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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생 백점짜리 연기 한번이면 충분" 배우 윤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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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평생 백점짜리 연기 한번이면 충분" 배우 윤국로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08.12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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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오소영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윤국로는 8년차 배우다. 대중들에겐 낯설지만 연극 ‘배우할인’, ‘쥐덫’, ‘맥베스’ 등 굵직한 작품을 해왔다. 그의 공연을 보고 러브콜을 보낸 소속사도 여럿이다. 그동안 소속사 없이 활동해오다 최근 그는 적극적으로 관계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영화와 방송 쪽으로도 활동을 넓혀 대중들에게 더욱 다가가고 싶어서다. 이제 연기에 자신감이 생긴 것이냐 물으니 겸손하게 답했다.

“연기에 자신이 있다는 말은 거만한 것 같고, 적어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단계는 된 것 같아요. 십 년 남짓 무대경험을 했으니 이제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가 오든 두렵진 않은 거죠. 어떤 직업이든 10년간 공들여 매진했다면 이 정도의 생각은 당연히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 그는 연극 ‘배우할인’을 마쳤다. 노배우와 젊은 배우 간의 경쟁과 갈등, 일상이 주 내용인 2인극이다. 배우가 배우를 연기하니, 관객들은 배우의 몰랐던 이면을 알게 되고 직접 연기한 배우들에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을 법하다. 지난 6일 만난 윤국로와 그의 배우로서의 삶과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 연극의 매력은 같은 공연·다른 피드백

윤국로는 동국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하며 연극을 처음 접했다. 영화를 좋아했고 연기를 하고 싶단 생각은 있었지만, 연극은 처음 접해본 것이었다. 무대에 올라보니 연극의 매력은 대단했고, 그는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시간이 갈수록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 깊어졌다.

그가 꼽는 연극의 매력은 매일 같은 공연을 하는데도 다른 피드백이 온다는 점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흐름이 있다고 했다.

“연극엔 정확한 러닝타임이 없어요. 관객들의 반응이나 배우들 간 호흡이 연기에 영향을 주는데요. 연기가 얼마나 늘어지느냐 당겨지느냐에 따라 예정시간과 10분씩 차이가 나기도 해요.”

이렇듯 관객의 반응이 중요한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관객 여덟 명 앞에서 공연을 했던 날이다. 150석 정도의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여덟 석밖에 차지 않았다. 공연을 해야 할지 고민도 잠깐 했지만, 진심어린 연기로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반응이 왔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이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요. 그때마다 이 여덟 분을 떠올리며 초심을 다잡곤 합니다.”

 

◆ 연출가에게 믿음 주는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

윤국로는 개성이 강한 얼굴이나 정석 미남의 뛰어난 외모는 아니지만, 그 때문에 어떤 역이든 연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배우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 어떤 역이든 소화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올 상반기 공연했던 ‘맥베스’에선 만 34세의 나이에 소년 역할을 맡았고 사이코패스, 어리바리한 역 등 다양한 역을 연기해왔다.

“제 얼굴이 여러 사람을 섞은 것 같나 봐요. 입는 옷마다 느낌도 달라진다고 하고요. 개성이 강하거나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마스크는 아니지만,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선지 동석한 연출가의 말로는 윤국로는 ‘연출가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란다. 특정한 세대나 캐릭터에 갇히지 않고 어느 포지션에나 어울려서,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그를 캐스팅 물망에 올린다고 했다.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역은 찌질하지만 밉지 않은,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다.

“초등학교 조카와 나란히 앉아서 내기 게임하는 백수 삼촌같은 캐릭터 있잖아요. ‘왕가네 식구들’에서 최대철 선배가 맡았던 ‘왕돈’ 같은 역할이요. 저 잘할 수 있어요.”

 

◆ 연기로 얻은 팬, 여자친구로 떠나보낸 ‘웃픈’ 에피소드

그의 가장 감격스러웠던 기억은 동국대 100주년 기념으로 ‘햄릿’ 공연을 했을 때다. ‘햄릿’을 연기한 이정재를 비롯한 유명 배우들과 함께 공연했다. 그는 ‘레어티즈’ 역을 맡았다. 공연 후 퇴근길엔 이정재의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윤국로가 공연장을 나서는 길에도 팬 몇몇이 있어 이정재의 팬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윤국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다섯 분인가가 저를 보려고 40분 동안 기다리고 계셨어요. 공연에서 절 인상 깊게 봤다고, 다음 공연 때 연락을 해 줄 수 있겠냐고 하셨어요.”

이후 이 팬들은 개인홈페이지에 찾아와 격려 메시지도 남기며 작지만 팬클럽도 만들어줬다. 이렇게 적극적인 팬들이었지만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백문백답’을 팬카페에 올려달라는 요청에 답을 해 올렸는데, 여자친구의 유무를 묻는 질문에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다고 밝히면서 솔직한 얘기를 했다. 이후 팬클럽 활동이 멈춘 ‘웃픈’ 일이 있었다.

“꼭 그래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후 팬클럽 활동이 멈췄어요. 그런데 앞으로도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아요. 앞으로는, 음… 여자친구를 당분간 안 사귀는 게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 “배우는 분장 지우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윤국로에게 ‘배우’란 어떤 의미일까. “배우는 직업일 뿐”이라는 다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배우 자체를 대단히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배우는 위대’하죠. 모든 의사, 기자, 정치인들이 훌륭하진 않지만 어떤 이들은 훌륭한 것처럼요.”

가장 경계하는 부분도 이런 것이다. 배우라는 자부심은 갖되, 그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람 간의 호흡이 중요한 극에서 스스로에게 도취되면 다른 사람과 소통도 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배우는 연기에 몰입했다가도 무대를 내려오면 깨끗이 털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배우는 분장을 지우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 섰을 땐 완벽히 작품 속 캐릭터로서 관객과 만나야 하지만 극이 끝나면 평소의 나로 곧바로 돌아와야죠. 트레이닝되지 않았거나 멘탈적으로 약한 경우는 배역과 자신을 지나치게 혼동하기도 해요. 그래서 불안해하고 괴로워하죠. 물론 연기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만 작품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대신 그 고민을 즐겨내야 하죠.”

그렇지만 그도 작품을 끝낼 때면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몇 달 동안 작품을 하다가도 마지막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세트부터 조명까지 싹 사라져요. 그럴 때면 기분이 묘하죠. 진하게 연애를 하고 헤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이런 허함을 즐길 줄 알아야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생에 단 한 번 만이라도 '백점짜리 연기'를 해봤으면"

다양한 연기가 가능하고, 배우를 그저 직업 중 하나로 생각하는 윤국로. 그의 목표는 ‘백점짜리 연기’를 하는 것이다.

“늘 백점 만점의 연기를 해 보고 싶지만, 죽는 날까지 해 볼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스스로도 만족하고 관객들도 모두 만족하는, 일생에 그런 백점짜리 연기를 한 번이라도 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지금처럼 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그 목표를 이루는 날도 머지않아 오지 않을까. 앞으로 더 많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프로필> 이름 윤국로. 1980년생. 연극 ‘배우할인’, ‘극장속의 인생’, ‘특종’, ‘쥐덫’, ‘햄릿’ 등 출연. 동국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극단 ‘필(Peel)’ 단장과 예장 연극영화 아카데미 부원장을 맡고 있다. 처음 듣는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어 처음엔 예명을 쓸까 했는데 지금은 특이하다고 생각해 그냥 두고 있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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