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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설렁설렁은 안통한다' 확고한 원칙 보여준 기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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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설렁설렁은 안통한다' 확고한 원칙 보여준 기술위원회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8.18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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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헌신 중요…유럽 머물겠다는 판 마르베이크에 확고한 선 긋기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지난달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실패로 한국 축구가 정신이 번쩍 든 모양새다. 이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확고한 원칙의 의지로 순리대로 일을 풀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1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62) 감독과 협상 결렬을 공식 발표했다.

이용수 위원장이 밝힌 협상 결렬 이유는 연봉과 판 마르베이크 감독의 업무 방식이다.

연봉의 경우 고액에 붙는 높은 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도 업무 방식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은 조금 시일이 걸리더라도 한국 축구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용수 위원장이 제시한 차기 감독의 8대 조건이라는 정확한 원칙에 맞춰 판 마르베이크 감독의 업무 방식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부분도 눈에 띈다.

또 대표팀 선수 선발 방식에서도 확고한 원칙이 엿보인다.

14명의 해외파 선수를 발표하면서 눈에 띈 것은 각 팀의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를 확실하게 제외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브라질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와 지동원(23·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김보경(25·카디프 시티) 등을 제외시켰다.

김진수(22·호펜하임)와 박주호(27·마인츠) 등도 제외되기는 했지만 이들은 아시안게임 대표팀 소집이 이유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협상이 결렬된 사실과 이유에 대해서 브리핑하고 있다.

◆ 급하긴 하지만 끌려가진 않는다

대한축구협회는 감독 급구에 나섰다. 사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찌감치 차기 대표팀 감독을 확정짓고 팀을 만들어가는 상황이지만 한국 축구대표팀은 홍명보(45) 감독 사퇴 이후 한달 넘게 공석이다.

이번에 선임되는 대표팀 감독은 내년 호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라는 중대한 대회를 치러야 한다. 이후에는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이라는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한다. 예선전을 통과하면 러시아 월드컵까지 맡아야 한다.

특히 이번 러시아 월드컵 예선전은 일정이 앞당겨져 내년 6월부터 시작한다. 앞으로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또 대한축구협회는 9월과 10월에 걸쳐 두 차례씩 모두 네 차례의 A매치를 국내에서 치를 계획이다. A매치 4경기를 감독 없이 치르는 것은 분명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기술위원회는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이미 대한축구협회는 2004년 당시 브루노 메추 감독을 영입하려다가 실패하자 허둥지둥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을 선임한 전력이 있다. 본프레레 감독이 나이지리아 올림픽 대표팀을 잘 이끌었다며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아시아 지역 예선도 겨우겨우 통과했고 끝내 예선전이 끝난 뒤 경질했다.

서두르다가 일을 망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확실한 원칙과 의지를 가지고 차기 대표팀 감독을 뽑는다는 방침이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장이 18일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 협상이 결렬된 사실과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단기 과외선생보다 한국 축구 체질 개선시킬 지도자를 찾는다

또 하나는 기술위원회가 내건 8대 조건도 확실하게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당시 밝힌 조건 가운데 K리그와 연계를 고려한 클럽팀 지도 경험과 교육자로서 자질이라는 항목이 들어있다. 이는 감독의 훌륭한 자질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K리그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유소년 축구의 동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이 위원장이 이를 강조한 것은 대표팀의 전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과외선생'보다 한국 축구의 체질을 확실하게 바꿔놓을 수 있는 지도자를 찾겠다는 의도다.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독일 축구가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스마트 신형 전차로 바뀐 것 역시 유소년 축구부터 시작해 독일 축구의 체질 개선을 이뤄냈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열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국 선수 가운데 유럽파가 많다는 이유로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 것은 이따금씩 와서 대표팀을 봐주는 단기 과외선생 역할만 하겠다는 의도다. K리그와 소통 뿐 아니라 유소년 축구 동반 발전을 통한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에는 관심이 없었다.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다른 조건에서는 모두 합격점을 받았을지 몰라도 대표팀과 한국 축구 전반에 대한 헌신과 열정에 대해서는 '낙제'였다.

◆ 대표팀 선수 되려면 팀내 주전경쟁부터 이겨라

전임 홍명보 감독 때만 하더라도 해외파 선수에 대한 과도한 챙기기와 편애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박주영(29)의 치료를 위해 일찍 귀국시켜 경기도 파주 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재활과 치료를 병행하도록 했다. 또 소속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한 선수들이 단순히 해외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소속팀에서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던 선수들은 경기 감각을 잃어버려 월드컵 무대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월드컵에서 제 활약을 해준 선수들은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이근호(29·상주 상무)는 비록 군인 신분이긴 하지만 K리그 챌린지와 클래식에서 꾸준히 출전 기회를 이어가며 경기 감각을 잃지 않았고 결국 러시아전 선제골의 주인공이 됐다.

또 '진격의 거인' 김신욱(26·울산 현대) 등 공격진도 박주영이나 지동원, 김보경 등보다 훨씬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줬다.

이에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대표팀 해외파 14명을 미리 발표하면서 확실한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는 선수들만 포함시켰다. 대표팀 선수가 되려면 먼저 소속팀 주전 경쟁부터 확실하게 이기고 돌아오라는 암묵적인 압박이다.

◆ 신태용 등 국내 출신 지도자도 챙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다음달 벌어지는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 평가전에서 신태용(44) 전 성남 감독을 코칭스태프에 포함시켰다. 대표팀 감독이 갑자기 확정되지 않는 이상 신태용 코치와 박건하(43) 코치, 김봉수(44) 골키퍼 코치 등 3명이 다음달 A매치 2연전을 이끌게 된다.

신태용 코치는 차기 대표팀 감독을 도울 한국인 코치로 일찌감치 확정됐다.

이에 대해 이용수 위원장은 "외국인 감독이 와서 여러 상황을 살펴 보면서 한국인 코치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국내 지도자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술위원회에서 한국인 코치를 추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자칫 기술위원회가 감독의 코칭스태프 임명권에 대해 간섭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했던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코치도 기술위원회에서 추천한 경우였다.

또 기술위원회가 신태용 코치를 임명한 것은 국내 출신 지도자를 함께 챙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신태용 코치는 이미 성남에서 3년 동안 감독으로 활약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함께 FIFA 클럽 월드컵 출전 경험이 있을 정도로 적지 않은 경험을 갖고 있는 지도자다.

신 코치가 대표팀에서 외국인 감독과 화합을 이룬다면 외국인 감독 임기가 끝난 뒤 대표팀 감독에 취임할 수도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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