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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진영 "정년 없는 배우인생 2막 열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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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진영 "정년 없는 배우인생 2막 열린 느낌"
  • 이희승 기자
  • 승인 2014.02.22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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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찌라시'로 배우인생 2막 열어

[300자 Tip!] 한국 최고의 대학을 나왔다. 외국 동화를 번역하고 작가의 삶을 꿈꿨다. 하지만 '딴따라'의 삶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연출부에 근무하던 중 촬영을 펑크낸 조연 배우 대신 한석규의 형으로 잠깐 등장한 것이 계기가 돼 이제까지 3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최근작 ‘찌라시: 위험한 소문’에서 사설 정보지 제작자를 맡아 배우로서 재미를 만끽했다. 정진영(52)은 “인생 2막을 연 느낌”이라며 “멜로 연기가 어울리는 배우로 불리고 싶다”고 연기 변신 욕구를 한껏 드러냈다.
 

[스포츠Q 글 이희승기자ㆍ사진 이상민기자] 영화 제목이 거슬리지 않았냐고 물었다. 국문과(서울대) 전공자로서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맡은 역할은 특종 전문 기자 출신 일명 '찌라시' 제작자다.

 

 

“고급스럽게 ‘사설 정보지’라고 하기도 그렇잖나?(웃음) 간결하고 확실하게 와 닿아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왜 우리나라 영화 제목에 욕이 없는지 아쉬운 사람 중 하나거든요. 제목부터 뭔가 있는 척하면 보기에 부담스러운데 그런 면에서 ‘찌라시’만큼 확실한 영화는 없죠.”

정진영이 맡은 캐릭터는 기업, 스캔들, 정부 인사 등의 정보를 담은 ‘P 리포트’를 유통하는 박사장이다. 한 부에 50만원씩 하는 고가지만 방대한 정보와 특종으로 탄탄한 구독층을 형성하고 있다. 영화배우로 살면서 단 한번도 ‘찌라시’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감독이 시나리오에 녹여낸 방대한 자료를 보고서야 사람들이 현혹되는 이유를 알았다.

“배우로서 그리 불편한 소재는 아니었었어요. 아마도 내가 거기에 오르내릴만한 위치가 아니라 색다른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대사로 나오는 몇몇 스캔들은 실제 감독이 받아본 찌라시에서 따왔다고 하더라구요. 한번이라도 그걸 받아 본 사람이라면 누군지 알 테니까 상업영화로선 최고의 조건이죠. 원래 시나리오는 사회고발적인 면이 훨씬 많아 묵직했지만 확실한 오락영화로 완성돼 만족도가 남달라요.”

◆ '수다쟁이 선배'되자 사람들 몰려

정진영은 의리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배우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친분을 쌓은 제작사가 2년 전 ‘찌라시’의 시나리오를 건네자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배우 김강우, 고창석, 박성웅을 제치고 가장 먼저 캐스팅된 셈이다.

 

▲ 영화 '찌라시'에서 김강우와 공연하는 장면

드라마 2편과 해외 촬영이 있는 방송 프로그램 MC등 스케줄을 조율하면서 영화를 기다렸다. 막상 촬영이 들어가자 많은 변화가 요구됐다. 감독은 “기존의 영화에서 보여준 무겁고 진지한 모습을 모두 뺀 만화 캐릭터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를 그만둔 지 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시사프로'와 연관짓는 사람이 많아 이참에 그 이미지를 깨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더더욱 현장에서는 말 많고, 코믹한 면을 많이 보여주며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사실 설명이 자세한 영화는 아니죠. 업계 용어들이 많이 들어가서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명랑뉴스’라고 야한 스캔들을 일컫는 말이 있어요. 그런걸 알고 대사를 하면 연기가 더 재밌어져요.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증권맨같은 이미지라고 해요. 그런데 몸무게를 8kg나 늘리고, 진지한 면이라곤 없는 역할을 하려니 변하더라고요. 나이 들어 너무 무게 잡아도 후배들이 불편해 해요. 50대인 내가 현장에서 주책부리고 있으니 다들 편해하는 게 느껴졌어요.”

◆ "배우들끼리 ‘관절영화’라 불러...잔인해도 15세 관람가 나와 다행"

결혼식 때 입었던 양복을 18년 내내 입고 다닐 정도였던 그는 ‘찌라시’를 통해 단벌 신사에서도 벗어났다. 아예 맞지를 않으니, 그나마 있는 것도 못 입는 불쌍한 신세다. 오는 4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엔젤 아이즈’를 차기작으로 정한 그는 “한번 찐 살을 빼려니 너무 힘들다. 계속 다이어트를 하면 작품 흐름상 피해가 갈지도 몰라 적당한 선에서 체중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다들 치사하다고 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극중 박사장은 대기업의 비리를 캐다가 결국 다리를 잃고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내몰린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절뚝거리는 다리조차 의족을 찬채 연기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는 “무릎 아래는 아예 없는 설정이라 내 다리 모양을 본뜬 기구를 달고 다녔다. 거기다 우곤(김강우)은 사고를 칠 때마다 성우(박성웅)에 의해 손가락이 꺾인다. 얼마나 사실적인지 배우들끼리 너무 잔인하다며 관람등급을 걱정하며 ‘관절영화’라고 부르곤 했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 '감정을 전달하는 짐꾼'에서 '흥행불씨 깔아놓는 사람' 인식변화

평소 자신의 역할을 ‘감정을 전달하는 짐꾼’으로 생각해온 그가 이번에 배우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왕의 남자’ ‘7번방의 선물’을 통해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를 필모그래피에 2편이나 넣은 배우였지만 언제나 ‘흥행은 배우의 몫이 아니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상업영화의 태생적인 면을 너무 무시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배우는 만들 때만 관여하는 거라고 봤는데 충분히 흥행 불씨를 깔아놓을 수 있다는걸 깨달았죠. 예전엔 영화 촬영 후에는 항상 여행을 갔는데, 요즘엔 잘 안가게 돼요. 내 인생의 여행이 진짜 여행이란 걸 느끼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나를 자극하는 게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니 촬영장이 즐겁고 ‘찌라시’는 그 정점에서 찍은 영화라 개봉이 기다려져요. 적어도 ‘찌라시’는 관객이 지겨워 할만한 장면은 단 하나도 없어요.”

[취재후기] 언론시사회 후 쏟아진 ‘의외의 재미’ ‘탄탄한 연출력’ 평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배우를 안했으면 사람을 관찰하는 심리학자가 됐을 것"이라던 그는 "정년 없는 배우 인생의 2막이 열린 느낌"이라고 충족감을 드러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역할을 묻자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멜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진영의 숨겨진 멜로본능이 기대된다.

ilove@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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