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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혜교의 '두근두근 연기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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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혜교의 '두근두근 연기 인생'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29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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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여배우들의 연기 인생에서 변곡점은 엄마 역할을 맡는 순간이다. 여신급 미녀스타로 추앙받았던 송혜교가 엄마를 연기했다. 그것도 무려 16세 소년의 엄마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둘이다.

아침저녁으로 가을기운이 완연해진 8월 끝자락의 어느 날, 삼청동 카페에서 송혜교와 눈빛을 교환했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인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9월3일 개봉)에서 가수를 꿈꾸던 열일곱에 아이를 낳아,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서른셋의 당차고 속 깊은 엄마 미라로 스크린을 채운다.

 

◆ 장난기 많고 에너지 넘치는 엄마 송혜교

과연 송혜교가 엄마 캐릭터를, 그것도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불치병 아들을 수발하는 엄마를 소화할 수 있을까가 관심사였다. 그의 이미지로 인한 자연스러운 의심이었으나 기우였다. 영리하고 연기력이 좋은 배우답게 애틋한 모성을 빚어냈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고, 팬들이 여러모로 상상했을 터라 부담됐죠. 하지만 원작에서 맥락을 가져온 가운데 부모인 대수와 미라, 자식 아름이를 구축한 부분에서 새로운 요소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요. 저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우려도 알고 있었고, 관객의 공감이 중요하므로 고민이 굉장히 컸어요. 그래도 본업이 연기자이니까 캐릭터마다 바꿔나가는 게 숙제잖아요.”

그래서 각색 작업에도 참여한 이재용 감독과 오랜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는 등 도움을 많이 얻었다. 과거와 달리 의상과 헤어 등 비주얼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채 감독과 담당 스태프에게 모두 맡겼다.

“굳이 스스로를 위로한다면 소설 속 미라가 아이돌이 되고 싶어했던 엄마니까 끼도 있고,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외모도 있지 않았을까요?(웃음)”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한 여자, 장난꾸러기의 모습, 철없는 부부 이미지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기존 영화나 드라마 속 모성애가 절절한 희생적인 엄마 캐릭터들과 달라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는 어머니를 참조했다. 미라의 장난스럽고, 유머러스하며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똑 닮아서다. 구체적인 행동 연기에서 훌륭한 보조 자료가 됐다.

TV를 통해 걸그룹 태티서를 바라보던 클로즈 업 장면에서 송혜교의 천갈래 만갈래 상념에 젖은 표정은 인상적이다. 접어야 했던 꿈과 청춘을 반납한 고단한 현실, 금쪽같은 새끼에 대한 안타까움을 한순간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 “파트너 강동원은 형제 같은 친구”

극중 동갑내기 대수 역할을 맡은 강동원과 10대 고교생으로 나누는 풋풋한 연인 호흡과 생활의 때가 묻어나는 30대 부부 앙상블은 실제 부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2010년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의 단편 ‘러브 포 세일’에서 연인으로 출연한 바 있다.

“4년 전에 공연할 때는 하나도 친하지 않았어요. 첫 미팅 이후 3일 만에 스캔들 기사가 터지면서 오히려 친해졌어요. 당시에는 서로 존댓말을 하고 지낸 사인데 이후 친한 스태프들이 겹쳐서 사적으로도 친해졌고, 같은 소속사 식구가 되며 이젠 형제같은 친구가 됐죠. 보통 배우들이 친해지기 직전까지의 시간 동안엔 어색해서 놓치는 신들이 많은데 이번엔 그런 게 없었죠. 워낙 친하니 감독님도 편하게 디렉팅하시더라고요. 둘이 알아서 척척 해버리니까.”

▲ '두근두근 내 인생'의 강동원(사진 위)과 조성목(아래)

교복을 입은 채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알콩달콩 연애감정을 키워나가다 덜컥 임신 사실에 혼비백산하는 강동원-송혜교 커플의 모습은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와 감칠맛 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감상의 보너스를 선사한다.

“과거 신은 현재 시점 촬영을 모두 마친 뒤에 찍었어요. 홀가분한 상태라 현장에서 즐기고 놀자는 마음으로 임했던 거죠. 아무런 부담 없이 연기했던 게 화면에 나타난 것 같아요.”

◆ “내 아역시절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뛰어난 아역 조성목”

얼굴은 80세이나 마음은 16세 소년인 아름이를 연기한 조성목(13)은 연기 경력이 거의 없는 신인이다. 송혜교 역시 14세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역스타 출신이다.

“리딩 때 전혀 떨지를 않아서 깜짝 놀랐어요. 아역배우 시절 내 첫 리딩은 어땠나 회상해보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하는 친구예요. 현장에서도 즐길 줄 아는, 준비가 잘 된 아이에요. 아역 배우 중에서도 밉상인 애들이 있는데 특수분장을 하느라 힘겨웠을 텐데도 성목이는 과묵한 데다 마음이 절로 갔어요. 연기하면서는 엄마의 마음을 억지로 쥐어짜내기보다 베스트 프렌드란 마음으로 대했어요. 원작에서도 모자지간이 친구처럼 드러나잖아요.”

 

송혜교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아들과 아빠의 이야기라고 여긴다. 미라 캐릭터는 둘을 든든히 받쳐주는 데 의미가 있다. 아름이가 부각돼야 하기에 강동원과 “성목이를 어떻게 하면 빛이 나게 할까”를 두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귀띔했다.

◆ 오우삼 감독과 ‘태평륜’ 끝낸 뒤 눈물바다

지난 4년 동안 송혜교는 중국에서 연기 입지를 다지는 데 공력을 쏟았다. 홍콩 뉴웨이브 기수인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3)를 시작으로 이넝칭 감독의 ‘나는 여왕이다’와 오우삼 감독의 ‘태평륜’(2014)에 연이어 출연했다. 중화권 유명 감독들과 줄줄이 작업한 이유에 대해 “감독님들이 내 안의 새로운 면모를 끄집어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이 없어 쉬고 있을 때 왕가위 감독으로부터 ‘일대종사’ 캐스팅 제의를 받았어요. ‘양조위 아내 역이고, 분량은 작지만 모든 이들이 기억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시엔 현장에 가서 하나라도 배우고 싶었고,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 배우가 궁금했어요. 중국의 영화현장도 궁금했고요. 그래서 갔던 건데 4년이나 걸릴 준 몰랐어요. 하하.”

 

첫 해외진출 영화인 ‘일대종사’ 촬영 당시 새로운 현장인 데다 접해보지 않은 감독 스타일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란 회의가 엄습했다. 다양한 연기를 끝없이 요구하며 쉽게 OK 사인을 내려주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흔히 봐왔던 연기 스타일이 나오는 게 너무 싫었다. 갈기갈기 분해해서 재조립하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촬영이 끝난 날, 서로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했어요. 끝내고 보니 얻은 게 많았고, 연기 욕구가 샘솟았어요.”

‘일대종사’ 때가지만 해도 중국어로 연기하는 게 무서웠다. 다행히 대사양이 적어서 큰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욕심이 생겨 ‘태령륜’ 때는 전체 대사의 95%를 중국어로 소화했다. 대사와 감정을 신경써야 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밀어붙이는 감독에게 “저 한국사람이에요”란 항변을 할라치면 “아니야, 될 거야! 한국인 중국인이 어딨어”란 대답만 돌아왔다. 촬영 마지막 날, 서로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란 말을 주고받았다.

“어렸을 땐 한번 고된 작품을 하고나면 ‘다음엔 쉬운 게 오겠지’ 했는데 요즘은 매번 도전이에요. 후후. 그래도 힘겹게 마치고나면 두 번째는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게 있으니까. 하고나면 뿌듯함이 커서 자극을 계속 맛보고 싶나봐요. 제겐 중국 활동이 그래요.”

 

◆ 30대 접어들며 연기와 현장 즐겨...일 욕심 탓에 결혼 미뤄

중국 활동은 연기에 임하는 송혜교의 자세를 바꿔주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대 시절엔 상대 연기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배려도 부족했다. 나만 잘하면 됐다. 주위를 바라보는 여유가 없었기에 어려운 시간을 빨리 빨리 넘기는데 주력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달라졌다. 상대의 연기가 궁금해져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고, 어떤 경우엔 상대 배우가 더 돋보여야 하므로 연기 조절에 신경을 쓰곤 한다.

“예전엔 ‘현장이 즐겁다’는 다른 배우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힘들어서 빨리 마치고 집에 갈 생각만 했죠. 그런데 지금은 집중하다보니 집 생각이 안나고, 오히려 집보다 더 편해요. 이제 내가 연기와 현장을 즐기고 있구나, 싶어요.”

또 20대엔 결혼과 가정에 대한 환상이 많았다. 30대가 되니 일 욕심이 밀물 듯 밀려든다. 지금 결혼을 하면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아쉬움이 클 것 같단 생각이 강렬하다.

“과거에 작품을 많이 하지 않은 거에 대한 후회가 커요. 몇 작품이라도 더 해보고 싶은 거죠. 또 주위에 싱글인 언니들이 많아서 함께 어울리다보니 결혼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좀 더 늦게 결혼하고 싶어요.”

 

[취재후기] 영화 ‘황진이’ 인터뷰 때 이후 7년 만에 만난 송혜교는 좋은 에너지를 머금은 채 성장해 있었다. 저예산 독립영화, 단편영화 출연에 이어 중화권 영화에서 세계적인 감독들과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모색과 변화’를 감지했다. 그가 출연했던 노희경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똑 부러지고, 군더더기 없이 말하는 그에게서 30대의 성숙한 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기분 좋은 변신이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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