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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12) '골든 펜서' 김정환, 마지막 올림픽 피스트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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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12) '골든 펜서' 김정환, 마지막 올림픽 피스트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04.22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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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올림픽 최초 단체전 금메달, 리우에선 사브르 개인전 정상 도전…18일 아시아선수권 2연속 2관왕 '최고조'

[200자 Tip!]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투혼의 펜서’란 찬사를 얻은 세계랭킹 5위 김정환(33·국민체육진흥공단). 그에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마지막 국제무대다.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 사상 최초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그로서는 수성은 할 수 없다. 종목순환 원칙에 따라 리우에서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개인전 메달을 획득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결의다. 태극 마스크를 벗으며 한국 남자 사브르에 마지막 선물을 해주고픈 베테랑이다.

[태릉=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서른이 넘으면서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몸을 혹독하게 할수록 부상이 빨리 오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조금 서글퍼요.”

태극마크를 단 지가 어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물찬제비마냥 검을 휘두르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격세지감이란다. 하지만 선수로서 가장 큰 대회를 앞두고 있는 김정환은 차분하게 국가대표로서 뛸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 펜싱 검을 들고 있는 김정환. 그에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마지막 국제대회다.

김정환의 리우행은 이미 확정됐다. 지난 4일을 기준으로 세계랭킹 14위 안에 들었기 때문. 나라별로 2명까지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데 김정환은 세계 5위를 차지해 4년 전 단체전 금메달을 함께 따낸 세계 2위 구본길(27·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사브르 경기에 출전한다. 생애 첫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정조준하는 김정환이다.

◆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탄탄대로', 예감이 좋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에이스 구본길에게 13-15로 아깝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김정환은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맹훈련을 거듭했다. 그 결과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김정환은 그해 12월 미국 뉴욕에서 치른 국제그랑프리대회에서도 정상에 섰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월드컵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펼치며 올림픽 리허설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

김정환은 “최근에도 국제대회를 몇 번 나갔다. 몸 상태는 괜찮다”며 “단지 아쉬운 건 올림픽을 앞두고 너무 올림픽 생각에만 몰두해서인지 정신적으로 지치는 부분이 있다. 어쨌든 올림픽 전까지 출전하는 국제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첫 대회 결과는 다소 아쉬웠다. 지난달 26일 열린 2016 SK텔레콤 사브르 국제그랑프리에서 8강 문턱을 넘지 못한 것. 아쉽게 랭킹 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한 김정환은 당시 “앞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스페인 월드컵 대회가 남아 있다. 리우로 가기 전에 최대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 2016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정환(왼쪽 두번째). [사진=국제펜싱연맹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자신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2관왕을 차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후배 구본길이 2013, 2014년 차지한 2연속 2관왕 위업을 바로 이어받은 것이다.

지난 15일 중국 우시에서 열린 개인전 결승에서 이란의 알리 파크다만을 만난 김정환은 15-8 승리를 거두고 ‘금빛 찌르기’에 성공했다.

사흘 뒤 구본길, 김준호(동의대), 오상욱(대전대)과 함께 출전한 단체전에서는 중국을 45-20으로 누르고 또 한 번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 중 유일하게 2관왕에 등극한 김정환은 한국이 금메달 7개, 은메달 4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하며 8연속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유럽 선수뿐 아니라 심판도 적이 돼버린 현실

길이 14m, 너비 2m의 피스트(펜싱 코트)에서 심판이 시작을 알리는 ‘알레(Allez)’를 외치면 코트 양쪽에 선 두 선수가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간다. 사브르는 상대의 양 손을 제외한 상반신을 검으로 베거나 찌르면 포인트를 딸 수 있는 종목이다. 가장 박진감 넘치는 펜싱 종목으로 알려진 사브르 경기에선 순식간에 많은 포인트를 따거나 잃을 수 있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한국 남자 사브르는 최근 5~6년 사이 열린 국제대회에서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 금메달(구본길)과 단체전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 금메달(구본길)과 은메달(김정환), 단체전 금메달 등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 펜싱 종주국이 프랑스이다보니 심판 판정이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내려지고 있다. 김정환은 "FIE 회장이 러시아인이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 때문에 펜싱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은 한국 선수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다. 김정환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펜싱 강국이 되면서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탐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한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눈여겨본 뒤 그 기술을 써먹기도 하고 국제대회에서 유독 까다로운 패턴으로 경기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 뿐만 아니라 이번 리우 올림픽에선 심판과 승부에서도 이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이에 위협을 느낀 국제펜싱연맹(FIE)이 주기적으로 경기 규칙을 바꾸고 있기 때문.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하게끔 룰이 개정되면서 한국 선수들이 압박을 받고 있다.

김정환은 “안전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검의 무게를 늘리는 등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하도록 룰이 바뀌고 있다”며 “이번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검으로 공격한 뒤 불이 더 늦게 들어오게끔 바꾼다고 한다. 심판의 재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펜싱은 유럽의 텃새가 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FIE 회장이 러시아 사람이다 보니 유럽 국가 선수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지고 있다. 양 쪽에 적색불과 녹색불이 켜지지만 누가 득점했는지 판정은 심판(주심)이 내린다. 주심의 권한이 워낙 세기 때문에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두 선수가 비슷한 타이밍에 서로를 공격했을 때(적색불과 녹색불이 동시에 켜졌을 때) 주심이 얼마든지 재량껏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선수들로선 경기 외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깊은 한숨을 내쉰 김정환은 “나도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편파판정의 피해를 봤다”며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확실한 동작으로 공격해서 불이 하나만 들어오게끔 해야 한다. 최대한 정확한 동작으로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정환은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때가 아니었으면 '국제용' 선수로 클 수 없었다"고 김두홍 코치와 보낸 2년을 되돌아봤다.

◆ 지금의 김정환을 만든 김두홍 코치의 '집중 트레이닝'

김정환은 처음부터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야구선수였던 김정환은 중학교 2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처음으로 검을 잡았다. 어린 마음에 비인기종목인 펜싱이 달갑지 않았던 김정환은 “긴 팔을 가졌으니 펜싱을 해도 야구만큼 빛을 발할 것이다”라며 용기를 준 선생님의 말에 펜싱에 입문하게 됐다.

김정환은 그저 평범하게 선수 생활을 하길 원했다. 자신의 한계를 정한 뒤 그 이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이 김정환을 거들떠보지 않을 때 그를 유심히 관찰한 이가 있었다. 바로 김두홍 국민체육진흥공단 남자 사브르 코치. 김정환의 신체적인 장점(긴 팔)과 스피드를 보고 국제대회에서 통할 가능성을 발견한 김 코치는 2004년부터 2년 동안 김정환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하면서 다툼도 많았어요. 펜싱을 그만 두겠다는 이야기까지 했지요. 너무 혹독하게 가르치시니 코치님께 원형탈모까지 오더라고요.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지도해 주셨어요. 처음에 ‘국제용’으로 키워준다고 하셨을 때 콧방귀를 뀌었는데, 2년 뒤에 태극마크를 달았지요. 그 후로 부상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태릉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밉기도 했는데, 지금은 제 펜싱인생의 은인입니다. 국제대회에서 부상으로 시계를 받을 때가 있는데, 보답하는 마음으로 코치님께 드리고 있어요.(웃음)”

김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로 국가대표가 된 김정환은 남들보다 늦은 23살에 태극마크를 단 만큼, 더 치열하게 훈련했다. 선천적으로 공격 센스가 뛰어난 구본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기도 했고 무언가가 풀리지 않는 게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결하려 애썼다. 펜싱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오늘의 김정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근성을 가져라"고 조언하는 김정환. 그는 남들보다 늦게 태극마크를 달았음에도 근성과 열정으로 이를 극복했다.

◆ "후배들이여, 근성과 동기부여를 가져라"

현재 사브르 대표 선수들의 기량은 김정환이 막 국가대표로 뛰었을 때보다 기술적, 전술적으로 향상됐다. 유럽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체격이지만 이를 기술로 커버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환은 후배들에게 못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것은 바로 근성. 얼마 전 후배들을 모아놓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희들은 형들처럼 고생하면서 운동하지 않아 그런지 근성이 없다’는 말을 했단다.

김정환은 “우리 때는 경기에서 이기든 지든 그 경기에 대한 분석을 치열하게 했다. 졌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이겼다면 다음에 또 이기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연구했다”면서 “10살 이상 차이 나는 동생들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반응을 보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 사브르가 지금 위치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내가 은퇴하면서 대가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이 독기만 조금 더 품는다면 더욱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쓴 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올림픽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운동하면서 동기부여를 가져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는 펜싱 선수로서 꿈이 국제대회 개인전 금메달이었는데, 그걸 국가대표가 된지 1년 만에 이뤘어요. 그러고 나니 목표 의식이 사라지더라고요.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열심히만 하려 했지요. 그 뒤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이는 계속 먹는데 성과가 없으니 초조해지더라고요. 그때 ‘동메달이라도 좋으니 내 힘으로 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메달에 대한 간절한 꿈을 꿨고 인천 아시안게임 은메달로 소원 성취했습니다. 동기부여가 없으면 선수로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목표를 설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김정환 프로필

△ 생년월일 = 1983년 9월 2일
△ 체격 = 178㎝ 64㎏
△ 소속팀 = 국민체육진흥공단
△ 출신학교 = 한국체육대학교
△ 혈액형 = B형
△ 주요 경력
- 2007년 방콕 하계유니버시아드 남자 펜싱 국가대표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펜싱 국가대표
-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펜싱 국가대표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펜싱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02년 아시아청소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 2005년 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금메달
- 2007년 월드컵 A급 대회 남자 사브르 금메달
- 2007년 국제그랑프리펜싱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동메달
- 2008년 부다페스트 국제그랑프리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 2009년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금메달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단체 사브르 은메달
- 2012년 국제월드컵 A급 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 2013년 제18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단체상
- 2013년 월드컵 A급 펜싱대회 남자 사브르 단체전 동메달
- 2013년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은메달
- 2013년 국제펜싱연맹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동메달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은메달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
- 2014년 국제그랑프리 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
- 2015년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및 단체전 금메달
- 2015년 국제펜싱연맹 부다페스트 월드컵 남자 사브르 은메달
- 2016년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 및 단체전 금메달

[취재후기] 김정환이 생각하는 펜싱은 인생과 같다. 아무리 큰 점수차로 앞서나가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역전 당하기 쉬운 종목이 바로 펜싱이다. 김정환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자만하지 않고 소신껏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선수촌 생활을 하면서 바깥세상이 더 냉정하다는 것을 깨달은 김정환. 선수 은퇴 후 박사과정을 밟은 뒤 학자의 길을 걸으려는 그의 인생 2막은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기대가 모아진다.

▲ "펜싱은 인생과 같다"고 말한 김정환. 학자로서 제2의 인생을 펼쳐갈 김정환의 앞날은 어떻게 펼져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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