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2:43 (수)
[포크싱어](4) 남궁옥분, '앵무새' 그 이상의 역할을 하다 "할 수 있다" (인터뷰Q)
상태바
[포크싱어](4) 남궁옥분, '앵무새' 그 이상의 역할을 하다 "할 수 있다" (인터뷰Q)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4.05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자 TIP!] '가수'는 노래 부르는 역할을 임무로 맡은 사람이다. 단순히 받은 노래를 보내는 우체부 역할만 할 수도 있고, 직접 내가 메시지를 쓰고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가수의 역할이 메시지를 쓰는 것으로도 발전하고 있으며, 그런 행동을 통해 '앵무새'에서 탈피하고 있는 기성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최대성 기자] 남궁옥분은 '앵무새'를 벗어난 기성가수들 중 하나다. 그는 포크음악이 자리를 잡고 전성기를 맞이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걸쳐 활동했던 가수이며,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자신의 삶에 포크 음악을 녹여낸 인물이다. 지난 달 31일,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내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 하는 남궁옥분을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 '우연'이 운명이 되다…"쉘부르, 내게 큰 울타리"

▲ 가수 남궁옥분 [사진= 스포츠Q 최대성 기자]

계기란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를 말한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결정들에는 계기가 동반하곤 하지만, 남궁옥분의 경우는 예외였다. 그의 앨범을 채운 캘리그라피도, 음악도 삶에 자연스레 녹아났다.

"학교 다닐 때 전국미술대회 같은 게 많았어요. 중학교 때는 미술부에도 들었고요.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 같아요. 배워보지도 않았는데 인정을 많이 받았고, 96년부터 하고 있는 캘리그라피도 사실 배움 없이 시작한 거였어요. 음악을 하게 된 것도 계기는 없고, 변성기인 친구들 틈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독창을 하게 된 거였어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 것은 없었어요. 모두 우연의 일치였죠."

우연적 만남은 소녀 남궁옥분에게 꿈이 됐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예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기에 남궁옥분의 꿈이 좌절되고 포기한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만든 기회가 남궁옥분의 평생을 결정했다.

"꿈을 좇는 것보다는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 기회가 돼서 쉘부르라는 울타리도 경험하게 된 거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울타리가 참 컸는데, 쉘부르는 ‘패밀리’ 개념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것 같아요. 쉘부르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시작을 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대중음악 신으로 진출한 거니까, 다들 의미가 남다를 거예요. 수십 년을 관통하고 있는 포크음악사 중에 40여 년을 지배했으니까요. 1975년부터 시작해서 쉘부르를 통해 이름을 알린 사람이 40명 정도 될 거예요."

◆ "목소리 내지 못한 것, 미안한 마음 많아…내 생각 일치하는 것 하길 원해"

▲ 가수 남궁옥분 [사진= 스포츠Q 최대성 기자]

과거 남궁옥분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가수는 아니었다. 다만 그의 1980년 앨범에 수록된 '꽃분이'가 타인의 성대를 통해 '저항가요'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 시절 대학생들이 '꽃분이'를 저항가요로 부를 때, 남궁옥분은 그 시절 사람으로서 생명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내 생활 속에 있기 바쁘니까 관심을 갖기 힘들었어요. 데모도 못해 봤고. 스케줄 이동하다가 차 막히면 조금 짜증이 났고, 데모하던 사람들이 힘들어 보였던 기억이 있어요. 내 노래는 '저항가요'라는 이름이 붙어서 남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지만, 나 자신은 나라를 걱정하고 고뇌하지 못했고 그냥 앵무새처럼 노래를 불렀어요. 그래서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그런 그가 20년의 고민 뒤 자신의 생각을 내 목소리로 전달하는 사람이 됐다. 지난 해 8월 발매된 남궁옥분 광복 70주년 기념앨범이 바로 그것이다. 앨범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노래 '봉선화'를 포함해 수십 명의 뮤지션이 함께 작업을 한 '함께' 등 6곡이 수록됐다.

"이전엔 작사 작곡을 했어도 발표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제작사에 전속된 상황이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내 생각과 일치하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연가를 부르지 않고, 위로의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지 꽤 됐어요."

◆ 후배들과의 협업, "길을 나서는 순간 누구든 내 스승"

▲ 가수 남궁옥분 [사진=스포츠Q 최대성 기자]

남궁옥분은 자신의 광복 70주년 기념 앨범과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이 모여 만든 '뮤지션클럽' 함께 앨범에 수록된 '함께'를 두 번 작업했다. 전자의 '함께' 작업이 선후배를 아우르는 작업이었다면, 후자의 '함께'는 후배들과 함께한 것이었다. 같은 곡, 다른 목소리가 담긴 두 작업의 공통점은 '재미'였다.

"제 앨범에 들어갈 '함께'를 녹음할 때 굉장히 재밌었어요. 녹음실에 다 같이 모여서 킬킬대고 웃고, 갑자기 들어가서 '불러봐!' 하고. '너는 이 파트가 좋은 것 같으니까 불러 봐' 하면서 진행했거든요. 차이가 있었다고 하면 열정? 뮤지션클럽 후배들이 열정이 더 있었어요. 열심히 해 주고 재밌었다고 해주니까 고맙더라고요. 많이 빛을 보지 못해서 아쉬워요."

'재미'를 위해 후배가수들과의 작업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만을 이유로 들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는 후배가수와의 작업을 많이 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배움'을 들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길을 나서는 순간 나의 스승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가 수십 년 전 음악할 때 상황하고 지금 아이들이 음악 하는 상황하고 많이 달라요. 전 연륜만 있고, 아이들은 체계적으로 배울 일도 있으니 많은 것을 누린 상태죠. 오브로젝트와 함께했던 '위시 리스트' 작업도 그렇고, 후배들에게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가르치는 20대, 30대 어린 친구들에게 나를 편안하게 대해 달라고 했어요. 네 역할은 날 지적하는 거고,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는 거다라고 했어요. 저는 제 나름대로 내 노래 스타일을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해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 거죠. 나한테 달콤한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은 내 편이 아니에요. 내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 진짜 내 편이지. 내가 어떤 깨우침을 주건, 나도 상대방도 서로를 보며 공부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남궁옥분에게도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후배가 있었을까. 그는 주저 없이 '권나무'를 들었다. 권나무는 2014년 EBS의 스페이스 공감에서 헬로 루키로 선정되며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포크 부문을 수상한 아티스트다.

"(권)나무랑 늦은 밤 통화하면서 조언한 게 있어요. 직업을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초등학교 교사인데 주말에만 공연을 하거든요. 그런 순수한 삶이 노래가 나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이 돼서. 좋아하는 후배라서 함께 무대에 서거나 노래를 부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다시, 공감'하고 한 번 더 찾아온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할 수 있다"

▲ 가수 남궁옥분 [사진= 스포츠Q 최대성 기자]

EBS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은 국내외 최정상 아티스트부터 신인발굴 프로젝트를 통한 신진 아티스트와의 만남까지 주선하는 등 장르에 관계없는 좋은 음악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8일과 29일, 남궁옥분은 '스페이스 공감'의 기획 공연 중 하나인 '다시, 공감'에 출연했다.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고 옛 기억속 뮤지션을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노래를 정말 편안하게 했어요. 소리도 집중이 잘 됐고, 정말 원 없이 했다는 말이 맞아요. 최소 500~600명이 있는 곳에서만 공연을 하다가 작은 데서는 처음 해봤어요. 그런데 공감 촬영이 아마 인생에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남궁옥분은 살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많이 겪었을 법했다. '참새를 태운 잠수함'을 찾았다가 노래의 매력에 빠졌고, 쉘부르와 故 이종환 사단에 합류했다. 또 데뷔한 뒤에는 '신인 가수상'을 받았고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연속 수상했으며, 방송 MC, 광고 모델,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성대 결절이라는 가수 인생의 위기도 겪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남궁옥분이 '공감'을 터닝 포인트로 꼽은 이유는 공감이 그로 하여금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줬기 때문이다.

"열흘 동안 공감을 위해 준비를 하면서 든 생각은 '내가 이렇게 30년을 달려왔다면 세계적인 가수가 됐을지도 모른다'였어요. 아파서 병원 다니고, 연습실이랑 녹음실 왔다 갔다 하고. 무대에서 삼십년이나 된 노래들을 꺼내서 가사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하면 된다' '의지가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우스밴드를 함께해준 분들에게 배울 것도 많았고요. 나는 내 의견을 전했고,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어요. 조율 과정에서 배운 게 많았어요. 21일 방송을 앞두고 있는데, 믹스 과정에서도 배움의 연속일 것 같아요."

[취재후기] 남궁옥분의 삶의 목표는 '후회하지 않는 나'를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에 나를 무시했더라도, 꾸준히 잘 살아가면서 나를 멋있다고 해 주는 친구들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일순위로 세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후회 없는 내가 되자'고 말했는데,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내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저절로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선배가 돼 있지 않을까 싶어요. 후배들이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닮고 싶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타협하지 않고 내 길을 가는 사람이 되렵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