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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예 발레리노 김태석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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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예 발레리노 김태석의 도약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15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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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신예의 도약이 눈부시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희극발레 ‘돈키호테’(8월15~17일·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주인공 바질 역을 맡은 김태석(24). 발레단의 최하위 등급인 코르 드 발레(군무)에 속한 풋풋한 막내가 공연의 주역으로 무대를 누빈다. 발레단 무용수는 ‘코르 드 발레- 드미 솔리스트- 솔리스트- 수석무용수’의 등급으로 나뉜다. 그는 지난 연말 객원 무용수 신분으로 일약 ‘호두까기 인형’의 주역을 꿰차 화제를 일으켰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졸업 후 정단원이 되면서 또 다시 행운을 품에 안았다.

 

◆ 희극발레 ‘돈키호테’서 사랑에 올인한 이발사 바질 연기

발레 ‘돈키호테‘는 돈키호테와 시종이 중심인 원작 소설과 달리 가난한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딸 키트리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돈키호테는 이들의 사랑을 이뤄주는 조력자로 등장해 좌충우돌 해프닝을 벌인다.

고난도 기교와 스페인의 열정이 묻어나는 정열적인 춤으로 유명한 이번 무대는 전통의 마린스키 버전을 기본으로 개성 넘치는 무용수들이 선사하는 다양한 볼거리가 기대된다. 특히 3막 바질과 키트리의 결혼식 장면에서 선보이는 아름답고 우아한 그랑 파드되는 이 작품의 백미로 아다지오와 남녀 솔로 베리에이션 그리고 코다로 구성된 2인무다. 32회의 푸에테(회전동작)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점프 등 최고난도 테크닉이 일품이다. 바질과 키트리의 1막의 2인무도 사랑받는 장면이다. 이와 함께 바르셀로나 광장에서 펼쳐지는 세기딜랴 춤, 역동적인 투우사들의 춤, 산초 판자와 정열적인 집시들의 춤이 인기다.

이번 무대에는 유니버설발레단 간판 무용수들이 나선다. 바질 역으로 수석무용수 이동탁, 러시아 출신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함께 김태석이 나선다. 키트리로는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신인 이용정, 드미솔리스트 홍향기가 출연한다. 김태석은 이용정과 짝을 이뤄 15일, 17일 공연을 책임진다.

 

“‘돈키호테’가 여러 버전이 있는데 오리지널 버전이라 관객 입장에서는 진정한 클래식 발레의 맛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정교한 테크닉, 잘 짜인 마임과 연기력이 매력이죠. 무용수 입장에선 배경이 스페인이라 바질 캐릭터를 뜨겁게 이끌어가야 하고, 마임이 굉장히 많아서 관객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그래도 해피엔딩이니까 행복감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까다로운 ‘테크닉’이 아니라 ‘느낌’이었다. 바질은 열정과 카리스마가 꿈틀대는 남성미 강한 인물이다.

“전 여자를 휘어잡는 스타일이 아니라 바질의 열정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게 힘들더라고요. 거부감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도 제 삶과 닮은 점을 찾아가다보니 자살소동을 벌일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 여자를 사랑하며 이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했어요. 생각해보니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춤추기에 편한 건 ‘백조의 호수’ ‘지젤’의 왕자와 귀족청년이에요. 하하.”

◆ 운동에 몰두한 청소년 시절, 어머니 권유로 고2때 발레 입문

지난 연말은 길지 않은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11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26회 그리스 국제발레콩쿠르 파드되 부문 대상을 받은데 이어 12월에는 국립발레단과 함께 국내 양대 발레단인 UBC의 ‘호두까기 인형’에서 주역으로 당당히 캐스팅됐다.

“남성 무용수로써 굵직한 일들을 연이어 이뤄서 뿌듯했어요. 대상 수상으로 군대 문제도 해결돼 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지난해 4월 객원 무용수로 UBC에 들어왔다가 ‘호두까기 인형’을 무리 없이 치러 정단원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니까요.”

▲ 지난 연말 '호두까지 인형'의 2인무[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행운아이기만한 것은 결코 아니다. 김태석은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해 체육고 진학을 염두에 뒀던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계 고교(대전 동산고)에 입학했다. 자신을 자극하는 유일한 분야인 운동에 매료돼 방과 후 유도학원, 탁구학원을 전전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지인의 말에 솔깃해 춤을 권유했다. 비보잉이나 스트리트 댄스인줄 알고 학원에 갔다가 발레를 처음 접하게 됐다.

“당시엔 발레에 거부감이 컸어요. 그런데 춤을 배우려면 발레 동작을 필수로 익혀야 되나보다 여긴 거죠. 처음엔 쉬어 보였는데 끝이 없더라고요. 그게 제 도전욕구를 자극했어요. 스포츠가 지니지 못한 매력을 느꼈죠.”

발레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콩쿠르에 입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선망의 대상이던 한예종에 입학하자마자 불운이 습격했다. 입학식을 한 다음날 무릎부상으로 1년 동안 휴학해야만 했다. 복학 후 6개월 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2년이 지나서야 완쾌됐고, 스타 발레리노 김현웅 윤전일과 함께 ‘인어공주’의 주연으로 발탁되는 영광을 누렸다.

◆ 한예종 입학 후 1년6개월 부상고통…조언 숙지, 반복연습 통해 실력향상

“부상이 두렵진 않아요. 물론 부상을 당하면 공연을 못하게 돼 화가 나고 끔찍하지만, 아파야만 했기 때문에 아픈 거라고 생각해요. 욕심이 과해서 생긴 결과물이겠죠. 힘든 시간을 겪고나니까 욕심을 버리게 되고 마음을 다스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감당할 몫만을 해내라는 교훈을 얻었어요. 매일 꾸준히 다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땀 흘리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게 중요해요.”

 

그가 무용 기량을 발전시켜온 비결은 대입수능시험 이후 고득점자들의 대체적인 학습 방법과 흡사하다. 선생님들의 조언과 지적을 최대한 기억, 숙지해서 동작을 연습할 때 반복해서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클리어하게 만들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것으로 습득이 된다. ‘돈키호테’의 솔로 파트에 나오는 공중 2바퀴 회전도 완벽하게 소화하질 못했는데 선생님들이 말씀해주신 포인트를 떠올리며 반복하다보니 이젠 깔끔해졌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계속 하다보면 미세한 감각에서 달라지는 느낌이 있어요. 이때 생기는 희열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발레를 꾸준히, 습관처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어려워 보이기만 했던 것들이 다 해결됐고. 이제는 어떤 동작이든 무난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해낼 수 있어요. 파트너링에서도 자신이 있고요. 제 솔로보다 여성 무용수를 돋보이게 하는 데 치중하죠. 발레리나와 교감하면서 동작을 해나가는 게 매력 있거든요. 그래야 관객도 공감하며 좋아하고요.”

 

[취재후기] ‘충청도 양반’이라는 말답게 반듯한 청년이다. 차분하게 사유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동안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하다보니 넘기 힘든 장애물에 맞닥뜨렸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름휴가를 끝내고 나서 마인드를 바꿨다.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이 편해졌다고 배시시 웃는다. “제가 지금은 밑바닥 위치에 있지만 노력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밑바닥이라고 보진 않을 테니까요”란 말이 인상적이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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