하느라 몸싸움을 벌이다 보면 손가락이나 발목, 허리 등 성한 곳이 없다.

농구하다가 손가락 골절로 쉬다 2개월만에 다시 코트에 나선 김민지(22·대학생)씨는 “손가락 부러지는 것보다 농구 못하는 게 더 힘들었다”며 “다같이 농구할 때 행복하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허락받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밝게 웃는다.

동호회 운영진인 엄아영 씨는 발목 부상으로 한동안 농구공을 잡지 못했지만 이날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빠르고 많이 움직였다. 그는 “발목이 아프기도 하고 한동안 농구를 하지 않아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단지 좋기 때문에 농구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김혜지(가운데 아래쪽)씨가 경기를 하던 도중에 넘어지자 김다온(가운데)씨 등 동료들이 달려와 일으켜주고 있다.

이날 처음 농구라는 종목을 해본 유혜미(27·트레이너)씨는 손가락 부상을 입어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하지만 그는 “아는 언니가 동호회 회원이어서 추천으로 들어왔다. 물론 아직까지는 농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재미있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 10년 넘은 전통, 국내 최초의 여자농구 동호회

동호회가 생긴 지 어느덧 10년을 넘어 15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농구 동호회로 자리매김했다. 최초라는 타이틀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ASAP에서 막내에 속하는 조문강(22·대학생)씨는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 1년 동안 유학 갔을 때 농구에 빠졌지만 막상 귀국해서는 같이 농구할 사람들이 없었다”며 “농구 동호회를 찾던 중 ASAP을 발견했고 지금 재미있게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보람 씨는 “예전보다 여자농구 동호회나 팀들이 많이 생겼고 교류전 등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고 설명한 뒤 “여자프로농구(WKBL)의 인기와 함께 ASAP의 노력도 있었다”고 평가해 흥미를 더했다.

▲ 조문강(가운데)씨가 공을 쫓아가고 있다.

ASAP은 2001년 당시 스포츠 업체에서 주도하는 행사가 있어 작은 대회를 개최했다가 2005년부터 중단되면서 직접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그들의 노력으로 여자 농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매년 8월이면 열리는 이 대회를 잘 안다.

이보람 씨 역시 “동호회에 들어와 4년 째 대회를 열고 있는데 대회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여 대회를 개최했을 때 뿌듯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며 “올해 대회도 오는 15일에 열리는데 지난해보다 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성공 개최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들을 위해 후원해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농구 유니폼을 만드는 하트스포츠의 이청하(38) 대표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5년 전 지인의 소개로 ASAP과 인연을 맺었고 어렵게 대회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4년 전부터 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 ASAP 농구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유현정, 이인애, 조아라, 정승은, 김해나라, 김다온, 김수민, 신가이, 엄아영, 김혜자, 박혜연, 이보람, 임주현, 김민지, 조현아.

그는 “회사 홍보 차원에서 후원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대단하다. 남자 농구팀은 많지만 여자 동호회가 많지 않아서 남자들도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고 직접 대회를 찾아주는 사람들도 많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농구가 좋아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대회까지 주최하고 있는 ASAP이 한국 농구 발전의 숨은 공로자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취재후기] 코트 밖에서는 농담 한마디에 까르르 웃는 평범한 여자들이지만 농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 격렬한 몸싸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력은 프로선수들에 비해 분명 떨어지는 부분이 많지만 농구에 대한 자세와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 못지않다. 이들을 취재하며 절로 따스한 응원을 보내게 되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힘을 느꼈다.

toptorre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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