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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타 지금은] (7) 테니스 레전드 박성희의 인생 2막은 스포츠심리학,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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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타 지금은] (7) 테니스 레전드 박성희의 인생 2막은 스포츠심리학, 그 이유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5.16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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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도 인간" 명제에서 출발한 공부, 11년만에 영국서 박사학위 받고 박성희심리연구소 설립

[200자 Tip!] 지금은 중국이 주름잡고 있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 한국 여자테니스는 강세였다. 현재 한국 여자테니스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조윤정(37) 감독과 함께 지금은 가수 윤종신의 아내로 더 유명해진 전미라(38) MBC 해설위원이 그 주역이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대스타가 있다. 한번 출전하기도 어렵다는 4대 그랜드슬램 본선에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진출한 박성희(41) 박사다. 1991년 고교생으로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가 됐던 그는 2000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테니스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영국 유학을 거쳐 지금은 스포츠심리 전문가로 '박성희 퍼포먼스 심리연구소'를 설립해 선수들의 심리 상담과 은퇴 후 삶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 박성희 박사는 1990년대 한국 여자테니스의 대스타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끝으로 이른 나이에 테니스 라켓을 놓았던 박성희 박사는 이화여대 2001학번을 시작으로 11년의 공부를 마치고 스포츠심리학 박사로 두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잠실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은 제 운명인가봐요.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지금도 잠실에 제 사무실을 차렸으니 말이지요."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오피스텔에 차려진 박성희 박사의 사무실은 단촐하면서도 깔끔했다. 박성희 박사가 스포츠 심리와 선수들의 은퇴 후 삶 연구를 진행하면서 선수들 심리 상담을 해주고 있는 곳이다.

선수 박성희는 1990년대 한국 여자테니스를 이끈 레전드다. 고교생으로 최연소 대표팀 발탁도 모자라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나섰다. 한국선수 최초로 US오픈과 윔블던, 프랑스오픈, 호주오픈 등 4대 메이저대회 본선에 모두 출전했다.

1989년 프로로 데뷔한 박성희는 국제테니스연맹(ITF) 서키트 단식,복식에서 7개씩 타이틀을 따냈고, 세계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에서 복식에서 4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랜드슬램 최고 성적은 1996년 프랑스오픈, 1997년 호주오픈 복식과 1998년 호주오픈 혼합 복식에서 16강에 진출한 것이다. 통산 최고 세계랭킹은 복식 34위(1998년 6월), 단식 57위(1995년 9월)이다.

그러나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는 것이 아쉽다. 당시 겨우 만 25세였다. 라켓을 너무 일찍 놓았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그보다는 빨리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화여대에 입학한 2001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2012년 박사학위를 따기까지 10여년의 노력 끝에 테니스 스타 박성희에서 스포츠심리학 전문가 박성희로 변신했다.

▲ 두번의 올림픽 출전과 4대 메이저 대회 본선에 올랐던 박성희는 현역 때 궁금했던 것들을 공부를 통해 풀기 위해 은퇴 뒤 공부에만 매달렸다. 5년의 학,석사 연계과정을 마친 박성희는 선수들의 은퇴 뒤 심리에 대한 연구를 위해 영국 유학을 결심했다.

◆ 탐구열과 학구열이 불탔던 박성희, 영국에서 박사학위 취득하기까지

"현역 때 궁금했던 많은 것들을 공부를 통해 풀고 싶었어요. 이화여대에 2001학번으로 입학한 이후 내가 궁금한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니 스포츠심리학이더라고요. 제가 궁금했던 것을 공부하니까 즐겁고 재미있더라고요. 학,석사 연계과정이 있어서 석사과정까지 5년이 걸렸죠. 이후 박사과정을 어디서 할까 고민하다가 조금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에 영국으로 갔어요."

프로 테니스선수로 뛰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선수와 코치의 관계, 투어 대회에 참가하면서 오는 불안과 긴장을 조절하는 방법, 적당한 긴장이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였다고 한다. 모두가 스포츠심리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학사는 3년 6개월에 마치고 연계과정을 통해 석사학위까지 일사천리로 취득했다. 이후 선수들의 은퇴 후 삶에 대해 눈길을 돌렸다.

"대학을 다니면서 '5월만 되면 프랑스 오픈, 6월이면 윔블던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학교 도서관에 앉아 있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낯선 느낌이 3학년까지도 계속됐죠. 운동은 그만하고 싶어서 은퇴했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들까 하는 생각에 선수들의 은퇴 후 심리 변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그 공부를 하기 위해 저명한 교수님을 알아보다가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스털링대학교로 가게 된 거죠. 학교가 한적한 시골이었지만 교수님만 보고 따라간 것이니 전혀 후회가 없었어요. 오히려 조용해서 공부가 잘됐죠."

다행히도 영국 생활은 즐거웠다. 두 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가 온다고 하니까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은 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들은 관심 밖이지만 외국은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올림피언'이라며 대우를 해준다.

올림피언이 영국의 한적한 '시골학교'에 왔으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더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던 선수 출신이 자만하지 않고 공부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 두번의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었던 박성희 박사는 영국 스코틀랜드 스털링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올림피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던 선수 출신이 자만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는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스포츠심리학 전문가로 거듭났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도 명예박사 학위 수여로 우리 학교를 찾아오기도 했어요. 또 영국까지 왔는데 축구를 안볼 수가 없어서 버밍엄과 레스터 시티의 경기를 보기도 했었죠. 박지성 선수가 있는 맨유 경기를 봤으면 좋았을텐데 티켓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박지성 선수를 아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냥 올드 트래포드 근처에서만 돌고 왔죠. 또 이형택, 조윤정 선수가 윔블던 대회에 출전했을 때 선수 응원 겸 해서 찾아가기도 했었어요."

◆ 은퇴 후 정체성 붕괴, 바람직한 두번째 인생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은

무거운 주제로 들어갔다. 영국 스털링대학교에서 은퇴 후 선수들의 삶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그 논문을 통해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으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공부의 모든 것은 '선수도 인간'이라는 단순한 명제에서 시작해요. 스포츠심리학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방대해요. 그러나 어떻게 선수들이 경기력을 끌어올리느냐, 이를 위해 선수들의 심리, 이미지 트레이닝, 목표 설정 등에만 관심이 많았어요. 정작 선수를 인간으로 보고 선수가 받는 스트레스나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죠.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아시아 쪽은 연구도 거의 없었고 자료도 부족했어요."

엘리트-생활체육 통합과 맞물려 최근에는 선수들의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들이 현역 시절 축적한 부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자신의 삶 대부분을 바쳤던 선수로서의 인생이 끝나기 때문에 이로 인한 부적응, 고민,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인적관계가 제한되어 있죠.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지도자나 선수도 자신을 가르치는 코치 선생님이나 선배로 한정돼 있을 정도로요. 결국 은퇴가 다가왔을 때는 그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코치 선생님이나 선배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들도 정작 은퇴 후 삶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는 거죠. 결국 은퇴하게 되면 사회생활 단절에서 오는 스트레스, 고립감이 엄청나요. 이를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줘야죠."

▲ 현역 시절 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를 드나들었던 박성희 박사는 '박성희퍼포먼스심리연구소'를 잠실 석촌호수 인근 오피스텔에 차렸다. 박성희 박사는 "잠실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고 웃었다.

박성희 박사는 아일랜드의 한 복싱 선수 사례를 들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케니 이건(34)은 대회가 끝난 후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그러다 보니 주위 유혹도 많았고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술을 권유받다가 알콜 중독자가 됐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일랜드는 선수관리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어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는 교육과 지도자 교육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지금은 어린 꿈나무들을 상대로 강연까지 다닌다고 한다.

"선수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은 복지정책이긴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유럽 스포츠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에서도 럭비 대표팀 주장 출신이 파티에서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2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어요. 이후 프랑스에서 선수관리 실패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죠. 결국 은퇴 후 선수들에 대한 관리 차원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재교육한다면 적응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고 봐요. 결국 선수들도 공부를 해야한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너는 엘리트 선수 출신인데 뭣하러 배우느냐'는 말을 하기도 해요.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배울 수 있게 해줘야죠."

또 선수들이 은퇴 후 삶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자아정체성 붕괴 때문이라고도 했다. '유명선수=나'라는 공식이 깨지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자신이 운동선수라는 것에 대한 직업적인 애착이 강하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같은 경우는 아마추어 선수들은 직장일을 병행하면서 스포츠를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드물지만 한국 등 아시아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은퇴 선수 뿐 아니라 징계를 받은 선수들 역시 직업적인 애착이 강한 이유는 바로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기 때문이에요. 국민들은 '선수 아니면 할 것이 없나'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거든요. 선수들은 '선수 아니면 내가 할 것이 없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상이나 방출의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 박성희 박사는 선수들의 은퇴 뒤 새로운 삶을 위한 복지정책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직 스포츠만 해왔던 인생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돼 심리적으로 불안한 선수들을 대한체육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 박성희 박사의 의견이다.

◆ 지원 시스템 줄어든 한국 테니스, 투어 도전않는 현실 안타까워

2012년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박성희 박사는 2013년 국민대 전임교수로 임용된다. 하지만 비정년트랙이라 교수 생활은 1년만에 끝났다. 이후 선수들의 심리상담에 초점을 맞추고 2014년 박성희퍼포먼스심리연구소를 설립했다. 테니스, 골프, 동계종목의 선수는 물론 프로게이머까지 만나 심리 상담과 그들이 겪는 고충을 들어주고 동기 부여를 불어 넣어주며 보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테니스 스타 출신이니 요즘 한국 테니스에 대한 얘기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정현(20·삼성증권 후원)이 지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최근 부진을 겪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어린 나이에 100위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죠. 하지만 더 경험이 필요한 선수예요. 일시적인 부진이나 슬럼프라기보다는 이제 집중 견제가 들어간 거죠. 지난해만 해도 혜성처럼 나타났으니 상대 선수들이 미처 대비를 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대비를 하고 플레이스타일을 연구하고 나오니까요. 정현이 지금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선수 생활이 달라질 겁니다."

또 자신도 투어생활을 한 스타로서 여자 후배들이 분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뿌듯함을 표시했다. 장수정(21·사랑모아병원)과 한나래(24·인천시청) 등이 투어에서 열심히 뛰어주고 있다.

"지금 여건이 제가 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에는 삼성물산이라는 실업팀이 있어서 지도자부터 투어 참가 비용까지 지원받았죠. 하지만 실업팀이 사라지고 도민체전이나 전국체전이 중요해지고 지자체팀이 많아지면서 선수들이 주로 국내에서만 뛰려고 해요. 프로선수로서 투어에서 뛰는 시도가 많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장)수정이나 (한)나래가 투어에 도전하는 것이 다행이고 기특하죠. 그리고 주변의 지원과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해요. 정현처럼 갑자기 승승장구하는 경우보다 오랜 기간 투어를 뛰면서 힘들게 랭킹을 올리는 케이스가 더 많거든요. 투어는 정글이예요. 오랫동안 살아남는 선수가 진짜 강한 선수죠."

▲ 박성희 박사는 한국 테니스의 현실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조언을 던졌다. 실업팀이 많이 없어진 추세지만 선수들이 오랫동안 투어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박성희 프로필

△ 생년월일 = 1975년 2월 17일
△ 출신학교 = 광안초-광안여중-동호정보여고-이화여대(학사, 석사)-영국 스털링대(박사)
△ 주요경력
- 1989년 프로 WTA 전향
- 1991년 최연소 여자테니스 국가대표
- 1995년 첫 WTA 랭킹 100위권 진입 (당시 87위)
- WTA 최고 랭킹 단식 57위 (1995년 9월)
- WTA 최고 랭킹 복식 34위 (1998년 6월)
- 호주오픈 본선 출전 (1995~1996)
- 프랑스오픈 본선 출전 (1996~1998)
- 윔블던오픈 본선 출전 (1995~1996)
- US오픈 본선 출전 (1998)
- ITF 대회 여자단식 7회 우승, 여자복식 7회 우승
- WTA 투어 대회 여자복식 4회 준우승
- 통산 여자단식 196승 152패, 여자복식 120승 96패
-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 (2013)
- 박성희 퍼포먼스 심리연구소 소장 (2014~)

[취재후기] 박성희 박사는 이른 나이에 라켓을 놓은 대신 펜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을 일찍 시작했고 그만큼 빨리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스포츠학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박성희 박사도 영국 스털링대학교로 유학을 가면서 대한체육회로부터 학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력 향상 못지 않게 선수들의 은퇴 후 사회 적응과 새로운 인생 개척을 위한 논의와 정책도 중요하다. 박성희 박사가 아주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 박성희 박사는 현역시절 '코트의 악동'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코칭스태프와 의견 대립도 많았지만 다행히도 개성이 강하고 자기 표현이 분명한 선수라고 인정해줘 인복이 많았다고 선수 시절을 회상한다.

"현역 시절엔 고집 센 '코트의 악동', 인복이 많았다"

박성희 박사는 현역시절 자신이 '코트의 악동'이었다며 미소지었다. 박성희 소장은 "어렸을 때부터 고집쟁이고 울보였다. 그 성격을 고쳐보고자 아버지께서 어머니, 동생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게 했다"고 말했다. 성격 개조를 위해 취미로 했던 테니스는 결국 엘리트 선수로 뛰는 계기가 됐고 한국 여자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4대 그랜드슬램 대회에 모두 출전하는 선수가 됐다.

이후 박성희 박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에 학적을 걸어놓고 운동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공부는 나중에 하고 테니스에 전념하게 한 은사가 바로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이다.

박성희 박사는 "대학에 학적만 걸어놓고 학위를 따는 것보다 현역 생활을 마치고 확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받고 삼성물산(이후 삼성증권으로 팀이 바뀌고 지난해 해체)에 입단했다"며 "당시 주원홍 감독님이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자신은 결코 얌전한 선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친한 친구들로부터 농담처럼 '너는 코트의 악동이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지는 것이 싫어서 악바리이기도 했고 고집도 셌다"며 "절대로 얌전한 스타일이 아니어서 화도 많이 내고 코치와도 의견 대립을 하기도 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감독, 코치들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개성이 강하고 자기 표현을 잘하는 선수로 여겨줬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인복이 있었다"고 밝혔다.

박성희 박사는 "현역 시절 성질도 내고 대들기도 하면서 야단도 많이 맞아봤기 때문에 지금 선수들의 심리와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어쩌면 내가 했던 공부,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천직인 것 같다"고 웃었다.

박성희 박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호주오픈 본선에 처음 출전해 승리한 것을 들었다. 그는 "당시 세계랭킹 28위에 있던 레일라 메스키와 1995년 호주오픈 1회전에서 맞붙었다. 모두가 열세라고 했는데 1승을 거뒀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세계랭킹은 105위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98년 1월 호주 골드 코스트에서 열렸던 복식 경기였다. 왕시팅(대만)과 호흡을 맞춰 출전했던 박성희는 스기야마 아이(일본)-엘레나 리코프체바(러시아)에 1-2(6-1 3-6 4-6)로 역전패했다. "다 이겨놓고 졌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여자복식에서 주로 호흡을 맞췄던 왕시팅은 현재 대만 여자테니스 대표팀 감독으로 활동하며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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