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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혹'의 피아니스트 김정원, 슈베르트에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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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혹'의 피아니스트 김정원, 슈베르트에 '매혹'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27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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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아트앤아티스트] 푸르른 녹음에 둘러싸여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조용한 동네, 평창동으로 가는 길은 늘 심박지수를 높인다. 고즈너기 자리한 갤러리 카페에 정갈한 흰색 드레스셔츠 차림의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앉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머물렀던 오스트리아 빈의 태양에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얼굴엔 피로가 살짝 묻어났다.

인근 자택에서 연습에 매진하다 짬을 내 나온 참이었다. 오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21곡) 연주에 나선다. 세계적 음반레이블 도이치 그라마폰을 통해 전곡 음반 녹음도 동시에 이뤄진다. 무려 3년에 걸친 대장정이다. 왜 슈베르트일까. 피아니스트는 조용한 톤으로 말문을 열었다.

 

◆ 15세 유학소년 사로잡은 슈베르트, 25년 흘러 전곡 연주로 품다

음악의 수도 빈이 품은 2명의 위대한 음악가가 있다. 빈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다. 중2때 빈으로 유학을 떠나 경희대 음대 교수로 위촉돼 한국에 정착한 2009년까지 10대, 20대, 30대를 보낸 빈은 제2의 고향이다.

특히 지독한 외로움과 추위에 시달리던 빈에서의 첫 겨울 무렵, 자취방으로부터 3분 거리에 슈베르트 생가가 있었다. 지근거리에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창조했던 슈베르트가 자신처럼 고독하게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큰 위로가 됐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슈베르트는 15세 소년에게 친근한 이웃이자 정다운 친구로 다가왔다.

“빈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던 당시 젊은 나이다보니 절제하고 삼키는 음악보다 원 없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쇼팽, 리스트,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초기 낭만파나 러시아 음악을 주로 연주했어요. 그러다 한국 활동이 많아지면서 역으로 빈에 향수를 느꼈던 것 같아요. 빈에서 가장 친근하며 빈의 정취가 가장 많이 담긴 작곡가가 슈베르트라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됐고요.”

 

그리움으로 인해 2012년 슈베르트 실내악곡을 포함해 빈과 관련된 음악을 모아서 ‘김정원과 친구들’ 공연을 꾸몄고, 그해 연말 리사이틀 ‘바흐 & 슈베르트’에선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 D.960을 연주했다. 이듬해에는 아예 슈베르트 작품만으로 공연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악보를 펼쳐놓고 보니 숨은 명곡들이 많았다. 언젠가 슈베르트 소나타를 한번 다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의 착상이 이번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와 전곡 녹음 결단으로 이어졌다. 차근차근 슈베르트에게 접근하며 구애해온 셈이다.

◆ 슈베르트 음악의 매력은 연주자 청중에게 상상력 요구

“마흔이 되면서 지내왔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음악적으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요. 슈베르트 연주는 ‘이래서 내가 음악하는 거였어’란 깨달음을 새삼 안겨줘요. 맛있게 간이 돼 있는 게 아니라 원재료의 맛이 느껴지는 음악이라, 좋은 식자재의 요리를 내놓는 셰프처럼 양념을 넣어봤다 빼봤다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 매우 커요. 연주자는 상상력을 담을 수 있고, 청자는 상상력을 동원해 들을 수 있어서 매력적이죠.”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최소한의 화성과 선율로 이뤄져 구조가 굉장히 간결하다. 피아니스트 입장에선 연주하는 이유를 찾게 하는 행복함을 안겨준다. 악보대로만 연주해도 70~80%가 완성되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슈베르트의 경우는 악보대로만 연주할 경우 10%밖에 결과물이 나오질 않는다. 그만큼 연주자 자신을 일깨우는 음악이다.

 

슈베르트는 초기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로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선율의 ‘겨울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등은 클래식 문외한이어도 친숙한 가곡이다.

“짧은 피스의 가곡에 익숙해서 그렇지 그의 피아노곡은 장시간에 걸친 대곡이 많아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에 비해 피아니스트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소나타는 깊이 있는 부분까지 건드리며 이야기를 전달하고요.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이 전부가 아님을, 멜로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고 사색적 깊이를 갖춘 위대한 작곡가임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요.”

◆ “아름답고 긴장감 있는 연주에 초점 맞출 터”

베토벤이나 쇼팽, 리스트 피아노 전곡 연주 도전은 빈번하게 있어 왔으나 슈베르트는 유례를 발견하기 힘들다. 완성도가 곡마다 다르고 어찌보면 무색무취에 가까워 연주자가 고민해서 채워 넣어야 하는 여백이 굉장히 많아서다. 또 독주회 때 메인 프로그램을 차지할 수 있는 작품도 후기 소나타 3개를 포함해 너다섯 개에 불과해서다.

“처음 계획할 땐 중압감이 없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천국과 지옥을 여러 차례 오가요.(웃음) 음악에 빠져들었을 땐 천상의 멜로디예요. 한편으론 듣기에 클라이맥스 없이 중얼중얼하듯, 싱거울 수도 있는 음악인데 매순간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해서 1시간20분에 걸쳐 소나타 3곡을 연주하고 나면 방전될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죠. 노련한 균형감각, 집중력, 에너지 소모의 계획성을 필요로 하기에 제가 젊은 나이에 도전했다면 분출에 급급해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오는 31일 공연에선 5번, 13번, 19번을 연주한다. 장엄하고, 사랑스럽고, 화려한 각기 다른 세가지 색깔의 곡이다. 특히 19번은 유일하게 단조인 무거운 곡으로 비장함과 따뜻한 우수, 넘치는 생기 등 다양한 얼굴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이후 내년에 2차례, 2016년에 2차례 연주를 진행한다. 총 5차례의 연주에서 다른 성격의 곡들을 배치, 청중이 다양한 매력을 느끼도록 할 계획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아름답고 긴장감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

◆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 음대교수로 왕성한 활동

섬세한 감성과 폭발적인 에너지, 정교한 논리의 3박자를 갖춘 김정원은 동아 콩쿠르, 뵈젠도르프 국제 피아노 콩쿠르, 마리아 카날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를 휩쓸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2003년 김수빈(바이올린), 송영훈(첼로), 김상진(비올라)과 함께 MIK앙상블을 결성해 실내악 저변 확대를 주도해오고 있다. 올 연말 브람스 곡들로 콘서트를 하고, 내년 6월 브람스 음반 녹음을 할 예정이다. 2006년부터는 매년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을 해오며 클래식 대중화에 기여했다. 2009년 이후 경희대 피아노과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는 중이다.

“그동안 제가 하는 음악을 보다 많은 청중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물론 제 음악적 내용을 바꾸면서까진 아니었고요. 마흔이 되니 조바심의 자리에 여유가 들어선 느낌이에요. 굽이굽이 산을 넘는 게 인생이라면 정상에 오르는 게 언제일지, 언제 내려오게 될지에 연연하기보다 이렇게 걸어가다 보면 산을 넘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무얼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어디론가 흘러가잖아요. 하루하루를 잘 살면 인생이 나쁜 쪽으로 흐르진 않겠죠.”

 

[취재후기] 10여 년 전, 그가 고국으로 금의환향했을 때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출연한 이유도 있겠으나 수려한 외모와 논리정연한 화술로 여성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샀다. 재기발랄했던 청년은 여유로운 중견 연주자이자 가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셰프가 돼서 행복함을 느꼈을 거란 얘기를 했다. 음악이나 음식이나 누군가에게 ‘서빙’하는 건 동일할테니.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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