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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표가 태극 유니폼을 왜?' 단장이 들려준 월드시리즈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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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표가 태극 유니폼을 왜?' 단장이 들려준 월드시리즈 뒷이야기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8.29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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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이라도 NO!' 그라운드 출입 제재당했지만 "예외없는 원칙 준수 정신"에 감명

[스포츠Q 민기홍 기자] “정치는 노(NO)! 스포츠맨십이 중요한 것 아니겠나.”

일본 리틀야구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 25일(한국시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결승전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관중석에 나타나 한국 친구들을 응원했다. 이는 신현석 한국리틀야구연맹 전무의 사교성이 톡톡히 빛을 발한 결과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신 전무는 아시아-퍼시픽 대표 자격으로 대회에 나선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의 단장 자격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3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여독을 풀새도 없이 이튿날 국내대회 개회식 준비를 위해 장충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개막식 모습. 한국이 우승한 이 대회에는 미주 그룹 8개팀과 국제 그룹 8개팀이 참가했다. [사진=한국리틀야구연맹 제공]

일본이 티셔츠를 입고 한국을 외치게 된 사연, 리틀야구 본거지 윌리엄스포트의 보수적인 분위기, 신 전무가 그라운드조차 밟기 힘들었던 에피소드 등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뒷이야기 보따리를 한꺼번에 풀었다.

◆ 정치는 잊자, 일본은 한국을 응원한다 

신 전무는 한국이 국제그룹 결승전에서 일본을 12-3으로 완파하고 결승전 진출을 확정지은 날 밤, 일본의 임원 중 한 명과 잔을 기울였다. 그 임원은 바로 2012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지도자 시미즈 씨였다. 그 역시 단장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참석했다.

▲ 일본 선수단은 태극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결승전 응원에 나섰다. [사진=한국리틀야구연맹 제공]

둘은 과거 아시아 대회를 통해 만난 적이 있는 사이. 신 전무는 위로 차원에서 술자리를 제안했고 시미즈 씨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훈훈한 덕담이 오가며 분위기가 무르익던 차 시미즈 씨는 한자로 ‘정치(政治)’를 쓴 뒤 큼지막한 X표를 그렸다.

“스포츠맨십이 중요한 것 아니냐. 우리는 아시아 대표 한국이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

일본 대표팀 선수들은 이튿날 3·4위전에서 미주 지역 서부 대표 마운틴 리지를 5-0으로 완파한 뒤 이어 열린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과 미국 그룹 우승팀 그레이트 레이크 간의 제68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결승전을 관람했다.

월드시리즈에 나선 전 선수단은 대회가 끝날 때까지 귀국할 수 없다. 조기 탈락하더라도 결승전까지 지켜본 후 고국으로 돌아간다. 일본 선수단은 왼쪽 가슴에 태극기가 새겨진 푸른 티셔츠를 입고 한국을 응원했다. 마침 한국 선수들이 티셔츠를 선물한 터였다.

신 전무는 “일본 선수들이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왔더라”며 감동해서 그 친구를 와락 안아줬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스포츠에서까지 한일 관계가 냉전일 필요는 없었다.

◆ 사우스? 노스? 코리아도 잘 모르는 촌 동네, 윌리엄스포트 

▲ 윌리엄스포트의 하워드 J. 라마드 스타디움. 작은 마을인 이곳은 리틀리그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곳으로 미국 전역에 잘 알려져 있다. [사진=한국리틀야구연맹 제공]

“영화에서나 접했던 미국 사회의 전형적인 집들이 죽 늘어져 있었다.”

윌리엄스포트는 인구가 3만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국제리틀야구연맹의 본사가 있는 사우스 윌리엄스포트는 매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곳으로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신 전무는 “이 지역 사람들은 8월 하순 열리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로 막대한 수입을 얻어 1년을 산다고 할 정도”라며 “매경기 최소 2만명에서 4만명 가량의 관중이 들더라”고 설명했다. 대회 기간 30만명의 관광객이 이 곳을 방문한다니 틀린 말도 아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지난 28년간 리틀리그에서 자취를 감춘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신 전무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먼저 하는 말이 사우스냐 노스냐라고 물을 정도더라”며 “김정은 이야기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웃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역민 대다수가 나이가 지긋하고 성향도 매우 보수적이다. 미주 그룹 결승전에서 전부 백인 선수들로 구성된 라스베가스 팀과 전부 흑인 선수가 포진한 시카고 팀이 붙었는데 시카고가 월드시리즈 결승에 올라가자 관중이 급감했다고 한다.

▲ 경기장을 찾은 박찬호. ESPN은 유명했던 메이저리거가 경기장을 찾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진=한국리틀야구연맹 제공]

신 전무는 “ABC 방송사 보도를 통해 일리노이를 대표한 그레이크 레이크(시카고)가 결승에 진출하면서 한국과 결승서 붙어 4만명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역 사람들 중 흑인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그럴만도 했다”고 전했다.

◆ WBC 못지않은 선수 대우, 국제 대회 운영은 이렇게 하는 것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이 정도일까 싶던데요. 아이들을 위한 언론의 태도, 안전 대책, 시스템 하나하나 등 모든 것이 배울 것입니다.”

리틀리그에 출전한 아이들은 세계 각국과 대륙을 대표해 나온 선수들인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신 전무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들도 방송사가 끊임없이 이슈화시키더라”며 “WBC와 비교해도 결코 뒤질 것이 없더라”는 견해를 전했다.

▲ 선수들은 도보 5분 거리의 경기장도 대회 운영측의 배려로 차로 이동했다. 대기중인 미니밴 차량이 보인다. [사진=한국리틀야구연맹 제공]

그는 “야구장 옆에 숙소가 있는데 도보로 5분이다. 결승전 때는 미니밴을 대기시켜 선수들을 이동시키더라”며 “그만큼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안전을 중요시하고 아이들을 아끼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신 전무는 “밥 먹는 시간도 철저히 지켰다. 사인이 떨어지면 딱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다”며 “ “철저한 시스템을 보고 감탄했다. 국제 대회를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하는지 노하우를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 신현석(오른쪽) 전무가 귀국 직후 이병석 대한야구협회장의 축하를 받고 있다. 신 전무는 대회에 얽힌 뒷얘기를 묻는 질문에 남달랐던 감회를 털어놨으나 "옆에서 그저 지원한 사람일 뿐"이라며 단독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극구 사양했다. [사진=스포츠Q DB]

한국 단장이라는 직위를 가졌지만 신 전무는 ‘굴욕 아닌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우승을 확정짓자마자 그라운드로 내려가 함께 기쁨을 나누며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스태프에게 제재를 당한 것. 신 전무는 “당신은 누구인데 여기로 내려 오느냐는 질문을 받고 도로 관중석으로 쫓겨났다”며 “나는 찬밥 신세였지만 선수들이 최상의 대우를 받으니 정말 좋았다. 느낀 점이 많았다”고 만족해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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