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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6) '사랑이 온다' 포크가수 신계행, "나이에 맞는 삶 노래할 것"(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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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싱어](6) '사랑이 온다' 포크가수 신계행, "나이에 맞는 삶 노래할 것"(인터뷰Q)
  • 연나경 기자
  • 승인 2016.05.10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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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인생은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과거가 뜻밖의 오늘을 만든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가 삶의 가닥을 잡아갈 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곤 한다. 우연적 발견은 운명이 되고, 운명은 곧 전반적인 삶을 관통하는 것이 된다.

[스포츠Q(큐) 글 연나경 · 사진 최대성 기자] 세렌디피티의 의미는 뜻밖의 발견도 있으나, 행운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의 삶은 행운의 연속이지만,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역시 행운이다.

지난달 27일,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사람들 덕에 음악을 시작했다는 포크가수 신계행 씨와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가을 사랑' '사랑 그리고 이별' '사랑이 온다' 등을 통해 세대를 초월한 감성을 노래해 온 포크 외길 음악인이다.

◆ '쉘부르' 불 밝히기 전부터 계속된 故 이종환과의 인연, '별밤' 통해 시작된 음악인생

▲ 이런 게 바로 운명이 아닐까? '별밤', '쉘부르' 그리고 '이종환'...우연한 만남의 연속이었지만 세 키워드는 신계행의 포크음악에 대한 잠재력을 일깨우는 필연의 계기가 됐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69년 3월17일 명사들과의 대담 프로그램으로 시작됐으나, 음악 감상실의 인기 DJ이었던 故 이종환이 진행을 맡은 뒤 심야 음악프로그램으로 4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라디오다. 이종환과 신계행이 출연했던 '별밤'의 지역은 달랐으나, 두 사람의 인연은 '별밤'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은 취미였어요. 부모님이 학교 들어갈 때 하모니카와 기타를 사 주셨어요. 그때 통기타 동아리가 늘어나는 시기라서 동아리에도 들어가게 됐고요. 동아리를 계기로 제주 MBC에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 게스트로 활약을 하게 됐는데, 방송국에 계신 분이 능력을 시험해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랑 명동 쉘부르로 가게 됐어요."

"쉘부르에 간 날이 마침 콘테스트 날이었어요. 기타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빌리고, 조동진 씨의 '나뭇잎 사이로'를 불렀는데 노래를 다 부르니까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쉘부르 무대에 불이 14개가 있는데 제가 그 14개를 한꺼번에 켜지게 해서였대요. 이종환 선생님은 제주도에서 왔다니까 노래에 대해 기대를 안 하셨는데,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갖춘 데다가 음색까지 아주 특이했다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신계행은 자신이 음악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신, 음악이 삶에서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어릴 적부터 청소년이 됐을 때까지, 신계행의 행보에는 늘 음악이 가득했다.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음악을 할 기회가 계속 있었더라고요. 엄마 말씀으로는, 제가 항상 아이들을 모아 놓고 현관문에서 노래를 불렀대요. 사람들이 칭찬도 하고 박수도 쳐 주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합창반에도 들어갔었고,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장려상도 받았어요. 위키리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실 때, 옛 시인의 노래를 부르고 연말 결선에도 갔어요."

◆ "쉘부르 시대, 우리나라 경기 좋을 때 아니었나 싶어요" 라이브 카페 속 추억 짙게 남아

▲ 우리나라 포크음악의 전성기는 라이브 카페의 추억과 맞닿아 있다. 신계행은 음악과 사랑, 청춘의 삶을 이야기했던 라이브 카페의 진정성과 서정성이 현대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계행은 남동생의 경희대 의대 합격과 더불어 서울에 올라와 쉘부르에서 음악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1985년 가수 박강성의 제의를 받아 옴니버스 앨범 '별들의 속삭임'을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신계행은 라이브 카페의 전성기와 더불어 FM 초창기 시절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가 라디오 FM 초창기였을 거예요. AM이 대세였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선곡할 때 음악다방 DJ들의 입김이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그들이 만드는 차트를 참고해서 선곡을 했고요. 심의도 지금이랑은 달랐어요. MBC 심의실부터 시작해서 PD와 진행자 앞에서 가수가 직접 노래를 부르고 심의를 통과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노래가 나가기 위해서 유명한 DJ분들이 계신 곳에 직접 찾아가서 콘서트도 했어야 했고,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해서 노래를 직접 부르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1990년대가 오면서 댄스음악이 성행했고, 주류였던 포크음악은 댄스음악에 안방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포크계 신예로 떠올랐던 신계행이기에 아쉬움이 있을 법했고, 더불어 독특한 음색과 완벽한 음악적 감각을 갖고 있었기에 다른 장르에 대한 제안도 있을 듯했다.

"포크음악을 하던 사람들의 자리가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통기타 음악을 주로 다루던 프로그램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댄스음악이 대세로 떠오르다 보니까 통기타 가수들 중 일부는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제주도에 있을 때, 제주호텔 나이트에서 원하는 음악을 고르더니 이 음악을 불러서 오라고 하더라고요. 인식이 별로 좋지 않기도 했고, 그룹 음악의 뒷모습이 좋지 않다는 걸 아니까 어머님이 반대를 하셨죠. 트로트 장르 제안도 있었는데, 포크음악을 계속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라이브 카페가 사라진 당시의 모습을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동료들의 이야기를 꺼내 놓던 신계행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말 속에서 현재는 '발라드의 황제'라고 불리는 신승훈의 이야기도 엿들을 수 있었다.

"당시 (신)승훈이가 대전에서 올라와서 서울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음악을 했었는데, 이승철 목소리와 변진섭 목소리를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름을 알리고 소속사에 들어가면서 대박이 났었어요. 그 당시 선후배들하고 함께 했던 것 생각하면 라이브 카페가 없어진 게 많이 서운해요. 라이브 카페가 성행할 당시가 우리나라 경기가 가장 좋을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또, 선후배간의 친밀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술을 마시고 밤을 새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 간의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많이 따뜻했던 것 같아요. "

◆ "음악은 그 세대를 이야기하는 것" 신계행의 꿈은?

▲ '관조(觀照)' 신계행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관조'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이라는 뜻. 포크음악의 외길을 걸어온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인생의 구비구비를 관조한 내적 심상을 느끼게 했다.

신계행에게 앨범을 위해 작업하고 있는 곡이 있냐고 묻자, 최근의 대중음악계 성향에 대해 언급했다. 비유법을 사용한 가사보다는 자극적인 가사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음악의 절정이란, '나이에 맞는 삶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음악과 내가 같이 성장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에요. 나잇값을 한다고 하잖아요, 한 해 한 해 음악을 할 때마다 나잇값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 음악이 30대 후반부터 70대 연령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20대부터 사랑하는 음악이 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대학로 콘서트 당시를 추억했다. 신계행은 그 당시 국립국악원의 피리 악장님을 초대했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경험이 쌓이고, 음악을 통해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악에 대해 무식한 면이 있었어요. 굿 할 때나 듣고, 잔치 할 때나 듣고, 사물놀이 하시는 분들만 봤지 예술의 전당에서 전통 국악을 보게 된 건 처음이었거든요.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 뒤에 우리의 악기와 통기타가 함께하는 공연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같은 현끼리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외에도 승무를 추시는 분과 무대를 하고 싶었어요. 이런 협업한 무대를 가지고 해외로 나가서 내 목소리, 그리고 우리 전통을 알리는 일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신계행은 1985년 데뷔해 올해로 데뷔 31주년을 맞았다. 처음 시작할 땐 포크음악계의 신예였으나, 지금은 어엿한 선배다. 그는 포크음악을 하고 있는 후배들을 향해서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향해서도 '나누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췄다.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돼서 후배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면이 많은데, 이런 걸 개선하고 포크가수들에 대한 후원이 많아진다면 포크가수들도 많이 양성될 거고 선후배가 함께 상생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아요. 또 하고 싶은 일은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을 음악으로 위로하는 일인데, 내 음악으로 음악 치료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가 받은 것을 모두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취재후기] 과거와 지금의 음악 성향은 다르다. 더불어 가사 성향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런 음악들 틈 사이에 잔잔하고 서정적인 포크음악이 있기에, 신계행을 비롯한 포크가수들이 있기에 포크 음악이 지금까지도 다른 형태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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