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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팝의 전설' 프린스, 키워드로 보는 야누스적 삶과 음악...57세로 돌연 사망 팬들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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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팝의 전설' 프린스, 키워드로 보는 야누스적 삶과 음악...57세로 돌연 사망 팬들 충격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04.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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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류수근 기자] 지난 80,90년대 마이클 잭슨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프린스가 21일(현지시간) 만 57세의 일기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세계 스타와 팬들은 물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끊임없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프린스(1958~2016)는 세상을 떠났지만,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그가 남긴 불멸의 업적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는 한 시대를 주름잡은 거물 스타로서의 화려한 이미지는 물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영역을 철옹성처럼 구축한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팝 음악사에 자리하고 있다. 키워드 별로 프린스의 생전 모습과 업적을 추억해 본다.

◆ 어두웠던 과거가 만든 ‘야누스적 음악성’

프린스(본명 프린스 로저스 넬슨·Prince Rogers Nelson)는 1959년 6월 7일 미국 중북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은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와 재즈 보컬리스트였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린스의 어린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채 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우울함과 공허함을 음악으로 달래며 자랐다.

“내 모든 인생은 커튼으로 가려진 채 갇힌 마음의 연속이었다.”

1994년 발표한 프린스의 16번째 앨범 ‘come’에는 그의 자전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록곡 ‘Papa’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격렬하고 우울한 기억을 노래한다. 이 앨범에는 ‘1958~1993’이라는 작은 타이틀도 붙여져 있다. 본인이 태어난 해부터 이 앨범을 내놓기 전까지의 기간, 그리고 새로운 '혁명(revolution)'을 의미한다.

결국 이같은 우울한 성장기의 추억은 가시가 돋힌 듯한 음악, 도전적이고 날카로운 표정과 외모를 통해 그만의 독특한 세계로 표현됐다.

◆ 작지만 컸던 '위대한 작은 왕자’

음악의 세계는 다채롭고 풍부했지만 프린스의 외모는 의외로 왜소했다. 5피트 2인치(157cm)의 작은 키에 신장은 55kg정도였고, 얼굴도 작고 갸름했다. 하지만 농구를 좋아했다.

이같은 체격에서 어떻게 그렇게 변화무쌍하고 파워풀한 음악세계가 펼쳐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 갈 정도다. 여성처럼 슬림한 체형은 그의 독특한 목소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행위와 함께 많은 젊은 여성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티브로 작용했다.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처럼 ‘백인적인 흑인음악’으로 어필했다. 하지만 음악성 면에서는 오히려 마이클 잭슨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펑키한 소울과 록을 뒤섞은 매우 파워풀한 음악을 구사했다. 사이키델릭한 몽환적 사운드도 면면히 흘렀다. 모타운 소울을 기초로 한 마이클 잭슨의 댄스 음악과 차별화됐다.

◆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 ‘천재적인 이노베이터’

▲ 프린스는 항상 실험적이었고 파격적이었다. 이런 이면에는 어린 시절 우울했던 성장사가 반영된 듯하다. 앨범 재킷에 온통 블랙인 1994년 'The Black Album' CD 재킷과, 자신의 공허했던 성장기를 담은 1994년 앨범 'Come' CD 재킷. [사진= 스포츠Q DB]

프린스는 카리스마 넘치는 '혁신가(Innovator)'였다. 7살 때 첫 노래를 만들었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천재성을 발휘한 그는 작곡자였고 작사가였으며 편곡자였고 프로듀서였다. 또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하는 만능 연주자였고 배우이기도 했다. 그는 펑크, 록, R&B, 소울, 사이키델릭 뮤직,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했다.

항상 실험성이 강했던 그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해냈다. 데뷔 이후 자신의 앨범을 녹음하는데 기타를 비롯해 무려 27개의 악기를 연주했다. 그의 천재성은 평생 40개나 되는 많은 앨범을 발표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앨범마다 다른 주제를 관통시켰다.

프린스의 음악 세계는 독창성으로 가득했다. 다른 뮤지션과 가수들이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끼를 매번 담아 냈다. 남녀의 숨소리를 과감하게 자신의 음악에 삽입하기도 하고, 중성적인 이미지로 무대에 등장해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탁월한 작곡 능력은 외설적인 경계에서 비방 대신 예술성의 편을 들게 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성은 다른 가수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직접 쓴 곡들을 다른 가수들에게 주어 히트시키기도 했다.

 명성과 부를 거머쥔 ‘불멸의 대스타’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에 가려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했지만 각종 수상기록은 그의 탁월한 음악성을 잘 대변해 준다. 12장의 플래티넘 앨범을 기록했고, 세계적으로 1억2천만 장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전미 40싱글차트에 30곡이나 정상에 올려 놓았다. 7개의 그래미상과 오스카상, 골든글로브에서도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프린스는 2007년 롤링스톤지로부터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25인의 기타리스트' 중 1위로 꼽혔고,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역대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100인’에서 27위에 랭크됐다. 롤링스톤지가 2011년에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인의 기타리스트'에서 33위를 차지했다. 2004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84년 발표된 그의 대표 앨범 ‘Purple Rain’은 미국에서만 1300만 장 이상이 팔렸고, 빌보드 차트 200에서 24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2005년 롤링스톤지는 2004년 가장 부자인 아티스트 명단에도 넣었다. 당시 이 잡지는 프린스가 약 5650만 달러를 벌었다고 추산했다.

◆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선 '파격적인 ‘이단아’

▲ '팝의 전설' 프린스가 21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스타 주 미니애폴리스 외곽 자택에서 돌연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프린스가 1994년 발매한 미니앨범 'The Beautiful Experience' 재킷. 프린스라는 이름 대신 '러브 심벌'을 사용한 앨범이다. [사진= 스포츠Q DB]

프린스는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선 이단아였다. 데뷔 초반부터 관능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I wanna Be Your Lover’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비키니 팬츠에 레그 워머 차림으로 등장하고, 앨범 ‘Lovesexy’에서는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찍은 재킷 사진으로 논쟁을 일으켰다. 또 엉덩이가 모두 드러나는 팬츠를 입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1984년 발표한 대표 앨범 ‘Purple Rain’의 수록곡 ‘Darling Nikki’는 노골적인 가사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곡은 당시 외설스런 대중가요의 척결을 위한 단체인 '학부모 음악보존협회(PMRC)'에 의해 청소년의 정서를 좀먹는 레코드로 지목된 제 1호가 됐다. 이 단체는 당시 미국의 상원의원이던 앨버트 고어의 부인 티퍼 고어가 회장을 맡고 있었다.

◆ 상징을 좋아했던 ‘디 아티스트’

프린스는 1994년 발매한 앨범 ‘Come’에서 ‘프린스의 죽음’을 선언하고, 1992년 앨범의 타이틀로 사용한 ‘러브 심벌’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 러브 심벌 앨범에는 펑크, R&B, 힙합, 재즈, 레게, 신스팝 같은 음악 스타일의 요소들이 포함됐다.

프린스가 만든 러브 심벌은 남녀의 심벌을 결합시켜 만든 모양이었다. 1994년 발표한 미니앨범 ‘The Beautiful Experience’의 표지에도 이 심벌이 사용됐다.

그러나 프린스는 이 러브 심벌을 읽는 방법을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팬은 물론 음악 관계자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 곤란을 겪어야 했다. 결국 라디오 DJ들은 이 심벌 마크에 '프린스로서 이전에 알려진 아티스트(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고 긴 설명조의 이름을 붙였다. 이를 간단히 줄여서 ‘디 아티스트(The Artist)’라고 불렀다.

프린스는 또 노래 제목과 가사에 있는 특정 단어를 간단히 대체하기를 즐겼다. ‘to’는 ‘2’로, ‘for’는 ‘4’로, ‘You’는 ‘U’로, ‘are’는 ‘R’로 적었다. 또 ‘I’는 ‘eye’를 대신 표기했다.

프린스는 또 이미지 컬러로는 ‘보라색’을 좋아했다. ‘Purple Rain’은 그를 대표하는 음악이자 색상이었다. 색채 심리에서 보라색은 양면적인 성격을 띤다. 우아함과 고상함을 갖고 있는 반면, 외로움과 슬픔, 환상 같은 불안한 느낌도 주기 때문이다. 프린스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하다.

◆ 평생 사랑을 갈구한 ‘로맨티스트’

프린스의 여성 편력도 다채로운 음악성만큼이나 잇따라 화제를 양산했다. 킴 베이싱어, 셰릴린 펜, 마돈나, 카르멘 일렉트라 등 여러 여성스타들과 로맨틱한 관계를 맺었다.

1985년 작곡가 웬디 멜보인의 여동생인 수잔나 멜보인과 약혼했으나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다. 1986년 2월 14일 가수겸 댄서인 메이트 가르시아와 결혼한 프린스는 이해 8월 태어난 아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전병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가르시아와는 1999년에 이혼했다.

이후 자신의 자선단체에서 일하던 마누엘라 테스톨리니라는 여인과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5년 후에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 테스톨리니는 뉴욕대에서 법률과 사회학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는 자신이 성장시킨 여가수 브리아 발렌테와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편집자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연예부, 체육부 기자, 야구부 차장, 일본특파원, 연예부장을 거친 뒤, 이데일리에서 편집국 부국장을, 스포츠서울닷컴과 메트로신문에서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두루 취재했다. 현재 스포츠Q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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