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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2) 덕성여대 클러치, '아마추어 우리은행'으로 대학농구 호령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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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2) 덕성여대 클러치, '아마추어 우리은행'으로 대학농구 호령하는 이유?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5.09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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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년 만에 3관왕, 농구동아리 새 강자... 덕성여대배대회 직접 개최, "맨땅에 헤딩이죠"

[200자 Tip!] 우리은행은 여자프로농구(WKBL) 4연패의 금자탑을 달성한 위대한 구단이다. 물샐 틈조차 보이지 않는 수비 조직력, 대승이 유력한 상황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정신력, 내외곽과 신구 세력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고 있으면 왜 이 팀이 리그를 호령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마추어 여자 무대에선 ‘클러치’가 우리은행을 닮았다는 평판이 자자해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 체육관을 찾았다. 농구사랑이 프로 저리가라다.

[덕성여대=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아마추어 여자대학농구리그가 있다. 경희대, 한국체대, 중앙대, 이화여대, 동덕여대, 용인대, 서경대, 숙명여대, 명지전문대, 연세대, 국민대, 서울대, 성결대 등 팀이 두자릿수를 넘는다. 그중 으뜸은 덕성여대 ‘클러치’다.

▲ 덕성여대 농구 동아리 클러치는 창단 2년 만에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름 따라 간다 했던가. ‘반드시 득점을 필요로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뜻하는 용어를 간판으로 내건 팀답게 클러치 선수들은 중요한 순간을 만끽한다. 2014년 3월 21일 창단했는데 단 2년 만에 각종 대회를 휩쓸고 있다. 여자농구 하면 덕성여대다.

덕성여대 하나누리관에 들어서는 순간 우렁찬 기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지난해 우승컵을 들 때마다 최우수선수상(MVP)을 독식했던 편소현(3년)이다. 보기만 해도 아우라가 남다르다. 안 그래도 “프로농구 선수를 했어야 했나 봐요”라고 활짝 웃는다.

◆ 창단 2년 만에 3관왕, 지도자 없이 일군 값진 성과

“생활체육학과생들로 구성됐습니다. 그냥 열정으로 해요. 코치님도 없어요. 연습도 자발적으로 해요. 제가 선수 출신 언니들 뛰는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배워 와서 가르쳐요. A반은 대회 출전을 목적으로, B반은 즐기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B반은 막농구라 보시면 됩니다, 막농구. (웃음)”

▲ 클러치의 주장 편소현. 덕성여대가 우승을 차지할 때마다 MVP를 석권했던 간판 선수다.

막농구라 하기엔 꽤 체계적이다. 편소현과 김자영(4년)이 휘슬을 들고 훈련을 지도한다. 김자영은 “기초를 알려주는 수준이다. 심화로 가면 그게 더 걱정이고 그렇게 배울 필요도 없다”며 “선수 출신 언니들한테 가면 내가 늘 모자라니 늘 묻는다. 다른 팀은 어떻게 훈련하는지 슬쩍 훔쳐도 보고 후배들에게 알려준다”고 웃었다.

2014년 이화여대배 공동 3위, 국민대배 공동 3위, 경기대총장배 공동 3위, 덕성여대배 2위 등 리그 참가 첫 해 파란을 일으킨 클러치는 지난해 국민대배, 덕성여대배, U리그를 석권, 3관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다른 팀들의 경계 1순위로 떠올랐다.

편소현은 “2년 전 첫 대회를 떠올려보면 감회가 새롭다. 3초 룰, 트레블링도 모르고 나가서 오죽했으면 저희에게 ‘거기 있으면 안 돼, 나와야 한다’라고 지적해주시던 심판 분들도 있었는데”라며 “모두가 잘 뭉친 덕이다. 다들 열심히 해서 일궈낸 성과”라고 말했다.

▲ 김자영(오른쪽)의 지시를 듣고 있는 클러치 부원들. 언니들은 동호회 활동에서 배워 온 지도법들을 전수하고 있다.

1년 전과는 위치가 달라졌다. 이젠 성적에 대한 부담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편소현은 “주변에서 정상을 지켜야겠다고 말하시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며 “물론 입상권에 들면 좋겠지만 안 다치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자영 역시 “열심히 하다 보니 따라온 결과일 뿐이다.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은 꼭 지켜주지 않아도 된다”며 “차라리 처음엔 못하다가 마지막 학기 때 잘 했으면 좋겠다. 그게 더 짜릿한 성취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클러치가 인기 동아리가 된 이유, 농구 문외한도 대환영

편소현과 김자영은 “신입생이 9명이나 왔다”고 반색했다. 3년차 동아리, 그것도 여대의 운동하는 그룹이 이렇게 많은 인원을 쉽게 모집할 수 있는 건 찬란한 성과도 한몫했지만 ‘철저하게 기초부터 가르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덕분이다.

▲ 클러치에 입단한 신입생들은 드리블부터 천천히 배운다. 소문이 퍼진 덕에 모두가 두려움 없이 신청서를 내는 인기 동아리가 됐다.

클러치의 언니들은 친절하다. 오리엔테이션 때는 센터, 포워드, 가드 등 농구의 포지션이 무엇이 있는지,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부터 설명한다.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모르는 게 많은 동생, 호기심이 많은 후배가 예쁨을 받는다. 메신저 그룹방은 조용할 날이 없다.

김지원(2년), 강효진(1년)은 “다들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데 몰라서 못하는 게 많다. 선배들께 물어보면 미리 공부를 해서 오신다”며 “농구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도 된다. 공을 처음 잡아 본 친구도 수두룩하다. 드리블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시니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편소현은 “1학년들 하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농구를 잘 하고 싶어 왔다고 할 때는 감동을 느낀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자영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악바리처럼 개인 연습을 하고 자꾸 물어보니 어떻게 예쁘지 않겠나. 나도 농구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후배들을 치켜세웠다.

▲ 김자영은 "악바리처럼 개인 연습을 하고 자꾸 물어보는 후배들을 어떻게 예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누군가가 패스를 못 봐 안면에 공을 맞았다. 순간 적막이 흘렀지만 괜찮은 걸 확인하고선 이내 또 깔깔댄다. 편소현은 “저런 일은 아주 흔하다. 무릎엔 멍이 들고 십자인대가 파열돼도 우리는 농구공을 잡는다”며 “나 같은 경우엔 하도 자주 다치니 엄마가 병원비를 안내주겠다 협박하고 보험회사에서 의심한 적도 있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 대회도 직접 개최하는 여장부들, "맨땅에 헤딩"

못 말리는 농구사랑이다. 보다 역동적인 것을 원하는 덕성여대는 급기야 지난해 대회를 직접 열기까지 했다. 제1회 덕성여자대학교 전국여자아마추어농구대회다. 농구를 사랑하는 여대생이라면 매년 11월 덕성여대 하나누리관으로 모일 것을 추천한다.

개최 목적이 뜻깊다. 생활체육 대회라면 종목을 막론하고 대개 자기 팀의 결과, 성적에만 신경 쓰게 마련이다. 결승에 어떤 팀이 격돌해 명승부를 벌였는지, 건너편 조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등에 관심이 없다. 덕성여대배는 모두가 끝까지 함께하는 이벤트를 지향한다.

▲ 미니게임 중인 클러치 선수들. 농구에 푹 빠진 이들은 대회를 직접 개최하기까지 이르렀다.

경기대배, 국민대배 등 역사가 꽤 되는 대회도 여성이 메인인 대회가 아니다. 남학생들이 메인인 가운데 얹혀가는 이벤트일 뿐이다. 클러치는 덕성여대배를 대표적인 아마추어여자농구축제를 만들어갈 꿈을 꾸고 있다.

7월이 되면 선수들은 나름의 조직위원회를 꾸리고 운영요원 또는 영업맨으로 변신한다. 엑셀 파일로 기업체를 정리하고 물품 지원을 해줄 곳을 물색, 제안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전화를 돌린다. 현수막 제작, 심판 섭외 등은 기본. 대회 당일에는 기록원도 되고 시간계측원도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의 클러치의 손으로 이뤄진다.

편소현은 “맨땅에 헤딩이다. 여성용품, 의류, 신발 등 수많은 업체와 접촉을 시도하지만 응답이 오는 건 10%도 안 된다”며 “그래도 샴푸, 팔찌, 티셔츠, 양말, 손목보호대를 협찬받고 테이핑 업체에서도 직접 오셔서 부상 선수들을 케어했다. 마케팅과 홍보가 무엇인지를 배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편소현, 이지수, 강효진, 최유정, 엄계원. 5명은 "다른 학부생들이 적극 환영한다"며 "열정만 갖고 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침없는 그들에게도 과제가 하나 있다. 체육대학 동아리의 한계를 깨는 것. 선수들은 하나같이 “체대라는 선입견 때문에 다른 학부생들이 꺼려하는 것 같다”며 “문은 열려 있다. 못 해도 열정만 있으면 된다. 와서 함께했으면 한다”고 적극 홍보에 나섰다.

덕성여대생들이라면 하나누리관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지.

[취재 후기] 클러치는 5인이 아니 벤치에 앉은 모두가 반드시 하나가 돼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큼지막한 이벤트를 치러보면서 영업, 마케팅, 홍보 등 경영 전반에 관한 노하우도 체득했다. 주변에서 스포츠산업 실무자들이 인재가 없다고 안타까워들 하던데, 덕성여대 클러치 학생들이라면 뭐든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단체 기념 촬영 도중 "가리는 게 제일 예쁜 줄 알지?"라는 농담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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