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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6) '스틸 플라워' 정하담, '한국의 비요크' 찬사 얻어낸 이유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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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16) '스틸 플라워' 정하담, '한국의 비요크' 찬사 얻어낸 이유 (인터뷰Q)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4.08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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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들꽃'의 가출소녀 하담으로, '검은사제들'의 영주무당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은 배우 정하담(22)이 7일 개봉한 '스틸 플라워'(감독 박석영)로 또다시 관객을 만난다.

지난해 영화 '들꽃'으로 데뷔한 정하담은 의외의 계기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 1월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이해영 감독이 그를 눈여겨보는 신예로 꼽으면서였다. 당시 이해영 감독은 "'어둠속의 댄서' 속 비요크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정하담의 단독 주연작 '스틸 플라워'를 본 후의 감상이었다. '어둠속의 댄서'는 시력을 잃어가는 인물이 노래, 춤에 대한 열정과 꿈을 잃지 않으려 하는 처절함이 담긴 작품으로, '스틸 플라워'의 정하담에게서도 그 에너지를 느꼈다는 평이다.

[스포츠Q(큐) 글 오소영 · 사진 이상민 기자] '스틸 플라워'는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거리를 떠도는 소녀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꽤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하담의 정처없는 발걸음만을 쫓는다. 그 뒷모습만으로도 관객은 어느새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다.

▲ '스틸 플라워' 정하담

◆ "연기란 인간 영혼의 정직함을 담는 것" 떠오르게 한 정하담의 오디션 

'들꽃'에 이어 '스틸플라워'도 함께 작업한 박석영 감독은 정하담의 오디션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옆 스태프를 한 번 툭 때려 보라는 요청을 받은 정하담이 "한 번도 사람을 때려 본 적이 없다"며 눈물을 보였단 일화였다. 박석영 감독은 '연기란 인간 영혼의 정직함을 담는 것이다'는 생각으로 정하담을 캐스팅하며 그와 인연을 맺었다.

'인간 영혼의 정직함'을 떠올리게 했다는 정하담이지만, 그 스스로는 '스틸 플라워'의 '하담'과 자신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스틸 플라워'의 하담이 저보다 훨씬 크고 멋져요. 자신만의 원칙이 있고, 정직하고 순수하며 강인하죠. 저와 닮은 면이 있다기보다는 앞으로 닮고 싶은 인물이예요. '스틸 플라워'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이 연기를 잘 해낸다면 제게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찍은 후엔 실제로 제게 힘이 돼 주고 있고요."

'들꽃'에서 캐릭터 이름이 본명과 같았던 것에 이어, '스틸 플라워'에서도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하담'이다. 정해둔 설정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지원서를 쓰는 장면에서 정하담은 자신의 실제 이름을 써 넣었고, 그렇게 이름이 붙게 됐다.

"이름을 쓰는 칸이 있어서 제 이름 '정하담'을 썼는데, 그 부분이 영화에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캐릭터 상으로는 '하담'이란 이름을 갖게 됐지만, 영화에서 그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름이 있지만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죠.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없는 인물인데, 말이 없는 '침묵'만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 '스틸 플라워' 정하담

◆ "'하담'은 강하고 정직한 인물, 탭 슈즈 값을 모두 지불했을 거예요"

하담은 그저 일하고 싶고, 일한 몫을 받아 살고 싶지만 그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다. 몸을 뉠 집도 찾기 힘들어 하담은 언덕배기의 빈 집을 택하고, 누군가 남긴 음식을 가져와 씹어 삼킨다. 

정하담은 가출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들꽃' 당시, 실제 노숙을 해보거나 가출 청소년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이들의 심정을 느껴 보려 노력했다. '스틸 플라워'에서는 캐리어 속은 찍지 않으나 그 속에 온갖 짐을 넣어 끌고 다녔다. 그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소녀 하담이 됐다.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날이지만, 하담에게도 위로가 되고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는 탭 댄스다. 하담은 우연히 보게 된 탭댄스 교습소의 풍경에 흥미를 느끼고, 결국 돈을 모아 탭 슈즈까지 산다.

하담이 탭 슈즈를 사는 과정은 독특하다. 하담은 가격이 적힌 안내문을 보고, 꼬깃꼬깃한 지폐를 그 옆에 올려둔 후 사람이 없는 때에 탭 슈즈를 갖고 나간다. 사람을 통해 정식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훔쳐가듯 그 모습이 평범하진 않다.

"그동안 하담은 뭔가를 사거나 물건을 거래해 본 적이 없었을 거예요. 괜히 두렵고, 나같은 사람한텐 안 팔 수도 있단 생각도 들었어요. 죄책감과 불안함, 어떻게 사야 할지 몰라서 탭 슈즈를 들고 코트 안에 숨기듯 해서 빠져나오죠. 하지만 그 가격만큼은 정확히 6만원을 놓아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탭 슈즈를 신은 하담은 가로등 아래 공터에서 춤을 춰 본다. 그녀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공간에서 긴 독무가 이어진다.

"탭 슈즈를 살 때까지만 해도 무서움과 죄책감이 있었지만, 드디어 신발을 신고 춤출 때는 이 감정이 모두 누그러질 만큼 좋고 행복한 거예요. 처음으로 내 것이 생겼다는 기분인 거죠. 실제 촬영 장소가 하담의 빈집에 올라가기 전쯤에 위치했는데, 가로등 조명 때문인지 따뜻해 보이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했어요."

▲ '스틸 플라워' 정하담

◆ 연기하는 이유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 준다"

지난해 별안간 등장한 정하담에겐 '무서운 신예' '연기 천재'란 표현이 붙는다. 아직 출연작은 많지 않지만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해 호평이 자자했다. 정하담 본인은 이런 칭찬에 덤덤했다. 아직 보여준 것이 적어 안심할 수 없고, 그간의 칭찬은 노력과 비례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감사했지만 그런 칭찬이 불안하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부담돼서 위축되고 즐기지 못할 것 같았죠. 그런데 그런 생각도 바보같더라고요. 해 보지도 않고 칭찬을 받고 겁내는 것도 이상한 것 같고. 앞으로도 잘 해내고픈 마음뿐이에요."

"'검은 사제들'은 작품 출연결정 이후 준비할 물리적인 시간이 있었어요. 그만큼 역할에 대한 이해,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젠 좀 더 짧은 시간 내에 깊이있게 하는 방법을 찾으려 해요. 딱히 특별한 연습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조사하고 생각하는 게 다예요."

정하담이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고등학교 때 취미로 했던 연극부 활동이었다.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했으나, 연기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휴학하고 연기과 입시를 준비했다. 입시에는 떨어졌으나, '들꽃'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물론 연기가 자신의 길인지 반문하던 날도 있었다.

"'들꽃'을 찍은 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기까지 1년간 시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진지하게는 아니었지만 '배우란 직업이 내게 맞는 걸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연기의 표면적인 부분만 보고 어떤 '역할극 놀이'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로 해 보니 생각보다 더 연기는 정교하고 섬세하고, 많은 것을 투자하며 자기자신을 보여주는 일이었어요. 이런 일이 내게 맞는 걸까. 내가 그동안 오해했던 게 아닐까 싶었죠."

이런 고민은 차기작이 정해지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정하담은 "내가 연기를 해야 하는 사람인지는 좀 더 해 봐야 알겠지만, 연기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제가 연기를 하는 이유는 이 활동이 제 삶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예요. 삶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연기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 뭔가를 배워가는 것을 느껴요. 원래는 이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해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이 됐다는 생각에 더 만족스러워요."

정하담은 앞으로도 '스틸 플라워'의 하담처럼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제가 사랑하는 캐릭터를 계속 많이 만나고 싶어요. 그러면 연기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스틸 플라워' 정하담

[취재후기] 정하담은 20대 초반의 또래들처럼 웃음도 많고 솔직한 성격의 배우였다. 정하담에게 지금 당장의 계획은 개봉 중인 '스틸 플라워'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후로는 단역으로 출연한 '아가씨'가 6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어떤 분이실까 궁금했는데, '아가씨'에 출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인사드리기도 전에 먼저 '하담씨'라고 이름을 알아주셨을 땐 감동이었죠. 그런데 정말 잠깐 나오는 거라 '아가씨' 얘기만 나오면 민망하네요. 저를 못 찾으실 수도 있는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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