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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12) 뮤지컬 '헤드윅' 정문성, 다양한 색 내는 '무지개' 같은 배우로 성장하다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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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막후](12) 뮤지컬 '헤드윅' 정문성, 다양한 색 내는 '무지개' 같은 배우로 성장하다 (인터뷰Q)
  • 이은혜 기자
  • 승인 2016.04.28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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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노래하는 게 좋아 가수를 꿈꾸던 남학생은 연예인들 사이에 불던 ‘연극 영화과 진학 바람’에 편승했다. 대학에 들어가 수업 시간을 통해 연기를 배우게 된 청년은 재미를 느끼고, 흥미를 갖게 됐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부족한 실력 때문에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진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고,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 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대학로의 블루칩’, ‘믿고 보는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2016년 그토록 원하던 뮤지컬 ‘헤드윅’의 타이틀롤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바로 배우 정문성이다.

[스포츠Q(큐) 글 이은혜·사진 최대성 기자] “내 이름은 솔롱고스, 무지개라는 뜻이에요.”

뮤지컬 ‘빨래’ 무대에 올라 자신을 소개하는 넘버를 해맑게 부르던 배우는 노래 가사처럼 ‘무지개’ 같이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내는 배우로 성장했다.

정문성은 2007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빨래’, ‘모범생들’, ‘나쁜 자석’, ‘사의 찬미’, ‘스피킹 인 텅스’, ‘두근두근 내 인생’, ‘거미여인의 키스’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온 정문성은 연극·뮤지컬 팬들에게는 ‘믿고 보는 배우’가, 제작자들에게는 ‘믿고 선택하는 배우’가 됐다.

◆ 정문성, 뮤지컬 ‘헤드윅’을 만나다… ‘문드윅’의 탄생

▲ 뮤지컬 배우 정문성

지난해 12월 뮤지컬 ‘헤드윅’이 업그레이드돼 돌아온다는 소식과 함께 캐스팅이 공개됐다. 그와 동시에 타이틀롤에 처음 이름을 올린 정문성이 눈길을 끌었다.

오랜 시간 ‘헤드윅’을 꿈꿔 왔다고 여러 번 밝힌 정문성은 매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문성이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었다. 첫 공연에서는 대사를 통으로 잊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아, 대사 뭐였지? 다음 뭐였지?’하다가 생각이 났는데 ‘아 이건 조금 뒤 대사인데?’ 이런 상태였어요. 사실 나가려고 했어요. 나가서 대본 보고 오려고. 근데 (조) 승우 형이 이야기를 해 줬죠. 그게 보이더라고요. 객석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 머리 위에 자막 같은 게 있어. ‘망했다’ 딱 이렇게(웃음).”

첫 공연에서 실수를 경험한 정문성은 더욱 단단해졌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무대 위에 선 정문성은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배우가 여유가 생기니 관객들도 그의 무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뮤지컬 ‘헤드윅’은 2005년 초연부터 탄탄한 원작과 파격적인 스토리, 분장 등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긴 시간 사랑받아 온 극의 무대 위에 처음 오른다는 것은 당연히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홍익아트센터 옆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고 해서 ‘왜 여기서 보자고 했지?’했는데 가니까 ‘공연장이 여기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음.. 네?’ 이렇게 됐죠(웃음) 진짜 흠칫했어요. 심지어 연습을 해 보니까 더 정신이 없어요. 어느 정도는 자기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초반에는 제가 발렌틴을 연기하던 중이었어요. 그래서 멘붕이 와 가지고…”

◆ “헤드윅은 멋진 사람… 새로운 삶의 의미 찾았을 거라 생각”

 

모든 사람의 집중을 받고 있는 헤드윅. 무대 위 ‘왕’처럼 군림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 헤드윅이라는 캐릭터는 그 누구보다 상처가 많고 인생의 굴곡이 많은 캐릭터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들여다 보며 가슴 아파하고, 연민을 갖기도 한다. 공연을 위해 헤드윅을 분석했던 정문성도 그를 불쌍하다고 생각했을까.

답변은 의외였다. “나는 그런 면 말고 다른 면에 꽂혔어”라고 입을 연 정문성은 자신이 분석한 헤드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사람의 삶이 엄청나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준을 달리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이 더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왜 사는지 모르고, 그냥 살아야 하니까 돈을 벌고, 번 돈으로 밥 먹고, 내일 일해야 하니까 자고. 이런 사람들과 자신의 반쪽을 찾기 위해 본인 인생 전부를 쏟아 부운 사람 중에 누가 더 쓸모없이 살았을까. 헤드윅은 자기 몸의 살덩이를 잘라 내면서까지 찾으려던 게 있고, 확실한 자기 의지를 가진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난 멋있다고 느꼈어요”

뮤지컬 ‘헤드윅’ 무대 위에 오르는 정문성은 유독 ‘감정이 섬세하다’라는 칭찬을 많이 듣고 있다. 특히 공연 말미 헤드윅이 자신을 가두고 있던 가발과 옷을 벗어던지며 ‘미드나이트 라디오’(Midnight Radio)를 열창하고, 브래지어 속에 감춰 둔 토마토를 짓이길 때, 이츠학에게 벗겨진 자신의 가발을 넘겨주며 갈라진 빛을 향해 걸어 나갈 때. 관객들의 마음은 이리저리 요동치고 흔들린다.

이 장면을 연기하는 정문성은 “그 신을 대할 때 감정이 매번 달라진다. 계속 고민하고 있다”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어제(24일) 공연 때까지 쌓인 걸 이야기해야겠죠? 밴드와 이츠학은 내가 붙잡아 둔 사람이잖아요. 내가 버리지 않으면 날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버림받았던 헤드윅은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토미가 사과를 하잖아요. ‘넌 너로서 너무 훌륭해, 네 존재를 스스로 인정했으면 좋겠어.’ 말이 따뜻하잖아요. 그래서 아마 미움이나 미련, 개인적인 것들은 녹았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밴드와 이츠학에게 해 왔던 행동을 인정한 거죠.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불완전한데 억지로 잡아 놓은 거야. ‘가, 이제 우리 ’안녕‘해야 해. 이츠학, 내가 여장하지 말라고 했는데 해도 돼.’”

“헤드윅은 용기가 생긴 거죠. 이 친구들이랑 떨어져서 세상에 부딪칠 용기. 그리고 여장을 하고 돌아온 이츠학을 보면서 난생처음으로 ‘인간이 완벽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그러면서 떠나고 싶어지는 힘이 더 생겼을 거고. 그렇게 떠난 이 멋있는 사람은 또 다른 곳에서 멋있게 살 것 같아요.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았을 거라고 믿어요”

◆ ‘거미여인의 키스’ 발렌틴, ‘나쁜 자석’ 프레이저 그리고 ‘헤드윅’의 헤드윅

 

정문성은 뮤지컬 ‘헤드윅’ 바로 전 작품으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를 공연했다. 극 중 발렌틴을 연기했던 정문성은 공연 기간과 연습 기간이 겹치던 시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흥미롭게도 ‘거미여인의 키스’의 발렌틴과 ‘헤드윅’의 헤드윅은 각각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한 캐릭터들이었다.

“처음에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이랑 ‘헤드윅’ 연습 기간이 겹쳤을 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연습 당연히 안 되죠, 집중도 안 되죠. 발렌틴을 연기하는데 요만큼이라도 헤드윅의 영향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짜증이 나요. 솔직히 발렌틴이나 헤드윅이 인자하고 편안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제 성격도 그렇고. 그래서 처음에 불편했고, 힘들었죠”

이날 인터뷰에서는 정문성이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여러 번 언급됐다. 현재 공연 중인 ‘헤드윅’의 헤드윅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이름이 언급된 캐릭터는 연극 ‘나쁜 자석’의 프레이저였다.

“특별한 캐릭터… 너무 힘들었던 프레이저? 엄청 어려웠어요. 사실 프레이저는 저에게 많은 걸 앗아가기도 했지만 반대로 많은 걸 주기도 했어요. 얘는 강한 캐릭터예요. 저는 약한 사람이지만 프레이저는 속된 말로 ‘지랄’ 맞잖아요. 그리고 아직까지 프레이저만큼 감정 소모가 큰 역할은 없어요.”

연극 ‘나쁜 자석’의 프레이저 이야기를 하며 두 눈을 빛내던 정문성은 말을 끊고, 한 템포 쉬더니 “헤드윅도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되겠죠.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정말 하고 싶었고, 하면서 ‘크으으’ 하고 있고. 재미있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 “무대 위에서 거짓말 줄이는 게 목표”

 

정문성의 필모그래피는 쉴 틈이 없다. 연극과 뮤지컬 작품은 물론이고 ‘유령’, ‘수상한 가정부’, ‘비밀의 문’, ‘육룡이 나르샤’, ‘부당 거래’ 등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도 참여했다.

특히 지난해 정문성은 대학로에서 그 어떤 배우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정문성에게 ‘작품 고르는 기준’에 대해 물었다. 그의 작품 고르는 기준의 첫 번째는 ‘대본’이었다. 여느 배우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의외의 답변이 이어졌다.

“‘대본’ 다음으로는 나에게 제시된 이 배역을 연기했을 때 배역이 나라는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잘 할 수 있나, 조금 힘든가’인데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역할보다 ‘와, 어려워. 근데 이거 해내고 싶어’하는 역할에 더 끌려요. 그리고 그 역할을 잘 해냈을 때 엄청나게 나 자신이 장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 잘했다’(웃음)”

무대 밑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저 배우는 이 공연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을까’를 상상해 보곤 한다. 어떤 배우는 대본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외우고, 어떤 배우는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정문성 역시 한 작품, 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고뇌하는 배우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냉정하게 따지면 거짓이잖아요. 내가 산 인생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는데 그게 ‘무조건 진실’이라고 우길 수 없어요. 대신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과정이 있다면 대부분 ‘진짜’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물론 해결이 안 되는 숙제 같은 부분들도 있어요. 그런 부분들은 연기를 하다 느낌표가 딱 떠요. 그렇게 무대 위에서도 거짓말을 줄여가는 거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 보면 그 사람과 내 마음이 일치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순간이 생겨요.”

 

정문성은 한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는 배우였다. 그는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설명, 자신의 연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생각을 많이 하셨네요”라는 말을 듣자 “너무 많이 했죠”라고 말하며 가볍게 웃었다.

가볍게 웃어넘긴 말이지만 정문성의 많은 생각과 고뇌들은 그가 연기해 온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수많은 작품 속 캐릭터들이 각자의 매력으로 살아 숨 쉴 수 있었던 것은 거짓을 말하지 않기 위한 정문성의 노력이 바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취재후기] 인터뷰 중간중간 끼어드는 가벼움에 ‘진지한 걸 피하려는 성격인가’라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정문성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긴 호흡으로 진지한 답변을 꺼내 놓았다. 그런 순간이 1시간을 조금 넘기는 인터뷰 시간 동안 총 세 번 있었다. 그중 두 번은 ‘헤드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였고, 남은 한 번은 ‘목표’에 대해 물었을 때였다. 순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해요. ‘어떤 배우가 돼야 할까 그리고 정문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은 많이 하는데 모르겠어요. 배우로서는 연기를 잘 하고 싶어요. 그냥 말 그대로. 끝이 없을 것처럼 계속, 조금씩 발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정문성으로는 내 울타리 안에 있는 가족들에게 진짜 든든한 기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조금 가늘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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